37. 투쟁과 평화 (6)

프뢸리히 공녀가 원하는 것...

언제나 똑같지, 뭐. 사람들로 북적이는 파티장, 연회장에서 도수 높은 술을 정신 없이 들이키며 그 날의 뭣 같은 일은 모두 다 잊고, 모르는 사람들과 몸을 섞으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 그거 말고 더 있으려나…

“키르토, 오랜만이야.”
“롤랜드~ 오랜만이네! 아, 잠시만.”

키르토는 주변의 여자들을 치우고,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곳으로 나를 인도했다.

“이야, 인기 많네?”
“뭐, 여기서는 네가 더 인기 많아. 너 저번에 왔다가 그 후로부터 여자들이 다 너만 찾는다고. 방금도 너 보고 얼마나 수근대던지… 어후…”
“오늘 찾아온 이유, 이쯤 되니까 어느정도 짐작 가지?”
“바로 알았지, 또 공녀 때문이지?”
“어, 오늘도 좀 부탁한다고.”
“시간은 저번처럼?”
“응, 이런 거 맡길만한 사람은 너 밖에 없더라. 미안.”

키르토는 푸흐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 말라는 거겠지.

키르토는 내 절친한 친구이다. 어릴 때부터 가문을 이어 받을 생각 따윈 없고 노는 데에만 관심이 많아서 스트릿 클럽을 운영 중이다. 덕분에 공녀가 마음 껏 놀고 싶어 할 때마다 이 클럽의 프라이빗룸에 공녀의 친구들을 데리고 공녀의 추한 모습을 알리지 않으면서 놀 수 있었다.

공녀와 키르토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기도 하고, 친하다기 보다는… 좀 비즈니스 같은 관계라 그런지 페이백만 잘 되면 입 열지 않을 키르토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공녀도 믿고 이용 중이다.

“음… 롤랜드. 그런데 말이야.”
“응? 뭐 말 할 거 있어?”
“그게… 하, 씨. 이걸 말해도 되려나 모르겠는데…”
“뭔데, 말 해.”
“너 이거 공녀한테는 비밀이다?”
“어, 말하기나 하라니까?”
“공녀 말이야, 너 버리려고 하는 거 같던데.”
“…뭐?”

키르토는 뒷목을 긁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건 나인데, 오히려 키르토가 더 당황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저번에 공녀가 잠시 룸을 빌려달라 한 적이 있었어. 당연히 너를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무슨 겁나 화려하고… 아무튼 진짜 높아보이는 사람들이랑 오는 거 있지.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고.”
“…계속 말해.”
“안에서 심각한 얘기라도 하는 줄 알고 몰래 엿들었지. 그런데 안에서 네 이름이 나오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하면서 계속 들어봤는데 공녀랑 니콜라이? 라는 남자가 얘기 중인 거 같았는데 네 집안사부터 너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더라. 그러다가 남자가 이제 질릴 때도 되지 않았냐고 공녀한테 물어봤어.”
“…”
“너 괜찮냐? 그만 할까?”
“아니, 아냐. 괜찮아. 계속 말해.”

괜찮다고 하는 내 말과는 달리 내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못 듣겠으면 바로 말해라. 아무튼 그 남자가 질릴 때도 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 내 생각엔 그 질릴 때 되지 않았냐는 그 대상 너인 거 같아. 하… 근데 그 뒤에 공녀가 한 말이 더 가관이거든? 공녀가 이미 질린 지 오래고, 이용해 먹을 수 있을 때 까지는 더 이용해 먹을거라고 말하고는 진짜 룸이 떠나가라 웃더라? 와, 나 진짜 무서웠다고.”
“…야, 나 먼저 가도 될까?”
“어? 어, 가서 좀 추슬러라.”
“아, 오늘 그 예약은 취소할게.”
“응, 잘 생각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더 들었다간 내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공녀가 말한 언제까지 이렇게 처리해 줄 수 없다는 그 말이 이런 뜻이였나? 내가 언제 널 버릴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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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5-05 16:39 | 조회 : 258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