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투쟁과 평화 (4)

"그럼 편하게 바그너라 부르지."
"아,아니... 바그너라고 하였나?"
"네,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바그너면... 그 남작 가문 아닌가?"

순간 장이 술렁거렸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귓속말을 하며 쑥덕거렸고, 모든 시선이 내게 일제히 집중되었다. 본명을 공개하지 말 걸 그랬나...

"네, 그 바그너 맞습니다. 하지만 직속 후계자나 직속 가족이 아니라...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첩에게서 태어난 서자 입니다. 그러니 크게 염려 마십시오."
"아니... 그런데 바그너 가문이면 아직도 크게 영광을 누리고 있지 않나? 서자라도 귀족처럼 대우 받을 수 있을텐데... 굳이 시민군에 들어온 이유가 뭐지..?"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저희 부모님을 살해한 두 영애에게 앙심을 품어 복수하기 위해서 라고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날의 일을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는가?"
"... 좋습니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컵에 물을 담아 한 모금 마셨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보자...

*

그때는 일 년 전, 내가 프뢸리히 공녀와 만난 날로 시작되었다. 그때의 나는 겉으로 보기에만 귀족 이였지 가지고 있던 재산이나 사람들에게 받는 대우는 오히려 평민보다 못했다. 그저 첩의 자식이라고 언제나 돌덩이를 맞아야 했고 욕을 먹어야 했다.

그들이 내게 욕을 하든 내게 돌덩이를 던지든 아무렴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첩이 뭐 어때서..? 우리 어머니는 어쩔 수 없었어. 살려고 발버둥 친 결과가 첩이였던 거라고.

한 번은 어머니와 잠시 외출을 하러 나왔을 때였다.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가자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수군거렸다. 몇몇 사람들은 내게 대놓고 욕을 하였다. 그 사람들이 욕을 하든 어쩌든 상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어머니에게 날계란을 던지자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움직였다. 정신을 차려보자 나는 이미 날계란을 던진 남자 앞으로 와 있었다.

그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보자 더 화가 솟구쳤다. 나는 이성을 잃고 그 남자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짜---악!

남자의 뺨이 붉게 변했다. 남자는 내게 연신 욕을 했다. 그 남자의 주먹이 내 명치로 향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너무나 느렸다. 그 지방 덩어리의 뚱뚱한 몸으로 얇은 몸을 가진 나를 순발력으로 이기기엔 너무 어려웠다. 난 그의 두 팔을 제압하고 그 위에 올라탔다. 순간 정신을 놓아버렸다. 울분이 쏟아졌다.

나의 주먹은 그의 얼굴로 향했다.

연신 그를 패다보니,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후엔... 난 이미 피투성이인 남자의 목을 온 몸의 무게를 사용해 누르고 있었다. 그가 켁켁 거리던 것도 잠시, 그의 숨이 멈췄다. 이성이 잡히고 그의 맥박이 멈춘 걸 확인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그제야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은 그가 더 이상 반항을 하지 않자 더 소름 돋아 하며 날 벌레 보듯 바라보았다. 몇몇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은 날 제지했고, 난 힘이 다 빠진 채로, 남자들의 제지에 이끌렸다. 나는 충격에 빠져 보이는 어머니를 데리고 저택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덜덜 떠시며 무서워하셨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괜찮을 거에요."
"로, 롤랜드! 어, 어떡하니..? 아... 내, 내가 공작님께 부탁이라도 해볼게!"
"..."
"아가... 그러니까 걱정 마렴..."
"네."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 혼자 이렇게 큰 일을 처리하기엔 힘 부족이기도 했고, 내가 어물쩍 일을 넘기기 보다는 아버지께 어떻게든 부탁하는 게 더 낫다.

...

짜---악!

"..."
"하... 뭐? 살인..? 살~인?"
"...네."
"네가 그 취급을 당하고 살았던 건 무슨 연유에서 인지 알지 않는가?"
"압니다."
"네가 서자 이기 때문이야! 서.자. 귀에 못이라도 박으렴. 넌 서자야."
"...네...."

어머니가 아버지께 결국 내 사실을 말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감싸주려 하셨다. 하지만... 내가 죽인 그 남자의 직위가 백작 이였다는 게 밝혀지고 아버지는 다짜고짜 내 뺨을 때리셨다. 뭐... 충분히 그러실 만한 일이었다. 폭행도 아니고, 사기도 아닌, 살인이니까.

"...난 널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다."
"..."
"네가 알아서 해결해."
"...네."
"...요즘 네가 프뢸리히 공녀를 만나고 있는 걸 알고 있다."
"네...네? 그걸 어떻게..."

아버지는 싸늘한 눈빛으로 날 흘겨보았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는 걸 보니 분명 무슨 계락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정 안되겠으면 그 여자한테 빌 붙어 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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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3-02-22 00:43 | 조회 : 252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