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미친년

"정말 미쳤군, 미쳤어."

그가 혀를 쯧쯧찼다. 이러한 모습마저 우습다.

"왜 그러나? 날 죽이고 싶지 않아? 음... 아니면 같이 러시안룰렛이라도 할까 그래?"
"난 그딴 거 하고 싶지 않아, 근데... 방금까지 무릎까지 꿇고 빌던 사람은 어디 가고, 갑자기 왜 그러는 건가?"
"왜, 내가 미친 거 같아? 아니, 난 미치지 않았어. 그런데... 계속 프뢸리히 공녀라 부르던데... 난 그 공녀가 아니야. 그저 난 사람들을 웃기는 광대일 뿐이야. 난 하야디 바그너. 난 살인자가 아니야. 역시... 너도 안 믿는구나.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하야디 바그너? 혹시 스코틀랜드의 연쇄살인범 말하는 건가?"
"그치, 난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네. 하지만... 연쇄살인범은 아니야."
"프뢸리히 공녀, 정말... 그대... 지금 정말 추해 보여. 살려고 발악하는 건가? 정말 추하군."

그가 표정을 구겼고, 입꼬리는 약간 올렸다. 참 기괴하기도 하고 야릇하기도 한 표정이었다. 자신감에 찌들어진 저 남자를 어떻게 해야 떨어뜨릴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빠졌었다.

*(아밀론 시점)

정말, 정말 미친 여자군. 무릎을 꿇고 빌다가 갑자기 웃다니. 갑자기 자기를 에밀리아 프뢸리히가 아니라 하야디 바그너라 칭하고... 정말 미친 여자다.

뭐, 그녀가 이리 미친 것도 자신의 업보겠지.

방에는 고요한 정적 만이 감돌았다. 둘 다 침묵하고 있지만 소란스러웠다. 그녀는 긴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춤을 추기도 했다. 정말... 저 여자는 프뢸리히 공녀가 아니라 바그너라는 것인가..?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산더미다. 저 여자는 분명 프뢸리히 공녀다. 몸은 프뢸리히 공녀임에 틀림없다. 정신은 바그너라는 것인가?

정신이 아득해진다. 대체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하... 프뢸... 아니, 바그너 남작. 그대가 하야디 바그너 맞소? 정확히 하야디 바그너가 맞소?"
"음... 당연하지, 하야디 바그너, 그게 내 이름이라네. 그런데 난 내 이름 별로 안 좋아한다네. 뭔가 계집 이름 같지 않나? 난 우라디스 같이! 더 남자 다운 이름이면 좋겠다네! 날 우라디스라 불러주겠나?"
"뭐, 그러지. 그런데... 그대는 남작 아닌가? 난 공작이라네. 그대는 전혀 예를 갖추지 않는군."
"이미 죽은 사람한테 예의를 바래서 뭐 하나, 난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다네."
"무슨 소리지?"
"난 이미 스코틀랜드에선 죽은 사람이라네, 물론 잉글랜드에서도... 똑같지. 내 가족들은 내 시체도 없는 관까지 묻어버렸어. 날 죽은 사람 취급하기로 정한거지."
"뭐? 가족이 그러다니, 적지 않게 충격인데."
"살인자가 자기 가족인데... 누가 감싸주고 싶겠나? 오랜만에 누구한테 이런 말 터 놓는군. 듣기 거북했을텐데 고맙네. 이렇게라도 말하니까 속이 시원한 거 있지."
"..."

생각보다 털털한 사람이었다. 다음에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 방금부터 에밀리아 프뢸리히라는 사람을 찾던데, 나 그 사람 본 적 있다네. 여기."

그가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에뜨왈'''''''' 이라는 바 이름이 적혀있었다.

"여기서 일하더군. 되게 부잣집 아가씨 같았는데 매춘 업소에서 일하다니, 엄청난 이슈 아닌가?"
"정확히 에밀리아 프뢸리히라는 여자가 맞나?"

"정확했다네, 그 여자랑 얘기도 했었는데 자기가 무슨 왕실에서도 근무하는 가문의 공녀라고 하더군. 그게 진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네."
"...아무튼 고맙네."

''그렇다면 프뢸리히 공녀는 나와 만나기 전엔 매춘부로 일했던 것인가? 이 여자 대체 뭐 하는 여자인거지... 머리기 아파오는군. 이 여자 한 마디로 미친년이나 다름없다. 약혼이 정해져 있는 여자면서 매춘을 하고 다니다니... 적잖이 충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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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3-19 14:39 | 조회 : 642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