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두 명

"아악!"

갑자기 바그너가 심장을 부여잡고 방 바닥을 뒹굴었다.

"왜 그런가? 숨이 잘 안 쉬어지나? 아니면 심장이 아프기라도 하나?"

"허어, 아아..."

그가 아파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드레스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날 보고는 깜짝 놀라며 뒷 걸음질 치기도 했다.

"허, 내가 뭘 하고 있던 거지..? 머리가 아프군. 공작? 내가 뭘 하고 있었는가..?"
"기억이 안 나는 건가? 방금까지 바그너의 흉내를 내고 있었지 않나?"
"...무슨 소리인가? 내가 바그너라는 사람의 흉내를 냈다고? 난 바그너라는 작자도 모른다네. 아, 들어는 봤군, 그... 스코틀랜드의 연쇄살인범 맞지? 내가 그 살인범의 흉내를 냈다는 게 말이 되나?"
"정말 기억이 안 난단 말이냐? 거짓말 안 치고?"
"어, 거짓말 전혀 안 치고. 자네야 말로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날 의심하는 건가?"
"의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난 기억도 없는데... 심지어 내가 살인범의 흉내를 내겠나!"

그녀가 다짜고짜 화를 냈다. 그녀는 씩씩 거리며 날 노려봤다.
그녀가 아니라면 대체 내가 보고 들은 건 뭐라 해야 한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과연 하야디 바그너를 다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대체 왜 하야디 바그너는 이 곳에 나타나게 된 건지, 그녀가 정말 미쳐서 그런건지 아니면 신도 형용하지 못할 일이 벌어진 건지... 머리가 아파온다.

***(에밀리아 시점)

"일단... 프뢸리히 공녀, 그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오늘은 꽤나 지친 것 같군. 난 좀 흥미로운 걸 발견해서 말이야... 그대는 살려두기로 하지. 허나, 그대가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면 난 가만히 있지 않을걸세.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대도 그렇고 프뢸리히 공작과 공작 부인도 말이야."
"쯧, 알겠네. 아, 그런데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그대와 나는 약혼한 사이고... 곧 결혼도 멀지 않을 터... 그대는 이 약혼, 파기하지 않을텐가?"

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뭔가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

"응, 파기하지 않을거야. 말했잖아, 그대가 정말 흥미로워 졌다고."
"음... 내가 흥미로워진 건 잘 모르겠지만... 뭐... 이쯤에서 우리 만남은 끝내도록 하지. 피곤해서 말이야."
"그러지."

그가 장갑을 가지고 방을 나갔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턱 걸터앉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방을 나가니 어떤 인기척 또한 들리지 않았다. 넓은 저택을 혼자 걷자니 조금 무섭기도 하고 저택도 너무 어두워서 소름이 돋았다. 구두 소리가 메아리 쳤다.

"리아첼은 어딨는거야... 정말 가라해서 가는 게 어딨냐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파묻자 왠지 모르게 울컥한 느낌이 들었다.

"하, 씨... 내가 뭐 때문에 이딴 일까지 겪어야 해? 씨*..."

무겁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드레스를 벗어던지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잠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생각을 떨어뜨리고 아밀론 공작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왜 나에게 찾아온걸까... 아, 그 나탈린가 하는 그 여자 때문이었다. 그깟 죽은 여자가 무슨 탈이라고 나한테까지 이러는건지. 근데 난 분명 그 나탈리라는 여자와 전혀 안면이 없는데... 아으... 갑자기 이게 무슨일인지.

"아, 그러고 보니 바...그너? 그 사람은 또 누구길래 내가 바그너 어쩌고 이러는거야? ...그 남자 진짜 이상해."

그때,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마 내 방에 노크한 것 같진 않고 소리가 울리는 걸 보아 대문을 두드린 것 같은데...
계단을 타고 조심스레 내려가 대문을 열자 장신의 남자가 문 앞에 웃으며 서있었다.

"...누구십니까?"
"아가씨를 모시러 온 스콜입니다. 프뢸리히 공작님께서 공녀님을 모셔오라 지시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가보시면 알게 되실겁니다. 공작님께서 공녀님껜 일체 알려드리지 말라 하셨으니까요."
"그럼 난 가지 못하겠네. 잘 가시게나."
"아, 안타깝군요."
"안타깝다니 그게 무슨.. 으읍!"

내가 뒤를 돌아서자 그가 헤져보이고 냄새 나는 천으로 내 입을 막았다. 발버둥 쳐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하필이면 저택 주변이 온통 숲인 탓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제기랄. 그렇게 난 정신을 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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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3-24 21:56 | 조회 : 442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