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처음

뜨거운 공기가 채우고 있는 방 안, 두 남녀가 있었다. 그 둘은 샤워 가운 만을 걸친 채로, 입을 맞추고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어느 연인이나 그렇듯 둘은 애정으로 가득한 손놀림으로 서로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다가도 더듬고 있었다.

니콜라이 윌슨 후작은 에밀리아 프뢸리히와 교제 중이었다. 뭐,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에밀리아 프뢸리히는 아밀론이란 공작이랑 정식 교제 중이라 했으니까. 일종의 내연이었다. 둘의 관계는 연인보다는 섹스파트너의 느낌이 강했다. 둘이 만나 하는 일이라곤... 오늘의 불평, 불만을 털어내고는 그 일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섹스로 푸는 것? 그 뿐이었다.

가끔가다 보면 있는 커플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커플이 흔하진 않지 않나.

둘은 결혼까지 약속한 커플이었다. 에밀리아는 아밀론과 정식 교제 중이었지만, 아밀론은 에밀리아를 보러 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녀는 그가 매우 추남이어서 그녀를 보러오지 않았을거란 생각을 했다. 그녀는 파티에서 만난 니콜라이 후작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첫사랑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풍기던 그였다. 그의 깊이 빠질 것 만 같은 밤색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큰 키에 짙은 흑색의 머리카락까지 정말 아름다웠다.

처음 보자 마자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는 첫 만남부터 그와 얘기 하나 없이 그와 정식적이진 않지만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파티에 있는 엿 같은 귀족들보단 니콜라이 후작과 함께 있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러다 아밀론 공작을 처음으로 만났다. 원래 니콜라이 후작과의 약속이 있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취소하고는 아밀론 공작과 만나기로 했다. 아밀론 공작이 저택으로 오려면 10분 여 정도 남았다. 이 실크의 하얀 드레스는 주렁주렁 달려있는 진주 때문에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저택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아밀론 공작이 온 것 같다. 그녀는 방에 들어온 하녀의 손을 잡고 햇빛이 잘 드는 방인 티룸 (tea room)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자 보이는 모습은 의자 뒤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유리벽 밖으로 보이는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연한 금발에 정말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에밀리아도 다른 여자들에 비해 키가 꽤 큰 편인데도 그는 에밀리아보다 20cm는 족히 커 보였다. 그가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맑고 하얗진 않지만 너무나 깨끗해 그의 피부가 새햐얗게 느껴졌다. 진한 이목구비와 얼굴 하관은 오밀조밀해서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보였다. 푸르고 에메랄드 빛인 눈동자는 그녀를 충분히 유혹했다.

그녀는 그에게 키스를 퍼부으려 했지만, 잠시 참았다. 그의 엄숙하고 성숙한 분위기는 그녀와 정반대였다. 솔직히 니콜라이 후작에 비해 훨씬, 훨씬 아름다웠다.

그가 팔짱을 풀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그가 그녀에게 다가올 때마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그는 그녀에게 흰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테이블로 걸어갔다. 혹시라도 손을 통해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그녀는 노심초사했다.

그는 그녀의 의자를 빼주고는 그녀가 앉고 나서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밀론 카틀로우 입니다. 에밀리아 프뢸리히... 맞나요?"
"네? 아, 네. 에밀리아 프뢸리히 입니다. 편하게 에밀리아라고 불러주.."
"아니요. 처음부터 이름을 부르는 건 실례인 것 같네요. 프뢸리히 공녀라고 부르죠."
"아... 그럼 저도 카틀로우 공작님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는 엄청난 철벽이었다.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바로 덮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내게 넘어올 남자다. 여유를 부려도 될 것이다.

그녀는 소매에 있는 진주를 만지작 거렸다. 그녀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진 채, 다시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그의 외모에 대한 말은 주구장창 들었지만 별로 신경쓰진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흰 장갑을 보았다. 왼손 약지 부분에 뭔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고 그에게 물었다.

"혹시 장갑 좀 벗어주실 수 있나요?"
"장갑은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음, 장갑을 끼고 있는 게 예의는 아닌 것 같군요."
"오, 그렇군요. 물론이죠. 벗어드리죠."

그가 오른손부터 장갑을 벗었다. 조금 큰 흉터가 그의 손등에 있었다. 얇고 긴 걸 보아 아마도 유리 파편에 의해 난 흉터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왼손에 낀 장갑을 벗었다. 심장이 쿵쾅댔다. 툭 튀어나온 게 무엇일진 예상하고 있다. 아마도... 아마도... 반지일 터.

그가 장갑을 벗고 그녀는 매우 당황했다. 정말 반지였다. 반짝거리는 붉은 보석이 박혀있는 얇은 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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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3-07 21:42 | 조회 : 589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