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살아있다

그녀의 손이 까딱거리며 조금씩 움직였다. 조심스레 그녀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보자 따뜻한 바람이 나왔다. 그녀가 살아있다. 그녀가 입을 뻐끔거리며 입을 벌리려 했다.

"에, 에밀리아. 살아 있는 거냐?"
그녀는 아무 말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살아있음은 대충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살아있긴 하지만, 일어나진 못하는 상태인 걸까?
난 역시 그녀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 이건가?
역시... 난 그녀가 없으면 살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살 수 있을테지만 방법을 몰랐을지도 모르지.

그냥 머리 속의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싶다.

*

니콜라이 후작은 주변을 서성이다 그녀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그 여자를 꼭 죽이리..."

그가 작은 목소리로 다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는 창문을 넘어 그녀의 방으로 침입했다. 그는 침입하자마자 손수건 하나를 꺼냈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누구의 인기척 또한 들리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언제나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녀가 사라져있었다.

''''한동안 오지 않았더니... 이사라도 한 것인가?''''

그가 한숨을 푹푹 쉬다 혀를 쯧하고 차고는 다시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악! 쓰으읍... 아... 내 발목..."

착지를 잘못했다. 발목을 크게 접질렀다. 천천히 바지를 걷어 발목을 확인해보자, 발목에 붉고푸른 피멍이 나있었다. 간간히 피가 흐르는 곳도 있었다.

"하... 씨... 젠장..."

뒷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발목 때문에 일어서지도 못한 채, 몸을 끌어 근처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바보같이...

*

아직 일어나진 않았지만 내가 아직 살아있단 건가? 하.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고열에 시달렸었다. 처음엔 가벼운 지나가는 병인 줄 알았더만 시간이 지날 수록 고열은 점점 심해졌고, 속이 쓰려 하루 종일 뭔가를 먹지도 않고, 구토만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밀론 공작님께 쓰던 서신이 생각나, 그 서신에 병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두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작님이 매우 바쁘실 시기일텐데... 공작님 일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두려웠다.

"됐어, 잠시 지나가는 병일 뿐이야..."
오는 사람마다 신이 내게 시험을 하는 것이라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신이 이런 시험을 하는 것 이란 말이다... 친구들은 처음엔 날 위로하고 과일과 책을 가져다 주었지만 이젠 날 외면했다. 모두가 날 외면했고, 믿었던 부모님마저 날 외면하고는 날 방에 가둔 채, 정말 필요한 음식 외엔 아무것도 들여 보내주지 않았다.

이따끔 되면 아밀론 공작님께서 날 보러 오실거야 라는 정확하지도 않은 희망을 붙잡은 채로, 하루하루 나날이 썩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외면했지만 그래도 나와 평소에 정말 친하게 지냈던 하녀 율리안은 날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과일을 주고, 자신이 들었던,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에게 유일한 삶의 낙을 주었다. 그녀라도 없었더라면 난 이미 미쳐 죽어갔겠지.

죽는 날이 다가올 수록 희망은 점점 절망으로 치닫았다. 그렇게 기다렸던 공작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하녀 율리안도 그녀의 어머니의 병문안을 갔다. 정말 고립되어 버렸다. 공작님에 대한 기대는 점점 꺼져갔고, 결국 이성을 반 즈음 놓은 채, 그를 죽이고 싶다는 말 만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루는 완전히 미쳐 파티용 드레스를 걸친 채, 빙글빙글 돌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하늘색의 드레스가 살랑거리며 내 주변을 감돌았다.

"하하하핫! 어?"

순간 드레스 자락을 밟고 턱!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너무나도 말라 넘어질 때도 소리가 너무나 작았다. 하지만 연약한 몸뚱아리는 그 작은 충격을 버티지도 못하고는 내 숨을 거둬갔다.

결국 신이 내 숨을 거둬가는구나, 시험을 하며 날 가지고 놀다 결국 날 죽여버리는구나. 이런게 운명이라면, 내 소원 한 들어주세요... 내가 죽고나서 아밀론 공작을 죽여주시오... 아니, 날 잃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죽어가게 해주시오. 당신이 신이라면 그것 하나 들어주지 못할까...

그도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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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2-16 22:14 | 조회 : 574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