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52화





얘기를 시작하려는 애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보여서 나랑 윤지는 끼어들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설이 너 우리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안나지"
"...어"


이 몸에 들어왔을 때에도, 윤 설은 백승호를 중학교 때, 처음봐서 첫눈에 반한 듯 했는데...


그런데 백승호의 얼굴을 보니까, 엄청 씁쓸해보였다.
다른 애들의 얼굴도 백승호의 얼굴과 다름이 없었다.

백승호는 가져왔던 상자를 열더니 사진꾸러미를 꺼냈다.



"이게 뭐야?"
"한 번 봐."


나는 그 사진꾸러미를 건내받았다.


"이..게.. 뭐야?"
"뭐긴뭐야.."

"뭔데? 줘봐."


옆에 앉아있던 윤지가 내 반응을 보더니, 사진을 받아서 확인했다.


"이거.. 설이 아니야? 너무 귀엽다.."
"...이거 나야?"


백승호가 내 질문에 그렇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완전 어렸을 때 같은데?"
"...맞아.. 언제 쯤 같아?"
"....초등학생?"
"그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찍은거야."


백승호는 자꾸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대체 무슨 소리야? 알아들을 수 있게 얘기해줘.."
"하.. 너랑 나랑 만난적있다고.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얘네랑도.."


백승호는 앉아있는 다른 애들을 가르키면서 얘기했다.


"..대체 그게 무슨소리야."
"설아! 나 기억안나? 내가 준 팔찌도 가지고 있어줬잖아? 나 정말로 아직 모르겠어?"
"....어...그게 대체 무슨소리야"

"이것도 봐봐."
"이게 뭐.."


백승호가 내게 사진 한 장을 더 건네주었다.
아까보단 큰 것 같은 아이 한 명이 병실에 누워있었고, 또래아이들이 그 아이 옆에 울면서 둘러 앉아있었다. ​


"...뭐야?"
"우리 엄마가 찍은거야. 이건 우리들이고."
"저기 누워있는건 그럼.. "
"어. 너야."


크게 다친건 아닌건지 상처는 없는 몸의 윤 설이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백승호의 어머니는 애들이 엉엉 우는게 웃겨서 찍은 것 같았다.


"저게 어떻게 된거야? 나 사고났어?"
"..너 원래 몸이 건강한 편은 아니니까.. 약한 편이었잖아. 학교에서 집 가는 길에 편두통이 심해졌었나봐. 순간적으로 서있는데. 갑자기...신호위반하는 차에 치일뻔했어."
"치인게 아니라? 치일뻔 했다는거야?"
"어.."


뭐야.. 그럼 왜 입원하고 있는거야?


"놀라서 기절했었나봐"
"...근데 너네는 왜 저렇게 울고 있는거야?"
"그래서 우리 엄마가 저렇게 사진 찍으셨어, 엄청 웃으면서."
"....."
"우리도 너 금방 일어날 줄 알았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평소처럼 웃으면서 우리랑 잘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랬다고!


백승호가 뭔가 화가난 듯이 얘기를 했다.
답답해서 그런듯 했다.


"야. 좀 진정하고 얘기해. 설이가 더 놀라겠어."
"...미안 조금 흥분했나봐."

"아니야..괜찮아,"


백승호가 이도하의 말을 듣고는. 한숨을 쉬고는 사과를 했다.
그렇게 놀란것도 아니고, 할 말이 많아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상관이 없었다.


"근데.. 그래서 어떻게 된거야?"
"그래.. 아무튼, 우리는 너 기다렸어. 단순히 기절한거니까 금방 정신차릴거라고 생각했거든."
"...."
"그런데 니가 7일 동안 일어나지 않았어. 의사선생님은 너 아무런 문제 없는데, 왜 너가 못일어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어.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고 하셨다고."
"...."
"날 포함해서 얘네도 다 매일매일 찾아갔어. 계속 찾아갔는데...10일 째에, 병실 가니까 니가 없더라."
"뭐?"
"니가 퇴원했다고 하더라고. 의사선생님한테 너 괜찮은건지, 멀쩡한지 몇십번이고 물었어."
"..."


백승호를 포함한 애들의 표정이 엄청 썩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썩어간다고 하는 것 보다, 점차 굳어간다고 해야하는 건가..


"바로 찾아가려고 했어. 너 집도 아니까, 그런데 엄마가 너 쉬어야하니까 조금만 있다가 찾아가라고 해서, 애들이랑 너 쉴 기간 일주일 정도를 기다리고 바로 너네 집 찾아갔어. 그런데.."
"....?"
"그런데, 너가 집에서 마침 나오더라고. 정말로 멀쩡해보이는 모습에 우리 다 엄청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백승호가 울 것 같은 표정과 말투로 얘기를 했다.


"괜찮아?"
".....아니, 안괜찮아. 그때도 안괜찮았고, 말하는 지금도 안괜찮아."
"..."


다른 애들도 분위기가 다 비슷한 느낌이었다.
옆에 있던 윤지도 분위기를 느낀건지, 한 마디도 안하고 듣기만 했다.

몇 분 후에 조금 진정된 백승호는 다시 얘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너도 우리를 알아본건지, 딱 눈이 마주쳤었어."
"..."
"그런데... 너 그냥 바로 차를 타더라."
"...."
"마주친게 확실했는데, 그냥 타는 거 보고.. 그래도 바쁜거겠지 싶었어. 그래서 우리 다 같이 너네 집 앞에서 하루종일 기다렸어."
"..."
"너 집올 때 까지 같이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눈도 안 맞춰주고 집에 들어가더라."
"...."
"그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나랑 애들 다 너가 집에 들어가고나서 그 자리에서 몇시간 있었는줄 몰라."


허탈한 듯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이 더 슬퍼보였다.
하지만, 나도 위로해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얘네가 기억하는 윤 설의 모습은 내가 아닐 것이기에..
그렇기에 나는 얘네가 원하는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너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게 중학교 3학년이었나?"
"중학교 3학년?.. 파티장에서?"
"어. 그때는 내 눈 안피하고 있더라. "
"....."
"너 그렇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14살 됬었는데, 우리들 학교가 다 달랐어. 그래서 너를 볼 수가 없었어. 아무리 마주쳐도 너는 우리를 못알아봤으니까."
"....."
"사실, 못 알아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니가 우리들이랑 모른척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냥 우리도 더 이상 너 안찾아갔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너네 집, 그 여자가 우리한테 윤 설은 너네 싫어한다고, 차라리 자기 아들이랑 놀라면서 말씀하셨어.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짓말이었는데, 우린 그 때 다 어렸으니까."


지금 얘네 말은 엄마라는 그 여자가 나에 대한 말을 막 했다는 거고, 윤 설은 하필 진짜로 얘네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하는건가.


"13살 밖에 안됬을 때였어.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고, 너한테 더 이상 안 다가갔어. 너도 끝까지 모르는 사람인 것 처럼 행동하길래. 그래서, 우리도 포기한거야. 너가 그렇게까지 원한거라면 포기했어."
"....."
"그런데 16살 때, 파티에서 니가 넘어진 후에 혼자서 못 일어나는 것 보니까, 도저히 모른 척을 못하겠더라."
"..."
"오랜만에 니 얼굴을 정면에서 제대로 볼 수 있었던게, 너무 좋았어."

"우리 다 쟤한테 선수 뺏겼어. 설아."
"조용히 해봐. 얘기중이잖아."
"지만 얘기해.. 준이도 얘기할 거 많은데, 아직 운명적인 첫만남도 얘기 못했단 말야.."


옆에서 성 준이 칭얼거리면서 얘기했다.

하긴, 첫만남을 듣지는 못 했었지..?


"첫 만남이라는게, 학교에서 그냥 만난게 아니었어?"
"그런거 아니야. 설아, 우리의 운명적 만남은 그런 평범한 만남과는 달라."

"우리 다 평범한 만남은 아닌었을 걸."

"그렇긴 하지."

"맞아."


얘네와의 설이는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었던거야..


"하.. 이제야 말 꺼낼 수 있네. 너무 진지해서 순간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
"시끄러, 너는 왜 따라와가지고."
"설이 가는데 내가 어떻게 안가"


윤지의 말에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윤지랑 같이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 아무튼 너네의 말은 설이가 사고 당한 후에 너네를 싹 잊었고, 너네는 오해를 해서 설이가 너네랑 안 지내고 싶어한다고 알아들었다는 거잖아."
"..."
"사실 내가 첫 만남도 궁금하긴 한데, 이것부터 물어보자. 너네 왜 하여운이랑 다니면서 설이를 그렇게 미워한건데?"


윤지가 날린 질문에 순간 다들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나도 첫 만남도 알고 싶지만, 이 부분이 더 궁금했다.

얘네의 말에 따르자면, 어렸을 때 부터, 친구였다는거고 꽤 각별한 사이였다는건데,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고 해서, 미워하는 것 까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여운이 갑자기 등장한 것도, 백승호와 이도하가 나를 데려가서 했던 말들도 있었기에 이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걸 잘 모르겠어."
"...뭔 개소리야, 그게."


백승호의 말을 들은 윤지가 짜증이 난 목소리로 답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얘네 한테도 물어봤어. 그런데 아무도 모르더라. 하여운이 언제 부터 우리랑 같이 다니게 된건지. 왜 하여운의 말을 다 그렇게 믿었던건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고."
"니네가 한 행동인데, 니네가 모르면 어쩌자는거야."
"우리도 답답해. 그래서 하루종일 생각해봤다고, 그런데도 하여운이랑 어떻게 만난건지, 언제 친해지게 된건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걔다가 설이 너도 기억이 안났어. "
"....."
"전부 다 우리 맘대로 안 됐어,"

"맞아."


이도하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내 이상형은 하여운 같은 애가 아니야. 그런데 걔한테 조금의 호감이 느껴졌어, 이유는 모르겠어."

"맞아. 나도 그랬어. 난 누군가가 좋아진다면, 걔가 내 1순위가 되는데, 왜인지 모르게 하여운한테 그런 감정이 느껴졌어. 믿어줘 설아"


이도하의 말에 김태겸이 끼어들어서는 얘기했다.
그리고는 정말로 억울하다는 듯이 호소하기 시작했다.


"... 그런데, 설아"
"....어?"
"고등학교 올라와서 그리운 느낌인 아이를 만났는데. 그게 하여운이었어.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고, 누구를 그리워했던건지도 도저히 모르겠는데, 하여운한테 정이 갔었어. 첫만남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정이 갔었던 것 같아,"
"......"
"얘네도 다 그렇게 느꼈겠지."
"기억이 안났다는 건 무슨소리야?"
"...고등학교 올라와서부터 너에 대한 기억이 없어졌어. 그냥 부모님들끼리 아는 사이다, 정도만 말고는 다 없어졌어."
"....."
"그런데, 너는 백승호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백승호는 니가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운을 괴롭힌다고도 하니까, 멀리 하고 싶어했고."
".....근데 갑자기 왜.."
"점점 생각이 났어. 아니.. 점점 돌아왔다고 해야하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어느순간부터 갑자기 너에대한 기억이 나기 시작했고, 우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됐어."


이도하의 말이 거짓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제일 먼저 다 기억했을거야."
".....그게.."
"아까 백승호 쟤가 상자 못찾았던 것도, 기억속이랑 다른 장소에 있어서 못 찾았던걸꺼야. 이미 그 상자를 넣어놓은지도 몇 년이 지났을테니까."


얘네의 기억마저도 조작이 됐다는 소리인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내가 빙의가 되었을 때, 얘네한테 기억이 다시 돌아온거지?
이런거였으면 원래 윤 설이 자기 몸에 있을 때, 돌아왔으면 얼마나 좋아?
내가 뭐라고 이런 얘기를 듣고 있는거지..

점점 머리가 아파졌다.
미칠 듯이 아파왔다.

얘네의 얘기 속에 윤 설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낯설지가 않는거지?
왜 내 얘기를 듣는것 같은거지?
....

너무나도 낯설지가 않은 이야기였다. 분명히 내가 겪은 일이 아닌, 윤 설이 겪은 것일 텐데, 왜 내가 익숙한 느낌과 찡한 마음을 느끼는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되버리면 윤 설에게 너무 미안해지는데..
내가 이 사랑들을 받아버리면, 윤 설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 때 마침, 내 전화기가 울렸다.
내 전화기로 시선이 집중이 되었다.

은호 형이네..
...그런데 왜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얘네는 반말로 대하는데 은호 형은 은호 형이라고 하는거지.. 원래 나이로는 내가 더 나이가 많을텐데..

너무나도 익숙하게 형이라고 불러졌기에, 생각할 때도 당연히 나보다 높은 사람을 대하는 식으로 생각했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울리던 전화기가 끊어졌고, 다시 한 번 울리고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여기서 받으면 안..돼?"
".....상관없을 것 같긴한데.. 너네 얘기하는거 방해될까봐,"
"어차피, 너한테 얘기하려고 모인거니까 여기서 받아. 니가 걔랑 왜 전화를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백승호 집인데, 쟤가 하라는데로 해야겠지 싶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여본데요?"


...순간 정적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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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7-16 15:46 | 조회 : 1,817 목록
작가의 말
gazimayo

어제 저는 BBQ를 먹었답니다. 오늘은 밥버거를 먹을거에요, 알바 언제끝나지잉이이ㅣ 다들 재밌는 추리 부탁해요~~ 근데 맞는 추리하신 분 꽤 있더라구요. 조금 놀랬엉,,,ㅎㅎㅎ 다들 좋은 하루 보내요.

후원할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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