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연참합니다.
"네, 여본데요?"
"...."
내가 전화를 받을 때부터, 이 쪽으로 관심이 쏠려있었기에, 은호 형이 하는 말은 우리가 모여있는 거실에서 울렸다.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앞에 앉아있는 애들이 더 당황한 것 같았다.
'저 표정들을 보니까 당황한 것보다, 화가 난 표정인건가..'
윤지는 앞에서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고 있었고, 나머지의 표정들은 누구 하나 때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설아?"
"아..네!"
"미안, 그냥 장난치고 싶어서 그랬어. 너무 당황했나보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냥 조금 당황해서 그랬어요."
"설이 뭐해? 지금 집이야?"
"아.. 집이긴한데.. 제 집이 아니라요."
"그럼 누구 집이야?"
"내 집인데 뭐"
"..백승호? 니가 왜 지금..."
"윤 설, 우리 집에 있는데 왜."
"하..설이나 바꿔."
"됐어. 할 말 있으면 다음에 해. 니 친구랑 놀기나 해. 시험 끝났으면."
"지금 집이라고/ 갈테니까 끊어."
"뭐? 야!"
백승호가 내가 받고 있던 전화기를 들고가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긴건지 들고 있던 내 전화기를 세게 쥐었다가 내 눈치를 보더니 다시 돌려줬다.
"뭐야? 은호 형이 왜 너한테 전화를 하는거야~~"
"아..."
"뭔데뭔데, 궁금하게.."
"사실은..."
전화가 끊기자마자, 앉아있던 윤지가 나를 끌어당겨서 앉히더니, 은호 형에 관해서 묻기 시작했다.
얘기해주려고 입을 열려는데, 나머지 애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따가웠다.
"저 형이 왜 너한테 연락을 하는건데?"
"너, 백승호 뿐만이 아니라 은호 형이랑도 연락하는거야?"
"...나한테는 문자도 안하면서,,,"
"...."
성 준이 말을 뗀 시점부터, 이도하와 김태겸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일단 말을 들어줘야지 말을 할 거 아니야!! 말도 못할 정도로 계속 질문을 던지면 어떡하라는건지...'
"니네 좀 조용히 해봐. 설이가 말을 못하고 있잖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건지, 윤지가 내 생각을 그대로 내뱉어주었다,
나머지 애들도 윤지 말을 들은 후에야 조금 진정하고는 바닥에 앉아서 내게 답을 요구했다.
나는 뭔가 얘기했다간 일이 더 커질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이 상황을 넘어가려고 했는데.. 앞의 애들의 눈빛을 보니 대충은 설명을 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윤지는.. 신이 나보이고... 나머지 애들은 너무 무서워'
"그래서. 니가 우리...형이랑 왜 전화를 하는건데"
"아니... 너네 얘기 하다가 말았지 않았나..."
"아니, 우린 이게 더 중요해서."
"..."
'도저히 그냥은 못 넘어가겠네..'
"하.. 사실은 너네 우리 형 알고 있지?"
"..너네 형이면 윤 철, 그 변태새끼 아닌가?"
"...너네도 알고 있어?"
"뭔데.. 윤 철? 너네 형이야?"
윤 철의 대해서 백승호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애들도 아는 것 같았다.
윤지만 제외하고 말이다.
'하긴 지난번에 윤 철 만났을 때에도, 애들이 다 경계하긴 했긴 했었던 것 같긴 한데..'
애들의 표정이 생각보다 더 안 좋아졌다. 정말로 썩은 표정들이었다.
"그래서"
"응?"
"그래서 윤 철, 그 새끼가 왜?"
"...."
이도하가 얼굴을 확 굳히며 얘기를 했다.
순간적으로 나온 욕에 내가 잘 못 들었나 생각을 했다.
이도하의 목소리로 내뱉어진 욕에 순간적으로 놀라긴 했지만, 난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을 이어갔다.
"이런 말 하는게 맞는건가 잘 모르겠는데, 우리 형이 나한테 관심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아."
"....어떤식으로?"
윤지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 가족을 챙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뭐?"
내 말을 들은 윤지는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다가 알아들은 후에는 정말로 더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느낀 표정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윤지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애들 표정이 너무나도 썩어들어가는게 실시간으로 보여서 웃는건 자중하기로 했다.
"너네 형 또라이 아니야?"
"그런가.. 사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어.. 그런거겠지.. 가족이니까."
"...가족이면 더 그렇게 느껴지면 안되는거 아니야?"
"그렇긴한데..."
"또라이새끼 맞지. 그 새끼는."
갑자기 윤지와 내가 하는 얘기에, 엄청 굳은 목소리의 성 준이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이, 너 그 부분도 잊은거야?"
"..그게 무슨소리야?"
"너랑 윤 철, 친 형제 아니야."
"....뭐?"
"친 형제 아니라고."
사실 지난번에 떠오른 기억을 정리해봤을 때, 뭔가 윤 철이랑 내가 친형제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정말로 친 형제가 아니었다.
'윤 철은 언제부터 윤 설을 보면서 그런 더러운 생각을 했을까..잠깐만..그럼 설마'
"혹시.. 어머니도.."
"어, 맞아."
"....."
어머니라고 하던 그 여자도 나의 친 엄마가 아니었다.
윤 설이라는 사람을 그렇게까지, 미워하는 이유가 자기의 친 아들이 아니어서였던 거였을까..
'근데 얘네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는거지...?'
"너네는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거야?"
내가 묻고 싶은 얘기를 윤지가 대신 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했다고 했잖아,"
"....."
'어렸을 때, 얼마나 친했길래 친 엄마가 아니라는 부분도 알고 있는거지..?'
생각보다 복잡한 관계였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윤 설,"
"...응?"
"윤 철 그 새끼 이상한 새끼인 줄 다 알고 있었는데, 쟤네 형이랑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전화를 주고 받는건데?"
오늘따라 이도하가 성격이 많이 나빠진 것 같다.
애들은 그런 이도하가 어색하지도 않은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고 오히려 내가 대답하는 걸 기다리는 듯 했다.
"..아.. 내가 한 번 은호 형이랑 전화를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왜?"
"어?"
"그 형이랑 전화를 왜 한건데?"
"...?어..."
"야, 이도하 좀 조용히 해봐. 설이 말 좀 듣자. 자꾸 말을 끊고 난리야."
답답했는지 윤지가 이도하의 머리 뒷부분을 때리면서, 조용히하라고 화를 냈다.
"..."
"그래서, 어떻게 된거야?"
"아.. 그래서 전화를 하면서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형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었어."
"그래서?"
"그랬는데, 전화를 안 끊은 상태였거든."
나는 그렇게 내가 그 날 겪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 날 부터 저녁마다, 은호 형이 전화를 해준다는 것을 얘기해줬다.
내 말을 들은 애들의 얼굴은 정말 가지각색이었다.
"왜 그래..?"
"...뭐야.. 그 형 완전 설레잖아."
윤지는 두 손을 모으고는 설렌다며 내게 얘기하고 있었고, 나머지 애들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얼굴이었다.
'화가 난건가... 아니면 씁쓸한건가..'
"그래서, 계속 그 형이랑 연락을 한거야?"
"..어 그랬어, 우리 형이 새벽마다 자꾸...."
"하.."
괜히 윤 철 얘기를 꺼낸건가 싶었다.
갑자기 다시 다운된 분위기를 어떻게 띄울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아빠한테 그 지랄을 한건가.."
"..어? 뭐라고 했어 승호야?"
"아니야."
백승호는 알아듣기 힘든 말을 중얼거렸다.
은호 형 얘기를 하는 것 같긴 했는데 알아듣지는 못했다.
나는 밝은 목소리로 첫 만남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들 언제 만나게 된거야? 이 때, 아직 어릴 때 잖아."
"그게"
나는 백승호가 첫 만남에 찍었다며 보여주었던 사진들을 가르키면서 얘기했다.
백승호가 내 질문에 답을 해주려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는 당연히 알 것 같았다.
다른 애들도 다 눈치챈건지,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설아!"
"형..?"
"너가 왜 여기에 있어.. 놀랬어."
"아.. 오늘 승호한테 뭐 들을게 있어서요."
"아... 얘기는 다 들었어?"
"..거의 다 들었어요."
"오늘은 머리 안 아프고?"
"아..네.. 괜찮은 것 같아요. 형 뛰어왔어요?"
"어...사실 너네 집 앞에 있었거든. 너 당연히 집인 줄 알고.."
"....아.. 죄송해요.."
은호 형은 정말로 괜찮다며 손까지 내저었다.
"지금 둘 만 있나~~"
"아.. 윤지랑 너네도 있었구나."
"형.. 너무한거 아니에요. 있는 것 정도는 눈치 채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미안.. "
윤지가 장난식으로 은호 형에게 다가가서 얘기했다.
은호 형도 장난인걸 눈치채고 진지하지 않게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얘기 다했으면 설이 데려가도 될까?"
".......안되는데?"
"12시 30분부터 지금까지 데리고 있었으면 나한테도 좀 양보해주라. 계획한거 꽤 많았는데, 밥이라도 같이 먹고 돌려보내게."
"안된다니까?"
"...."
분위기가 상당히 빠르게 식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나서서 중재할 수 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
"진정들하고, 오늘은 일단 들은게 많고, 얘기한 것도 많으니까... 이만 돌아갈게."
"...아직 안 한 얘기들도 많은데.."
"아.. 내가 오늘 들은 얘기로도 조금 벅차서 그런 것 같아.. 얘들아 내가 정리할 시간을 줄 수 있어? 너네 얘기도 다 알아들었으니까..."
"그래. 설이 좀 쉬게 하자. 애 얼굴이 질렸네. 자기도 당황스럽겠지. 겪은적없는 나도 당황스러운데 겪었는데 기억 안나는 설이는 더 그럴거야. 일단 다음에 얘기해."
윤지가 끝을 내게 해줬다.
나는 가방을 챙겨서 나가기 전에 백승호에게 사진 2장을 가르키며 말했다.
"승호야, 나 이 사진들 주면 안될까?"
"...가져가. 내일 보자. 푹 쉬고."
"응. 고마워. 오늘 얘기해줘서도 고맙고.."
"얼른 가."
백승호 귀가 빨개진 것 보니까, 부끄러워하는 듯 보였다.
"자~ 우리 설이는 형이 좀 데려다주세요. 밥도 좀 먹이구요. 내일 보자. 니네도 내일보자."
"..어 잘가"
윤지는 내 손목을 잡아끌더니, 은호 형에게 맡기고는 신발을 신고는 집을 빠져나갔다.
'.....윤지야 이렇게 가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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