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끄러운 알람음에 수진이 인상을 썼다.

한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아."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이상함을 느낀 수진은 눈을 여러번 깜빡이며 뿌연 시야를 맑게 했다.

"귀여운 짓 하는거야?"



"무어.."

수진의 얼굴에 따듯한 온기가 남겨졌다.

몸에 열이 많은건 여전한지 침대위에 남겨진 온기가 뜨겁다.
상처많은 몸. 상처위에 상처가 나도, 아물었다, 다시 상처가나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자리잡았다.
이젠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격차가 났다. 탄탄한 복근에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갔다.

'헉.'

수진은 무의식적으로 훑던 시선을 깨닫고 금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더 봐도 되는데."
"나가."
"... 아침 먹자."

토스트와 계란, 귀여운 병에 담긴 잼이 식탁에 놓여졌다.

"알레르기는?"
"없어."

수현이 견과류를 접시에 담았다.
수진은 아침을 먹지 않았지만 오늘은 수현이 만든 노력을 봐서 먹기로 했다.
바삭한 토스트가 입꼬리에 닿자 얼굴이 찡그려졌다.

따갑다.

수진은 먹던 토스트를 찢어 부드러운 안쪽 면부터 입에 넣었다.
너무 달지도, 맹맹하지도 않은 토스트와 약간의 사과잼.

맛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수진이 반도 안 먹은 식빵을 접시에 올려놨다.

"안 먹어?"
"원래 아침 안 먹어. 꽤 먹은 거니까 삐지지 마."
"형 눈엔 내가 아직도 어린인가 보내."

수현은 뭐가 좋은지 수진의 행동 하나하나에 웃었다.

어린애 취급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전날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자신에게 삐지지 말라니. 수진의 사고회로가 어떻게 된건지 수현은 궁금했다. 아직도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는건가?

방으로 향하던 수진의 눈에 욕실이 들어왔다.
전날의 처참한 상황이 온대간대 없이 사라져있다.
어제의 모든 게 욕구불만이었던 자신의 꿈 같다.

하지만 욕실 한 쪽에 지워지지 않은 자국이 보이자 수진은 눈을 감고 깊이 한숨을 쉬었다.
친구들끼리 손을 빌려준다는 얘기도, 급하면 서로 뒤를 대준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다.

수진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건 친구사이의 장난으로, 욕정으로 치부하기에는 일이 너무 컸다.
피가 안 섞였지만 동생이다.
동생 앞에서 남자와 잤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물론, 남자친구까지 있는걸 알게했으니. 부끄럽지는 않지만 민망하다.

십년 넘게 못본 사이지마 수진에게도 체면이라는게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전날 산산조각 났다.

할머님이 말하신 거라면 자신은 손쓸 도리가 없었다.

"설마 한수현이 날..."

친구여도, 남이여도 떠오르면 달아오를 것 같은 키스는 오랜만이었다.
비서와의 키스는 점점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다른 사람과의 행위는 그저 하룻밤 정사에 불과했다.

수진은 입술을 만지작 거리며 핸드폰을 찾기위해 침대위로 올라갔다.
이리저리 꼬여버린 이불을 엎지락 덮치락하며 핸드폰을 찾았다.

"뭐해."

뒤에서 나타난 수현이 수진의 허리를 껴안았다.
휘청거리던 둘은 자세를 무너뜨리고 그대로 침대위로 쓰러졌다.

"뭐하는거야."
"오늘 날씨가 좋아서."

벽 한면을 창문으로 만들었기에, 실크커튼 사이로 따스한 햇빛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어렸을땐 손잡아 달라는 것도 허락받던 놈이."

수진이 수현의 코를 약하게 잡아당겼다.

"이제 아버지 말투 안 쓰네?"
"...밖에서만 쓰는 말투야."
"흐음."

수현은 수진을 꼭 껴안았다.
수진은 안아주진 않았지만 밀쳐내지도 않았다.
이것도 오늘까지일 테니까.




출근한 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금세 점심시간이었다. 원래라면 점심은 건너뛰고 일에 매달리게 루틴이었지만 오늘은 수현이 있어 일이 빨리 끝났다.
수현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정중히 말했다.

"점심시간입니다."
"오늘은 일도 어는정도 마무리 됐는데 편히 드시고 오세요."
"안 드십니까?"
"알아서 먹겠습니다."

수진이 의자를 돌렸다.
더의상의 대화는 없다는 뜻이다.
수현은 무언가 할말이 있어보였지만 일게 비서가 사적인 일로 회장님을 부를 수는 없었다.
수현은 등을 돌리고 있는 수진에게 깍듯히 인사를 한 뒤 방을 나갔다.
수현이 나간걸 확인한 뒤 핸드폰으로 할머님께 전화를 했다.

"점심 어떠세요?"

십분뒤 할머님이 보낸 차가 로비아래에 도착했다.




"어서오렴."

점심이었지만 지하인 탓에 시야가 어두웠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티비에 본적 있는 유명인들 이었다.
티비로 보여지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을 한 번에 알아보긴 어려웠다.
할머님 역시 화려한 모습이다.

그녀가 숨기고 있었을 뿐 이게 그녀의 원래 모습이었다.
가슴골을 따라 그려진 토끼가 그녀로 인해 위협적으로 변했다.

"무슨일이니?"

유리잔에 얼음과 술을 담아 손자에게 건냈다.

"수현이 때문에요."
"일 잘하지?"
"할머님의 뜻 잘 알겠습니다. 이젠 실수는 없을 겁니다."

싱긋 웃던 그녀는 술을 물처럼 마신뒤 말했다.

"수현이가 뭔짓을 했구나."

수진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걸을때 허리에 힘이 없어보이는 구나."

비웃는 소리가 귀를 간지렸다.

"비서는 제가 다시 뽑겠습니다. 아닙니다. 할머님이 다시 뽑아주세요. 수현이는 안 됩니다."
"위협적이여서 싫으니? 수현이가 네 자리를 뺏어 회장이 될까봐? 허울만있는 그자리에서 내려오기가 아직도 무서우냐?"

실세인 그녀의 말엔 뼈가 있었다. 그 누구도 그녀가 죽기전까지는 허수아비일 뿐이다.

"애비도 널 이용해 먹는데, 아직도 가족의 사랑을 갈구하는구나."
"...그런거 아닙니다."
"그럼 왜 그자리에 남아있지?"

이득하나 없는 자리다. 원치도 않은 누군가와 몸을 섞어야 된다. 하지만 수진은 그 자리를 놓지 못했다.
고작 한번 느낀 아버지의 관심이 수진을 살게했다. 수진이 후계자로 선택된 다음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자리를 넘기고 집을 나갔다.

수진은 매일같이 상상했다.

자신이 잘 하면 언젠간 나를 칭찬하러 오지 않을까하고.

"수현이는 내가 알아서하마."
"감사합니다."

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회사로 돌아갔다.

똑똑

문을 쳐다보자 처음보는 얼굴의 남자가 서있었다.

0
이번 화 신고 2021-04-11 22:50 | 조회 : 1,476 목록
작가의 말
뉴진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