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잔재

“…”
민희는 중년의 남자를 보자마자 온몸을 덜덜 떨었다.
“민희야..?”
소녀는 비정상적으로 떨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보고 지금 상황에서 이상한 괴리감을 느꼈다. 민희는 양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중년 남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민구는 자신 옆으로 지나가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얼굴이 창백했다.
“…”
“네가 하도 집에 일찍 안 들어오길래, 아빠가 이렇게 데리러 왔어.”
중년의 남자는 싱긋이 미소 지으며, 민희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나.. 오늘, 친구랑 놀러가기로.”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그녀는 중얼거렸다.
“오늘, 네가 좋아하는 거 아빠가 만들어줄게.”
남자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안녕하세요!”
민희 옆에 있던 소녀는 중년 남자에게 다가가 해맑게 인사했다. 분명 보는 사람도 맑아지는 밝은 소녀의 미소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아주 냉담한 태도였다.
“응? 오늘은 일찍 올 거지? 아빠가 이렇게 데리러 왔잖아. 차 타고 얼른 가자. 밖에 추워.”
소녀는 무시당했다. 어색하게, 해맑게 올린 입꼬리를 내리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지금 이게 뭐지? 싶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불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민구가 있었다.
“….. 소진아.”
민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겨우 올리며 말했다.
“미안해. 나 오늘은 일찍 집에 가봐야겠다.”
잠시 멈춰 서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학교 정문을 빠져나갔다. 이상한 괴리감을 느낀 채. 그리고 빠져나가면서도 민희와 그 중년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어..”
소진은 중년 남자를 흘끗 쳐다보았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쳐다보는 것만으로 뼛속이 시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 서린 냉기에 흠칫 놀라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그 중년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뒤 그들을 뒤로하고 정문을 빠져나갔다. 다른 학생들처럼.
“…”
민구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타려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복잡한 표정을 짓다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결국, 끌고 가던 자전거를 대충 세워놓고 그들 앞으로 달려갔다.
“…?”
차 문을 열어 반쯤 몸을 넣고 있던 민희는 가까이 다가온 민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당황스러움 속에 미세한 기대의 감정이 눈에서 나타났다. 남자는 민희 앞에 서서 민구를 쳐다봤다. 그리고서 민희에게 고개를 슬쩍 돌려 웃으며 물었다.
“민희야. 얜 누구니?”
“민희 같은반 친구 권민구입니다. 아저씨.”
민구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벌떡, 일어났다. 남자는 아까와 달리 실실 웃으며 민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민희 친구. 왜?”
그는 왜 왔냐는 듯 질문했다.
일단 저대로 가게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아 오긴 왔는데, 뭐라 말하지. 남자는 자상하게 웃고 있지만 묘하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렵게 만들었다. 그 눈빛이 그랬다. 웃고 있는데, 웃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마치 웃는 가면을 쓴 것 같았다.
“오늘, 민희랑 약속 있었거든요.”
“약속?”
남자는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위로 지켜 올렸다.
“바로 전에 여자애랑 놀러 간다고 하던데.”
“아,아빠. 아니야. 나 오늘 빨리 집에 들어갈 거야. 가자.”
민희는 반쯤 몸담았던 차에서 나왔다. 그리고 중년 남자의 팔을 두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민구를 쳐다보며 고개를 옆으로 까딱였다. 그냥 가라는 눈짓이었다.
“아니요. 오늘 중요한 약속이라서.”
민구는 입술을 꾹 눌렀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민희는 힘없이 그에게로 딸려갔다. 그리고 자신을 끌어당긴 손을 바라보았다.
그때, 민구의 몸이 순간 중심을 잃었다. 땅을 짚을 여력조차 없던 그는 오른쪽 얼굴을 하필, 딱딱한 돌이 튀어나와 있는 부분에 부딪혔다.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중년 남자가 그의 뺨을 세게 내리친 것이었다. 민구는 흐릿한 초점을 잡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오른쪽 눈도 부딪혀서 그런지 눈이 잘 뜨이지 않았다.
“민희야. 아빠가 사람 골라서 사귀라 그랬잖아. 이렇게 어른을 쳐다보는 시선이 건방진 애를 친구로 두면 어떡하니?”
남자는 자신보다 한참을 어린 소년을 매몰차게 때리고도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그들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민희는 민구 앞을 가로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빌었다.
“아빠! 제발.. 제발.”
“저리 비키렴.”
바로 전에 15살의 소년을 때린 사람이라곤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상냥한 말투였다. 그 말투며 목소리가 너무나 자상해 마치 바로 전에 일이 꿈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빠, 제발.. 잘못했어. 나 집에 갈 거야. 그러니까…”
“꺅!”
그들을 지켜보던 여학생이 낸 비명이었다. 민희는 민구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민구는 그녀의 얼굴을 봤다. 분홍빛 홍조를 띄던 예쁜 뺨이 보는 사람이 더 아프도록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녀는 위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떨구었다. 차가운 흙바닥을 짚은 양손이 덜덜 떨렸다. 그녀의 얼굴 아래로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이 눈과 흙이 뒤섞인 바닥을 녹였다. 민구는 더는 바닥에 넘어져 있을 수 없었다.
“민희야. 그러게 친구 잘 사귀라고 했잖아. 말 잘 듣다가 왜 갑자기 말을 안 들어서 이렇게 사람도 많은데 너를 혼내게 하니?”
이 사람 정말 정상이 아니구나. 남자는 자신의 딸의 뺨을 빨갛게 부어오르게 하고도 멀쩡한 얼굴을 했다. 오히려 이 상황이 민희 탓인 것처럼 안타깝다는 목소리였다.
“경비 아저씨! 이쪽이에요!”
상황이 범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미리 알아차린 학생이 불러온 모양이었다. 중년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워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를 틈타, 민구는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그녀를 일으켰다. 동그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쉴새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자.”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냅다 뛰었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달려야 했다.

“흑..흐윽..”
최대한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달렸다. 뒤에선 그녀의 끊임없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목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질 정도로 달려 도착한 곳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이었다. 두 사람은 몇 걸음 더 뛰다 지쳐서 멈춰 섰다. 꽉 쥐었던 그녀의 손을 놓고서 민구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그녀는 그 앞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 말했다.
“미안해..”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떨렸다.
“…네 탓도 아닌 데 뭐.”
솔직히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저렇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은 처음 봤다. 웃고 있는 얼굴이 그렇게 소름 돋을 수가 있나 싶었다. 이걸 계속 마주해온 민희는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까, 민구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잠깐 겪었어도 아직도 떨림이 멎지 않았다. 너무 뛰어서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두려움에 후들거리는지 분간도 잘 안됐다.
그녀는 계속, 자신의 뺨에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민구의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이 눈물이랑 콧물로 엉망진창이었다.
“너..너 오른쪽 눈에 피나..어떡해!”
어쩐지, 눈이 잘 안 떠 지더라니. 민구는 손을 들어 제 오른쪽 눈을 만져보았다. 손에 눌어붙어 진득한 피가 묻어나왔다. 정신이 없어서 아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나보다. 그 남자에게서 조금 멀어졌다고 안심했는지, 인제야 따갑고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다. 자동으로 이맛살이 구겨졌다.
“미안해..”
그녀는 아까보다 더 펑펑 울었다. 조용한 골목 길가가 떠나가라 우니, 민구는 아파죽겠는 와중에 그녀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너 때문 아니잖아. 그냥 그 아저씨가 나쁜 거지..”
“흐어엉…”
“..그만 울어.”
“미안해..약…버린 것도 미안해..”
세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울어 재끼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그녀를 달래 주었다.

“…”
“이제 진정됐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주저앉아 엉덩이가 축축해졌다. 찝찝해..
“그럼, 일어나. 이제 가야지.”
민구는 일어나 교복 바지와 겉옷에 뭍은 지저분한 젖은 흙들을 털어냈다. 그녀는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하고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디로..?”
“다쳤잖아. 약국 가야지..”
“응…”
민구는 주저앉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뭍은 흙들을 탁탁, 털어내고 그의 손을 잡아 일어섰다.

“에구머니나! 구야!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그 옆에 여자친구는 또 무슨일이람..어휴. 얼른 들어와. 밖에 춥다.”
집주변에 있는 약국이었다. 오다가다 인사를 나누고 지낸 사이기에 약국 아저씨는 민구를 알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아저씨는 민구의 눈에 생긴 상처를 핀셋으로 짚은 알코올 솜으로 닦으며 물었다. 민희는 그 옆에 앉아 아저씨가 준 냉찜질 팩을 자신의 뺨을 대었다. 그리고 민구가 혹여나 무슨 말을 할까 봐 눈치를 살폈다.
“..넘어져서 바닥에 튀어나온 돌에 부딪혔어요.”
거짓말은 아니지.
“..에휴, 조심해야지. 얼굴은 흉터도 잘 지는데.”
민희는 안심한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학생도! 조심해야지. 요즘은 너무 추워서 바닥도 얼어서 넘어지면 정말 위험하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불 호령에 민희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조용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희가 너무 기가 죽어서 대답하니 오히려 아저씬 무안한 듯 헛기침을 했다.
아저씨는 치료를 끝마친 뒤 응급키트를 닫으며 일어났다.
“코코아 타줄 테니까, 몸 좀 녹으면 집에 가. 그리고 민구 너! 병원도 가봐.”
그리고 약국 계산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민구는 뒤로 돌아가는 아저씨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민희도 그를 따라 말했다. 아저씨는 뒤로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둘은 말 없이 코코아를 마셨다. 민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이 꽤나 어두워졌다. 그리고 조금씩 눈도 다시 내리고 있었다. 어두운 풍경에 약국 앞 가로등만이 반짝 거렸다. 조금씩 바람에 따라 흩날리는 눈들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비쳤다.
“…너..집에 갈 거야?”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입으로 가까이 가져가던 코코아를 다시 아래로 내려놓았다.
“..안가면 어떡해. 갈 곳도 없는데.”
그 목소리는 힘이 완전히 빠진것 처럼 들렸다. 그리고 웃음기도 약간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 더 슬프게 들렸다.
“…일단.. 우리 집 갈래..?”
민희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바라봤다. 민구도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눈을 다시 울 것처럼 찡그렸다. 그리고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왜?”
“.. 너희 집으로 도망쳐도 어차피 나는 또 ‘우리 집’으로 가야 하잖아.”
“경찰을 부르면…”
“…못해.”
"왜..?"
"아빠가 없으면...? 난 어떡해?"
“너네 어머니는…”
“아빠 같은 사람이랑 살 수 있겠어? 완전 미친놈인데…”
“….”
“엄만...자기가 10개월이나 품은 핏덩이 버리고 간 사람이야. 너무 어릴 때 헤어져서 얼굴도 기억 안 나.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살아는 있는 지.. 몰라."
“…”
“…쓰레기 같은 아빠라도, 아무리 얻어맞더라도. 난…. 할 수 있는 게 없어. 저런 아빠라도 없으면 난.. 완전히 혼자 남는 거잖아.”
민희는 얼마 남지 않은 코코아를 한 번에 쭉 들이키고, 빈 종이컵을 구겼다.
“이제 가자. 너도 다 마셨지?”
쓰레기통으로 종이컵을 넣은 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달관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쓰라렸다. 눈에 난 상처보다 속이 더 쓰라렸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불쌍하게 보지 말아줄래…? 맞는 건 그래도 이젠 참을 만해.”
그녀는 카운터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아저씨를 흘끗 보다 뒷말을 흐렸다. 민구는 빈 종이컵을 구겼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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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1-20 20:37 | 조회 : 75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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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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