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금요일

'꽃집도 카페처럼 좀 잘생긴 사람 뽑지 않나…? 더군다나 대학로에 있는 꽃집이니까 대학생들도 많이 올 것 같은데…’
민구는 사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 귀엽게 생겨서 채용한 거야.’
민구는 그 말을 듣고 또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을 놀리는 괴짜의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보고 정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구는 매주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아주 일찍 저녁을 먹고 ‘큐티’에 왔다. 한 3주 정도는 김봄이 그와 같이 있으며 해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봄은 단골손님들에게 듣는 별명이 있었다. ‘봄프로디테.’
‘남잔데, 왜 여자여신이지?’
싶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민구는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엔 늘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있지만, 가끔 머리를 풀었을 땐, 정말 고운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여성스럽다 표현하기엔 키도 크고 어깨도 딱 벌어졌다. 하지만 그 고운 얼굴과도 잘 어울려서 정말 묘한 분위기였고 하여튼 간에 잘생겼다. 처음 봄을 보는 손님 중에 가끔 그의 얼굴을 보고 넋을 놓는 손님도 있었다. 여자 손님들이랑 특히 장단이 잘 맞고 잘 응대하니 대부분 날은 꽃집에 여자 손님이 북적였다. 그러나 금요일만 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금요일 저녁엔 늘 남자 손님이 왔는데, 하나같이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로 봄을 찾았다. 봄 옆에 있는 민구를 보며 이상한 질투심을 불태우는 남자도 여럿 있었다. 가끔은 술에 취한 진상도 왔다.
그때마다 봄은 그 남자들을 달래서 돌려보냈다.

민구와 단 둘이 있을 때 그는 의외로 조용했다. 처음 봤던 그 방정맞음이 어디 도망가기라도 한 것인지 그는 차분하게 늘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민구는 솔직히 그 사장이 제게 이상한 짓을 매일같이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봄은 조용했다. 민구는 그 사장을 더욱 알 수가 없었다. 3주간 연습이 끝난 뒤 봄은 금요일과 토요일에 늘 어디를 가는지 민구가 가게에 도착하면.
“어. 왔어?”
이 한마디를 끝으로 아주 깔쌈하게 차려입고 어딘가 훌쩍 가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불타는 금요일 밤을 즐기러 가는 젊은 청년 같았다.

봄이 있을 때 진상들은 그가 조용히 어르고 달래서 돌려보냈다. 그러나 민구가 혼자 있을 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장과 있을 때도 사장이 없는 이 순간에도 금요일 8시가 되면 슬슬 진상들이 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 몸이라도 된 듯 가게 문을 호기롭게 열고 들어왔다. 그러나….
“야! 김봄! 어딨어!”
“어서 오세요.”
민구의 한마디면 민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기가 죽어서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를 던지고 줄행랑을 쳤다.
‘도대체 그 사람은…어떤 삶을 살았길래. 매주 금요일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민구는 깨달았다. 왜 봄이 자신을 알바생으로 뽑았는지!
‘만약 이런 상황에 저런 진상들이 만만하게 볼 사람이 알바생이었다면 분명 문제가 많았겠지.’
‘귀엽기는 무슨…’
‘귀엽다’라는 말도 결국 자신을 놀려먹은 말이라 민구는 생각했다.

하루는 웬일로 민구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봄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옷도 외출하는 옷이 아니라 늘 교복처럼 입던 검은색 폴라티와 청바지 청앞치마, 흰색 캔버스 화였다. 날씨가 꽤 풀렸는데도 그는 폴라티를 계속 입고 있었다.
“어, 왔어?”
“네. 오늘은… 어디 안 가세요?”
“음. 오늘은 쉬는 날.”
하고 보던 책을 마저 읽었다. 민구는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처음 봤다. 책들도 다 하나같이,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었다. 민구는 어색하게 그 주변을 살짝 어슬렁거렸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책에 몰두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조용하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봄이었다.
“밥은?”
“예?”
“밥은 먹고 왔어?”
“아, 아니요..”
개강하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니 점점 바빠져서 민구는 늘 챙겨 먹던 금요일 저녁을 가끔 빼먹었다. 먹더라도 오면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 물고 오는 정도였다.
“그럼 도시락 먹을래?”
“어, 좋아요.”
혼자 일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길게 한 대화였을 것이다. 민구는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민구도 말주변이 없는 편이었지만 사장은 맨 처음 만난 날을 제외하고는 지독하게도 말이 없었다. 주문하면 받을 수 있는 작은 메뉴판에서 그 둘은 도시락을 골랐다. 처음 보는 곳이니 민구는 봄의 추천을 받아서 메뉴를 골랐고, 봄도 그 메뉴를 골라 똑같은 메뉴를 두 개 주문했다.
“여기는 가까워서 받으러 가는 게 더 싸. 갔다 올게~”
“어, 사장님이 가시게요?”
“응, 너 오늘 일해야지~”
봄은 이 말을 남기고 가게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민구는 알바하는 첫날, 금요일을 13일의 금요일이라고 속으로 정의 내렸다. 늘 이 시간이 되면 적어도 한 명은 사장에게 원한이 있는 남자들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사장이 오랜만에 금요일에 있던 이 날도 원한이 서린 남자는 또 찾아왔다.
“김봄 어딨어!”
‘늘 똑같은 대사로 들어오네.’
그런 남자 중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금요일 늘 비슷한 시간에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또, 너야?!”
“…”
“너 뭐야!”
“알바생인데요..?”
“거짓말!”
“…..”
“봄이가.. 나는 안된다고 했는데, 넌 왜! 네가 뭔데! 봄이 옆에 있는 건데! 너네 사귀지!”
“….”
지속적으로 찾아오던 이 남자도 처음 민구를 봤을 땐 다른 사람들처럼 흠칫 놀라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계속 마주치니 이 사람도 적응된 것인지 이제는 슬슬 시비까지 거는 것이었다.
“…저, 죄송한데. 안 사실 거면 나가주시겠어요?”
“싫어! 안 나가! 나 안 나가아!”
민구는 아주 정중하게 익숙한 진상 손님을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민구가 자신을 살짝 건드리자 아주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마신 술 냄새는 애교 수준이었나 보다. 오늘따라 지랄발광하는 남자에게 가까이 가니 술 냄새가 아주 지독해 자동으로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민구가 얼굴을 구기자 남자는 더 격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나! 손님으로 온 거야! 감히 알바생 주제에 손님을 밀어?”
“예..? 전 안 밀었는데…”
민구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이 정도로 그에게 속된말로 깐족거리는 사람은 처음이라 약간 진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이라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들어 올린 다음에 가게 밖으로 내려놓아야 하나?’
손님을 물건 하나 옮기듯이 들었다 놓는 상상을 하며 고민하고 있을 즘에 혼자 화가 잔뜩 난 진상남자는 민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당연히 민구는 그 주먹을 피했다. 술에 잔뜩 취한 남자는 앞으로 뻗은 주먹으로 중심이 흔들리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헉, 손님…! 괜찮으세요?”
고개를 든 진상의 코에서 검붉은 피가 비 내리듯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엎어지면서 얼굴을 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혔나 보다.
“너..너 이자식! 쳤어?”
‘내가 언제! 네가 혼자 나자빠진 거잖아?!’
“전..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너…너 이 새끼.. 봄이까지 가로채 가더니…. 이제 나까지 쳐?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진상이 민구에게 다시 달려들었을 때 가게 문이 열리고 김봄이 돌아왔다.
“얘 뭐니?”
봄은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들고 있던 도시락 봉투로 진상의 머리를 냅다 깠다.
“헉!”
민구는 사장이 손님의 대가리를 까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꽤 무게 있는 도시락이었는지, 쓰러진 진상은 한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얜?”
“모..모르겠어요. 사장님이 아는 분 같던데요.?”
“헉, 얘 왜 코피나? 도시락통 좀 맞았다고 흐르는 거야?”
“아니요.. 그건 아니고 아까 혼자 넘어져서….”
김봄은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오기 전 단골 진상 손님은 눈을 떴고 봄을 보자마자 그에게 사육사에게 매달린 판다처럼 매달리기 시작했다. 민구는 그 진상이 사장을 보면 더 난리 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울면서 매달리니 황당했다.
‘너 혹시 게이니? 엇, 그럼 곤란한데. 나한테 반하면 어떡해.’
예전에 사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사람은 정말로 마성의 게이인 걸까.’
이렇게 지속적으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찾아오는 남자가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사장이 엄청 잘생겼긴 하다. 민구도 처음에 그를 봤을 땐 넋놓고 봤을 외모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사람을 홀리는 건 정말 신기했다.
“봄아! 미안해! 사랑해!!”
단골 진상은 경찰에게 끌려가면서도 사장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사장은 귀를 후볐다. 정말 같이 지낼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라 민구는 생각했다.
“어후…. 지난번에도 저런 적 있어서 쫓아냈는데, 또 오고 있을 줄 몰랐다. 괜찮아?”
“어..네.”
“미안하네. 쟤 빼고는 이렇게까지 일이 난 적은 없었는데.”
“어.. 아니에요. 사..장님이 잘못하신 것도 아닌데..”
민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봄은 그런 민구를 보더니 시익 웃고 들고 있던 도시락을 내밀었다. 둘은 가게 안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에고, 도시락 하나가 완전히 찌그러졌네.”
봄은 민구에게 멀쩡한 도시락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처음엔 방정맞다가 어떨 땐 지독히도 무뚝뚝하다가 또 이런 상황엔 다정(?)하니 민구는 당황스러웠다. 김봄이란 존재 자체가.
단골 진상 손님의 해프닝이 일어난 이날, 그 둘은 오랜만에 조금 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장님, 저 진짜 왜 알바로 뽑으신 거에요?”
알고 보니 십구금의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솔직히 민폐를 끼친건 민구였는데 봄은 그를 흔쾌히 알바로 채용해주기까지 했다. 이게 정말 이유가 있지 않다면 의심해볼 만하지 않은가?
“너 귀여워서 뽑았다니까? 우리 꽃집은 귀여운 사람을 최우선으로 뽑거든.”
“켁..”
“더러워…”
냠냠 밥을 씹다 또 봄의 ‘귀엽다’라는 말에 민구는 체할 뻔했다. 23년간 귀엽다는 말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들은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저런 소리를 들으니 민구는 약간 소름이 돋았다. 봄은 민구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너가 이 시간대에 뽑힌 건 네가 바위처럼 건장한 남자애라서이긴 하지. 근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단다.”
“…뭔데요?”
‘설마 또 귀여움 뭐라 하진 않겠지..’
“귀여움!”
“…대체.. 장난하지 마세요.”
“진짜야. 특히 너의 금방 나무에 달린 밤톨 같은 머리가 아주 높은 귀여움 포인트 점수를 받았지.“
하고 거리낌 없이 그의 머리를 슥슥 만졌다. 낯선 손길에 민구는 움츠러들었다.
“오.. 아주 좋아, 아주 훌륭한 밤톨이야!”
“…사장님 변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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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1-09 23:24 | 조회 : 957 목록
작가의 말
최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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