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재회 (1)

"하아, 하아.... 으윽, 아프다고! 잘 좀 해봐!"
"아! 미, 미안해. 사실 네가 제일 고생했을 테니까."

시험이 끝나자마자 모든 학생들은 학교 측에서 주최한 포션을 마시면서, 각자 응급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시험에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골렘들에 의해 부상을 입었으며, 중상을 입은 학생들도 전체 학생에서 꽤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야, 제대로 좀 해보라고! 의학 도시인 <포션세인> 출신이라면서! 그거 하나 못하냐!"
"약사가 되볼까 생각은 해봤지만, 아직은 몰라! 여기서 또 다른 꿈을 찾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투덜거릴 생각이라면 차라리 포션을 마시면 되잖아!"
"뭐어? 이 정도로 포션을 마시라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예 다치지 않게 인체 개조를 하라고 그러지?"

저 멀리서 장건영과 브론이 서로 다투는 소리가 들리는군.
정안섭은 심한 부상으로 인해 시험관들의 부축을 받아 전문적인 치료를 위해 이송되었다. 그 사이에 다른 학생들은 자가 치유를 하면서 시험관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의 공통점이랄까, 다들 어딘가 눈이 죽어있네."

학생들 중에서도 나는 거의 부상을 당하지 않아 포션이 필요없는 몇 없는 학생들 중의 한 명이었다. 나처럼 포션이 필요하지 않고, 가벼운 부상을 당한 학생은 저 멀리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장건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이 골렘과의 전투가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다들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증세를 보인다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하긴, 저 거대한 골렘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은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재앙이겠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기에 있는 둘은 상당히 규격 외다.

"장건영.... 그래, 저 녀석의 이름도 기억해둬야지."

이렇게 멀리서 봐도 그는 다른 학생들과는 충분히 격이 다른 강함을 뽐내고 있다. 그 위상은 다른 7각성들과 비교해봐도 절대 꿀리지 않을 정도로,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강자인 정안섭과 브론, 그 둘도 한 번 살펴보자면 정안섭은 많은 무기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음.... 브론은 아직까지 저 무기를 이용한 무술을 익혔다는 점 빼고는 별 정보가 없는 상태군.

"그나저나 이렇게 과격한 시험을 볼 수 있는 이유가 이 포션 덕분이었구만. 이 정도로 순도가 높은 포션을 만들어내다니."

곧이어 나는 조사 대상을 포션으로 바꾸곤 고개를 아래로 떨군다.

저 멀리 <포션세인>이라는 약을 전문으로 한 나라에서 온 브론도 눈치챈 것 같지만, 이 포션은 여기 <유먼>의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시중의 것보다는 몇 배 가량 가치가 높은 포션이다. 그걸 여기에 있는 학생 수만큼의 양을 준비하다니, 상당한 돈이 들었을 텐데?

(이 정도의 돈을 한 학교에서만 사용하다니, 정말로 이 <그랜드 스쿨>은 무슨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모르겠군.)

규격외의 입학 시험, 수많은 학생들의 수보다 더 많은 양의 포션, 그리고 갑자기 넓어진 시험장의 크기. 내가 보고서로 알고 있는 타 학교와는 꽤나 다른 인상을 받는 학교가 바로 여기였다. 실제로 처음에 다른 학생들도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었고.

(역시, 여기를 처음의 도전 과제로 선택한 것은 잘한 것 같군. 점차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어. 겸사겸사 인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내가 쉬면서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으면 저 멀리서 4명의 시험관들이 각자 다른 서류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왼쪽에서부터 중년의 남성, 박 선생, 권 선생, 장 선생 순으로 걸음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고 있다.

"아아, 저 멀리서 시험관들이 오는군. 드디어 결과가 나온 건가."
"그 거대 골렘의 상태....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멀리서 치료를 하고 있던 장건영과 브론에 더불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머지 학생들도 그들의 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돌린다. 현재, 학생들의 모든 시선들이 그 4명에게 집중된다.

어딘가 날카롭게 날이 서려있는 시선에 박 선생이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그럼, 이라고 첫 운율을 떼며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기 시작한다.

"...우선은 이번 시험, 모두 수고 많았다. 아마 시험 종료 때까지 보고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방금 저 거대 골렘의 신체는 쓰러진 직후다. 마핵의 파괴 여부는 아직 잘 알 수 없지만, 조사해보면 곧 나오겠지. 솔직히 이러한 전개가 될 거라고는 우리 시험관들로서도 예측하지 못한 사태지만."

그의 말에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골렘들, 혹은 다른 이들의 방패가 되어 쓰러져버린 수많은 학생들이 당연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초리를 띄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떤 아이들은 분노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극소수의 학생들은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참혹한 장면만을 기억하고 있는 다수의 학생들로서는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겠지.)

그것뿐만이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예 시험관들이 또 무언가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다면서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조리함으로 가득했던 시험 상황과 긴장되어 있던 심리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 서로 섞이면서 부정적으로 상황을 대하게 된 것이다.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이번에는 우리들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거지?"
"흐아.... 싫어, 이제 더 이상은 싫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이거야 원.... 이제서야 왜 이 <그랜드 스쿨>의 지원자 수가 해마다 점점 떨어지고 있는지를 강하게 알 수 있겠네.)

시험을 마친 학생들 중 일부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은 점점 퍼져나간다. 공포와 같이 부정적인 감정은 퍼지기 쉬운 감정이니까.

그런 시험관들에 대한 불신의 태도를 그들도 느꼈는지. 박 선생 자신 또한 이 상황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영사> 마법을 이용하여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골렘의 모습을 공중에 떠있는 화면으로 보여준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믿지 못한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만, 봐라. 보다시피 중앙 부분에 마핵이 존재하지 않는 골렘은 방금 전의 시험에서 제일 거대한 하나밖에 없지.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사실이다."
"어? 거, 거짓말...."
"그리고 그 거대 골렘을 쓰러트리는 데에 일조한 학생이 세 명 있지. 바로 저기 맨 뒤에 앉아있는 장건영과 브론, 여기에는 없지만 현재 지금 의료실에 있는 정안섭이 그 학생들이다."

게다가 마지막 그의 말에 이번에는 많은 학생들이 뒤를 쳐다보면서 모든 학생들의 시선과 부정적인 감정이 이번에는 맨 뒤의 둘에게로 향하게 된다. 자, 여기서 저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다시 괜찮아질 수도, 더 최악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저 둘의 전투력은 당연, 너희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순식간에 저 거대 골렘의 약점이 눈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곧바로 공격을 감행했지. 그 점이 너희들과의 차이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훗, 나는 시작하자마자 그 점을 알아챘지. 너희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고!"
"장건영! 다른 애들을 부추기지 마!"

하지만 제일 먼저 박 선생이 두 그룹을 비교하면서 분위기는 점차 나빠져간다. 게다가 무심코 나온 장건영의 말은 더욱 악화시키고 있고. 눈치 빠른 브론이 잽싸게 그를 말리긴 했지만, 이미 다른 학생들에게 그의 말이 퍼진 상황이다.

(아니, 애초에 왜 박 선생은 굳이 더 분위기를 안 좋은 쪽으로 만드는 거지? 책임을 저들에게로 돌리려 하는 건가? 아니, 그건 그렇고, 이건 상황이 좋지 않아.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자존심 높은 귀족들의 자제들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과 자신들의 차이를 알아버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앞으로의 관계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저런 건방지게 생긴 녀석이 자신보다 위라니, 믿고 싶지 않겠지.

그리고 그 상황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시동이 걸려 어딘가에서 크게 분출할지 모른다. 그러면 오늘 밤, 나의 일이 또 늘어나게 된다. 제발 지금은 조용히 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아앙? 뭐야, 너희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어? 정 분하다면 나처럼 실력을 보여줘서 결과를 내보기라도 하라고! 내가 문제가 아니라 니들이 약한 게 문제잖냐!"
"장건영! 그 이상은 위험한 발언이야. 일단은-"
"시끄러워! 됐고, 이참에 내가 미리 말해두겠는데 이 세상은 경쟁이야.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고, 너희들은 약해. 단지 그것뿐이다."

...이런, 결국은 사고 쳤군. 프라이드가 높을 지원자들에게 대놓고 그런 말을 하다니. 하아, 저 녀석 때문에 오늘 밤은 정말 피곤해지겠어.

그리고 역시 이번의 말에는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아까부터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붉은색 머리카락의 남학생이 거칠게 일어나며 뒤에 앉아 있는 장건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다.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그를 한 대 치기라도 할 것 같다.

"어이, 너 말 다했냐? 그렇게 말하는 너는 얼마나 잘났다고 그러는 거냐. 아까부터 계속 우리들을 무시하는 듯한 언행과 행동, 이건 도대체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는데?"
"...넌 또 뭐야. 잠깐,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자신에게 다가온 남학생을 무시하려던 찰나, 장건영이 그의 모습을 보고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런 그의 태도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학생이 목소리의 톤을 약간 올리고는 스스로 자신의 소개를 하기 시작한다.

"내 이름은 이주헌. 이 나라의 귀족의 자제다. 분명 저번 달에 한 번 만났을 텐데."
"아아, 맞아! 확실히 궁정 무도회 때쯤이었나. 쳇, 기껏 기억해냈더니 고작 그런 곳에서 저 녀석과 만났을 줄이야. 이거 시시하군."
"뭐, 뭐라고? 네 녀석, 지금 우리 가문을 얕보는 거냐? 한낱 평민 주제에!"
"그러는 한낱 귀족분은 좀 빠지시지! 그리고 이미 몰락해가는 너의 가문 따위,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계속해서 문제적인 발언을 일삼는 장건영. 그의 말에 이주헌은 완전히 화가 난 듯,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의 다툼을 방관한 상태로 관전하고 있던 시험관들도 이번 그의 말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제지를 가하기 시작한다.

"...장건영, 아까까지의 발언은 모두 용인하겠지만, 마지막에 한 말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특정 귀족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폄하하는 것은 삼가하는 것이 좋겠군. 이 <그랜드 스쿨>은 평등을 보장하는 거지, 차별을 조장할 생각은 없다."
"...쳇."

그러고는 곧장 고개를 돌려 이주헌에게도 한 마디를 던진다.

"그리고 이주헌, 너도 마찬가지다. 전에 얘기했듯이 여기서는 귀족과 평민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이곳에서 계속 귀족의 프라이드를 찾을 생각이라면 다른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추천하도록 하지. 아까부터 계속 그런 태도를 유지하던데, 그게 언젠가 너에게 큰 독이 될 거다."
"....."

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입술을 세게 깨무는 이주헌. 자신의 가족이 욕보이고 있는데도 뭐라 말할 수가 없으니 분한 것도 당연할 것이다. 지금은 시험관 앞이라 겨우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그래! 아까 전에 내가 말했던 것이 바로 그 내용이잖아! 신분따위 들먹이지 말고 실력으로 증명해 보라고, 이 멍청아!"

겨우 진정을 시켜 둘을 떨어트려 놓으면 마지막까지 장건영은 이주헌을 조롱한다. 그러자 그는 빠른 속도로 등을 돌린 후, 주먹을-


"이제 그만해라, 둘 다!"


-날리기 전, 박 선생의 말에 두 사람 모두 행동을 정지했다.
어떻게든 두 학생은 모두 동작을 그만두긴 했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이미 두 사람의 얼굴에 서로 주먹이 닿을 정도로 밀접히 위치해 있을 정도이다. 그 살기를 보니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진심으로 때리려고 했군.

"...그 와중에 장건영은 그 잠깐 사이에 반응한 거냐. 역시 저 녀석, 내가 지금까지 여기서 봐온 인간들 중에서도 강력한 녀석이군."

다른 학생들은 저 둘의 심각한 상황에 서로 떠들면서 주의를 기울이겠지만,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경쟁자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나중에 써먹을 뿐이다.

"어이, 둘 다 떨어져! 한 번이라도 다시 그런 짓을 반복하려고 하다간 너희 둘 다 불합격 조치를 매길 거다!"
"-저 자식. 나중에 두고보자."
"...제길."

둘의 보이지 않는 다툼에 보다 못한 박 선생은 학교의 시스템을 들먹인다는 필살기를 꺼내면서 두 학생 간의 관계를 억지로 끝맺는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 분노를 마음에 담아두면서 구석에 앉아 화를 식히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른 학생들의 잡담 소리는 덤으로.

(아아, 진짜 오늘 밤은 여러모로 힘든 날일 것 같군. 여러 명의 얕은 고민이라도 단 한 명의 깊은 원한이 무서운 법인데. 그냥 나를 믿지 않는 녀석일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 그럴 거야. 부디 그러기를.)

어쨌든 둘의 살벌한 다툼에 다시 한층 더 무거워진 분위기가 조성되자 박 선생 곁에 있던 중년의 남성이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도리어 그를 말리기 시작한다.

"자자, 박 선생. 이만하면 됐네. 모든 학생들도 이러한 사태를 본 이상, 다들 알아서들 주의해줄 거야.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네."
"문 선생님...."
"자, 얘들아. 지금부터는 내가 대신 말하도록 할 거다. 박 선생은 요새 무좀이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안 좋거든."
"....."
"하하, 박 선생. 뭘 그리 얼굴을 찌푸리고 있나. 학생들 앞인데 좀 웃어야지."

문 선생이라 불린 시험관이 가벼운 농담으로 다시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한다. 정작 그 농담의 대상이 된 박 선생의 표정은 엉망이 되었지만. 하지만 덕분에 경직되어 있던 시험장의 분위기가 다소나마 풀어졌다.

"자자, 이제부터 후의 일정을 다시 알려주도록 하겠다. 우선 너희들의 치료가 끝나면 순서대로 한 명씩 면접을 보도록 할 건데, 이 면접 또한 너희들의 성향을 알아보는 거니 그리 긴장하지는 않아도 된단다. 그저 잠깐동안 간단히 질문할 예정이니까."

에-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만약 박 선생이 말했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리액션이겠지만, 친근한 느낌을 주는 문 선생이기에 가능한 행동.

당연히 학생들로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을 거다. 2시간 동안의 벌어진 골렘들과의 연전과 기타 여러 요인들로 인해 피곤해진 학생들로서는 준비도 되지 않은 상담 따위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리고 나도 개인적으로 좀 쉬고 싶은데. 마지막에 한 일을 하는 데에 생각 이상의 집중력을 발휘한 지라.)

원래의 신체라면 모를까, 아직 적응이 잘 안되는 청소년의 신체로는 그 행동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렇게 격하게 움직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기도 하고.

"아아, 너희들이 힘든 것은 알겠지만, 이건 아직도 너희들에 대한 평가의 일부란다? 그러니까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아줬으면 좋겠구나. 게다가 너희들의 인원을 봐서도 그리 길게 시간을 들일 수는 없어서 말이야."

대략 여기에 존재하는 학생들의 인원은 몇백 명이 넘는다. 정말 그의 말대로 길어봐야 10분 이내로 끝날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저 말을 믿어도 되겠지.

"자, 그러면은 이제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회복한 것 같으니까 다시 면접실로 이동하도록 하지."


★★★


쓰러진 골렘은 발견되자마자 그 즉시 어딘가로 보내져왔다.
저 거대한 골렘들을 다 어디에 가져다 놓냐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거대 골렘들을 제외한 나머지 작은 골렘들은 이 <그랜드 스쿨>에 있어서는 모두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즉시 폐기해버리면 된다.

"아~ 진짜. 저 놈의 영감. 언제까지 비위를 맞춰줘야 될 지 모르겠어요. 계속 자기만 면접 보고 우리만 이런 험한 일 시킨다니까요."
"...이봐, 권 선생. 그 말, 절대 문 선생님 앞에서 하지 마라."
"아휴, 알겠어요. 박 선생님. 아니, 계속 우리가 받아주니까 저 사람도 계속 우리들을 시키는 거예요. 아주 전형적인 꼰대상이라니까."

그 중, 작업을 맡은 여러 명의 시험관들 중에서도 박 선생과 권 선생은 문 선생의 말에 따라 골렘을 처리하려고 장갑을 끼기 시작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온 일이므로 이 작업을 하는데에 별 어려움은 없다.

다만, 권 선생은 그런 문 선생의 태도가 불만인지 뒤에서 계속 투덜대는 소리를 낸다. 겉과 속이 다른 그의 정체를 아는 것은 박 선생뿐이었으므로 지금은 편하게 그를 대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너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첫인상과 지금의 인상이 다른 녀석이야. 도대체 다른 선생들한테는 어떻게 그 성격을 숨겼는지 모르겠군. 마치 처음 부임했을 때의 교장을 보는 것 같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이랑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말이죠. 그 사람은 진짜 넘사벽이에요, 넘사벽. 내가 아무리 사악해도 저 인간은 못 이길 것 같아, 그렇죠?"

원래는 그런 짓에 동조하는 성격이 아닌 박 선생이지만, 지금만큼은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하고 있는 권 선생을 딱히 말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잘 알 수 없는 이 시험의 결말 때문이었다.

"-흠."
"...그러고 보니, 오늘은 작년보다 더 조용히 계셨네요? 이번 시험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나요?"

혼자 알아서 떠들어 대던 권 선생도 박 선생이 거대 골렘의 엉망이 된 시체를 보면서 진지한 모습을 보이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그의 말에 따라 그것을 보기 시작한다.

"어.... 오른쪽 팔은 완전히 나가 떨어졌고, 나머지 부분들도 거의 정상이 아니네요. 특히 다리 부분이 심하게 금이 가있는 것을 보니, 수많은 학생들에게서 집중 공격을 당했나 보네요."
"...안 그래도 잘 부서지지 않는 재질의 골렘일 텐데 이 정도라니.... 이것의 약점인 마핵만 없었더라도 C등급까지도 가능한 골렘을 이렇게 만드는 정도라면 이번 학생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간 건 사실인 것 같군."

거대 골렘의 전체적인 모습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팔이 없는 정도로만 보이겠지만, 가까이에서 본다면 그 참혹성이 이로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피부는 성하지 못하고, 일부는 찢어지기까지 했으며 어떤 곳에는 작지만 깊은 구멍이 뚫려있기도 했다. 튼튼해보이는 골렘이었다고 해도 집중 포격을 맞아 너덜너덜 상처 투성이이다.

"아까 전, 멀리서 온갖 흙먼지와 마지막에 나온 정체불명의 기체로 인해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나 심각한 상황이었군요."
"으음, 그리고 제일 이상한 점이.... 이 골렘의 남은 팔에 아주 크게 금이 가있는 부분이야. 꽂혀있는 화살의 모양을 보나, 담겨져 있는 마법의 종류를 보나 이것이 바로 정안섭이 쏜 화살인 것은 틀림없지만-"

박 선생은 팔에 있는 화살을 뽑아 권 선생에게 보여준 다음, 골렘의 얼굴 부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여기 눈에 꽂혀있는 이 화살.... 아무리 봐도 저 각도에서 쏠 수가 없는 화살이야. 그리고 이 화살을 쏘았을 만큼 강한 학생은 분명 그 각도에는 없었어."
"...듣고 보니 좀 많이 이상하네요. 저도 분명 정안섭의 화살이 골렘의 눈을 파괴한 것 같았는데 그의 화살은 정작 골렘의 팔에 의해 막혀있었고 다른 학생에 의해 쓰러진 거라니.... 이거 참, 이럴 때는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걸까요?"

권 선생 또한 수상한 점을 눈치채고 여러모로 생각을 짜내긴 했지만, 박 선생으로서는 이 사항에 대해 면밀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이번에 다시 한 번, 신입생들의 '담임'을 맡아야 할 테니까.

(게다가 마지막에 나온 그 연기. 그건 분명 E급 마법인 <연막>일 터.... 그리고 굳이 그렇게 번거로운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지금의 이 행동을 감추기 위한 것 같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왜 굳이 그런 행동을 취했느냐인데....)

박 선생은 이미 <연막>을 사용한 자와 이 화살을 쏜 자를 동일인물일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적어도 그 두 사건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E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은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닐 테니까.

"이건.... 아무래도 따로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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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31 20:47 | 조회 : 367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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