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징조 (1)

"···이건 끔찍하군."

사건 현장에 도착한 김승호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에워싼 그곳에는 두 구의 시체가 바닥에 놓여있을 뿐. 죽음을 맞이한 채로 그를 반긴다.

처참하게 살해당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김승호는 눈살을 찌푸린다. 대체 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었단 말인가.

"젠장···. 이런 건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네."

주머니에서 꺼내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일그러진 표정을 띈 두 사람은 머리와 몸 부분이 서로 분리된 상태. 아마 그때 즉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다른 곳은 손대지 않고 깔끔하게 목 부분만 잘라냈어. 이건 아무리 봐도 프로의 솜씨로군.)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마흔(魔痕)은 발견되었나?"
"아니요. 두 사람 모두 물리적으로 살해당했습니다. 다만, 보조적인 효과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겠네요."
"그래···. 직접적인 마법으로 죽인 건 아니라는 거지."

마흔(魔痕)이라는 것은 마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특수한 흔적으로, 이것이 발견되면 범행을 밝혀내기가 극도로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사망 추정 시각은?"
"예, 아마 밤 1시 정도로 추정됩니다. 거기에 두 사람 모두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목이 베여 즉사했습니다."

날카로운 무언가라고 설명하는 걸로 보아, 아직 흉기는 발견되지 않은 모양. 그러나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한밤중에 죽였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그 시간에 범행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야겠어.)

"···최초 목격자는?"
"이곳 슬럼가에 거주하던 인물입니다. 근처를 지나가던 도중에 두 사람의 시체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애초에 이런 길바닥에 시체를 남겨두고 가다니···. 마치 일부러 발견해 달라는 것 같잖아."

그 시간에 아무도 없는 뒷골목이라면 들키지 않게 시체를 처리하는 것도 가능할 터. 무언가 변수가 생겨 은폐할 시간이 없어 시체를 남겼다고 봐야 할까.

(아니,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녀석이 그런 실수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굳이 시체를 치울 필요가 없던 건가?)

살해당한 두 사람에게서 저항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거야 바로 즉사했으니까.
그만한 능력을 갖춘 범인이, 과연 목격자를 두려워해서 이 시체를 치우지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무언가 따로 속셈이 있다는 뜻이겠지···."

어차피 몇 가지 단서만으로 이 사건에 대해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충분한 증거가 모이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슬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아마 이곳보다도 끔찍한 광경일 테지.

본래라면 조금 더 결론이 나올 때까지 수사를 맡았을 테지만, 이번에 벌어진 사건은 하나가 아니다. 게다가 훨씬 악질적인 수법을 사용했기에 그쪽에 집중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좋아, 기존의 인원은 조사에 착수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오도록! 다른 현장으로 출동한다!"
"예, 알겠습니다!"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한 그때, 문득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의 자신보다도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얼굴이.

(지난은 과연 이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에 살해당한 두 사람은 길드 마스터가 운영하는 <모험가 길드> 소속의 길드원. 즉, 지난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평소에 봤던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대한 순화시켜 전해주는 수밖에.

"-아니, 어쩌면 지난은 이미 알고 있을 지도 몰라."

하지만 한밤중에 그들이 이 장소에 있던 것은 어째서일까. 굳이 이런 슬럼가에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그러고 보니 오전에 그 녀석이 보내온 암살자도 있었지. 거기에 밤새 이뤄진 조사까지···.)

하루만에 이렇게나 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고 할 때마다 다른 비상사태가 발생하다니, 절대 좋은 징조라고는 볼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남자는 모든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더없이 수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무래도 지난의 행방을 찾는 것이 우선인 것 같군."

갑작스럽게 들어온 암살 위협.
<모험가 길드> 측에서 이송된 범죄자.
골목에 방치된 길드원의 시체.


-이 모든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뿐.


"잠깐, 일단 너희들 먼저 현장에 가 있어. 나는 잠시 들려야 할 곳이 있으니까. 가자마자 현장부터 조사해 줘."
"예, 알겠습니다!"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를 만나러 가는 수밖에.
비록 개인적으로는 여러 사건에 휘말려 있을 그를 동정하지만, 지금은 그런 부분을 신경 써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

특히나 지난은 많은 사건과 연관되었기에 용의자나 다름없는 상황.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추궁해야지. 난 경비 대장이니까.)


★★★


"그렇다면 이걸로 좋은 거겠지, 모두."

중년 남성이 회의의 끝을 알렸다. 그는 이 조직에서 암살 부문을 맡은 [암살 부문장]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의 말에 수긍한 사람은 갈색 모자를 쓴 남성이었다. 그는 이 조직에서 노예 부문을 맡은 [노예 부문장]이다.

"너···. 알고 있겠지만 이건 빚이야."

곰방대를 든 남성이 불쾌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는 이 조직에서 마약 부문을 맡은 [마약 부문장]이다.

"아, 힘들어 죽겠구만. 일단 이야기 자체는 이해했다."

근육질의 남성이 하품하며 대답했다. 그는 이 조직에서 경비 부문을 맡은 [경비 부문장]이다.

"정말···. 이 결론 하나를 도출하기 위해서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회의를 하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야. 너무 피곤해."

한 명의 미녀가 피곤한 듯, 그렇지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이 조직에서 창관 부문을 맡은 [창관 부문장]이다.

"그렇다고 해도 꽤나 거대한 작전이군요."

기다란 모자에 모노클을 착용한 남성이 말했다. 그는 이 조직에서 도박 부문을 맡고 있는 [도박 부문장]이다.

조금 전, 흑월의 부문장들은 위험을 줄 수 있는 요인을 배제하기 위한 회의를 밤새 진행했다. 결과를 내기까지 걸린 시간과 갈등은 상당했지만 어떻게든 합의를 보았다.

단, 한 사람만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지만.

"쳇, 이 새끼를 도와야 한다니···. 납득이 안 가는군."
"이봐, 정당한 보수를 약속하지 않았나. 그 정도는 해야지."

경비 부문장이 마음에 안 내킨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암살 부문장은 급히 마음속의 부정적 감정을 억눌렀다. 특히나 이미 단검을 잡은 오른손에 주의해야 했다.

(나도 상황이 이렇게 된 게 마음에 안 든단 말이다···. 그렇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참아야겠지.)

"자, 거기까지만 하고. 그러면 이제 회의는 끝난 거지?"
"···그래. 합의해야 할 내용은 없다. 가봐도 좋아."

한 번의 실패가 불러온 최악의 상황.
그것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암살 부문장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하루만에 이렇게나 큰 손실이 생기다니.


-분명 순조롭게 이뤄질 일이었다.


이번에 목표가 되는 인물은 단순한 평민. 평소처럼 유명 인물의 암살과 같은 어려운 임무가 아니다.
그리고 그걸 실행한 것은 간부급의 인물. 변수를 방지하기 위해 무려 C급 마법이 든 스크롤까지 건네줬는데.

(어디서···.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럼 나는 갈게. 계약금 내용은 나중에 정하자."
"여기서 더 얻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슬슬 가야겠네."
"쳇, 한숨 자러 가야겠군."

그런 그의 모습에도 다른 부문장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들에게 있어 암살 부문장은 이미 이득을 취한 별 볼 일 없는 존재일 뿐.

"그러면 우리도 일어날까. 어차피 여기에 있어봤자 저 볼품 없는 모습만 보게 될 테고."
"후후, 당신에게 있어서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보이겠죠. 그러면 나중에 다시 만나 뵙도록 합시다."

밤을 새운 덕에 부문장들은 모두 피곤한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속속 자신의 거처로 돌아간다.
이윽고 머지않아 암살 부문장만이 어두운 정적이 흐르는 회의실에 홀로 남게 되었다.

(전부 나간 건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면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번의 실태로서 큰 손해를 봤으니까.

평소의 수습할 수 있던 실패와는 다른, 나머지 부문장들을 끌어들일 정도의 거대한 실책.
어떻게든 이 고난을 이겨낸다고 해도 다른 이들의 신뢰를 잃은 이상, 당분간은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테지.

(그렇다고 해도 흑월의 정체가 알려질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사정을 다른 부문장들이 이해줄 리가 없겠지.
회의 중에 따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분명 자신의 처분에 대해서도 그들은 논의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부터는 모두가 적인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굉장히 자포자기한 모습과도 같은 느낌.

하지만 아무도 존재하지 않아야 할 칠흑의 공간에서 불쑥 검은 그림자가 나오더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의 맞은편 의자까지 걸어가 조용히 앉는다.

-그것도 엄청나게 위험한 살기를 담은 눈으로.

"너와 내가 맺은 것은 그 계약만큼의 행동뿐. 설마 그 이상을 나한테 요구하는 건 아니겠지."
"···딱히 반박할 말이 없군. 슬슬 나도 몰락할 때가 온 건가."
"이만큼 일을 크게 저질러놓고는 잘도 지껄이는군."

검은 그림자의 말에 그는 다시 한숨을 한 번 내쉰다.
만약 그때 카프가 아닌 눈앞의 사신이 이 의뢰를 맡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후회의 감정.

"···솔직히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고, 대부분의 변수 또한 차단했어. 그렇다고 해서 목표가 특별하지도 않았지."

가장 큰 이변은 그 현장에 끼어든 길드 마스터라는 변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기에 대응할 수가 없었다.

(젠장···. 그것도 하필이면 나름 권력이 있는 녀석에게 들키다니···. 절대 좋은 징조라고는 볼 수 없어.)

지금쯤 과연 어디까지 정보를 모았을까.
자칫하면 당장 오늘이라도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

간부급의 카프 일행이라면 흑월에 관해 꽤나 도움이 되는 정보를 줄 수 있을 터. 어떻게든 꼬리가 잡힐 것은 분명하다.

"허나, 질문 하나 하지."

머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던 중,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자신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다니, 지금껏 이런 행동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뭐지?"
"지금 그 목표는 어떻게 된 거냐?"

이럴 때조차 의뢰에 관한 얘기를 하는 건가.
본래라면 이런 개인적인 사담에 말을 섞지 않겠지만, 오늘만큼은 정보를 독차지해서 좋을 것이 없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선 모든 전력을 다해야 하니까. 일단 정보를 공유해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겠어.)

자신이 가진 세력.
흑월의 다른 부문장.
눈앞의 이 사신조차도.


-모든 것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일단-"

그렇다면야 돌려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되갚아 줄 시간이니까.


★★★


한창 열기가 돌고 있는 이곳은 <모험가 길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김승호 또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기가 지난이 일하는 곳이구나."

평소라면 들어올 일이 없던 장소나 다름없기에, 그는 길드 내부의 분위기를 파악한다.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의뢰를 받고자 온 모험가와 그들을 보조하는 안내원까지, 제법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비교적 실력이 균등한 경비대와 비교하면 편차가 큰 편이네. 하지만 그만큼 강자들도 많은 것 같군.)

이러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든 지난의 공적은 인정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용의자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지금의 그는 공적인 일로 <모험가 길드>를 찾아온 상태.
머릿속으로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만약 지난이 두 사건의 범인이라면 잡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의 길드 마스터···. 지난 씨를 불러와 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마침 손이 빈 안내원이 보이길래 그 앞까지 걸어갔다.
동시에 경비 대장의 징표를 보여주며 협조를 요구한다.

(비록 지난이 범인이 아니더라도 수확은 있으니까. 일단 만나서 정보를 얻는 게 급선무겠어.)

"죄송합니다. 지금 길드 마스터는 외출 중입니다."
"···뭐라고요?"

그러나 예상 밖의 일이 발생했다.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살인 사건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 부재중이라니.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겠지만, 계속해서 지난이 사건에 엮인 것을 생각하면 행적이 묘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설마 모습을 감췄다던지···.)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그분은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외출하시는 편이 잦아서···. 저희도 파악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안내원이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길드 직원마저 그의 행적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기록으로 남는 업무 일정이 아닌 개인적인 볼일로 나갔다는 뜻.

혹시 몰라 다른 안내원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으나, 역시나 같은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저 두 사람이 일부러 말을 맞추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지난의 행적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도대체 업무 시간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아무튼 이 장소에 그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상황에 맞춰 다른 방법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신 길드 마스터가 있는 방을 수색해 봐도 될까요? 무언가 그의 행적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도 있으므로."
"예, 아마 그 정도라면 그분도···."
"-허락하지 않겠어."

동의를 얻어내려는 찰나, 등 뒤에서 들린 묵직한 중저음.
김승호는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에게서 내풍겨지는 살기도.

"여기로 온 이유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잖아, 안 그래?"
"···본래는 그게 목적이었지. 위협하는 건 그만둬, 지난."

말투로 보아 이미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지.

(단지, 필요 이상의 소란을 일으킨 것 같네.)

동시에 여기저기서 두 사람을 주목하는 시선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다 보니 다른 모험가의 흥미를 자아낸 모양으로, 이래서야 추궁이 불가능하다.

"우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곳은 보는 눈이 많아."
"···조사를 위해서니까. 어차피 경비대로 데려갈 속셈이겠지? 아마도 나는 의심받고 있는 것 같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난도 그를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어차피 사건을 조사하러 왔다면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을 테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둘이서 조용히 해결하는 게 나을 터.

거기에 눈치 빠른 모험가가 수상한 낌새라도 느끼면 곤란해진다. 괜한 변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움직이는 편이 좋다.

.......

"그래서···. 나는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되는 걸까."

<모험가 길드>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 지난이 입을 열었다.
이미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자는 없어졌으니.

"참나, 뭘 그렇게 긴장하는 거야. 아직 경비대에 도착하려면 멀었다고. 본격적인 추궁은 그때부터야."
"....."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승호의 눈이 의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지난은 놓치지 않았다.
아마 이제부터 이뤄질 그들의 대화가 사담과도 같은 가벼운 분위기라는 걸, 미리 확인해 두는 것 같은 느낌.

(만약 정말로 기록에 남지 않는다면, 그만큼 더 편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겠지.)

자칫 발언을 잘못하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지난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이 걸어가는 것도 좀 그러니까···. 가볍게 잡담이나 나눠볼까 하는데. 아까 어디를 갔다 왔는지 말할 생각은 없는 거잖아?"
"···그래."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방금 전까지 <천계>에서 회의를 진행했다고 사실대로 얘기해봤자, 누가 그걸 믿어준다는 건가.

(애초에 말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 덕분에 김승호의 의심이 더욱 짙어진 것 같군.)

"그렇구나···. 그러면 너는 이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어? 이미 내가 온 목적을 아는 것 같은데."
"부마스터에게 <전언>으로 들었다. 우리 쪽 길드원이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말이야."
"그래서 내가 와도 당황하지 않았던 거였나. 아무리 그래도 보통 경비 대장이 직접 찾아오면 놀랄 만도 한데."

의혹이 깊어질수록 역할 수행은 어려워진다.
지난이 상대하고 있는 자는 이 나라의 경비 대장.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저씨 같아도 나름 유능하다고 말할 정도는 되니까.

그런 그가 작정하고 지난에 관한 조사를 이어간다면, 수호자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의심을 풀어내는 편이 좋겠어.)

"···뭐, 좋아. 그 덕분에 얘기가 빨리 진전됐으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직설적으로 물어보도록 할까. 어째서 너희 쪽 길드원이 슬럼가에서 쓰러져 있던 거야?"
"오전에 내가 경비대로 넘긴 암살자와 함께 작업하던 녀석들을 미행하기 위해 보냈다. 그러다 녀석들에게 죽은 거겠지."

지난은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명령에 의해 살해당한 부하들을 생각하며, 억지로라도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피가 나올 정도로 움켜쥔다.

그러나 김승호는 그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투에 손을 넣더니, 곧바로 지난에게 무언가를 건네 보였다.

"그 암살자와 함께 작업하던 범죄자란 건···. 이 녀석이냐?"
"이건···!"

그가 보여준 것은 현장 사진.
그것도 토막난 시체가 놓인 매우 끔찍한 장면이다. 검문소에서 김승호가 봤던 것과 동일한 사진.

"슬럼가에서 벌어진 사건과는 다른 장소다. 네가 말하는 범죄자는 여기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이 아닐까?"
"확실히···. 한 녀석은 얼굴이 파손되어 인식할 수 없지만, 다른 한 녀석은 내가 잡아들였던 녀석이 맞아···!"

(역시 그런가···.)

이걸로 어느 정도 조각이 맞춰졌다.
각자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두 개의 사건은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원인조차도 확실히 알아냈다.

아마 암살자를 미행하기 위해 길드원을 파견한 지난의 명령이 있었기에, 추적 중 슬럼가에서 살해당한 거겠지.

(하지만 이리 가정해도 어째서 그 암살자들까지 같이 죽었는지가 의문인데···. 서로 싸우다 죽었다고 하기에는 위치가 너무나도 떨어져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

아직 의문이 전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나와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상황.

"그래서···. 이걸로 나에 대한 의심은 좀 옅어졌을까."
"···아니.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김승호가 느낀 점은 적어도 지난이 범인일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는 것. 오히려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테지.

(그렇기에 여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을 들어야 해.)


"-너는 그 범죄자를 쫓아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거지?"


일부러 밤에 길드원을 시켜 미행할 정도라니,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것인지를 확실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만약 김승호가 상정한 최악의 사태대로, 지난이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자, 너는 뭐라고 대답할 거냐···?)

"미행을 보낸 이유인가. 이번 사건에 흑월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본거지를 알아내려고 한 행동이다."
"···흑월?"

갑자기 나온 뜬금없는 단어에 김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빠졌다. 여기서 그 범죄 조직이 왜 나온다는 말인가.
그러나 지난의 진지한 표정에 거짓이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 멱살을 잡았다.

"자, 잠깐! 너는 이 사건이 흑월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런 소식은-!"
"-분명 전해줬을 텐데? 경비대에 보낸 암살자와 더불어 흑월에 관한 정보도 덤으로 말이지."

지난이 보낸 증거는 카프 일행을 취조해서 알아낸 것과 흑월의 상징인 초승달 무늬의 무기를 뜻한다. 어떠한 것이든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정보일 터.

(그런 내용이 경비 대장인 내게 오지 않았다고? 설마 그때 내가 검문소에 있었기에 서로 엇갈린 건가?!)

문득 떠오르는 하나의 기억.
한밤중에 누군가한테 살해당할 뻔한 한 여성이 떠오른다. 분명 지금쯤 조사가 끝나 밖으로 나왔겠지.

게다가 그녀를 노리는 건 악랄하기로 유명한 흑월···.

"제길···. 서둘러 돌아가자, 지난! 상황이 바뀌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이번 범행을 일으킨 범죄자는 개인이 아닌 조직.

"아마도 흑월이 노리는 대상은 이번에 암살을 당할 뻔했던 피해자일 거 아냐?"

그 말은 즉, 암살을 시도한 이들이 잡혔다고 해서 아직 사건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이니를 풀어줬다고!"
"-!"

게다가 지금의 그녀는 무방비한 상황.
흑월에게 부여된 의뢰가 아직까지 유효하다면, 언제든지 노려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일단-}


-이번 암살 목표인 이니를 제거해야지.


같은 시간, 이니의 앞을 한 남자가 가로막았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그는 험악한 미소를 띠며 그녀를 보곤 웃고는, 동시에 거대한 주먹을 들어 올린다.

"드디어 찾았다."

0
이번 화 신고 2020-10-18 13:42 | 조회 : 779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