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징조 (2)

"하아, 하아···."

원하던 물건을 사며 충분히 자신만의 휴가를 즐겼을 무렵, 이니는 지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오른다.
비록 잠이 모자라 피곤하기는 했지만, 평소에는 가질 수 없던 여유를 느끼게 해준 귀중한 하루.

"드디어 다왔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향하는 곳은, 오늘 휴가의 마지막을 장식할 만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그녀만의 비밀 공간.

기념할 만한 좋은 일이 생기거나, 반대로 안 좋은 일을 잊기 위해 들르는 휴식의 장소.

한눈에 들어오는 거리의 모습은 여러모로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에 좋은 풍경으로, 동시에 이곳에서 만들어진 과거의 추억과 함께 섞여 오묘한 감정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문득 그 장소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은 아무도 없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이 왕래하지 않는 곳이긴 했으나, 이상할 만큼 조용하다는 것이 뭔가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어젯밤의 사건과 비교해서 봤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제 전부 끝났어. 확실하게 길드 마스터가 모두 잡아들였으니까.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어제보다는 비교적 차분해진 머리로 그때를 회상해 본다.
그녀를 쫓아온 건 세 명의 암살자로, 그분이라는 자의 명령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게다가 경계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녀의 존재에 위기감을 품고 있다는 뜻.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아니, 더 이상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분명 경비대가 조사해서 해결해 줄 거야. 길드 마스터가 따로 데려가기도 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없어지자마자 떠오르는 나쁜 징조.
어째서 자꾸만 어제의 형상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걸까.

"아냐, 이미 지나간 일이라 생각하고 잊자.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라도 돼버리는 거냐?"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저음.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없이 들려온 섬뜩한 대답에, 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누, 누구시죠?"
"참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들으면 누가 봐도 긴장했다는 게 느껴지잖아. 조금이라도 감출 수는 없는 거냐. 그 사람이 보내서 특별히 이곳까지 찾아온 거라고."

그 사람이 보낸 거라는 등 뒤의 사람.
분명 어제도 비슷한 걸 들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세 명의 암살자에게서 그분이라는 말을.

(설마, 어제처럼 날 죽이려고 보낸 다른 암살자인 건가?)

"···원하시는 것이 뭐죠?"
"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어제와 같이 대화를 시도해 보자는 것. 그때는 교섭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었지.
다만 한 가지 다른 건,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그건-"

그렇기에 오히려 이걸 역이용한다.
마치 겁에 질려 대화로 극복하겠다는 것처럼 행동하고선, 상대방의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도망간다는 수법을.

얕은수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방심한 사이에 움직이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려놓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실행한 방법.

(됐다! 아직은 쫓아오지 못하고 있어!)

다행히도 그 방법은 멋지게 성공하여, 이니는 방해받지 않은 채로 복잡한 뒷거리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진정한 고비라는 것이 크나큰 문제였지만.

어차피 이대로 도망가봤자 결국에는 잡힐 것이 분명하므로 그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
큰소리를 내어 도움을 구하고 싶었으나, 자칫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꼴이 되기에 구조 요청조차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저번처럼 길드 마스터가 구해줄 거라는 보장은 없어. 이럴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할 시간은 아마 많지 않다.
이미 임무를 실패한 입장에서 빠르게 이니를 처리해야 할 이유가 있는 이상, 사정없이 그녀를 죽이려 올 테니까.

(적어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그때, 묵직한 무언가가 그녀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엄청난 풍압과 함께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나타난 건 거대한 그림자. 그것이 서서히 이니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드디어 찾았다."

아까도 들었던 묵직한 저음을 가진 남자의 목소리.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나 빨리 추격해 왔다는 말인가.

(잠깐, 방금 이 사람···. 위에서 떨어진 거지? 그렇다는 건 설마, 단번에 여기까지 점프해서 온 거야?!)

이니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거대한 로브를 착용한 남성은 어제의 암살자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조차도.

"어딜 가려는 건지 모르겠군. 어차피 이렇게 잡힐 텐데."
"....."

그렇다고 해도···.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로, 아까뿐만 아니라 굉장히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것 같은 느낌.

"나를 보자마자 급하게 도망가다니. 기껏 와줬더니만···."

게다가 어제와는 다르게 이니를 향해 살의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귀찮다는 듯한 말투로 자신을 바라볼 뿐.

(그러고 보니···.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냥 방심하고 있을 때 처리하면 되니까.)

실제로 어제의 세 사람은 이니를 보자마자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비록 마지막에는 그들과도 대화를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녀의 전의를 꺾기 위해 행한 계산적인 발언일 테지.

"슬슬 진정한 것 같네. 설마 또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일단 저를 죽이려 온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얼굴을 보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야말로 대화를 시도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만약 그녀의 예상대로 자신을 해치러 온 사람이 아니라면, 후드를 벗는 것 정도는 간단할 거라고.

-그리고 예상은 적중하여, 눈앞의 인물은 모습을 드러냈다.

"흠, 생각보다는 침착하게 대응하는데? 그건 평범한 안내원이 보일 반응이 아니라고."
"프, 프리먼 씨?! 혹시 아까 뒤에 있던 사람이···."

후드를 벗고 얼굴을 보인 건, 그녀가 전에도 만났던 인물.
그것도 직업상으로 몇 번이나 만난 적이 있다.

"분명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클랜 마스터로 취임했을 때였죠? 한창 바쁘실 텐데 여기는 어쩐 일로···."
"당신의 상사가 우리에게 의뢰를 맡겼어. 참나, 우리 클랜 마스터를 경호원으로 쓸 줄이야. 쉽게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나의 클랜을 운영할 정도로 능력 있는 모험가와, <유메니티>의 길드에서 근무하는 안내원.
서로 모를 수가 없는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다. 허나 그렇기에 오히려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게 된다.

(···길드 마스터가 나를 지키려고 의뢰를 냈다고? 설마 실제로 나한테 무슨 위협이 있다는 뜻인가···?)

만약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굳이 호위를 보낼 필요는 없을 터. 물론 어디까지나 변수를 대비한 상황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아직도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면···.)

"뭐야, 그 썩은 표정은. 설마 길드 마스터 대신 내가 와서 실망하기라도 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하잖아."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저는 딱히 길드 마스터가-!"

영역을 넓혀 사고를 이어 나가고 있을 때쯤, 훅 들어온 프리먼의 질문에 무심코 필요 이상의 과장된 행동으로 그의 말을 부정해 버렸다. 그러자 입을 다무는 눈앞의 인물.

"....."
"....."

그러고는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뭔가를 알아챘다는 듯한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웃기 시작한다.

(이거, 프리먼 씨···. 분명히 뭔가 오해하고 있어.)

"아, 아니라고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거 아니에요!"
"참나, 베테랑 모험가의 눈을 속이려고 들지 마. 이미 다 눈치챘으니까. 그래도 비밀로 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역시 오해한 거 맞잖아요! 그리고 어째서 그렇게 기분 나쁜 표정으로 비웃는 건데요?!"

그 반응에 괜스레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어차피 계속 말해봤자 입만 아파질 테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니는 발걸음을 옮긴다.

"하아···. 그냥 집까지만 데려다주세요. 그리고 괜히 길드 마스터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마시고요!"
"알았어, 알았어. 오늘은 길드 마스터가 바쁜 모양인지라, 미안하지만 나로 참아줬으면 좋겠는데."

끝까지 장난스럽게 놀리는 그의 존재가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어제처럼 위험한 상황은 오지 않을 테니까.

단순한 사무직에 불과한 길드 마스터와는 달리, 대부분의 클랜 마스터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중인 고위 모험가들. 만약 어제의 세 사람이 온다고 해도 전부 대응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아마···. 이걸로 안전해진 거겠지?)

.......

한순간에 바뀌는 이니의 표정을 보며, 프리먼은 내심 만족하며 여기에 없는 동료의 얼굴을 떠올린다.

(뭐, 이걸로 어느 정도 걱정은 덜어준 것 같은데···. 과연 그쪽도 잘 되고 있을지 불안하군.)

지금의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좋을 테니까.
자신을 미행하는 인물이 확실히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인 것이 분명한 상대다.

괜히 그 사실을 알려줘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알아차리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는 편이 낫겠지.
마침내 수긍한 건지, 포기한 건지 모르겠는 태도로 이니가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차분해진 모습.

(좋아, 여기까지는 문제없어. 남은 건 그 녀석이 마무리하면 될 뿐인데···. 조금 걱정되는군.)

아마 그 실력자를 홀로 상대하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프리먼은 이니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


아무도 존재하지 않아야 할 뒷골목.
그곳에는 위협적인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대치하는 중이었다. 절대 좋은 분위기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

"네가 아까까지 이니의 뒤를 쫓던 스토커구나?"

한쪽은 레이피어를 든 백발의 여성.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는 살벌한 눈으로 정면의 인물을 주시한다. 주저 없이 바로 베어버릴 기세로.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에 지지 않고 살기를 내뿜는 자는 평범한 인상을 가진 남성으로, 손에는 장검을 하나 쥐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이니의 뒤를 쫓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오히려 그렇기에 서로를 죽일 듯이 쳐다보는 중.

"뭐,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호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녀석들이 엮여있을 줄이야···. 항상 길드 마스터는 우리에게 괴상한 의뢰만 준다니까."
"역시 우리를 방해한 건 그 녀석이었군."

낮게 깔린 목소리로 한쪽 눈을 치켜세우는 남성.
마치 지난이 비상식적으로 강하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말투. 이에 자연스레 의문이 솟아난다.

(그걸 아는 사람은 아마 나를 포함해 몇 명 없을 텐데 말이지. 어디서 그 정보가 새어 나간 거려나?)

여러 가지 가능성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올랐으나, 이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눈앞의 인물을 넘겨주기만 한다면 나중에 전부 알 수 있게 될 테니까.

"자, 어차피 대화로 해결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어때, 기다리지 말고 바로 시작할까?"
"서두르지 마라, 빙혈. 나랑 거래 하나 하자."

비로소 검을 맞대려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범죄자의 말을 듣자 한순간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이번 의뢰에 얼마나 많은 돈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 이상의 금액을 제시하면 너에게도 이득이 있겠지."
"그래서 뭐? 그 돈을 받고 너를 놓아달라는 거야? 마치 네가 뭐라도 된다는 듯이 얘기하네."
"실제로 나는 그 정도의 위치에 있으니까."

(···뭘 원하는 건지 알겠지만,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

히죽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살의가 넘쳐나는 빙혈. 허나 그의 제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때? 만약 받아들인다면, 평생 먹고 살아도 될 정도의-"
"말 다 끝났어? 굳이 들어주는 것도 시간 낭비인 것 같은데. 자신 없으면 차라리 살려달라고 비는 게 훨씬 나을 거야."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는 제안이지만, 그보다 뭐든 돈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어차피 저쪽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단순한 시간 벌기에 불과한 꼼수.

"그럼 죽어야지. 난 분명히 경고했다."

천천히 검을 든 채로 자세를 잡는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해야 하는 상황.

자칫 방심하다가 한순간에 결판이 날 수도 있으므로, 절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러고 보니 마침 실적이 필요한 참이었지. 요즘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바보 녀석이 있어서. 너를 넘겨주면 다시 격차를 벌릴 수 있거든. 부디 잡혀줄래?"

동시에 빙혈도 자신의 마력을 채웠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 두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뒷골목에서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같은 클랜 마스터로서 나도 질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


"···왜 아직도 연락이 없는 거지? 분명 지금쯤이면 이미 보고가 들어왔어야 할 텐데."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소식이 없는 탓에, 암살 부문장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건드리며 연락을 기다렸다.
허나 가만히 있어봤자 불안감만 증폭될 뿐, 명확한 결과도 알 수 없는 채로 시간만을 죽이는 중.

"결국 잡힌 것 같군. 그게 아니면 연락을 줄 수 없는 상태라던가. 어느 쪽이든 네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겠지."
"말도 안 돼! 그 녀석은 암살 부문에서도 나 다음가는 실력자란 말이다! 카프 녀석보다도 월등한 실력을 지녔다고!"

정면의 그림자가 담담히 최악의 가정을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층 커진다. 설령 암살에 실패하더라도 필요한 정보만큼은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또다시 길드 마스터가 나를 방해한 건가?)

"하아···. 어째서 네 녀석 주위에는 나약한 녀석들밖에 없는 거지? 이해할 수 없군."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군. 그래도 어떻게든 반박해 보자면 네가 너무 강한 거다, 사신."

다른 우매한 자가 그런 발언을 경솔히 다뤘다면, 암살 부문장은 즉시 목을 베어냈을 것이다.

(아무튼 이걸로 남은 카드는 하나뿐인가···.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 그 하나조차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직 그에게 있어 최강의 전력인 사신이 있기는 했으나,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자는 절대 아니다. 돈으로 고용한 용병이라고 해도, 그 조건 또한 항상 통용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어제의 실패로 얻은 손해와 잃어버린 신뢰. 거기에 네가 보낸 오른팔은 행방불명인 채로 사라졌지."
"....."

즉,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나올지도 예측 불가능한 상대.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호의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같은 질문을 다시 하는 꼴이 되겠지만···. 너에게 고용된 입장에서 꼭 물어봐야 하는 게 있다."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어느새 배후로 다가온 그림자가 목 부분에 들이댄 칼날. 이로써 자칫하면 목이 베이는 미래만이 기다리게 되었다.


"-이제부터 어쩔 생각이지?"


그러니 이번에도 말로서 설득해야 한다.
다른 부문장에게 제시한 각자의 조건이 있듯이, 등 뒤의 인물에게도 합당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나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인가.)

이번 회의에서 결정되어 행해질 작전.
그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사신의 협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지.

당연히 설득하는 역할을 맡은 것도 암살 부문장.
애초에 배후의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부문장들의 협력을 얻어낼 수 없었을 테니까.

"분명히 말해두지. 네가 무사한 이유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만약 그 자리에서 나를 제거하려 했다면, 자포자기로 너를 시켜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냐."

실제로 나머지 부문장들도 어렴풋이 사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 다만,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경계했을 뿐.
아마 두 사람이 단순한 계약 관계라는 점을 그들이 알았다면, 지금쯤 암살 부문장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건 내가 어느 정도 의도했던 결과였으니까.)

"중요한 건 나를 팔아먹을 정도로 네 입지가 좁아졌다는 거지. 평소라면 고려조차 하지 않을 선택을 너는 해버렸다."
"즉, 너한테 있어 내 존재는 이제 필요 없다는 말이잖냐. 전부 이해했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가치가 없어졌으니 버린다.
그것은 뒷세계에서 자주 통용되는 말이자, 당연한 이치.

실제로 암살 부문장 또한 카프를 제거한 전적이 있으니. 지금 상황은 단순히 그 대상이 자신이 된 것뿐이다.
강자에게 있어 약자는 이용해야 할 존재라는 걸 이미 그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거기에 대해선 분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다고.)

"사신, 어떻게 하면 이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평소와 다르지 않겠군. 그저 알맞은 보상을 주면 될 뿐."
"그래? 마침 잘 됐어. 나랑 거래 하나 하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검은 그림자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에, 뒤로 빼낸 의자를 잡는다.


"이번 의뢰에 성공하게 된다면···. 이 [암살 부문장]의 자리, 너에게 넘겨주도록 하지."
"-!"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으나, 사신의 눈동자가 명백히 흔들리는 모습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한 번 떠본 거지만, 다행히 반응을 보이는군.)

사신의 이명을 가졌다고 해도, 엄연히 감정을 가진 인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진 감정의 동요를 완전히 감춘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까.

"예전부터 네가 여기에 눈독 들이고 있던 건 알고 있었지. 아무리 너라고 해도 쉽게 이 자리에 앉을 수는 없을 텐데?"
"···상황이 바뀌어, 다시 내가 원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냐."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감정의 동요가 있었으나,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태도를 견지하며, 스스로 이 제안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줄 뿐.

(어째서 이 자리를 원하는 건지, 명백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게 있어 그건 중요치 않지.)

중요한 점은 사신이 이 제안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
어쩌면 권력을 원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무엇을 목적으로 노리는 건지는 알 수 없으니까. 지금은 그저 이걸 이용하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될 뿐이다.

"네 녀석이 여태까지 쌓아놓은 자리다.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지금에 와서 여기에 앉아봤자 다른 녀석들에게 견제당할 뿐이야. 그럴 바에야 네게 넘겨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얼핏 보면 필요 없어진 자리를 처분하려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그러한 조건을 걸었음에도 고민하는 꼴이라니.
이걸로 확신했다.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을 건넸다는 것을. 덕분에 이번 작전에서 쓰일 최고의 카드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모든 준비는 완료했어···. 남은 건 목표를 찾아 어떻게든 죽이는 것. 여기서 더 무너질 수는 없지.)

"-재미있군."

그림자는 가볍게 조소하며 칼날을 거두었다.
동시에 암살 부문장과의 거리를 벌리면서, 아무런 답도 돌려주지 않은 채로 점차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간다.

(하아···. 어떻게든 암묵적인 동의를 받아냈군.)

대체 이 하루 동안 죽음의 위기가 몇 번이나 찾아왔을까.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

품 속의 단검을 잡으며 머리를 식힌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간 원흉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년을 죽여야겠어."

다른 부문장들의 압박과 사신이 벌인 살해 협박.
그 모두를 이겨내고 어떻게든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이제는 결과로 증명해야 할 차례.

-품 속의 단검을 꺼내면서, 그는 굳게 다짐했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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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18 13:43 | 조회 : 682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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