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한 숲 (3)

"···너는 누구지? 왜 이런 위험한 숲에 있는 거냐?"

검을 든 남성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것도 명백한 의심의 눈초리로.

그것도 당연한가. 아무도 없을 터인 위험한 숲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이 있다니. 누구나 꺼림칙하게 생각할 만한 수상한 행동이라는 건 틀림없다.

(아니, 그 기분은 잘 알겠지만···. 일단 이 무시무시한 무기는 옆으로 좀 치워줬으면 좋겠는데.)

내 곁에는 서늘한 감각이 드는 검이 가까이 있을 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 즉시 베어버릴 것만 같은, 위험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 위기만 넘기면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어쨌거나 내 목적은 <유메니티>로 들어가는 거니까.

(유일한 문제라면 수호자 이외의 존재와 평범하게 대화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지만···.)

-그건 지금부터 내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겠지.

"다시 한번 묻는다. 왜 이런 위험한 숲에 있는 거냐? 여기는 어쩌다 잠깐 들어올 정도로 가벼운 곳이 아닌데."
"그게···. <유메니티>로 가던 마차를 거대한 마물이 파괴해서 도망쳤을 뿐인데요···."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으니 위증할 수밖에.
그러나 내 말에 모순점이 생기는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내 목을 베어버릴 것 같은 위압감이 들었다.

"<유메니티>로 가던 마차라고? 다른 나라를 경유하면 안전하게 올 수 있었잖아?"
"하지만 그러면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저, 저는 그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이 숲을 지나갔을 뿐입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싸울 의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서서히 두 손을 들었다. 적어도 경계 당할만한 행동은 하지 말자.

(괜히 이 숲에 시체가 늘어나는 상황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이곳은 숲의 중앙과는 거리가 꽤 멀어. 마차를 부술 만한 마물이 사는 서식지와는 멀리 떨어졌다고. 너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걸어온 거야?"
"그것은···! 저도 정확히는 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거짓말인데.
애초에 이건 아는 게 이상한 질문이잖아. 이 넓은 숲에서 자신이 있는 곳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그는 두 장소의 설명할 수 없는 간극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듯하지만, 그것에 관한 의문은 해소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말했던 마차는 이 숲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언제까지 나에게 칼을 겨눌 생각이지? 적당히 이 정도 대답으로 만족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든 임기응변으로 답하기는 했으나 답변이 길어질수록 거짓을 이어 나가야 한다. 벌써 의심받고 싶지는 않다고.
그러나 눈앞의 남성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계속 질문을 던진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강제로 화제를 돌리는 수밖에.

"저기, 그보다···. 혹시 가능하다면 약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혹시 마차를 파괴한 괴물에게 공격받은 거야?"

몇 번의 답변 끝에도 그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그러나 들고 있던 검을 잠시 옆으로 치우고는, 천천히 내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리에 생긴 상처라···. 하지만 바닥에 이곳으로 이어지는 핏자국은 보이지 않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발상이 그거냐.)

혹여나 생각이 바뀌기라도 할까 기대했지만, 오히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초리가 더욱 살벌해졌다.
아무래도 바닥에 있어야 할 혈흔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마물에게 상처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거짓말한 거냐?"


"....."

침묵을 지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부 꺼냈다.
어차피 눈앞의 남성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남은 건 뒤에 있는 그녀에게 걸어보는 수밖에.

잠시 옆으로 치워뒀던 검을 그는 다시 내 쪽으로 가져온다.

"적어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동현 씨! 지금 아이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팔을 뻗기도 전에, 그를 제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뒤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관찰하고 있던 또 한 명의 모험가로, 활을 들고 있던 여성이다.

(왔구나, 내 구세주.)

"막지 마, 링링. 아까 이 녀석은 거짓말을 했어. 게다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려는 거예요?! 거기에 이 아이가 피를 흘리는 이유도 당신 때문이잖아요!"

잘한다, 더 몰아붙여라!
내게는 죄가 없다는 걸 이 남자에게 똑똑히 알려주라고!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나 때문에 이 녀석의 상태가 나빠진 건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생각해도 그건 아까 동현 씨가 휘두른 검에 베인 게 원인이잖아요! 왜 모르는 척하는 건가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까 베인 상처 때문에 아파 죽겠네.

(뭐, 아프다는 건 농담이지만.)

실제로 나는 저 검에 베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이도록 연출했을 뿐.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면 그 옆에 있는 상대를 끌어들이면 된다. 여기서 그의 행동을 막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그녀밖에 없겠지.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분명히 거리를 두고 검을 휘둘렀으니까. 게다가 다리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
"하지만 이미 이렇게 결과로 나와있잖아요! 그렇다면 어째서 바닥에는 혈흔이 없는 건데요?"

이 장소에 있는 피의 흔적은 내 다리에서 흐르는 혈액뿐.
만약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그 피의 흔적이 바닥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까까지 여기 있었던 슬라임이 상처를 입혔을 가능성은 없는 거야?"
"슬라임은 타격 위주의 공격을 합니다. 저런 모양의 흉터가 나오는 건 불가능해요. 게다가 이 근처 서식지에도 베인 상처를 낼 수 있을 만한 마물은 존재하지 않고요."

남은 건 내가 스스로 자해했다는 가능성이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군.

(그렇다면 이제 더 할 말은 없겠지.)

"동현 씨. 지금 여기서 당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딱 하나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죠?"
"···알고 있어. 이렇게까지 말하면 인정해야겠지. 내가 무례한 짓을 했다는 것을."

생각에 잠겼던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검을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곧바로 내 앞에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본의 아니게 큰 상처를 입혔어. 분명 너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텐데, 그걸 나는 무시해버렸다."
"저도 같은 파티원으로서 사과드릴게요. 부디 조금 전의 실수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거기 있던 저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마침내 변명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이렇게나 힘든 거였다니.

첫 만남은 최악이었지만 어떻게든 대화가 통하는 정도까지 만들었다. 비록 하나의 수단이었다고는 해도 내 몸에 상처를 입혔군. 만약 세라 피아가 봤다면 엄청나게 화를 냈을 거다.

(···어차피 여기에는 그녀가 없으니까. 평소처럼 걱정해주는 인물은 어디에도 없어. 정신 차려야지.)

이제 다음으로 해야 되는 건 두 사람에게 안내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조금 전의 사건을 빌미로 그들의 행동을 유도한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다만 그들의 목적이나 성향에 따라 변수가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사실. 자연스럽게 유도한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 또한 적지 않겠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 저기···. 상처는 괜찮은 건가요?"
"···네?"

너무 고민했던 시간이 길었던 걸까. 갑작스레 옆에서 말을 걸어오자 깜짝 놀랐다.

"으음···. 상처를 입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꽤 피가 많이 나는데. 붕대라도 감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요! 여기 약이 있으니까 사양 말고 말해주세요!"

정말로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두 사람.
그것도 그렇겠지. 이 상황에서 상처를 입힌 것은 저들이고 어디까지나 나는 피해자 역할이니까.

여기서 그들이 표출한 감정은 죄책감. 그 감정을 잘만 이용하면 여기서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가짜 상처를 얻은 이유가 절대 그들 탓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들이 사건의 진상을 알았다면 입장은 반대가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사과하는 쪽이 되었겠지.

어디까지나 그 행위는 대화를 시도하기 위한 행위였을 뿐. 그들의 죄책감까지 이용하기 위한 전략은 아니야.

(여기에 내려와서까지 이해득실을 따지며 행동하고 싶지는 않아.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저기···. 왜 대답이 없는 거죠? 서, 설마···. 과다출혈로 인한 실어증?! 동현 씨,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그럴 리가 없잖아! 피를 많이 흘린다고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되는 증상은 들어본 적이 없어! 자, 잠깐! 왜 호신용으로 준 단검을 뽑는 거야!"
"당신이 계속 변명만 하니까 잠시 혼을 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서서히 다가오는 그녀에 아까까지 나를 압박했던 남자가 뒷걸음치기 시작한다. 이미 둘 사이의 서열은 정해져 있군.

(마치 어디서 본 것 같은 상황인데.)

"푸훗···!"
"뭐, 뭘 웃고 있는 거야! 역시 말할 수 있는 거였잖아!"
"아하하, 죄송합니다. 그저···. 제가 실수를 할 때마다 저를 잡아주는 사람이 생각나서 말이죠."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를 위해 움직여주고 있다는 것만은 알겠다. 저 둘의 관계와 비슷할지도.

(···애초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을까.)

조금 전의 남자가 그렇게까지 경계했던 이유는 소중한 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나와 다를 게 없다.

-그게 해소된 지금에서야 내가 망설일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저기, 그보다···.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저를 <유메니티>에 데려다 줄 수 있을까요?"


아무런 조짐도 없던 그냥 툭 튀어나온 말.
조금 전까지의 나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솔직한 질문.

그러나 나는 확신했다. 다른 묘수를 생각하는 것보다도 이 두 사람에게는 직설적인 발언이 효과가 클 것이라고.

(거기에 타인을 위해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신뢰가 가니까.)

"당연하죠! 저희들이 안전하게 데려다 드릴게요!"
"뭐, 이런 위험한 숲에 홀로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차피 네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데려가려고 했어."

···역시,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아무래도 이쪽이 원래 그들의 성격일 테다. 나라는 변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서서히 그들에게 걸어가 악수를 청하듯 손을 뻗었다. 당분간 같이 행동할 테니, 자기소개 정도는 해둬야지.

"잘 부탁드립니다. 라이라고 합니다."
"···이동현이다. E급 모험가지. 얌전히 따라오기나 하셔."
"잠깐, 동현 씨! 미안해요, 말투가 저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아, 제 이름은 링링입니다. F급 모험가예요!"

(참나, 자기소개를 하는 와중에도 싸우는 건가.)

하지만 그렇기에 더 신뢰가 간다. 적어도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계책을 부리는 기색은 없으니까.

"네, 여러모로 신세 좀 지겠습니다."


★★★


수호자들의 보고가 간략히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수호자라는 직책은 평소 서로의 얼굴을 보기가 굉장히 힘든 일인 만큼 그들은 회의장에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복도로 나온 세라 피아와 지난, 이 둘에게는 다른 수호자와 같은 친밀한 기색이 일절 나타나지 않았다.

"잠시만요, 지난. 당신 설마 회의를 마무리 짓지 않고 그저 정보만 듣고 갈 속셈인가요?"
"···그럴 생각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그 말에 세라 피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지난도 그녀에게 그 이상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본래 내가 알고 싶었던 정보는 다른 수호자들의 방침. 그 목표를 달성한 지금, 내가 이 회의장에 있을 이유는 없어."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담당한 구역은 라이 님께서 가장 먼저 체류하실 곳입니다. 저희들은 당신에게서 최대한의 정보를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전부 말해줬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무슨 정보가 더 필요하다는 거지?"

그 말에 세라 피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행동은 불안 요소를 줄이기 위한 추상적인 정보만을 그에게 요구하는 것뿐이니까.

비록 지난이 가진 다른 정보를 알려준다고 해도 그녀의 불안은 전혀 가라앉지 않겠지. 그것은 세라 피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 그렇게까지 귀환하려고 하는 겁니까. 굳이 서둘러 돌아갈 필요는 없을 텐데.)

그녀의 눈빛은 지난의 행동에 관한 의문을 포함하고 있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 지난이 가장 늦게 회의 소식을 받았다고 해도,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비록 이 회의에 참가한 이유가 저 때문이라고 해도, 당신에게 있어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만큼 당신이 저희들을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

지난은 굳이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현재 그는 수호자 대표로 선택된 거나 마찬가지. 그렇기에 다른 수호자들의 협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저희로서도 당신과 같은 직책에 있는 이상, 최대한 협력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당신은 독단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는 겁니까?!"

가슴을 두드리는 답답함에 나온 격렬한 외침.
이럴 때야말로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그게 아니면 설마···. 아직도 라이 님을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해서 지금이라도 서둘러 돌아가려는 생각은 아니겠죠?"
"....."

그녀의 추궁에 지난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침묵을 긍정이라고 받아들인 걸까. 세라 피아는 무심코 그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지난···. 설마 라이 님의 명령을 거역하려는 겁니까?! 분명 그분이 수호자와의 접촉을 거부하셨을 텐데요!"
"착각하지 마. 그저 업무 때문에 황급히 돌아갈 뿐이니까."

그녀의 맹렬한 추궁에 간신히 입을 연 그의 말투는 지나치게 차가웠다. 마치 귀찮은 것을 억지로 상대하고 있는 듯한 반응.

예상외의 단호한 태도에 세라 피아는 잠시 주춤했으나, 그런 그녀를 두고 지난은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지금부터 나는 길드 마스터로서 처리해야 할 사건이 있으니 움직여야 한다. 이곳에서의 목적을 이룬 이상, 한가하게 회의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어."
"···모든 작업에는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비록 그 작업이 중요하다 해도 긴급성이 떨어지면 순번에 영향을 주게 되겠죠. 혹시 당신의 업무는 오늘의 회의보다도 더 긴급한 안건입니까?"
"그렇다."

돌아온 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명확한 대답.
반론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설마 이렇게까지 비협조적으로 나오다니.

(설령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이면 이제서야···!)

"다른 누구도 아닌, 라이 님의 향후를 위한 회의라는 걸 당신은 모르는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상황을 좀 보고 행동을-"
"너에게는 너의 업무가, 내게는 내 나름대로의 일이 있는 법이지. 그걸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

그 말에 함유된 의미를 깨닫고 그녀는 입을 닫아버린다. 얼핏 들으면 서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는 단순한 말.
하지만 동시에 지난은 한없이 선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그에게 있어 그들의 도움은 필요가 없다는 뜻.

"현명한 너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거다. 어차피 이 회의에 관한 참석 여부는 항상 자유, 네가 나를 막을 권리 따위는 없겠군."
"···아마 제가 여기서 무슨 말을 건넨다고 해도 당신은 듣지 않겠죠.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 업무가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답해줄 의무 또한 없다고 말해두지."

그의 행동 원리를 알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으나, 지난은 이것조차 무시로 일관하며 복도 끝으로 걸어 나갔다.

(어째서···. 갑작스레 태도가 확 변한 거죠? 이 정도의 질문조차 답할 수 없는 안건이라는 뜻입니까? 그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가장 간단한 대답조차 듣지 못한다니, 지금의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걸까.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만이 느껴진다.

물론 그를 꾀어내기 위해 여러 수단과 도발적인 발언을 던지기는 했으나, 지금과 같은 태도는 회의장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없던 모습.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설마···. 아니, 이런 쓸데없는 가정에 큰 의미는 없겠죠. 어느 쪽이든 제가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도는 현재로서는 없다. 그렇기에 지금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써야겠지.
혹여나 지금의 행위로 인해 지난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해도, 이미 자신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으니까.

"잠깐만요! 아직 제 얘기가···!"

문득, 지난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부름에 반응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고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

칠흑의 로브를 입어 전체적으로 칙칙한 인상을 주는 눈앞의 인물은 후드로 얼굴이 가려진 상태. 그러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선 날카로운 안광으로 지난을 노려보고 있었다.

"혹시 이 녀석은 네가 불러낸 거냐?"
"···아니요. 부른 기억은 없습니다. 초대하지 않았거든요."

세라 피아의 해명에도 지난은 잠시 그녀를 의심했으나, 곧바로 머릿속에서 부정했다. 만약 올 걸 이미 알고 있었다면 다시 뻔뻔하게 미소를 지었을 것이 분명할 테니까.

(오히려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게 저 녀석으로선 예상치 못한 변수라는 거겠지.)

"그래? 그렇게 되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녀석은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았을까?"
"그건 아마···. 스스로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겠죠."

지난은 고개를 돌려 다시 눈앞의 인물을 향해 시선을 맞췄다.
그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가만히 서서 침묵을 유지할 뿐.

"....."
"그래, 여기는 복도. 구석진 곳이라고 해도 우리만 이용하는 곳은 아니지. 이 정도의 질문에는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는 거냐. 그렇다면 입을 열 수밖에 없도록 해야겠군."

지난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발언을 자신이 직접.

"-어째서 <단지로우스>의 수호자인 네가 날 막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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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17 20:19 | 조회 : 1,17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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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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