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한 숲 (2)

"아니, 몇 시간을 더 걸어가야 나라가 보이는 거지?"

숲을 탐색한 지 체감상 3시간이 지났을 무렵.
처음에는 주위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걸어갔으나, 어차피 이 주위에는 거대한 풀과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위험한 마물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대체로 나라에 가까워질수록 약한 마물이 많아질 테니까.

"아까 <방향 탐지>를 썼을 때는 분명히 이쪽이었는데. 이거 정말 확실한 거 맞아?"

마법을 이용해 <유메니티>가 있는 곳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으나 나무들만 무성할 뿐, 건축물은 보이지 않는다.
아까 사용했던 <전이>도 그렇고, 이곳으로 내려온 직후에는 마법까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군.

(마법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기에는 어제는 잘 발동했고···. 역시 너무 먼 곳으로 <전이>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가고 있는 방향에 문제가 없다면,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가 지금 일어난 상황의 열쇠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수단으로는 알아내기 힘들겠지.

<비행> 마법을 사용해서 하늘에서부터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띄는 방식일 테고. 다른 것들도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 귀찮은 방법뿐.

"하아, 적어도 지나가는 모험가가 있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텐데,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다니···."

만약 이 주변에서 모험가를 만났다는 건 곧 그들의 거처가 멀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도 만나지 못한 지금에 있어서는 알 수 없다는 이야기.

(···본래라면 이 숲에 존재하는 수호자가 나를 안내해 줄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런 명령을 내린 이상 어쩔 수 없나.)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이 악몽의 숲에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 그러나 곧바로 그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이 숲의 수호자인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이 숲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겠지만, 내 명령이 있는 한 내게 접근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도 나고.

"-결정한 내용을 가볍게 철회할 수는 없단 말이지."

일단은 계속 이대로 걸어가는 게 좋을 것 같네.
거기에 지금은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다. 갑작스레 새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에 직결했으니까.


-부스럭


그다지 거센 바람이 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들리는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다른 평범한 숲이라면 그저 평화롭게 넘어갈 수 있으나, 마물의 숲이라 불리는 이곳에서의 방심은 허락되지 않는다. 가급적 소리를 내지 않도록 서서히 자세를 낮춘다.

(현재 내 모습은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소년의 신체. 가급적 마물과의 전투는 피하는 것이 좋을 테지만···.)

만약 눈앞에 있는 존재가 숲의 지배자 정도의 힘을 가진 마물이라면, 지금의 내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적어도 잘 갖춰진 장비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러한 것도 없는 현재로서는 눈앞의 위험은 피하는 것이 상책.

(···이런 건 평소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고민인데.)

문득 살짝 웃음이 나왔다.
일어날 일이 없는 상황이 벌어져서.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실감 나는군.
이 위험한 숲에서 알 수 없는 미지와 대치한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소리가 난 쪽의 수풀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피 냄새···. 같은 건 나지 않지만, 꽤 거대한 마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겠군.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아.)


-이 정도라면 이길 수 있다.


달리 승률이 낮지 않은 상대라면, 도망가는 것 대신 여기서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판단했다면 이제 최소한의 대항 수단을 갖고 있는 게 좋겠지. 급한 대로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는다.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대다. 그저 내가 어렴풋이 확인했을 뿐. 자칫하면 여기서 휴가가 끝날지도 몰라.)

긴장으로 인해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만약 여기서 내가 크게 다친다면, 아마 두 번 다시 나는 이곳으로 내려오지 못하겠지.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

슬슬 ''그것''이 행동할 기미가 보이는군.
나는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꽉 쥐고 반격의 태세를 갖춘다.

"자, 나와라."

각오를 다지며 미지의 생명체에게 말을 건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만, 수풀 뒤에 있던 무언가가 내가 있는 방향으로 높이 점프했다.

(설마, 이 녀석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다량의 마력을 함유한 신체, 높이 점프할 만큼의 신체 능력, 앞의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 가능한 조건을 가진 그것은-

"뭐야, 이건···."

-마물 중에서도 가장 약하기로 유명한, 슬라임이었다.


★★★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의장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세라 피아는 서서히 걸어오는 한 남자를 인식하고는 인사를 건넨다. 악의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미소를 띤 채로.

그와 대조적으로 지난의 표정은 전과 달리 험상궂게 변했다. 거칠게 발을 이끌고는 분노의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로 그녀의 앞까지 다가갔다.

"이런, 꽤 화난 것 같은 얼굴인데요. 혹시 이곳으로 오던 도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세라 피아···. 네가 이번에 한 행동은 내 업무까지도 방해했다. 그만한 수단을 썼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니겠지."
"글쎄요. 저로서는 짐작 가는 바가 없는데 말이죠."

세라 피아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다른 녀석들에게는 미리 말을 꺼냈으면서, 나한테만 뒤늦게 이 소식을 알려줬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누가 당신에게 그런 오해하기 좋은 정보를 건네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알려주는 것이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 그 외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어디까지나 심증에 불과할 뿐, 그것을 확실하게 입증할 증거는 없다. 그렇기에 지금도 그녀의 표정은 바뀌지 않는다.

(이번에는 그렇게 빠져나가려는 속셈인가···.)

"다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건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소식은 가장 먼저 당신의 귀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말이죠. 참으로 이상하네요."
"···말은 잘하네. 하지만 너한테 있어 이 이상 좋은 결과는 없겠지. 그토록 원하던 정보를 가진 인물이 제 발로 회의장까지 걸어왔으니까."

적의를 가진 시선을 숨기지 않은 지난이 노려보자, 그녀는 곤란하다는 듯이 작게 웃는다.

"어쨌든, 여기까지 온 이상···. 제대로 회의에 참여할 의사는 있는 거겠죠?"
"없다고 말하면 돌아가도 되는 건가?"
"후후, 물론 안 됩니다. 어차피 제가 움직이지 않아도 다른 수호자들이 당신을 놓치지 않을 테니까."

세라 피아는 뒤에 있는 회의장을 슬쩍 가리킨다.
각각 크기가 다른 20개의 의자가 커다란 원탁을 둘러싼 형태로 놓여있다. 거기에 더해진 엄중한 분위기.

두 개의 의자를 제외한 나머지 자리에 수호자가 전부 앉아있는 것을 보아, 모든 수호자들이 벌써 와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여기까지 왔다면, 더는 저기에 있는 녀석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아까는 불가능했던 협박이 지금 여기서는 가능하다는 말이군.)

그리고 동시에, 다른 수호자를 들먹일 정도로 그녀가 필사적으로 지난의 회의 참석을 바라고 있다는 말이었다.

"후우···. 더는 이런 식으로 내 행동을 유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천사가 협박이라니."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그분을 위해서라면 악마라도 될 수 있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싱긋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에는 그만한 각오가 담겨있었다. 그 말에 함유된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자, 보아하니 다시 돌아갈 기색은 없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모든 수호자가 모였으니, 바로 회의를 진행합시다."
"알고 있겠지만 난 여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없어. 가능하다면 빨리 끝내줬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으니,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저도 굳이 여러분의 시간을 빼앗고 싶진 않으니까."

두 명의 수호자는 서로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회의장 안으로 들어선다.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은 채로.

(이 회의는 <테라피아>의 역사를 바꿀 아주 중요한 회의가 되겠지. 여기까지 온 이상, 무조건 이득을 얻어 가겠다.)
(자, 모두의 보고를 듣고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요. 우리에게 위협이 될 ''그 존재''가 있는지를.)


★★★


"이건···. 슬라임?"

수많은 마물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녀석.
마물이라고는 하지만 보자마자 달려드는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별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 공격할 일도 없다.

"···그럼 난 고작 슬라임 따위에 이렇게 경계했던 건가?"

오랜만에 매우 빠른 속도로 허무감을 느꼈다.

드디어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지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등장한 것은 겨우 슬라임 한 마리뿐. 수가 많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질이 좋지도 않은 상대.

유일하게 위협적이라고 한다면 다량의 마력을 함유한 몸통 박치기지만, 그건 지금의 나라도 쉽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다. 한 마디로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위치한 녀석.

"하아···. 그냥 무시하고 갈 길이나 가자."

굳이 상대하지 않으려 슬라임을 등진다. 긴장된 상태로 들고 있던 나뭇가지는 이미 아무 데나 던져버린 지 오래.

물컹물컹한 저 녀석은 건들지만 않으면 아무런 해도 없으니까. 그나마 이 녀석을 통해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위안이다.

(적어도 이 근처에 <유메니티>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니, 곧 있으면 다른 자들과 만날 수 있겠군.)

"그러면 곧바로 다른 곳으로···. 커헉-!"

다시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려는 그때, 어디선가 불의의 일격이 들어왔다. 정확히 내 복부 쪽으로 다가온 묵직한 공격.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공격이 들어와서 그런지 막지도 못하고 꼴사납게 넘어진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뽀잉뽀잉


그런 내 시야에 들어온 건, 하찮은 슬라임 한 마리뿐.

(···이 새끼가?)

아까까지는 신경 쓰지도 않았던 이 물렁물렁한 점액 덩어리한테 내가 맞은 거라고?

"좋아···. 그렇게나 원한다면 상대해 주마."

어차피 네가 날 이길 수는 없으니까.
평소에도 온화한 성격으로 알려진 나를 진심으로 화나게 만들 줄이야.

설마 이런 과격한 감정이 벌써 마음속에서 올라올 줄은 예상도 못 했는데, 그걸 이 작은 생명체가 해내다니. 이러니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니까.

다만 그러기에는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 것 같다. 곧 나의 날카로운 청각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감지했다.

"···이건 뭔 소리지?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리는데."

소리는 점점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방향은 내가 등지고 있던 슬라임 쪽. 드디어 대화가 가능한 인물을 만날 수 있는 걸까?

(아니, 지난의 말로는 드물게 산적들도 나온다고 하니 섣불리 다가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군. 그게 아니면 질 나쁜 모험가일 수도 있을 테고.)

마법을 사용하면 쉽게 모습을 파악할 수 있지만, 어차피 소리의 진원은 점점 이곳을 향해 다가온다. 이 정도면 직접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 더 빠르겠네.

"운이 좋았군, 슬라임 녀석. 어차피 너를 베어봤자 더러운 점액만 뿜어낼 테니까. 빨리 도망가라."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만남이다. 잘만 하면 같이 <유메니티>로 돌아갈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곧 다가올 자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으므로, 일단은 먼저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다.

(과연 어떤 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

"쳇, 이번에는 또 어디로 도망간 거야?!"
"하아, 하아···. 잠시 쉬었다 가요, 동현 씨! 너무 빨라!"
"아, 진짜! 거의 다 잡았는데!"

모습을 드러낸 건 검을 든 남성과 활을 가진 여성.
지금의 나는 거대한 수풀 뒤에 숨어 엎드린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땅이 진흙이 아닌 점만이 내 유일한 행운이네.

일단 곧바로 그들에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아직 어떤 성격을 가진 인물인지도 모르고, 세심하게 지켜보는 편이 더욱 안전할 테니까.

"후우···. 확실히 좀 지치네. 잠깐 여기서 휴식을 취할까."
"하아···. 네, 슬라임은 워낙 이동 속도가 빠르니까요."
"미안, 처음 기습할 때 확실하게 쓰러트렸어야 했는데."

다행히 두 사람은 휴식을 취할 생각인지 따로 이동하려는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씩 주위를 경계하고는 있으나, 나를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니 효과는 없겠군.

(근데 문제는 나도 저기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이제 조금인가? 링링, 네가 E급이 되려면 말이야."
"아뇨, 저는 아직 멀었어요. 게다가 저는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도 못했고···."
"어···. 아직도 많이 남았구나? 괘, 괜찮아! 힘내자고!"

전의를 다지는 두 사람.

일단 지금 모습을 봤을 때 산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애초에 이런 위험한 숲에서 노략질하는 것보다 모험가를 하는 편이 더 안전할 테니까.

무기를 가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모험가. 이 숲에서 오래 체류하고 있을 만한 옷차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오기 전에 거처를 둔 나라가 있다는 뜻.

(좋아, 저 두 사람을 따라가면 높은 확률로 이 숲을 벗어날 수 있겠어. 드디어 이 숲을 헤맨 보람이 있구나!)

애초에 계속 똑같은 풍경이라 방향 감각이 잘 안 느껴졌단 말이지. 길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이걸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유일한 문제라면 저 두 사람의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점이지만, 이 지긋지긋한 숲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그 정도야 상관없지.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저 두 사람과 접촉해야 할까. 일단 다른 쪽으로 이동해서···. 커헉-!)

그때, 내 복부 쪽으로 다가온 묵직한 충격.
갑작스러운 공격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이미 이 공격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 슬라임 새끼···! 아직도 안 간 건가?)

나를 공격한 주범은 제자리에서 점프하며 도발적인 태도를 취한다. 튀어오르기밖에 할 수 없는 무지성 마물 주제에.
게다가 아까 맞은 곳을 또 때리다니, 야생에서 비겁한 수밖에 배우지 못한 녀석인 게 분명해.

"응? 링링,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글쎄요? 혹시 바람이 흔들렸던 소리 아닐까요?"
"···흐음."

비겁한 마물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으로 내게 행할 공격을 위해 공중으로 높게 튀어 오른다.

제길, 안 그래도 중요한 순간인데 이런 하찮은 녀석이 방해하다니. 모처럼 세운 계획이 전부 날아가게 생겼잖아.

(···아까 놔주지 말고 처리했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나간 과거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법. 그러면 최대한 빠르게 이 녀석을 처리하는 게 최선이겠지.

마력을 모아 손을 뻗는다.
저기의 두 사람에게 들킬 가능성이 있으니 눈에 띄는 화려한 마법은 발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고통을 안겨줄 테다.

(이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적을 마주한다.
그러자 공중에서 슬라임이 두 동강 나버리는 모습이 내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어?"


잠깐, 뭔가 이상하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을까. 아직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벌어진 기묘한 상황.

어느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수풀도 거친 표면을 내보인 채로 잘려 있다.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로 베어 넘긴 것 같은 눈앞의 흔적.

그뿐만이 아니라 뒤에 있던 나무에도 거대하게 새겨진 베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앞에는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검을 든 남성이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다.

(···어느 틈에 이쪽까지 온 거지?)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조용히 숨을 죽이며 수풀 뒤에 엎드려 있는 수상한 녀석. 그게 바로 지금의 내 인상이다. 자칫하면 나를 죽이려고 들지도 모르는 일.

(하하···. 이럴 때는 어떤 변명을 해야 여기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거냐고···.)

예상치 못한 일에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검을 든 남성은 말을 걸어왔다.

"-너는 누구지? 왜 이런 위험한 숲에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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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17 20:18 | 조회 : 65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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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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