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한 숲 (完)

"대답해. 어째서 <단지로우스>의 수호자인 네가 날 막는 거냐? 참견할 여지는 없을 텐데?"
"....."

지난은 눈앞의 인물을 두고 추궁하듯 압박했다.
지금은 그리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상황. 그렇기에 바쁜 와중에 길을 막는 존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그분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세라 피아와 달리, 그는 철저히 손익을 계산하며 행동한다. 즉, 지금의 이 행위에도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다는 뜻.

(하지만 날 방해해도 내게 원망만 살 뿐인데. 도대체 이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길게 고민해봤자 알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면 해답을 아는 자를 추궁하면 될 뿐.

"계속 가만히 있어봤자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만약 대답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적어도 내 앞에서 비키는 편이-"
"아, 그걸 원하는 거였어? 미안, 진작 그렇게 말하지."

후드를 뒤집어 쓴 그는 곧장 옆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제야 비로소 지난의 앞을 막는 장애물은 사라졌다.

"···무슨 속셈인 거냐?"
"응?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나? 난 그저 네가 해달라는 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아까 나를 막아세운 이유가 뭐냐고."

예상치 못한 그 행동에 지난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길래.

행동 원리가 나름 한정적인 그녀에 비해, 그는 예측하기가 어려운 인물 중 하나였다. 거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을 말하기에 무조건 신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어쩌면 세라 피아보다 대하기 까다로운 상대다.)

"아니, 난 그저 상황 파악을 못 했을 뿐이야. 둘이 서로 싸우고 있길래 어떻게 흘러가나 지켜보고 있었지."
"···정말로 그것뿐이라고?"
"그래. 게다가 내 목적은 네가 아니라 세라 피아거든. 슬슬 회의 시간이라서 부르러 왔어."

그렇게 말하고는 단언한 대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적어도 지금의 발언에 거짓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

"....."
"어라, 아직도 안 갔어? 분명 아까는 급한 업무가 있다고 해서 서둘러 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자, 잠깐만요! 지금 지난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아직 그에게는 들어야 할 정보가-"
"들어야 하는 정보가 구체적으로 뭔데?"

그의 존재를 기회 삼아 지난을 막으려는 그녀였으나, 훅 들어온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세라 피아가 명확히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후드를 쓴 인물은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미소를 짓는다.

"이미 어느 정도 답이 나온 것 같네. 지금 네가 하려는 행동은 불필요한 일이야. 그게 아니라면 네가 이렇게까지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저는···!"
"게다가 너는 지금 지난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잖아. 이제부터 흑월에 관한 조사를 다시 이어가야 하는 바쁜 몸인데. 안 그래도 긴급한 상황이니까, 서둘러 돌아가야겠지?"

이런 곳에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과 동시에 세라 피아의 행동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째서···. 당신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그 사건이 있던 날의 라이 님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겁니까?)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선 지난과 같은 말을 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재 그분이 계신 <유메니티>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상, 어떠한 위기가 닥쳐올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데도 두 사람은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따로 행동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그 얼마 되지도 않는 변수 때문이라는 점을, 두 사람은 잊어버린 걸까?)

적어도 이 시점에선 세라 피아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여기서부터는 생각의 차이일까.

"저는 어디까지나 라이 님을 위해서-!"
"이 자식···!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때, 큰 소리와 함께 옆에 있던 동료가 벽에 부딪힌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습격으로 인해.

잠시 그녀는 상황을 따라갈 수 없었으나, 흑발의 남성이 한 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필히 격한 감정을 품은 것이 분명한 행동.

"지난?!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죠···?"
"그 정보는 나를 포함한 몇 사람만이 아는 사항일 터! 근데 어떻게 그 정보를 입수한 거지?"
"글쎄···. 내가 맡은 직무를 생각해보면 직접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 같은데."

정작 목덜미가 잡힌 장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그 대답에 초조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지난.

(그나저나···. 흑월에 관한 조사를 다시 이어가야 한다고? 그건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른 사실인데요···?)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상황이 잘 흘러간다고 지난이 보고했는데.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는 전제를 두고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어제 풀어줬던 암살자들의 미행에 실패했다는 겁니까?"
"맞아, 어떻게 알았어? 문제가 되는 부분만 서로 대조한 건가? 뭐, 그 말대로 지난은 서둘러 돌아가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어. 흑월의 본거지를 알아낼 방법이 사라졌거든."
"이 새끼가···!"

기밀이나 다름 없는 정보를 일상적인 얘기라도 되는 듯 가볍게 발설하다니. 그것도 이 안건을 맡은 담당 수호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게다가 그걸 굳이 세라 피아가 있는 앞에서 말한다고? 역시 이 녀석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분노의 감정은 단순히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서히 그의 손에도 힘이 들어가더니, 이윽고 목덜미를 잡힌 인물에게도 영향이 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기 시작했다.

"아으윽···. 그렇게까지 화낼 건 없잖아. 덕분에 세라 피아도 네 사정을 알아준 것 같으니 이득 아닐까?"
"애초에 나는 너보고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 대놓고 말하자면 필요 없는 참견이다."
"참견? 아하하, 그건 아니지. 너희가 말다툼하는 바람에 다른 수호자들의 시간이 낭비되고 있잖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지난,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현재 흑월 사건의 담당자는 지난.
이러고 있을 때조차 흑월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움직인다.

(분하지만···. 이 녀석 말대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야.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해.)

미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감안했던 결과. 그렇게까지 당황할 필요는 없겠지. 다만-

(-적어도 죽어 나간 길드원을 위해서라도 내 손으로 직접 흑월을 없애주겠어.)

지난은 단단히 움켜쥐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어떠한 조짐도 없이 갑작스레 벌어진 행위였으나, 로브를 착용한 그는 당황하지도 않고 자연스레 복도 바닥에 착지했다.

"세라 피아, 나는 돌아가겠다. 문제 없겠지?"
"....."

반론이 있다면 말해보라는 그의 태도에 세라 피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지난을 막아 세울 정도로 그녀는 무모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내가 잘 말해둘게. 신경 쓰지 말라고."
"난 너의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저 녀석의 의견을 기다리는 거다. 참견하지 마."
"하지만 이미 답은 나온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조금 전에는 널 막아세우던 그녀가 지금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는데."

달라진 행동 양식을 보면 그 차이는 명확하다는 걸까. 거기서부터 이미 지난을 말린다는 행위에 체념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더 말려봤자 상황은 악화될 뿐이겠죠. 더는 설득도 불가능하니, 이제 그를 잡아놓을 수단은 없겠네요.)

애초에 그를 막을 권리 따위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 수단도 통하지 않는다면, 잠자코 보내주는 수밖에.

"···그래요. 더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에게는 라이 님께서 직접 내리신 업무가 있으니까 말이죠."
"마음에도 없는 말은 됐어. 내가 원하는 대답은 들었으니까."
"이거 봐, 내 말이 맞잖아? 그러니 안심하고 내려가도 돼. 어차피 너 없이도 회의는 잘 돌아갈 테니까 말이야."

마치 비꼬는 듯한 그 반응에 지난은 대답조차 들려주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저런 시답잖은 도발에 반응할 시간조차 아깝다고 느꼈다.

그보다 우선 지금은 그를 만나러 가야겠지.
그 남자가 데리고 있는 범죄자를 심문한다면 분명 조그만 실마리라도 얻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기다려라, 흑월. 내가 직접 없애줄 테니까.)

.......

지난이 돌아간 후의 복도에는 두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마치 아까의 소란스러운 상황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 너무나도 조용한 복도.

"이야~ 힘내라고 응원해 줬더니 대답도 안 해주네. 나 조금 서운해지려고 그러는데."
"....."

그 기분 나쁠 정도의 침묵을 깬 자는 로브를 펄럭이며 기지개를 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이 어색한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행한 의도된 행동.

"자, 그러면 세라 피아. 슬슬 우리도 돌아가 볼까."
"···무슨 속셈이죠?"

그러나 그 노력을 부정하듯, 그녀는 다시 차가운 공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도 들어본 것 같은 대사.

"어째서 일부러 제게 그의 사정을 알려줘서, 지난을 떠나보낸 거죠? 무슨 속셈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 이유가 궁금한 거야? 아까도 말했잖아. 다른 수호자들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고. 그게 뭐가 나빠?"

천연덕스럽게 움직이는 후드 속의 입.
아무래도 지난이 없어진 책임을 그에게 돌리려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두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저는 당신의 본심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응?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나는-"
"지금 솔직하게 말해주시면, 제가 당신의 목적을 위해 도움을 줄 수도 있겠죠."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
아마도 심증에 불과하지만, 지금의 세라 피아는 그를 의심하고 있다. 그렇기에 확실한 해답을 얻기 위한 거래를 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

(정말···. 냉정할 때의 그녀는 무섭다니까.)

그러나 이것은 함정. 어디까지나 그녀 자신의 불안함을 덜어내기 위한 수단일 뿐. 실질적으로 그가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역시 세라 피아, 너는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본 것 같아. 그러니까 내 의미 없는 말에도 과민반응한 거겠지?"
"그 말은 즉···."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그저 시간을 아끼기 위해 행동했을 뿐이니까."

어디까지나 자신은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 이상 받아줄 생각은 없다는 듯이 그는 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무슨 제안을 하더라도 듣지 않을 생각이니까.

"자, 슬슬 회의장으로 돌아가자고. 너랑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이러면 아까까지 내가 한 노력들이 의미가 없잖아."
"그렇다면, 저와 대화하는 것 자체는 문제 없다는 뜻이군요."
"···시간이 있다면 말이지."

더는 다른 수호자들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내건 이유도 반 정도는 정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만족했는지, 그녀는 그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미소를 띠고 있을 정도.

"잘 알겠습니다. 확실히 지금은 회의를 다시 진행하는 게 좋겠죠. 그러면 회의가 끝난 후에 잠깐 남아주시겠습니까?"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나온 거야?"
"그렇게 된다면 시간 자체는 풍족할 테니까 말이죠.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답니다?"

거절은 받지 않겠다는 말투로, 세라 피아가 기분 좋게 옆을 지나갔다. 설마 자신이 뱉은 말을 인용할 줄이야.

(기껏 벌어놓은 시간이 의미가 없게 됐군···.)


★★★


두 명의 모험가와 함께 숲을 걸어간 지 두 시간 정도.
때때로 마물들이 나타나기는 했으나, 그리 강하지 않은 듯 두 사람이 곧바로 처리해버렸다.

(매겨진 등급에 비해서 실력이 좋은 파티를 만난 것 같네. 생각보다 잘 버티는걸.)

솔직히 말해 링링은 활 솜씨가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군. 화살이 빗나가는 횟수가 꽤 많은 것으로 보아 아직 모험가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러나 검을 든 모험가, 이동현. 이 사람이 압도적이었다.
지금도 다가오는 고블린 무리를 검 한 자루로 가볍게 썰어버리고 있다. 마치 귀찮은 벌레들을 쳐내는 것 같은 느낌.

(E급은 어느 정도로 강한지 모르겠단 말이지. F급은 가장 약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이해하기 쉽지만···.)

실제로 두 사람을 비교해보면 그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고블린 몇 마리에도 고전하는 링링과 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 이동현을 본다면 두 사람의 실력은 너무나도 달랐다.

"젠장, 끝도 없이 나오는군. 역시 마물의 숲인가."
"하아, 하아···. 그래도 어떻게든 모두 정리했잖아요.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좋은 거라고요."

결국 두 사람도 지쳤는지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인다. 기어코 모든 고블린을 처리했군.

(하지만 이 기세로 언제 <유메니티>에 도착하려나. 자칫하면 숙소에 방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눈치 없이 서둘러 가야 한다고 재촉하기는 좀 그렇고. 내가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이상, 잠자코 걸어가는 게 최소한의 예의겠지.

그런데도 머릿속은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은 <유메니티>에 도착해야 했을 텐데. 역시 이 광대한 숲에서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낭비한 건가.

(대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라이,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음?"

갑자기 옆에서 말을 걸어오니까 깜짝 놀랐네.
어느새 내 곁에는 링링이 다가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나 뭔가 의심받을 짓이라도 한 건가?

"저기, 뭔가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저희들을 보고 있어서···. 혹시 아까의 상처가 다 낫지 않은 건가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전부 표정으로 드러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알게 모르게 초조하다는 걸 내 스스로가 인정한 꼴이 되는데.

"하아, 보나마나 우리들이 못 미더워서 그런 거겠지. 최하위인 F급과 그보다 급 하나 높은 E급 모험가니까."
"잠깐, 동현 씨! 그 말투 좀 어떻게 해봐요!"
"링링,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아. 이런 녀석들한테 고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라도 그리 생각할 것 같은데?"

멋대로 추측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한 가지는 맞혔군.
바로 그들의 실력에 내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뭐, 정확히는 언제 도착할 예정인지 불안했을 뿐이지만.)

"···라이, 어째서 반박하지 않는 거죠? 설마 동현 씨가 말한대로 정말 저희의 실력이 의심스러워서···?!"
"푸훗, 그게 맞다니까. 만약 나라면 특히 널 주의 깊게 관찰할 거야. 네 곁에 있으면 뭔가 아슬아슬할 것 같으니까."

(하긴···. 활 솜씨가 위험하기는 하지.)

자칫하다가 빗나간 화살을 맞을 수도 있을 테고.
거기에 관해서는 이동현의 말이 정확하다고 볼 수 있겠지.

"뭐, 그렇다고 해도 걱정 마. 너 하나 지켜줄 정도는 되니까. 게다가 모험가에게는 마탄석이라는 필살기가 있거든."
"···마탄석? 그게 뭐죠?"
"마력을 집어넣으면 일정 시간 후에 폭발하는 돌이지. 웬만한 녀석들은 이걸로 정리되니까 던지고 도망가면 돼."

예전에 지난한테서 들은 적 있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현지 모험가에게 이런 식으로 직접 들어보니 기분이 묘한걸.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존재만 알 뿐,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모른다. 나로서는 미지의 물체라는 감상밖에 안 드는군.

"그렇다면 혹시···. 실물을 볼 수 있을까요?"
"응? 그런 게 우리에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비싼 걸 가지고 다니는 건 잘나가는 모험가 파티뿐이라고."

(뭐야, 있을 것처럼 말하더니. 내 희망을 부쉈어.)

지금 보니 이동현의 입꼬리가 아까보다 살짝 올라간 게 보였다. 이 녀석, 일부러 나를 놀리려고 준비한 말이었던 거냐.

"크하하하! 딱 봐도 열받아 하는 표정이구만! 너는 그 표정이 제일 자연스러운데!"
"···딱히 열받은 건 아닙니다."
"라이, 세상에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거기서부터 네 본심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지!"

뭐야, 그 명언은. 어차피 답을 정해놓은 꼴이잖아.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에 대한 의심도 조금은 풀렸다는 게 아닐까. 나름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게다가 지금부터는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으니까. 자, 봐라. 드디어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어."
"정말입니까···?"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어느새 거대한 성벽이 훌륭한 이명에 걸맞은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두꺼운 성벽은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렇기에 더욱 완전하게 방비를 다지는 듯했다. 중앙의 커다란 대문 밑에도 잘 훈련된 경비병들이 상시 대기 중이고.

"바로 저곳이 ''철벽의 도시''라 불리는 <유메니티>입니다. 주변을 둘러싼 저 거대한 성벽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는 아주 강대한 방패나 다름없답니다."

잠시 말이 없던 내게 링링이 멋쩍은 듯 웃는다.
여기가 철벽의 도시라 불리는 그곳인가. 오늘부터 내가 잠시 동안 신세 지게 될 나라.

(확실히, 지난이 말한 대로 인간들의 나라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는 될 것 같네. 마냥 허세는 아니었군.)

미지에 대한 두려움.
위험한 세계에서의 고독.
일상으로부터의 해방.

저곳에는 그중 어떠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 찼을 것이 분명하다.

"자, 그렇다면 들어가 볼까. 새로운 미지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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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17 20:19 | 조회 : 806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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