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월 (黑月) (2)

터벅터벅, 좁고 기다란 암흑과도 같은 복도를 한 중년 남성이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는 복도의 끝부분인 빛이 나오는 곳. 그러나 그 어두운 빛 또한 주위의 암흑만큼이나 불길한 구석을 담고 있다.

"···그렇게 된 건가. 알겠네."

누군가와의 <전언>을 마친 중년의 남성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을 가까스로 참는데 성공한다.

(제길, 일이 이런 식으로 풀릴 줄이야. 큰일났군.)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미친 듯이 날뛰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차분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곧 상대해야 할 저 녀석들에게 이런 기분을 드러낼 수는 없으니···. 우선 진정하자.)

그렇게 계속 마음을 다잡으며 평정을 되찾는다.
곧 만나게 될 자들은 전부 그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뿐. 단 하나의 약점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 어떠한 불리한 점을 갖고 있더라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 최악의 실패가 일어났어도 말이지.)

.......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군."

복도를 빠져나온 중년의 남성은 앞에 놓여있는 빈 의자로 걸어나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그 검은색 의자에 착석한다.

그곳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칠흑의 공간.
천장에는 빛을 밝혀주는 조명이 있지만, 오히려 정반대로 그저 어둡게 의자에 앉은 자들을 비출 뿐이었다.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의 테이블이 존재했으며, 그 주위에는 총 여섯 개의 검은색 의자들이 놓여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의자에 앉고 난 후에는 모두가 착석이 완료된 상태였으며, 이걸로 자리에 모인 자들은 총 6명의 남녀가 되었다.

그가 앉자마자 미리 착석하고 있던 자들이 중년의 남성에게 강하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뭔가 나의 상태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건가···. 역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로군.)

이들은 서로를 도와주는 동료가 아니다.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언제든 약해진 사냥감을 물어뜯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에게도 경계심을 표출한 것이리라.

약간은 불편해진 분위기 속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그러면 모두 모였으니 우리 흑월의 회의를 시작해볼까."


-거대 범죄 조직, 흑월 (黑月).


이들은 <유메니티>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뒷세계의 거물들이며, 이 회의에 참여하는 6명의 부문장은 각기 다른 분야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이런 거물들이 흑월에 소속된 목적은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본래의 목적은 서로 간의 협력. 게다가 모두의 전문 분야가 다르기에 능력적으로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이 조직에서 마음을 열고 진정한 협력을 요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그 이유는 서로 간의 경쟁의식과 그들의 약점 때문.

(아직 아무한테도 내 실패가 새어나가지 않은 모양이군. 이번에 나와 깊게 관여된 녀석이 없어서 다행이야.)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회의에는 서로의 상황을 파악하거나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정보를 얻으려는 부문장들의 대화 소리만이 들려왔다.

"···불만은 없나 보군. 우선 몇 가지 의제가 있다. 그중에는 내 개인적인 일도 있지만, 차후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미리 말해두지. 카프 일행은 처리했다. 만약 거래가 있었다면 다른 이들로 대체하겠어."

중년의 남성이 말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 놀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늘 있었던 일과나 다름없으니까.
그는 [암살 부문]을 맡고 있으며, 주로 살인 의뢰를 받고 부하를 보내 자금을 확보하고 있었다.

"아, 그렇다면 나한테 좀 보내줄 수 있을까? 요즘 또 노예 단속이 늘었거든. 처리해야 할 녀석들이 많아져서."

조용한 침묵을 뚫고 나온 이는 갈색 모자를 쓴 남성.
다른 자에게 협력을 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의뢰라는 형태로 다른 부문에 일을 맡기는 것은 가능했다.

사실 대부분이 이런 식이며, 해결을 위한 보수를 그 자리에서 곧바로 지불한다. 그래야 빚을 만들지 않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가, 보수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한 좋은 녀석을 보내주도록 하지. 너는 꽤 괜찮은 의뢰자니까."
"고마워. 조금 있다가 계약금의 상담을 위해서 잠시만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상관없다."

암살 부문장의 말에 만족했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색 모자를 쓴 남성은 [노예 부문]으로, 뒷거래를 통해 수많은 자와 노예를 거래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말이야···. 과연 카프를 대체할 수 있는 전력이 지금의 너에게 있는 걸까? 내가 알기로는 분명 그 녀석은 간부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하지만 역시나 그리 간단하게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옆에서 방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곰방대를 든 남성은 암살 부문장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서서히 사실을 근거로 압박한다.

"으음, 아무리 그것이 네 방침이라고 해도···. 이런 쓸데없는 보고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걸 보면, 그런 존재를 계속 만들어내는 네 능력이 의심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할까."
"흥, 임무에 실패한 자에게 기회를 줄 필요는 없지. 무언가 변수가 있었다고 해도 그걸 해결하지 못한 이상,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거다."

궁지에 몰린다고 해도 오히려 더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니까.

"그러는 너도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닐 텐데, 마약 부문장. 이미 몇 개의 정보가 들어온 참이라고."
"···맞아, 재배하고 있던 식물들이 몇 개가 불에 타가지고 좀 손해 봤어. 흐음, 드디어 국가가 직접 움직인 건가?"

아까의 복수라는 것처럼, 이번에는 역으로 그에게 있어 곤란한 질문을 던져본다.
곰방대를 든 남성은 [마약 부문]으로, 재배된 식물로 만들어진 마약을 유통하여 큰돈을 벌고 있었다.

"흐음, 아무리 나라도 국가가 직접 움직인다는 정보는 들어본 적이 없군. 혹시 손해가 막심한 건가?"
"설마~ 이래 봬도 나는 아직도 밭을 많이 갖고 있다고. 몇 개 정도는 여유야, 여유."

서로를 견제하며 쳐다보는 암살 부문장과 마약 부문장.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지만, 나머지 부문장들은 그 둘의 눈빛을 통해 무언의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챘다.

(저 말이 과연 진실일지···. 아니, 어차피 나오는 대답은 항상 똑같겠군. 굳이 약점을 드러낼 이유는 없으니까.)

능숙하게 감춰진 표정 속에서 거짓을 잡아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법. 그렇게 서로의 본심을 파악하기 위한 탐색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근육질의 남성이 고함을 질렀다.

"하! 그러니까 저번에 우리를 고용하라고 했을 텐데?"

그가 원탁을 소리 나게 내리치자 위에 놓여있던 물건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근육질의 남성은 [경비 부문]으로, 자신의 부하를 호위나 용병으로 파견하여 자금을 확보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했을 텐데. 중요 거점을 드러낼 생각은 없어."
"뭐? 그 말은 내 부하들을 믿을 수 없다는 건가?"
"아니, 네 성격 때문에 못 믿겠어. 어디선가 입을 놀릴 것 같아. 저번처럼 말이야."
"뭐라고, 네 녀석!"

다시 시작되는 다툼.

조금 전의 두 사람과는 달리 경비 부문장은 속으로 감춰야 할 내용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봉변을 당한 적도 있지만,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겠지.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회의를 이끌어가는 암살 부문장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하였다. 덧붙여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올 수 있도록.

"어흠! 둘 다 말싸움은 거기까지만 해라. 그리고 마약 부문장, 그런 거라면 오히려 내게 말을 걸었어야지. 언제까지고 원흉을 놔둘 생각이냐? 죽이는 게 더 쉬울 텐데?"
"흠···. 확실히 그 말을 들으니 조금 끌리는데. 너는 이 녀석만큼의 무모함도 없을 테고···."
"이봐! 남의 거래에 끼어들지 마! 혹시 선전포고냐?"

그렇게 은근슬쩍 권유해 봤는데 예상외로 마약 부문장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바람에 경비 부문장의 역린을 건드렸다. 일단 이러한 전개는 좋지 않다.

(야단났군. 분명히 이 녀석은 이런 것에 예민할 텐데.)

암살 부문장과 경비 부문장은 흑월에서 무력을 사용해 이득을 보는 자들. 그러므로 둘의 돈벌이가 겹치기에 견제가 들어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파고들자면 분명히 차이점이 있으며, 장단점 또한 명백히 분류되었기에 상황에 따라 고용되었으므로 아직까지는 서로에게 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야, 제대로 대답해봐라. 오늘 너의 한 마디에 따라서 네 처우를 결정할 거니까."
"....."

그러나 성격 급한 그가 암살 부문장을 적으로 인식한다면, 향후에는 정말로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 갑작스레 그런 큰 손해를 감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점차 험악해진 분위기에 다른 부문장들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로 두 사람 사이에서 혈투가 일어난다면, 흑월의 상황이 아예 판도를 바꾸게 될 테니까.

"이봐, 언제까지 대가리 굴리고 있을 생각이냐?! 최대한 빨리 대답해 보라고! 안 그러면-"
"그만해."

과열되는 분위기 속에 던져진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홍일점인 그녀가 손을 들어 그들의 다툼을 다시 한번 말린다.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싸움을 하려고 온 게 아니잖아? 나는 슬슬 이 회의를 하게 된 목적을 듣고 싶은데."
"닥쳐! 지금은 내가 이 녀석과-"
"···내가 그만하라고 했지?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또 다른 계약자인 나와의 관계도 온전하지 못할 거야. 이 정도까지 말하면 아무리 너라도 알아듣겠지?"

한 명의 미녀가 기운찬 목소리로 강하게 발언한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전의 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란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녀는 [창관 부문]으로, <유메니티>의 거의 모든 창관을 접수한 여성이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의뢰자인 그녀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경비 부문장은 입을 닫았다.

(젠장, 알겠다고, 이 썩을 년.)

그런 그녀의 발언에 찬성하듯 기다란 모자에 모노클을 착용한 다소 기묘한 복장의 남성이 추가로 덧붙였다.

"맞습니다. 저는 이런 쓸데없는 다툼에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도 이러는 시간이 아까우니 재빨리 진행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너도 지금 나를 비꼬는 거냐?! 한 번 해보자는 거야?"
"후훗, 그쪽이 좋다면 말이죠. 한 번 몰락한 당신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지 저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니까요."

강한 살기를 내뿜은 경비 부문장을 상대로 오히려 그는 웃으면서 눈앞의 적을 도발한다.
이 남성은 [도박 부문]으로, 뒷세계에서도 잘 알려진 카지노를 여러 군데 운영하여 막대한 자산을 얻었다.

"괜한 부추김은 그만둬. 이제야 다시 회의가 진행되려고 하는 참이잖아. 너무 나대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역시 누구와는 다르게 말에 뼈가 있군요! 확실히···. 지금의 당신을 적으로 돌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겠네요."
"···쳇, 기분 나쁜 새끼. 너는 나중에 두고 봐라."

틈새를 노리지 않고 도박 부문장이 다시 한번 그를 도발했지만, 그녀가 직접 관련되어 있는 관계로 경비 부문장도 그 이상 손을 쓸 수는 없다. 그저 죽일 듯이 째려볼 뿐.

(하아···. 첫 번째 주제로 넘어가는 것도 힘들군.)

가까스로 회의장 내에 열기가 식은 것을 파악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한다.
그전에 암살 부문장은 여기서 한 번 뜸을 들이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토해내듯 입을 열었다.

"이번 회의 내용은 저번에 말한 적이 있는 그 계집의 처리에 대해서다. 이 임무를 맡은 카프 일행은 결국 실패했지. 지금은 그 녀석이 뒤처리를 하러 간 상태다."
"아하···. 그래서 카프 일행이 숙청을 당했던 거구나. 걔네들도 참 불쌍한 운명이라니까."

마약 부문장의 뻔뻔한 발언에 암살 부문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무시했다.

"그리고 그 실패 원인은···. <유메니티>의 길드 마스터가 방해한 것이 원인이라고 하더군."

그렇지만 이 말에는 모든 부문장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사무직의 업무를 맡고 있을 길드 마스터가 숙련된 암살자를 제압할 수 있다니,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굳이 이 상황에서 쉽게 들킬만한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아무리 그래도 쉽게 믿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흥, 그 말은 네가 관리하고 있는 암살자가 길드 마스터보다 약하다고 스스로 자백한 꼴이 되겠군. 그렇게나 약해서야 어디 가서 돈이나 만질 수 있겠어?"
"....."

아까 전의 복수라는 듯 경비 부문장이 빈정거린다.
그리 단순하게 말하는 그와는 달리, 다른 부문장들은 새로운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지만.

(곧바로 시작했나. 이 사건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 어떠한 변수가 될 것인지 각자 계산하고 있을 테지.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놈들이군.)

그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입을 연 자는 도박 부문장.

"그러면 의뢰를 맡으신 그분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죠? 당신이 그 의뢰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던 이상, 나름대로 믿음직한 분들을 보내셨을 것 아닙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간부급이다. 자체적으로 판단해 보자면···. 아마 아슬아슬하게 D급은 될 것 같군."

거짓말을 했다가 자신의 신뢰도가 더욱 떨어질 수도 있기에 우선 암살 부문장은 진실을 말하는 것을 택했다.

"그래? 3명이서 D급 정도라고···? 하지만 그 정도는 실력 있는 길드 마스터라면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한 명이라면 몰라도 세 사람을 한번에 제압한다는 건 나로서도 쉽지 않아. 죽이는 거라면 몰라도."

경비 부문장은 강하게 단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보인 태도였기에 더욱 신뢰가 가는 발언. 그럴수록 암살 부문장이 말했던 내용은 점점 더 수상해진다.

"확실히 그건 어렵겠네. 단순한 일반인이 세 명의 암살자를 쓰러트린다니···."
"···게다가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문제가 돼. 그만한 실력자를 우리가 놓치고 있었다는 말이 되니까. 오히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좋을 정도지."
"어째서 내가 그럴 필요가-!"

마약 부문장의 말에 무심코 흥분해버린 그는 가까스로 품 속의 단검을 잡으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장기적으로도 좋지 못한 선택이니까.

(후우···. 일단 침착하자. 지금의 나는 눈에 띄게 초조해져 있다. 우선 회의의 흐름을 바꾸는 수밖에-)


"-하지만,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던 암살 부문장에게 들린 목소리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창관 부문장···?"
"애초에 쟤가 저런 식으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거야. 아까 네가 보인 반응처럼 거짓을 말해서 얻는 건 의심뿐이니까. 그게 아니면 그럴싸한 이유라도 있어?"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지만, 그만큼 논리적인 말이었다.

"자신의 추태를 감추기 위해서···. 말했다든지?"
"그럴 거라면 애초에 자신의 실패를 말하지도 않았겠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굳이 자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이상하고."
"저도 그녀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게다가 이 회의가 열린 목적을 생각해 보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서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긴 것 같네요."

(···본의 아니게 빚을 지고 말았군.)

아마도 절대 선의로 도와준 것은 아닐 테지. 반드시 다음에 어떠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설마, 단 하나의 실패가 이렇게까지 거대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줄은.

어쨌든 이런 일이 될 것 같아서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도박 부문장의 말대로 말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 지금 그 목표는 경비병에게 조사를 받고 있다. 곧 상층부에게 정보가 들어가겠지. 그렇기에 내가 너희를 부른 거고. 여기까지 말하면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건···. 예상했던 것보다도 최악의 사태네."
"···어쨌든 이번 회의의 목적은 두 가지, 목표의 처리 방법과 흑월의 미래에 관해서다."


★★★


"뭐, 아무리 잔챙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잘 알았다."

검은 그림자는 서서히 걸음을 옮긴다.
그 뒤에는 두 구의 시체가 누워있는 상태. 결국 그들은 복수를 달성하지 못하고 숙청당했을 뿐.

"생각보다도 시간을 허비했군. 그러면 곧바로-"
"이, 이 녀석···. 아직 안 끝났다고."

그 말에 문득 걸음을 멈춘다.
죽인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니. 이것은 그림자의 입장에서는 제법 놀랄만한 일이었다.

정확히 인간의 급소만을 노렸을 텐데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니. 나름 솔직하게 놀라움을 표현하는 그림자를 보며 카프는 피투성이인 모습으로 기괴하게 일어섰다.

(살의가 대단하군.)

그것이 솔직한 감상. 하지만 곧바로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가 죽은 척하고 후퇴하기를 기다렸거나 그림자가 등을 돌렸을 때 기습을 가했더라면 적어도 살아날 확률이 조금은 올랐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그림자와의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그렇다는 말은-

(···나를 진짜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자존심 때문이겠군.)

-아니면 그런 걸 생각도 못 한 바보려나.

그 와중에도 이쪽으로 걸어오는 카프의 모습은 마치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같았다.
제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림자는 무기를 들고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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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16 22:11 | 조회 : 90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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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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