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월 (黑月) (1)

"흑월이라면 분명 지난의 보고서에 있던 위협 대상이었죠? 자칫하면 일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는 존재."
"그래. 아직 본격적으로 조사하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정보만으로도 꽤 거대한 조직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 그럼에도 이만한 조직의 정보가 거의 없다는 건···."

이미 국가는 움직였을 텐데도 아직 제대로 된 증거조차 잡지 못할 걸 보면 꽤 보안이 철저한 조직일 테다.

몸집이 커질수록 새어나갈 수 있는 정보의 양 또한 늘어나는 법. 그러나 흑월의 경우에는 오히려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지난이 그렇게까지 경계하던 이유를 알겠군.

"그런 조직이 배신자를 용서할 리는 없을 테지. 아마 내 예상대로라면 저 암살자들은 곧 처분될 거야. 도망친다고 해도 저 녀석들은 더 이상 살아갈 방법이 없을 테고."
"그렇군요···. 이러면 약속을 지키면서도 저들에게 벌을 내릴 수 있는 거군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세라 피아."

조직을 배신하여 당장은 살아났지만, 더는 그들에게 일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어찌 본다면 더 처참한 상태에서 연명하는 것뿐이다.

(오히려 그쪽이 살아가는데 더 힘들지 않을까?)

"게다가 손을 대지 않는 건 그 자리에 있던 나와 지난뿐. 즉, 그 말은 거기에 없던 다른 사람은 해당하지 않지. 곧바로 다른 녀석을 시켜 미행하라고 해야겠군."
"알겠습니다. 곧바로 그에 걸맞는 능력을 지닌 이들을 보내겠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나로서도 그들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으니까.

특히 지난과의 관계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준 이상, 어떻게든 그 녀석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혹여나 나와 관련된 정보를 흑월에게 넘겨줄 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그들은 조직에 의해 처분될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상황을 만들었으니.

"이 사건은 이제 지난이 해결할 거야. 그럼 나는 다시 쉬어야겠어. 아직 달이 떠 있으니 말이야."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필요한 물건은 전부 준비되었으니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내일 당장 가도록 할까. 뭐, 이미 그 땅의 일부를 밟고 있지만."

그리 말하며, 슬쩍 땅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유메니티>의 남쪽 부근. 즉, 이미 나는 목적지에 도착한 상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지.

(아,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잊고 있었네.)

"세라 피아. 너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겠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한 얘기는 누구도 듣지 못하게 했지?"
"물론입니다. 라이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격리 공간>을 사용하여 평소에도 경계하는 중입니다. 당연히 여기에 온 이후로 계속 발동한 상태입니다."

그렇군. 내가 알려준 대로 늘 경계하고 있었구나.
그때의 상황을 겪고 난 후부터는 늘 이렇게 경계하고 주의하고 있다. 평소에도 잘 실천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네.

혹여나 이 대화를 들었다고 해도 가명을 썼으니까 어느 정도의 정보 차단은 됐을 테지. 문제는 없다.

"좋아. 그러면 너도 이제 푹 쉬도록 해. 세라 피아."
"네, 편히 쉬어주십시오."

.......

세라 피아는 <모험가 길드> 앞에서 그녀의 주인이 떠난 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곳이···. 지난의 직장이군요."

자연스레 동료의 일터를 관찰하는 그녀.
적어도 이곳의 길드 마스터라면 꽤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테지. 그것도 주로 모험가와 관련된.

"그렇기에 흑월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는 거군요. 이 자리에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으니까."

수상한 목적을 지닌 조직의 범행을 막아낸 것은 좋다. 하지만 고작해야 그들의 꼬리를 잡았을 뿐으로, 그 조직에 관해서 얻은 정보 역시 아무것도 없다.

관대한 주인께서는 그것으로도 만족하고, 나머지 조사는 지난한테 맡긴 듯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역시···. 따로 그 남자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까요."

다른 수호자와 비교해봐도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그에게 맡기면, 아마 확정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그가 과연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해 줄지는 여러모로 의문이다. 애초에 주인의 명령이 아닌 이상, 그가 들어줄 의무는 없기에.

"일단 말해보지 않으면 모르니···. 내일이라도 바로 연락을 취해야겠네요."

이것 이상으로 그녀가 지난의 업무에 참견할 수는 없을 테지. 하지만 왠지 계속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부디 그 사건과 관계가 없기를···. 기도해야겠군요.)


★★★


"드디어 풀려났군."

이것이 지난한테서 해방되며 제일 먼저 든 생각.
결국 죽음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동료를 놓고 왔으며, 몇 시간 동안의 취조를 받고 지금 막 풀려난 길이다.

<모험가 길드>에서 나온 두 사람은 평소의 습관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깜깜한 뒷골목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군. 역시 이 녀석은 동료를 잃은 상심이 컸던 걸까.)

카프가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흑월에 관한 정보를 모두 실토하고 덧붙여 동료를 팔아버리자는 의견을 낸 그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니,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어. 옆의 이 녀석이 너무 무른 거야.)

생각이 깊어지자 자신을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조금 전, 취조가 끝나고 지난은 정말로 두 사람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아직 동료를 버린다는 것에 대해 미련을 가진 카프가 순간 죽음을 각오하고 그를 구하려는 순간-


"나가."


-라며 살기까지 날린 그에 의해 억지로 단념되었다.
하긴, 그들이 뱉은 정보는 또 다른 업무가 될 테니, 그가 예민해져 있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상황.

(하지만 이쪽도 예민해져 있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군.)

그 원인이 자신한테 있다는 건 알지만, 언제까지 이럴 셈인가. 그도 자신의 판단이 썩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여기까지 오면 이제 안전하겠지."

무거운 침묵 속에서 몇 분 정도를 걸은 후에야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으아아아아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카프는 주변에 있던 벽을 힘껏 발로 찼다. 마치 약한 자신을 원망하듯이.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긴장감이 가라앉고 나자 카프가 느낀 것은 자신에 대한 강렬한 분노였다.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절망감, 동료를 버리고 자신들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제기라아아아아알!"

그렇게 이번에 맡은 그들의 의뢰는 완전한 실패로 끝을 맺었다. 단순히 의뢰뿐만 아니라 동료도 잃게 되었으며, 조직에서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떨어지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만약 카프 일행이 배신자라는 사실을 조직이 알아차리는 순간, 곧 그들을 처리할 암살자가 파견될 테지.

"크흑, 우리는 절대···. 다시는 서로 헤어지지 않겠다고 그때 다짐했는데···."
"....."

점차 그의 바지가 붉게 물들어도 카프는 벽을 차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차 과격해지기까지 해 그의 허리춤에 있던 단검이 떨어질 정도.

"젠장! 젠장!"
"···솔직히,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계속해서 의미 없이 자신을 상처 입히는 카프의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시도한다.

그 말에 무심코 힘이 빠졌는지, 그게 아니면 이 행동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카프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벽에는 이미 큰 균열이 나있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

"까놓고 말해서, 그 자만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 의뢰를 가볍게 성공했을 거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결국 그 괴물이 있어서 실패하고 말았지. 하지만 중요한 건 비록 실패했어도 우리는 살아있다는 말이야."

그가 말을 끝내자, 카프는 잠시 멍하게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곧 그 말을 이해하고는 그를 향해 손을 뻗어 옷의 멱살을 세게 잡았다.

"이 자식! 너는 우리 둘만이라도 살았으니까 잘 됐다는 거냐? 한 명이 희생됐다고 해도?!"
"....."
"애초에 동료를 버리자고 주장한 것도 네가 원인이었군. 목숨이 아까워서 말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너도 동의했지. 그렇지 않아?"

그 말을 듣고 카프는 잠시 고개를 숙인다.
미세하지만 소매를 잡은 손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제발 진정해라, 카프. 늘 차분한 너답지 않아. 게다가 내가 방금 말한 건 네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그게···. 뭐지?"

그 말에 다시 카프가 그를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여기서 만약 그가 실언을 지껄인다면 단번에 그를 날려버릴 듯한, 그런 살기를 담은 눈.

"조금 전에 말했듯이, 현재 우리는 살아있다. 아직 그 녀석을 구할 수 있는 찬스가 한 번 더 존재한다고."
"-!"

이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 후, 그는 카프의 눈에 잠시 생기가 돌아온 것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이 녀석은···. 동료를 구하고 싶어하네.)

현재 그를 구할 수 있을 가능성은 큰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일개 길드 마스터의 힘으로는 여러 명이 소속되어 있는 조직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그것도 이 나라에서 뒷세계를 지배하는 조직이라면 더욱 그렇다. 혹시라도 보조를 받으면 구출이 가능할 테지.

"네가 ''그분''이라고 말하면서 존경하는 그 남자한테 말해봐. 혹시라도 손을 내밀어줄지도 모르지."
"확실히···. 그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누군지 짐작이 간 카프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거기에서 보이는 감정은 꽤 적지 않은 신뢰.

"다만 그 남자도 우리와 같은 출신···. 절대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설령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쉽게 믿지 마. 나는 이미 그 남자에게 선을 긋고 있다고."
"···확실히 네 말이 옳군. 나도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지는 않아. 하지만 그분은 달라. 아마 괜찮을 거다."
"네가 더 오래 그 남자를 보았으니, 그러면 좋겠지만···."

거기서 말은 끊어졌다. 그 남자를 완전히 믿지 못하기에.
어쨌든 나름대로 진정된 카프는 떨어진 단검을 챙겼다. 비장의 각오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은 듯이.

"일단 한 번 돌아가서 보고를 드려야겠군. 조직의 배신자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으니까."
"···미리 물어보는데, 어떻게 말할지는 생각한 거야?"
"그래, 우선 그분께 도움을 구하는 걸 목표로 삼겠다. 이걸로 동료를 구출할 수 있겠어."

해야 할 일이 정해졌으므로 이제는 실천하면 된다.


"-정말 자기들 좋은 대로 해석하시는군."


갑자기 후방에서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살기가 느껴져 순간적으로 다시 긴장감이 퍼진다. 물론 그들이 그 말을 듣고 해야 할 행동은 명확하다.

"누구냐!"

재빨리 단검을 뽑아 목소리가 들려온 후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단검은 그저 허공을 가로질렀을 뿐.

단검을 휘두른 두 사람은 일단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후퇴했다. 그리고 곧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경계한다.

"당신은···. 그분의 부하가 아닌가? 어째서 우리를 경계하는 거지? 아직 보고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카프는 알고 있었다. 옆에 있는 동료도 뒤늦게 이 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듯하다.

살기를 보낸 그것의 정체는 그분이 직접 막대한 돈으로 고용한 용병으로, 어떠한 의뢰를 맡더라도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암살자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자.

그런 자가 어째서 그들에게 살기를 드러낸 것인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

"···카프. 아무래도 그리 순탄하지 않겠어. 이건···. 우리를 제거하려는 건데?"
"아니, 하지만 아직 보고도 하지 않은 상태니까. 일단은 저 녀석의 말을 들어보는 편이 좋겠군."

옆의 동료가 조용히 최악의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카프는 단번에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살기를 날릴 필요가 없잖아. 내가 보기에 이건 위험한 상황이야. 차라리 도망치자."
"···그러면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될 거다. 우선 말을 들어보는 게 나아. 게다가 여기서 도망가면 동료도 구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말이지."

동료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프는 그림자를 눈앞에 두고 도망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최대한 적의가 없는 듯한 말투를 고르려고 노력하며 대화를 시도한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설마 그분께서 저희를 도우려고?"
"죽어라. 위에서의 의뢰다."

그림자는 그리 말하고 더는 대화할 생각이 없는지 품에서 꺼낸 단검을 던진다.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공격.

"뭣-"
"조심해라, 카프!"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멍하니 서 있는다. 만약 주변에 있던 동료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목에 칼날이 박혀 몇 분 안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렸겠지.

"도, 도대체 그게 무슨···."
"간단한 거다. 만약 너희들이 이 임무에 실패한다면 처분하라는 의뢰가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지켜봤는데, 정말 꼴불견이더군."

간신히 상황을 파악했는지 카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믿지 못할 말을 들은 듯이.

"임무에 실패할 뿐만이 아니라, 적에게 정보를 넘기다니. 게다가 뒤에서 미행하고 있던 것도 몰랐던 건가."
"미, 미행···? 하지만 분명 저들은 우리를 건드릴 수 없을 텐데···. 그거야 거짓말은 할 수 없을 테니-"
"길드의 도구로 취조당했나. 분명 자신들은 직접 쫓지 않는다고 말했을 테지. 재미없는 말장난이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을 길드가 그냥 놔줄 리 없잖아."

그림자의 눈빛이 더욱 어둡게 변한다.
만약 계속 미행을 허용했다면, 그야말로 한순간에 흑월은 국가에 의해 소멸하는 일이 됐을 것이다.

(큭, 우리를 속인 거였나!)

"거기에 큰 소리를 내는 행위까지···. 만약 내가 너희들을 <격리 공간> 속에 가둬놓지 않았더라면, 도망친 보람도 없이 그대로 경비병에게 들켰을 테지."
"설마···. 우리를 가둔 이유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이 정도의 실수를 범한 이상, 처리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기에.

"그렇다면! 적어도 잡혀간 동료라도···."
"아니, 당연히 그 녀석도 죽인다. 어차피 너희들은 그 남자에게 있어서 그 정도의 존재밖에 되지 않아.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도구일 뿐이라고."

그림자의 눈빛에는 거짓의 기운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정말로 그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 직접 의뢰를 받은 이상, 틀림없을 테니까.


-희망이 부서졌다.


제일 존경하는 은인한테서 배신을 당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상의 모든 것에 증오를 품었다.
카프는 자신의 오른쪽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문득 무언가를 잡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에 휘두른 단검이었다.

(겨우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아무리 부정해도 결국 냉정히 생각해 본다면 이것 또한 현실 부정일 테다.

(이 분만은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멋대로 믿었다.)

자신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런데 지금, 버려졌다. 오랫동안 몸 담가온 조직의 나에 대한 마지막 대우는 결국 이건가.)

옆의 동료가 눈에 띄게 불안해하는 것이 보인다.
자신의 얼굴이 뭐가 어떻게 됐다는 것인가. 의외로 냉정해진 머리로 생각을 해본 결과, 마침내 정답을 붙잡았다.

(그런가···. 나는 지금 살의를 가진 얼굴을 하는 건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그림자 또한 느꼈는지 아까와는 달리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확인···. 직접 확인해 볼 게 있다."
"아직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안타깝지만 너를 처리하라고 의뢰한 건-"
"아니, 상황적으로 봤을 때 거짓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다만 직접 그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을 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곳을 빠져나갈 필요가 있다.

즉, 카프는 눈앞의 적을 쓰러트리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옆의 동료는 그런 그를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부탁인데 친구야.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저 녀석을 자극하지는 마라.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는다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기도했지만, 그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카프는 적에게 엄청난 살의가 담긴 경고를 선언했다. 동시에 그림자 또한 그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녀석을 죽일 거다."
"하지만 어떤 수를 쓰더라도 곧 네 녀석은 죽는다."


지금 ''그분''은 카프의 살해 대상으로 돌변했다.

확률 낮은 도박에 모든 것을 건 그의 말에, 옆의 동료는 지금 상황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의 위기 상황일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확신했다.

(그렇게 나오는 거냐. 분노가 이성을 집어삼킨 것 같네.)

지금의 카프의 모습을 보면 저기의 검은 그림자와 동급 이상의 살기가 느껴진다.

그를 놓고 혼자 도망가기보다는 차라리 그와 함께 맞서 싸우는 것이 제일 높은 확률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살의를 가진 너라면 아마 조금 전보다 훨씬 강하겠지.)

게다가 카프와는 같은 동료다. 합을 맞춰왔던 파트너가 싸우겠다고 한다면, 동료로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도와주지, 파트너!"
"···그래, 도움을 요청한다."

저 그림자를 동료와 같이 협력해서 쓰러뜨리는 것뿐.
그들은 재빨리 단검을 손에 잡고 빠른 속도로 그림자를 향해 달려나갔다.

"-재미있군."

그림자는 가볍게 조소하며 준비 자세를 잡는다.
거리는 문제없이 계속해서 가까워졌으며, 서로의 행동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까지 좁혀졌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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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16 22:11 | 조회 : 1,033 목록
작가의 말
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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