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첫사랑이 꿈에 나왔습니다. -19금 주의

"너..너 왜 퍼펙트야! 너 이거 한번도 안해봤다는 거 거짓말이지!"

티비 화면에는 퍼펙트라는 문구가 팡팡 터지고 있었다. 윤겸은 어이 없다면서 말도 안된다며 발악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게임은 상당히 재밌었다. 해가 늬엿늬엿 질때까지 윤겸과 나는 땀이 앞머리를 적실 때까지 게임에 몰두했다.

"아.. 이제 못하겠어.. 이제 완전 지쳤어.."

"나도.."

우리는 둘다 지쳐서 소파에 엎어졌다. 한 참을 열심히 움직였더니 배가 고파졌고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집에 가면 좀 어색할까봐 걱정했지만 윤겸이 쉴 새 없이 종알 거리는 바람에 어색할 새가 없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밤이 되었다.

잠 잘 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차례로 씻었다. 내가 먼저 씻고 나와서 바닥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윤겸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제아에게 문자가 왔다.

''뭐해?''

''이제 늦어서 잘라고.''

''오늘 뭐하고 놀았어?''

''춤추고 놀았어.''

''앜ㅋㅋㅋㅋㅋㅋ진짜 상상안된닼ㅋㅋㅋ진짜?''

''생각보다 재밌더라.''

피식 웃으면서 제아와 문자를 주고 받고 있을 때 윤겸은 젖은 머리칼을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혼자 웃어?"

"아, 제아 문자왔어."

"제아?"

"응."

"제아랑 문자 자주 해?"

"응, 가끔?"

"헐, 재우 나랑은 문자 잘 안하면서.. 제아랑은 막 하고! 막 혼자 웃고 있고!"

"왜 이래, 빨리 머리나 말려."

"칫, 쳇, 흥."

내 옆에 딱 붙어서 내 휴대폰 화면을 힐끔거리는 그의 몸을 발로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그는 양 뺨을 퉁퉁 불리며 투덜거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가 멀리를 다 말리고 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불 좀 줄래."

"엉? 같이 침대서 자자."

"그럼 너무 미안하잖아. 나 그냥 바닥에서 잘게."

"에이 손님을 어떻게 바닥에서 재워. 침대도 너랑 나 두 명 누우면 딱 좋아."

그는 침대 위에 올라가 누운 뒤 자기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쳤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서 방 불을 껐다.

"잘자."

라고 말한 뒤 그에게 뒤를 돌아서 누운 뒤 눈을 감았다. 윤겸은 깜짝 놀란 듯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벌써 자게?"

"잘려고 누운거 아니야?"

"어, 그렇긴 하지. 근데! 좀 더 얘기하고 자자!"

"그래..."

윤겸은 다시 곤히 누웠다.

"야."

"왜?"

"너 나한테 서운한 거 있어?"

갑자기 목소리를 진지하게 깔고 저런 말을 물으니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개만 슬쩍 뒤로 돌았더니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윤겸은 조금 긴장한 듯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왜 그런걸 물어..?"

"너, 요즘 제아랑 나랑만 내버려두고 맨날 어디가고! 그런데, 제아랑은 문자하니까! 어! 내가 얼마나 서운하겠어."

말은 애처럼 나오지만 눈빛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저런식으로 서운하다고 말할 줄은 예상밖 이었다.

"너 서운했어?"

"....그래!"

''얘가 생각보다 귀여운 면이 있네.''

나는 진지한 꼬맹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게 웃겨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갑자기 웃으니까 진지한 표정을 짓던 그의 표정이 조금 멍청하게 풀어졌다.

"왜, 왜 웃어?"

"그냥.. 너 행동하는 게, 좀 의외네.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크흠.."

그는 좀 머쓱한 듯 옅게 뺨을 붉혔다.

"쨌든! 그랬다고.."

"서운해서 그랬던 거 아니야."

"그럼..?"

"그냥, 진짜 일 있어서 그런거야."

"음..그랬구만."

"제아랑은.. 그냥 좀 친해져서 그런거지 뭐."

''근데, 얘는 제아한테 하나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굴면서 내가 제아랑 문자 하는 건 신경쓰네.''

나는 순간,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겼다.

"그래?"

"그래."

그와 얼굴을 마주보고 누워있으니 생각보다 얼굴이 가까워서 다시 뒤로 돌아 누웠다.

"근데, 얼굴은 왜 피해!"

윤겸은 내게 더 가까이 달라 붙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왜 이래?!"

"왜, 남자끼린 데 뭐, 어때. "

내가 당황하면서 그를 밀어내자 그는 더 가까이 붙어 왔다. 거의 원숭이가 나무에 매달린 것 처럼 붙어있는 꼴이 되었다. 몸과 몸 사이에 아주 작은 틈 없이 딱 붙게 되었다. 두 팔도 내 몸을 감싸 꽉 안아서 답답했다. 그리고 더욱 더 신경쓰이는 건 너무나 잘 느껴지는 그의 체온이었다. 나보다 좀 더 높았던 그 체온이 얼굴을 화끈하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답답해.."

발버둥쳐도 그가 하도 꽉 안고 있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잠시 있어야 했다.

"다행이다. 난 너가 나 피하는 줄 알았어."

의도치 않게 서운하게 한 것 같아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근데, 너 갑자기 왜 여자친구 얘기해?"

"음?"

"너 여자애들 얘기 별로 관심 없어 했잖아. 지금까지 한 번도 너가 먼저 그런 얘기 꺼낸 적 없었잖아?"

"음..그냥,너 어...."

''뭐, 뭐라고 둘러대면 좋을지...''

"그냥, 너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왜 아무도 안사귀나..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좋아하는 애들도 많을 것 같은데.."

좋은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되는 대로 뱉었더니, 내 스스로가 조금 민망해지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그래? "

그는 조금 부끄러운 듯 손을 이리저리 꼼지락 거리더니 나를 꽉 안고 있던 팔을 풀어주며 내게서 몸을 떼었다.

"딱히.. 그렇진 않은데. 어우, 야 그런 소리 갑자기 들으니까 너무
부끄럽다."

땅속에 기어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그가 읊조렸다. 너무 부끄러워하니 나도 더 민망해져서 괜히 헛기침만 나왔다.

"근데."

"어?"

"딱히 여자친구에 대해서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음.."

"난 그냥 지금도 충분히 즐거운 것 같아."

"그래?"

"응, 아! 그래도 만약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성격이 너 같았으면 좋겠다."

"어..?"

이건 진짜 예상치 못한 대답인데,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입이 떡 벌어졌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도 더듬었다.

"뭐.뭔소리야."

"성격이 내 이상형이야, 너가 하하"

뒤를 돌아보니 그도 약간 머쓱해졌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그는 뒤로 돌아 누웠다.

"하하, 밤 감성이라 그래. 빨리 자자! 낼 어차피 학교도 가야 되니까."

그는 이불을 자신의 턱끝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살짝 보이는 그의 귓볼이 빨개져서 나까지 얼굴이 화끈 거렸다.

''얘,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조용히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니,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작게 들리는 듯 했다. 기분이 이상한 밤이었다.

나는 일찍 잠이 들 수 없어서 누운지 1시간이 지나도록 뒤척였다. 겨우겨우 잠이 들어 눈을 뜨니 매우 불안하게 밖에는 아주 평화로운 새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따뜻하게 커튼 사이로 햇볕이 나를 반겨주는데.. 나는 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봤다.

"아, 쒸..."

나는 평온히 잠에 빠져 있는 윤겸의 등짝을 찰싹 때려 깨웠다.우리는 시원하게 늦잠을 자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아침도 못먹고 다급히 교복만 갈아입고 학교에 정신없이 뛰어가야만 했다.

"웬일로 재우도 지각이네?"

제아는 급하게 뛰어온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 좀 늦게 잤더니.."

나는 간신히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아서 엎드렸다. 너무 오랜 만에 뛰었더니 다리가 버들강아지마냥 후들거렸다. 윤겸도 지친 듯 책상에 쓰러지듯 누웠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윤겸과 눈이 마주치면 피하게 되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자꾸만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 일도 아닌 일일 터인데, 왜 자꾸 기분이 이상해지는지. 윤겸은 평소랑 다름 없었다. 그래서 왠지 짜증났다.

''쟤는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사람 기분 이상하게 만드는 거야.''

윤겸이 교실에 자리를 잠깐 비웠을 때 제아는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물어왔다. 어제 일을 떠올리니 제아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왜 자꾸만 심장 한쪽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 거리는 것일까.

"어제 여자친구 얘기는 진지하게 해봤어?"

제아는 조심스럽게 내게 귀속말로 속삭였다.

"어.. 자기 전에 얘기해보긴 했어."

"헙.. 뭐래?"

제아는 궁금한 듯 눈을 반짝였다.

"어..."

"뭐라고 그랬는데..?"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제아는 안달난 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여러번 두들겼다.

"자기는 아직 누구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그러더라."

"아.. 역시이.."

제아는 자기 자리에 힘없이 털썩 앉아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상형은? 이상형 같은 건 얘기 안해봤어?"

"어, 이상형?"

"응!"

"아, 그런 건 얘기 안해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볼 수 없었다.

"그래? 그럼.. 혹시 나중에 슬쩍 한 번 물어봐 줄 수 있어?"

"어? 그,그래.."

이 날 이후로 나는 조금 이상해졌다. 평소처럼 제아가 신호를 보내면 이상하게 자리를 비켜주기가 찜찜해진 것이다. 그래도 안 할수는 없으니 그 두 사람에게서 멀어지긴 했지만 시선이 자꾸만 윤겸에게로 꽂혔다.
수업중에나 쉬는 시간이나 자꾸만 그에게로 시선이 갔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는 그의 시선을 피해버리곤 했다. 무언가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켜서 부끄러움을 느낀 기분 같았다.

오늘은 제아가 문자를 보내지 않았지만 나 혼자 그 둘에게서 떨어졌다. 지금 그의 옆에 계속 있으면 안 될것 같았다.

"..."

혼자 가는 하굣길은 조용했다. 해가 지는 붉은 하늘을 보고 있을 때 뒤에서 어떤 사람이 다급하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더니 갑자기 갑작스럽게 확,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너, 너 나 왜 또 피해?"

윤겸은 멀리서 뛰어온건지 숨을 거칠게 헐떡이고 있었다.

"어?"

나를 잡은 그의 손이 너무 뜨거워서 그 손을 탁, 밀쳐내버렸다. 그러자, 윤겸의 목소리는 더욱더 격해졌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오늘 내가 말 걸면 피하고, 눈도 잘 안마주치고! 지금도 그렇네!"

그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의 손이 닿자 얼굴이 이상하게도 금방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 너 왜 이렇게 빨개? 그리고 엄청 뜨겁네. 아파?"

"그,그래. 아파! 이 자식아 좀 놔봐!"

나는 살면서 처음느껴보는 이 감정이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실수로 그의 명치를 때렸다.

"억..."

그는 고통스러운 듯 상체를 수그렸다.

"헛, 야. 미안..."

"너.. 손이 왜 이렇게 매워..."

"그러니까, 갑자기 왜 사람 얼굴을 덥썩 덥썩 잡고 그래."

"미안.. 아니, 그보다."

"왜."

"너 나한테 진짜 화난 거 없는 거야? 우리집에 오고 나서 너가 나 더 피하는 거 같아."

맞는 말이라서 뜨금했다. 피할려고 한 것은 아니였는데, 어쩐지 그와 시선을 마주하면 자꾸만, 등에 닿았던 그의 체온이 다시 생각나서...

"너가, 이상한 말 해서 그런거 아냐..!"

나는 결국 맘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윤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었는 지 기억이 안나는 듯 했다.

"너가..! 나한테 내가 너 이상형이라던가. 그런 말 하니까 괜히 이상해졌잖아!"

"아, 그것 때문에 그랬던 거야?"

"그래!"

윤겸은멀뚱히 눈만 깜박이더니 별거 아닌 것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에이, 뭐야. 그냥 장난으로 그렇게 말한거잖아."

"뭐?"

나는 다시 얼굴이 확 풀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짜증나서 그의 명치를 한 번 더 내리쳤다.

"억..!"

"그딴 장난 하지마 이새끼야!"

나는 화를 버럭 내고는 그를 버려두고 씩씩거리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에 버들강아지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것 마냥 멍청하게 고민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윤겸은 웃으면서 내 뒤를 따라 오더니 내게 어깨동무했다.

"에이, 재우 뭐야. 심쿵했어? 그거 그냥 한 말이었는데."

"너 진짜 개빡친다."

나는 꽉 쥔 오른 손을 그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하하하!"

"야. 근데 제아는?"

"아, 맞다."

"너 제아 버려두고 왔어?"

"나 먼저 간다고 하고 너 따라 나왔지."


"..."



제아가 윤겸과 잘 되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불가능 할 것 같다.

오늘 나를 잔뜩 열받게 한 윤겸의 팔을 꾸악 꼬집어 준 뒤 집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그 생각만 했던 내가 너무 어이없고 짜증나서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마구 찼다.

"윤겸 한 대만 더 쥐어 박고 오는 건데.."

''이런 짜증나는 생각 얼른 잊어버려야지.''

한숨을 푹 내쉬고 난 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눈을 감았다.



"으음..."

뭔가 이상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에 눈을 떴다.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슬며시 떴을 때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뭐, 뭐야..?''

내 눈 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있던 것 같은데, 이불은 저 멀리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내 하반신 쪽에 윤겸이 엎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누군가의 손이 닿은 적 없는, 나 조차도 스스로 잘 만져본 적 없는 그것이 윤겸의 손에 잡혀 있던 것이었다.
그는 내 그것을 잡은 채 보는 사람 민망할 만큼 그 끝부분에 사랑스럽다는 듯이 입을 맞추고 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인가, 라고 생각이 들 만큼 윤겸의 얼굴은 진지했다. 평소처럼 장난기 있는 그런 미소가 아니라 정말 욕정에 찬 짐승 같은 눈을 하고서 믿을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목 끝까지 붉게 물들인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딱 마주치자, 그는 시익 입꼬리 올려 웃어 보였다.

그의 손이 위 아래로 슥슥 움직일 때 마다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찌릿한 전율이 온몸을 오싹오싹하게 만들었다.

''무, 무슨 이런 꿈을...''

그의 손이 움직일 때 마다 내가 허리를 바르르 떨자 그는 시익 웃으며 내 입술에 슬며시 입을 맞췄다. 말랑하면서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을 조금씩 물어왔다. 초옥, 하는 소리만 내 귀속에 울렸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처럼 뛰었다.

내 중심부를 꽉 쥔채 위아래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데, 입술에 막혀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읍..흣.."

당장 이 손 떼라고 소리쳐야 하는데 꾹 다문 입에서는 끙끙 거리는 신음만 흘러나왔다. 두 손은 결박된 것 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손이 점점 빨라질 수록 내 숨도 가빠졌다. 그는 내 입술부터 시작해서 목, 쇄골, 가슴 순서로 입술을 지분거리며 붉은 자국을 만들어 갔다. 온 몸에 모기에 물린 것처럼 울긋불긋해졌다.

아래로 내려간 그의 뜨거운 입속에 내 것이 반쯤 삼켜졌을 때, 머릿 속이 하얗게 되면서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잠이 확, 깨었다.

"흣..하아...."

눈을 뜨니 아까와 똑같은 내 방이었지만 윤겸은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제 정신으로 돌아올 때쯤 하체쪽 중심부가 끈적하게 젖어 있는 게 느껴졌다.

"미친."

나는 한 밤중에 부모님 몰래 속옷을 빤 뒤 현타가 와서 침대에 눕지도 못하고 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아침이 될 때까지 밤을 샐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학교에 오자마자 완전 기절해서 윤겸의 얼굴을 바로 보지 않아서 좋았다.

"재우야!"

나를 깨운 것은 제아였다. 나는 퀭한 눈으로 엎드린 채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옆자리를 보니 윤겸은 어디를 갔는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제아는 내 눈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너 상태가 왜 이래..? 다크써클 장난 아닌데...."

"어제.. 새벽에 깨서.."

"왜? 악몽이라도 꿨어..?"

그래, 그것은 악몽이었다. 절대로 해서는 꿈으로도 꿔서는 안 될 짓을 해버렸다. 친구로 몽정이라니, 이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일이란 말인가..! 가설로 떠올렸던 생각, 그냥 웃고 넘겼던 것이 자꾸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맞아.."

"오늘 윤겸한테서 들었어. 어제도 상태 별로 안 좋아 보이더니, 어휴. 잠도 못자서 어떡해."

"지금, 몇교시야..?"

"3교시, 너 오자마자 기절했길래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서. 선생님한테는 그냥 너 아프다고 말씀드려놨어."

"고마워.."

나는 다시 엎드렸다. 제아를 보니 죄책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도 억울했다. 내가 원해서 꿨던 꿈은 아니었단 말이다.

"재우 일어났어?"

"방금!"

지금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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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21 19:46 | 조회 : 2,165 목록
작가의 말
최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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