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첫사랑이랑 같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윤겸은 나를 발견한 후 해맑게 웃으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달려오는
모습이 주인 찾은 강아지 마냥 촐랑거기며 뛰어오는데 보이지 않는
꼬리를 한껏 흔드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벙진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왜 여기 있는 거야?!"

"산책하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딱 마주 쳤네요? 하하."

그러고 보니 어제 게이바에서 학교 얘기를 지나면서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근데 이렇게 다음날 바로 또 마주칠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우연인건지... 윤겸이 찾아온 건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 나랑 같이 저녁 먹을까?"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윤겸은 나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내가 진짜 맛집을 알거든~!"

"나 오늘 약속 있거든...! 이거 안놔?"

"아 그래? 그럼 나랑 밥 먹고 만나면 되겠네~"

윤겸은 대답을 하면서 내 손목을 놓지 않고 계속 끌고 갔다.
막무가내 끌고 가니 어쩔 수 없이 현우에게 카톡을 넣었다. 진짜
싫으면 안 갈수도 있었지만 나는 못 이기는 척 윤겸이 이끄는
데로 따라 갔다. 어디로 데려갈지 궁금하기도 했고,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를 자기 마음대로 데려간 곳은 닭발집이었다. 나는 뚱한 표정을
지은채 윤겸을 노려보았지만 윤겸은 마치 내가 애교를 부린 걸
본 것 마냥 헤벌쭉 웃는데, 그 모양이 뭔가 짜증나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다.

"오늘 누구랑 만나기로 했어?"

"넌 몰라도 되거든?"

"어제 그 친구?"

"알 바 없잖아. 왜 억지로 데려오고 난리야? 진짜 자기 멋대로네."

"너가 여기 분명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랬지."

"어제 난 분명 너한테 관심없다고 말했는데?"

"오늘부터라도 관심가져 달라고 온거야."

"이런 식이면 그럴 일은 없어."

"그럼 다른 식이면 괜찮아?"

"하!"

"나는 너가 너무 좋다니까?"

"옴메."

윤겸이 한손으로 제 얼굴을 괸채 달짝지끈한 말을 내뱉을 때 때마침
가게 아주머니가 음식을 가지고 오시는 중이었는데, 저 말을 들으신
듯 깜짝 놀라면서 음식을 놔두고 우리 둘의 얼굴을 슬쩍 흘기시더니
얼른 자리를 피하셨다. 정말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는 구나!!
나는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워서 윤겸을 째려보며 조용히 소리쳤다.

"야..! 그런 걸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어떡해!"

"내 마음을 표현하기엔 이건 엄청 작은 소린데? 너가 내 맘을
몰라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진짜 미친놈..!"

"헤엑, 이거 봐봐. 엄청 맛있겠다. 그치."

윤겸은 내 앞접시를 가져가더니 음식을 덜어서 다시 내 앞으로 내밀
었다. 그리고는 앞치마를 가지고 오더니 나에게 매주는데.... 하지 말라
해도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매주는데,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의
흘끗 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얼른 먹어봐, 엄청 좋아할 걸?"

"관심 받고 싶다면서 이런 닭발집에 데려오냐?"

"내일은 분위기 이쁜 곳으로 데려가야 겠다."

"진짜 이상하고 뻔뻔한 놈..."

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점시에 먹음직스럽게 담긴 닭발을 노려
보았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짜증나지만 눈 앞에 있는
빨간양념이 눈부신 닭발은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은 닭발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좋아하냐면 예전에 진짜 닭발에 미쳐서 일주일 동안
점심 저녁을 닭발을 먹었다. 결국 탈이 나서 꽤 고생을 했었다..

그렇게 맛있다며 내가 좋아할 거라며 확신에 찬 눈으로 내게
말하던 윤겸의 말이 맞았다. 보통 닭발이 살이 많이 있는 고기는
아니라서 먹어도 먹어도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여기는 무슨
닭발이 외국에서 들여온 닭발인지 통통하고 쫄깃 한것이...정신이
아찔했다. 진짜 너무 맛있어!! 맛있다라고 표현할 때 둘이 먹으면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다라고 하는데, 이 닭발이 그 표현과
딱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닭발집과 어울리지 않게 꿀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앞 사람을
잊어버리고 열심히 흡입했다. 점심을 그냥 넘기고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조금 허기가 진 상태였는데, 하나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끝도 없었다.
조금 배가 찼을 즘에 먹지도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윤겸을
발견했다.

"엄청 잘 먹네. 맛있지?"

"나쁘지 않네."

"좋아할 줄 알았어. 나 여기 주변에 맛집 다 알아. 나랑 같이
있으면 너 혀가 아주 즐거울 걸? 어때, 호감도가 어제보다 좀더
올라간 거 같지 않아?"

"하, 참나. 먹을 걸로 꼬시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때 즘에 휴대폰 진동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가방안에 넣어뒀던 휴대폰을 꺼내보니 현우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먹다가 벌떡 일어나서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야! 너 뭐 어떻게 된거야!"

전화를 받자마자 현우의 목소리가 가게 화장실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걘 어떻게 또 만난 거야?"

"큼.. 어제 학교 얘기 잠깐 나왔잖아."

"너 걔가 뭔 짓 한거 없지?! 왜 카톡 답은 또 안했어!"

"진동으로 해놔서 몰랐어.. 미안미안."

"하, 진짜 갑자기 걔 와서 못만날 것 같다고 하더니, 어! 전화도
안받고! 카톡도 안 받고! 난 또 뭔 일 난줄 알았잖아!"

"으아.. 미안...."

"지금은 어디야?"

"지금 닭발집이야."

"어? 닭발집?"

"응."

"맘대로 약속 채가더니 데려간 곳이 무슨 닭발집이야?"

"맛은 엄청 좋더라."

"허...."

"하하.. 걱정시켜서 미안해. 근데 나 억지로 끌려온거 아니고
그냥 한번 어디로 데려가나 궁금해서 따라 와봤어."

"하... 큰일 생긴 건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진짜 미안..!! 내 자취방 가있어! 치킨 내가 살게."

"일단 알겠어. 야! 너 진짜 앞으로 휴대폰 잘 확인해! 오늘처럼
어! 걱정시키지 말고."

"알았어,알았어.. 좀 있다가 보자."

"그래."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윤겸의 앞접시는 아직까지도
깨끗했다. 그렇게 맛있는 곳이라며 데리고 오더니 정작 자기는
별로 먹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매운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이런 맛집은 어떻게 아는 거지.

"전화 끝났어?"

"어..."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물을 한컵 마셨다.

"너는 왜 안먹어."

"나는 너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서 괜찮아."

"어우!"

나는 닭살돋는 윤겸의 멘트에 팔뚝을 양손으로 문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거의 다 먹은 뒤 계산은 윤겸이 했다. 거의 나 혼자 2인분을
다 먹은 격이었는데 돈은 몇개 집어 먹지도 않은 윤겸이 내니까
괜히 조금 미안했다. 가게에서 나가서 또 어디 막무가내로 데려가면
어쩌지 싶어서 불안했지만 윤겸은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학교 기숙사야, 아니면 자취해?"

"....자취하는데?"

"학교주변 원룸에서?"

"어...."

"그럼 다시 학교쪽으로 가야겠다."

"그렇지."

윤겸은 내 얼굴을 갑자기 빤히 보았다. 너무 열심히 먹어서 입가에
묻은 걸 덜 닦은 건가 싶어서 내 입가를 한손으로 가리면서 윤겸을
흘겨봤다.

"뭐,"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

"헤헤, 맛집의 효과가 있긴 있구만. 전보다 나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가긴 했구나?"

"아니거든?!"

나는 손등으로 입가를 벅벅 문질러 닦고서 윤겸을 뒤로하고 걸었다.
윤겸은 하하, 소리내어 웃으며 내 뒤를 따라 왔다. 날씨가 풀리고
해가 조금 길어져서 저녁 7시가 좀 넘은 시간이였지만 주위는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대학로라서 그런지 점점 사람이 붐비는 것 같았다. 사람이 점점 많아
지자 윤겸은 내 손목을 다시 잡고 사람 사이를 샥샥 잘도 피해갔다.
덕분에 사람들과 의도치 않은 어깨빵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편했다.

사람이 붐비는 거리를 나와 조금 한적한 가로수 길을 같이 걸었지만
윤겸은 손을 풀지 않았다. 잡힌 손목이 괜히 간지러웠다.

"학교 어디쪽이야? 정문이야 후문?"

"후문. 뭘 데려다 주기까지 해."

"점수 잘 따야지~"

"어제 처음 보고 보통 이렇게까지 해?"

"만난 시간이 중요한가? 마음이 중요하지. 줄리엣이랑 로미오도
무도회장에서 처음 만나서 세기의 사랑을 했다고."

"오늘 하루 종일 말했지만 너 진짜 이상한 놈 같아."

"첫눈에 반했다니까. 세상에 이렇게 예쁜 사람이 있나 싶었어."

"악!"

듣기 민망한 말을 진지한 얼굴로 나불거리는 윤겸의 주둥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넌 부끄럽지도 않냐?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윤겸은 얻어 맞은 제 입술을 만지작 거리더니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나를 보며 말했다.

"나 엄청 유교맨이라서 입술 터치한 사람이랑은 결혼해야 하는데...
이건 너 때문이야."

"어우! 진짜 이 주둥이... 테이프로 막아버리던가 해야지."

"...입ㅅ로...."

찰싹. 부끄러움 모르고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다시 한대 때리고서
윤겸을 째려보았다. 윤겸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리 둘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지나갔다. 정말 부끄러웠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자취방은 금방 도착했다. 현우는 건물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어서 걸어오고 있는 윤겸과 나를 볼 수
있었다. 방금까지 실없이 웃던 윤겸은 현우의 얼굴을 보자 조금
굳는 듯 했다.

"오늘 약속 있다던 사람이 어제 그 친구였구나."

"어, 뭐.. 그랬지. 잘가라."

갈려고 했지만 윤겸이 손목을 놓아주지 못해서 다시 윤겸의 몸 쪽으로
내 몸이 휘청거렸다. 현우는 미간을 찡그린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쪽
으로 걸어왔다.

"뭐야, 왜?"

"...저 사람이랑....."

"내 약속 지 멋대로 취소하게 만들더니, 하. 참나. 어제는 사람 그렇게
나쁘지 않게 봤는데 오늘 태도 보니까 조금 맘에 안드네?"

"엇...야, 야.."

아까까지 말랑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운 물을 들이부은 거 마냥
가라앉자 나는 기분이 안좋아진 두명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떡하면
좋을지 몰랐다. 일단 잡힌 손목을 풀어내고 현우를 다독이며 말했다.

"얼른 들,어가자."

"...."

"너도 얼른 집에 가!"

"...."

땅에 박힌 거 마냥 두명이 움직이지도 않고 서로를 불쾌한 표정을
지은채 바라보자 나는 현우의 등을 떠밀었다. 현우는 어쩔 수 없이
밀려 났지만 윤겸은 나를 시무륵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처량해보여서 신경이 쓰였지만,
현우를 달래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걔 뭐야! 나 보자마자 얼굴 구기는 거 봤냐? 허, 참나. 남자친구도
아니면서 꼴값이네."

"화내지마. 아까 나 너 싸우는 줄 알고 식겁했다, 진짜...!"

"걔가 맘에 안들게 쳐다보니까 그런거 아니야. 흥. 역시 별로야.
맘에 안들어."

"하하.. 치킨 시키자. 치킨."

부루퉁한 표정을 지은채 툴툴 거리는 현우를 토닥이며 배달앱으로
치킨과 생맥주 한병을 시켰다.

"너 어떻게 할꺼야? 너가 연락을 안하더라도 걔가 찾아오드만."

"음.."

"오늘 치킨 뜯으면서 좀 진중한 대화를 해봐야 겠어."

한 30분 쯤 시간이 지나자 벨이 울렸고 치킨이 왔다. 나는 이미 배부르
게 먹고 와서 작은 조각만 몇개 집어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현우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치킨을 아주 열정적으로 먹는 모습이
좀 많이 미안했다. 나 때문에 밥도 못먹고 걱정하고 기다렸을
모습이 상상이 되서 더 그랬다.

"너 걔한테 미련 완전히 없는 거 아니지?"

"...그런 거 같아."

"흠.."

나는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현우는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키더니
맥주잔을 탁, 식탁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뭔가.. 걔가 이상해."

"이상한 놈이긴 하지."

"너의 연애사니까 내가 어떻게 하라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너가 상처를 좀 안받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응. 알지, 알지."

"너가 미련있다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어쩌면
좋은 걸 수도... 흠.."

"오늘 같이 있으면서 좀 느꼈는데.. 얘가 나 엄청 좋다고 막 그러고
엄청 잘 챙겨줬거든."

"응."

"솔직히 기분이 좋긴 했어. 누가 나 좋다고 이렇게 끈질기게 군게
처음이기도 하고.. 이렇게 막 호감 가지고 잘해준 것도 처음이고."

"응"

"솔직히.. 나를 완전히 잊고 지금와서 좋다는게 맘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 그 븅신 같은 놈!"

"큽... 너 말하는 거 왜 이렇게 웃기냐.하하!"

먹던 닭다리를 들고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은채 윤겸을 욕하는 현우
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따뜻하고 말랑해져서 큭큭 거리며 웃어버렸다.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고 신경써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 이다. 현우를 보면 늘 고맙다고 생각했다.
함께한 시간이 엄청 오래된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현우는 내게
매우 친절했고 따뜻했다. 이쪽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어플을
깔았었지만 대부분 가벼운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솔직히
지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현우랑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좋은 친구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난 그래서 걔가 찝찝하다는 거야!"

현우는 닭다리를 든채 바락박락 화를 냈다.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도
아니고 잊어버릴 땐 언제고 이제와서 개뿔 똥이라는 둥 윤겸을 욕하는
현우의 얼굴 표정과 행동이 너무 웃겨서 넘어 갈듯이 웃었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셔츠 소매로 삐죽 나온 눈물
을 닦으며 말했다.

"크흠..큽...쨌든 윤겸이 나 좋다고 매달리는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아서 일단 만나면 피하진 않을려고."

"후..."

"완전히 피해버리면 내가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그래. 지금 내가
이러는 것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
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래, 너가 그렇게 말한다면 말리진 않을께.."

"응, 고마워."

"흥, 그 놈이 너한테 잘못하거나 개소리하면 바로 나한테 말해야
된다."

"알았어."

"휴, 정말..! 맥주나 마셔!"

맥주 두잔이 짠, 하고 부딫히는 소리가 작은 원룸에서 울렸고 우리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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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25 00:47 | 조회 : 1,110 목록
작가의 말
최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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