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첫사랑이 종이를 주고 도망쳤습니다.

영주는 윤겸과 같이 들어온 여자를 아는 듯 반갑게 인사했다.

"어~ 민아, 오랜만이네? 옆에 있는 친구는 누구야?"

"사장님~ 제가 미래 단골 한명 데려왔죠~!"

윤겸은 웃으면서 영주에게 인사했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린채 칵테일 잔을 꽉 쥐었다.

미친 미친 미친 쟤 왜 여기 있나요. 선생님?! 쟤 이쪽 아니잖아!!
여친도 있었던 새끼가...!?

현실이 더 막장인 경우가 있다지만 그게 내 얘기가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중학생 때 불같은 사춘기를 겪을 시절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근데 하필 자신이랑 가장 친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근데 하필 또!
그 사람이 중학교 들어와서 사귄 첫 친구야!! 그리고 다른 친구는 딱히
없고! 다른 한명 있긴 있었지만 그 여자애는 윤겸을 좋아했고...
그 여자애는 내가 윤겸한테 고백하고 차이고 나서 윤겸과 사겼다.
그리고 나는 그 두명이랑 빠이빠이....진짜 막장이네!!

현우는 아무 말 안하고 칵테일 잔만 꽉 쥔채 오줌 마려운 것 마냥
안절부절 하고 있는 재우의 꼴이 의아했지만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영주와 말하고 있던 여자와 남자에게 싹싹하게 인사를 건내며
대화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만 어색하지
좀 지나고 나니 어색함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세 사람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윤겸은 아무말 하지 않고 칵테일 잔만 홀짝거리는 재우에게 시선이
갔다.

"저기... 이쪽분은?"

"아~ 얘요? 아 그러고 보니까 같은 과네영! 얘도 디자인과 거든요!"

"엇 진짜요?"

나한테 말걸지뫄아아아!!!! 라고 소리지르고 가게를 뛰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힘겹게 참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하하~ 학교는 어디 다녀요? 여기랑 가까우면.. 음. OO 대학교?"

"...."

"하하, 얘가 진짜 엄청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현우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지만 난 몸을 돌릴 수 없었다.
쟤가 나 알아보면 얼마나 수치스럽다고! 내가 수치스러워 할 이유는
없지만... 약간 전남친을 만나는 그런 느낌이 이런 기분인건가 싶다.

말 안하고 띠겁게 있으면 말 안걸겠지

... 윤겸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으아아아아아 살려줘요!! 왜 옆에 앉는데?!!

"헤헤, 제가 이쪽 사람 중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처음 만난
사람이 같은 과라서 신기하고 반갑네요!"

"아. 네."

너무 당황 스러워서 목소리 내버렸다. 근데... 이 새끼, 나 몰라?

"몇살이에요?"

"21..."

"우왕! 저랑 동갑이네요?"

목소리도 그렇고 얼굴도 봤는데.. 얜 날 진짜 처음 보는 사람 만나듯이
대하고 있다. 아니아니아니 진짜 기억 안나?? 중학교 때 그래도 나름
친했던 사람이잖아?!

나는 윤겸을 힐끗 보았다.

윤겸은 활짝 웃었다. 순간 혹할 뻔 했다. 미친

....! 뭐, 뭐야 왜 저렇게 웃어?!

"얼굴 보여줬네요! 헤헤.. 아, 혹시 괜찮으면 동갑인데 말 놓아도
괜찮아요?"

"에, 아, 네.."

"큭큭.... 말놓기로 했으면서 왜 존댓말로 대답해."

"아?.. 아 맞다.. 아, 네. 아니. 응..."

멍청이처럼 버벅 거리지 말고 으잉!? 완전 차갑게 대답해야지 왜 얼빠진
놈처럼 답하고 있는 거야?! 재우 이 멍청아!

다음 이어지는 윤겸의 말이 나의 멘탈을 아주 탈탈 털어버렸다! 날강도 같은
놈!

"너 엄청 귀엽다!"

"...?!?!"

남이 봤을 땐 처음 썸 타는 것 같은 젊은이들이 보기 좋아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미칠 지경이다. 저 말을 뒤로, 여기 오기 전에 혓바닥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건지 계속 달짝지끈한 말을 내뱉는게 아닌가.

제발 그만!

"어우, 겸이 너 같이 온 나는 아주 짐짝처럼 내버려두고 아주 신났다?"

"아, 맞다. 너 있는 거 잊고 있었다."

"너무한 거 아니니!"

"...."

윤겸과 같이 온 여자는 친구인건가...?

"나도 이쁜 오빠랑 인사 좀 하자! 너만 독차지 하지 말고!"

"싫어-"

"치사한 놈! 나도 이쁜 오빠랑 친하게 지내고 싶단 말이야!"

그냥 나 내버려두고 너네 가면 안되겠니!!

영주는 투닥거리는 두명을 말리며 주문을 받았다.

"번호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나 너랑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고 싶어!"

얘가 이렇게 노빠꾸 직진남이였나?! 내 기억속엔 이렇게 적극적으로
누군가한테 들이대는 애가 아니였는데...! 강과 산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듯이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것이었나. 절대 아니지!

"...."

윤겸은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정신이 없었지만
다시 나는 정신을 차렸다. 좋다고 난리 칠때는 본체도 안하더니 이제와서
무슨! 다 잊어놓고서는...

"미안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한테 번호 안줘요."

"그럼 계속 보면 줄 수 있어요?"

당황할 줄 알았지만 되려 내가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조용히 두명을 관전하던 세사람은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을 느꼈고,
민아라는 여자는 윤겸의 팔을 잡고 끌었다.

"아니."

나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고, 활발하던 분위기는 완전 싸늘
하게 식었다.

"하하... 야, 가자가자. 오늘 나랑 놀기로 하고 여기 온거잖아."

민아는 윤겸을 데리고 다른쪽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윤겸은 뭔가
말하려고 하는 듯 했으나 민아가 이끄는 대로 딸려갔다.

현우는 차가운 내 반응에 깜짝 놀라 물었다. 영주는 방금 두명이
시켰던 칵테일을 만들며 내게 귀를 기울였다.

"야. 뭐, 무슨 일이래?! 너 한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

"뭐야, 아까 그 남자 알아? 그러고 보니 방금전에 오기전에 ''그 남자''
라는게 무슨 의미야?"

"하... 내가 옛날에 얘기했던 흑역사의 당사자다, 저놈이!"

"미친. 그 씹새끼! 엥, 근데 뭐야. 저 새끼 너 처음 보는 것처럼 말하더만."

"나도 어이가 없다! 5년이 넘은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한테 고백
도 하고! 나름 친했던 친구를 무슨 내 머릿속에 지우개도 아니고
새 하얗게 잊어버리는게 가능한 일이야?"

"모르는 척 하는거... 근데 아무리 아까 그 상황을 봤을 땐 처음 보는
사람이 맞았는데...? 진짜 이상한데, 아 근데 저 새끼 게이 아니라며.
뭐야 그럼 바이였어?"

"그러니까 나도 지금 너무 어이가 없고 혼란스럽다, 뭐지? 진짜 내
존재는 하얗게 잊어버린거?! 하.. 쒸...악 "

"말이 안되는데?? 야, 요즘 막장 드라마도 이렇게 쓰면 욕먹어!"


"현실이 막장인 경우도 많잖아."

영주는 칵테일 두잔을 가지고 방금 전 두 사람의 테이블로 가져갔다.

"...하.. 살기 싫어졌어, 현우"

"야, 저 새끼 저거 왜 저래, 니 뒤통수에 뭐 보물 숨겨논 도적마냥
뚫어저라 쳐다보는데?"

현우의 말을 듣고 나는 윤겸이 앉아 있는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돌리자마자 나는 후회했다. 윤겸은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웃어보이는 것이었다. 미친.

더 미친 건 내 심장이 틀림 없다. 방금까지 저 새끼의 얼굴을 주먹으로
한대 치고 싶었는데 또 웃으니까 심장이....

눈이 마주치고 나서 나는 윤겸이 있는 방향으로 절대 몸도 얼굴도
돌리지 않았다. 마주치기 전까진 못느꼈던 뜨거운 시선에 뒤통수가
뜨거워서 녹아버릴 지경이다.

이후로 현우는 윤겸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으니 아예 오늘 저 새끼를 매장시켜버리자
등 윤겸 암살 계획에 대해 토론하는 우리를 영주가 말렸다.

"이왕 이렇게 된거 아예 그냥 사겨보는 건 어때?"

"예?"

"미친!! 아 형! 그게 뭔 말도 안되는 소리야! 우리 꽃 같은 재우를 고작
저런 내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놈한테 보낼 순 없다고!"

"맞, 맞아요! 누구라도 한번 사겨보고 싶지만 쟨 아니잖아요!"

"그치만 너 아까 그렇게 싫어보이진 않던데?"

"허, 헐. 형 아니거든요?! 완전 잘못 짚었거든요?! 맹세코 저 새끼가
웃는 걸 보고 심장이 떨렸다던가 그런거 절대 아니라고요!"

"...."

"...."

"아니에요! 아니야!"

"재우, 진짜 다른 애는 몰라도 쟤는 아니다."

윤겸을 주제로 우리끼리의 조용한 토론 대회가 이어진 지 1시간 째,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 난리 법석인 와중에 남자가 나에게 와서 말을
한번 걸었지만 나는 공을 한번 튕기듯이 그 남자를 가볍게 거절했따.

"너.. 오늘 이상해..! 왜 아까는 쪼그라든 단무지처럼 어색해 하지도
않고! 아주 멀쩡하게 거절했어!"

''이왕 이렇게 된거 한번 사겨보는 건 어때?''
영주가 이 말을 했을 때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진짜 죽도록 인정하
기는 싫지만 난 윤겸한테...악 윤겸한테 발톱의 때만한 미련이 있긴
했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게 확실해 뇌로는 절대 싫다고
하고 있는데 이놈의 심장은 왜 뇌의 말을 안듣는거야.

"몰라.. 아아-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오, 여기 단골이었는데,
사장님 오늘부터 우리 헤어져요..."

아까 낯선 남자가 말을 건 이후 더욱더 뜨거워진 윤겸의 시선을 무시
하고 오늘은 빨리 이곳을 그냥 나가는게 나을 것 같아 현우와 영주에게
인사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계속 앉아 있다가는 윤겸이 당장이라도
다시 내가 있는 자리에 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가는 중에 한번
눈이 마주쳤을때 눈빛이 아주 이글거렸다. 삼겹살 구워도 아주 바
싹 익을 정도로...

밤 10시, 거리는 건물의 불빛으로 반짝 거렸지만 내 기분은 아주
어두웠다. 택시를 잡으러 가려는 찰나 누군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

내 손목은 잡은 사람은 역시 윤겸이였다. 설마 따라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진짜 따라 나올줄이야...

"저기..! 이미 거절했지만.. 그, 도저히 그냥 이대로 보낼 수가 없어서.."

"너, 나 몰라?"

"어....?"

윤겸은 내 말을 듣고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진짜... 잊어버린거야...? 모른 척이 아니라 진짜로?''

"됐어요,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돌아서려는 나를 윤겸은 다시 또 붙잡았다.

"아오! 싫다니까 왜 이렇게 질척거려!"

윤겸은 나게게 작은 쪽지를 내 손에 쥐어주더니 도망치듯이 다른 쪽으로
달려나갔다.

이건 또 뭐야.

손에 쥐어진 쪽지를 펴보니 윤겸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

나는 종이를 바지 주머니 안에 넣었다.

작은 종이더라도 쓰레기는 쓰레기니까.. 쓰레기를 길 바닥에 버리는
건 도덕적 윤리를 12년의 도덕을 배운 성인으로서 아주 나쁜 행동
이라는 걸 아니까...! 북극곰이 집을 잃고 있으니까...! 절대 연락해볼려고
주머니에 넣는 건 아니다! 집에 가면 쓰레기 통에 넣을 거다!
진짜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한 뒤에 씻고 잘 준비를 마치고 나서 침대 위에
다이빙 하듯이 몸을 던졌다.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 화면
을 보니 현우한테 카톡이 와 있었다.

''야! 너 나가자 마자 그 새끼도 따라 나가서는 안오던데? 무슨 일
없었어?''

''따라 오더니 지 폰 번호 적은 종이 쪼가리 나한테 주고 토낌''

''헐 미친, 미친 새낀가.''

''일단 집에 가져옴''

''연락해볼거?''

''아, 모르겠다. 일단 그냥 자고 생각할려고..''

''어휴, 그래 일찍 자라.''

''오케이이.. 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ㅋㅋㅋㅋ 알았어 낼 다시 톡할게''

''오냐''

눈부신 휴대폰 화면을 침대에 엎은 채 나는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아 거의 1시간을 뒤척였다. 함참을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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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16 23:00 | 조회 : 1,35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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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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