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은은한 강(4)

기관총이 난사되는 소리가 거슬렸다. 가람은 얼굴을 찌푸렸다.

순식간이였다. 가볍게 허공으로 뛰어오른 가람이 주변의 적들을 처리해버린 것은.

한 손으로는 적들의 뒷목을 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윤을 단단히 받쳐든 채, 가람은 마치 이 공간이 자신의 것 마냥 날뛰었다.

“휘유~”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짧은 박수 갈채도.

“...어이, 가운 입은 아저씨.”

“엥, 형이라고 불러요. 나는 고작 22살이라고요?”

“그럼 노안인가 보지, 아저씨.”

“거참... 차라리 이름으로 부르던가요. 본명은 이신, 조직 내에서는 시나브로, 라고 불리고 있죠.”

시나브로라... 사전적 의미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이였다. 모르는 사이라니, 무척이나 불쾌한 이름이였다.

“아니 왜 이름이 신이야, 숭배하는 것 같잖아. 나는 무교라고.”

중간에 끼어든 윤이 무표정하게 내뱉었다. 업혀서 골골거리며 자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럼 시나브로라고 부르던가요.”

“아 오케이. 헤이, 브로(bro)~”

“...진짜-”

신은 벌컥 화를 내려다가 참을 인자를 마음속으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세기며 주먹만 꽉 쥐었다.

어차피 그는 싸움 쪽으로 강한 능력자가 아니였다. 방어 바리케이트 정도만 칠 수 있는데다가, 자유자제로 다룰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아까 큰 1인용 병실을 전부 막아버린다고 한계치까지 몰아서 써버렸다.

능력자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분명 능력자는 엄청 대단하고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초인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그들에게 한계는 무척이나 급작스럽고, 빠르게 찾아오는 데다가 그 한계를 넘어버리면 능력의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러니까 능력이 ‘축복’이라고 여겨지지만은 않는다는 것이였다. 오히려 ‘저주’에 가까웠다. 결국 사람을 파멸로 이끌 ‘저주’에.

예를 들어서 윤은 보통 능력자들이 보아도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다.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능력.

그러나 그만큼 리스크가 감당할 수 없이 크기도 했다.

따라서 능력을 조금만 사용해도 금방 몸의 어딘가가 고장난다는 것이다. 아까처럼 피를 토하거나, 몸에 상해를 입는다거나, 심하면 내부 기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신이 속한 조직은 이러한 리스크를 최대한으로 줄여주면서, 능력은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러므로 윤은 최고의 실험체였다. 또한 연구에 대한 답을 떡하니 그냥 내놓아 줄지도 몰랐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다름 없었다.

“것보다 시나브로. 병원에 계신 다른 분들은 모두 무사한 거겠지?”

가람의 물음에 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기관총을 난발해대는데 그 소리가 병원 데스크와 진료실까지 들리지 않을 리가 없어. 그런데 아무도 여기로 오지 않는다는 건 너희가 무슨 수작을 부렸단 거지.”

“후후.. 그렇군요. 걱정말아요. 우리는 민간인은 건드리지 않아요. 약하잖아요?”

윤은 그 말에 움찔하더니 피가 묻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고는 가람을 툭툭 쳤다. 가람은 가볍게 그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약하기 때문이 아니야. 정말 약해서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 그저 어리석은 위선자 흉내지.”

“흐음?”

“민간인은...”

윤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람은 그런 그를 조용히, 묵묵하게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다.

윤의 주변 사람들은 쓰레기였다. 어릴 적, 윤이 자신의 능력을 잘 컨트롤 하지 못했을 때, 그의 능력을 깨달은 부모는 경악하며 그를 학대했다.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5살 때부터 윤은 부모의 폭력 아래서 자랐다. 그런 그가 유치원에 들어왔을 때 역시 평범하게 지낼 수 있기가 만무했다.

그저 벽의 구석에 무릎을 감싸고 웅크려서 유치원 활동시간 내내 자리를 지켰던 아이. 가람은 그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렸다.

윤과는 다르게 가람은 친구도 있었고, 아껴주는 부모님도 있었다.

6살에 갑자기 능력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이를 컨트롤 할 줄 알았다. 이것을 남에게 쉽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한 척, 따분하게 지내던 와중에 윤을 만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존재만으로 주변을 압도시켜버리는 사람. 그게 바로 윤이였다.

가람은 희열을 느꼈다.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 하나만으로, 생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가람은 궁금해졌다. 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일부로 다가가고, 도발도 했다. 그러나 윤은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피했다.

그러자 가람의 궁금증은 더더욱 커져갔다. ‘어떤 사람일까’, 로부터 시작한 관심은 어느새 ‘갖고 싶다’ 라는 집착으로 변화했다.

하루라도 그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을 정도로.

*

“됐고. 그래서 이제 슬슬 물러날 때는 안됐어?”

윤의 손끝이 덜덜 떨리는 것을 눈치 챈 가람이 재빠르게 이야기의 논점을 바꿨다. 이를 알고 있던 신은 씨익 웃음지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네가 정할 건 아닐텐데. 지금이라도 네 목 정도는 내가 따갈 수 있거든.”

가람이 잘게 떠는 윤을 제 품 안으로 끌어들이며 신에게 쏘아붙였다.

평소라면 거부했을 윤이지만 이번만큼은 가람의 품에 묻히고는 그의 후드를 꽉 잡았다. 그런 그의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넘긴 가람이 신을 바라보았다.

“그것 참 무서운 협박이군요.”

신은 자신의 가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성윤 군. 다음에는 보디가드가 없기를 바랄게요.”

“...꺼져..”

윤의 작은 대답에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나저나 이것들은 어쩌지.”

가람이 중얼거렸다.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조직 쪽 사람들이 문제였다. 뒷목을 쳐서 기절시킨 것이긴 하지만 제법 처참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은..가람”

“응?”

겨우 떨림이 진정된 윤이 그의 후드를 슬쩍 잡아당겼다.

“하아.. 그래. 알았어.”

가람은 그의 죽은 고동빛 눈동자를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냥 탈주해버리자, 라는 눈빛이라니.

겁 먹은 듯 한 윤도 결국 성윤이네.

가람은 웃긴 듯 코웃음을 흘리고는 그대로 품 속의 윤을 안아올렸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성윤.

어떻게 다시 만난 인연인데, 고분고분하게 넘겨줄 수는 없지.

여전히 그 새하얀 피부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멍과 상처는 저절로 이를 갈게 만들어. 10년 전에도 그랬 듯이 말이야.

있지, 윤아. 적어도 너만큼은 나에게 가둬버리겠어.

너는 자꾸만 내 손을 벗어나버리잖아. 자꾸만 자신을 희생하며 어디론가 가려고 하잖아.

솔직히 그럴 때면 강제로 네 두 눈을 가리고 두 귀를 막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걸? 네가 화낼 거잖아.

그러니까 나를 자극하지 마.

옅은 숨결이 볼에 닿았다. 언제부터인지, 눈을 감고 잠든 윤이 보였다.

가람은 눈을 반쯤 뜬 채 웃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나만의 성윤으로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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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4-21 23:28 | 조회 : 1,119 목록
작가의 말
하젤

가람이의 집착성을 느낄 수 있는 화였습니다.. 로맨스물 쓸때도 이정도의 집착은 넣어본 적 없었는데... 조금 필력이 딸리는 듯해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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