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획득(獲得) 뒤엔 상실(喪失), 상실(喪失) 뒤엔 획득(獲得)

「보다 순조로운 이해를 위하여 세계관 설정을 참고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읽으시면서 이해가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것은 세계관 설정을 참고하셔서 봐주세요.」

연참 (1/1)

“ 그동안 감사히 쉬다 갑니다. ”

“ 아닙니다. 백작의 은혜의 대한 보답으로는 부족하지요. 언제든 보스켓 백작가를 환영하겠습니다. ”

아침 해가 밝고 아빌은 약속대로 일주일이 끝난 지금 백작저로 돌아가려 마차 앞에 서 있었다. 그런 그를 배웅하러 시녀와 집사들은 물론 기사들도 나와 있었다.

“ 아빌, 또 만날 거지? ”

로코가 울상을 지으며 아빌을 바라보았고 아빌은 그 모습에 주변을 느릿하게 훑어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도 괜찮다면. ”

아빌의 말을 들은 로코는 금세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로코뿐아니라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빌은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불안하고 두려워 오늘이 오기가 무서웠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오늘은 기분 좋은 따스함만 맴돌고 있었다.
알리카가 저의 손을 잡아주고 난 뒤부터 그 온기가 오늘까지 이어진 듯 했다.
제 손을 내려다보던 아빌은 고개를 천천히 들며 제 앞에 선 알리카를 바라보았다.
알리카는 아빌과 몇 초 서로 눈을 맞추다 조심히 입을 열었다.

“ ..다음에는 ‘친우’로 서롤 만날 수 있음 좋겠군요. ”

“ ... ”

“ 만일 저와 친우가 될 마음이 있으시다면.. 그때는 절 알리카라고 불러주십시오. ”

알리카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고 어쩐지 아쉬운 듯한 얼굴을 지었다.
얼핏 보면 마치 보내기 싫은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아빌은 곧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고 아빌은 타기 직전 발을 멈췄다.
제게는 너무 과분하고 두려운 것일지라도 아빌은 이번에는 그래도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리자의 말이 없었더라면, 알리카의 잡아주던 손이 없었더라면, 지금 저 사람들이 없었다면 차마 꺼낼 생각도 못 했을 그것을 이번에는 잡아보고 싶었다.

“ ..? 백작? ”

“ ..후회는 미리 하는 것이 아니라고.. ”

“ ..예? ”

알리카가 아빌의 의미모를 말에 미간을 작게 찌푸리다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마차에 타기 위해 몸을 돌렸던 아빌이 저를 보며 부드럽게 설핏 웃고 있었다.
작게 올라간 입 꼬리와 겨우 살짝 휜 눈이었지만 정확하게 그는 웃고 있었다.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알리카. ”

그 말을 남긴 아빌은 마차에 올라타고 멍한 알리카를 뒤로 한 채 멀어져갔다.
로코가 방금 뭐냐고 옆에서 시끄럽게 종알거렸고, 그 미소를 본 혹은 아빌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도 했지만 알리카는 들리지 않았다.
그냥 아까부터 아빌의 모습이 계속 반복재생 될 뿐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아빌은 창밖을 보며 말발굽 소리에 맞춰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알리카라고 내뱉었던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어딘가 답답한 제 가슴에 숨을 크게 들이 마쉬었다.

“ 리자. ”

“ ...예? ”

아빌의 작은 부름에 리자가 눈을 깜빡이며 아빌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어려 있는 작지만 부드러운 미소에 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벌렸다.

“ 고맙다... ”

“ 아, 아아.. 아닙니다..! ”

리자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제 치마를 꽉 쥐었다.
아빌은 간질거리는 오늘에 마차를 타는 내내 그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

“ 진짜 이건 말도 안 돼..나한테도 아직 이름을 안 불러줬는데.. ”

아까부터 웅얼웅얼 거리며 한껏 짜증이 오른 로코가 애먼 펜을 계속 부셔먹었다.
알리카도 사실 그 아빌이 바로 불러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멍했다.
그렇게 제 마력이 마음에 들었나 싶어 좋으면서도 동시에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아직까지도 아빌의 미소가 계속 떠오르지만 그보다 먼저 끝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 아빌 보,.. 아빌도 갔으니 바로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랭게스타’ 클럽의 조사를 맡긴 체리바가 죽었다. 체리바 정도의 티어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죽인 정도라면 더는 지체할 수 없겠지. ”

“ 근데 랭게스타는 아빌이 계속 지냈던 클럽이라며? ”

로코가 펜을 부수던 것을 멈추고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랭게스타를 조사하게 된 계기는 아빌이 그곳에 다녔기에 시작된 일이었다.
랭게스타가 평범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은 이미 반 증명 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고급클럽만 다녔던 아빌이 그곳을 다닌 이유는 무엇이며 갑자기 가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아빌 백작님이 하시는 시가에는 마뱃잎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기시고 위기감이 들어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신 것일 수도 있죠. ”
칼리도가 아빌의 시가를 언급하며 가설을 하나 세웠으나 포코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위기감... 느껴 멈출 수 있으면... 약으로 죽는 사람...없어..”

“ ...아빌에게도 무언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먼저 신경 쓸 것은 랭게스타다. 아시페로가 내 우측에 서고 칼리도는 주변 사람들을 대피시켜라 어쩌면 피해가 커질 수도 있으니.. 로코는 앞을, 포코는 뒤를 맡아라. 위험하다 생각이 들면 개인의 판단에 맡겨 싸움을 허용한다. 우선적으로 2층 확인 및 필요시 제거, 체리바의 시체를 혹시라도 발견한다면 회수하며 그 밖의 다른 것을 발견한다면 제 목숨을 우선으로 놓고 개인이 판단하라. ”

알리카의 말에 티어들은 일체 고개를 끄덕이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칼리도가 동물들에게 클럽을 주시하라 명령했어도 동물들은 공기 중의 마약으로 클럽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깊은 내부의 일은 그들이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하고 적당한 판단으로 이를 해결해야 했다.

“ 기사들은 클럽 안으로 들어오라 하지 말고 밖에서 대기하라 일러라. ”

알리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를 따라 다른 이들도 일어섰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은 빠르면서도 조용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소음은 적들을 숨겨주고 고요함은 적들의 소리를 들려주니까.

***

“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 ”

“ 하루, 아니 반나절만 있으면 될 것 같아. ”

신들라가 롭의 말을 듣더니 화장품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공을 들여가며 능숙하게 제 얼굴에 색을 입혀갔다.
원래도 아름다운 그녀가 화장을 하니 상상이상으로 매력적으로 변했다.
아름답게 포물선을 그리는 붉은 입술에 시선이 팔리는 순간 제 몸 어딘가는 꿰뚫린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여자였다.

“ 그럼 준비? ”

“ 그래, 슬슬 싹 정리해야겠어. ”

“ 후후.. 그러면 나는 우리 겁쟁이를 만나러 가볼게? 걱정은 하지 마. 반나절 안에는 올 테니까. 뭐 여차하면 겁쟁이도 데리고 올게. ”

신들라는 붉은색의 쫙 달라붙는 옷을 입으며 신이 난다는 듯이 핑그르르 돌았다.
눈이 과하게 휘어지며 입 꼬리가 귀까지 올라가 찢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녀와 괴리감이 들었다.

“ 어머, 화장 무너지겠네. ”

소름 돋게 웃던 것이 환각이었던 듯 고혹적인 미소로 돌아온 신들라가 우아하게 몸을 틀었다.

“ 다녀올게~ ”

“ 늦지 마. ”

롭의 말에 신들라는 알았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롭이 신들라가 나간 방문 쪽을 보며 혀를 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사이코적인 변태 성향은 롭도 이해하기 어려운 성향이었다.
어느덧 얼굴가죽이 벗겨진 여자의 몸에서 핏줄이 돋아나듯 검은색의 줄기가 피부를 뚫고 이리저리 뒤엉켰다.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은 롭은 방문을 닫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끼익-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약을 끼고 놀며 여기저기 늘어진 멍청한 사람들을 보던 롭은 낡은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남자, 알리카 아르테가 그곳에 있었다.
뛰어난 호우트이자 그에 곁에 있는 뛰어난 티어들에 부족할 거 없는 남자라며 찬양을 듣는 남자다. 그런 남자가 이런 낡은 가게에 들어온 것에 롭은 실눈을 크게 떴다.
곧 다시 실눈으로 웃으며 알리카에게 다가갔다.

“ 손님이신가요?”

“ ... ”

“ 그 유명하신 알리카 아르테 후작님과.. 아시페로님, 로코님과 포코님도 계시는군요. 칼리도님은 안 오셨나보지요? ”

“ ... ”

롭은 사근사근하게 말하며 정갈하게 걸어왔다.
어느 시점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가만히 웃고 있었다.
롭은 그들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 아, 손님이 아니시면.. ”

그들이 무언가 냄새를 맡았음을.

“ 불청객이십니까? ”

***

“ 어서오십시오. 하이빌 토벌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마차에서 내리는 아빌을 오른이 반기며 상체를 숙였다.
오른은 저번 알리카와의 대화가 다시 떠올라 차마 아빌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 했다.
계속해서 드는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 아빌이 집으로 들어간 후에도 고개를 들지 못 했다.

“ 목욕물을 준비할까요? ”

아빌의 겉옷을 받아든 리자가 물었고 아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방으로 가려 리자와 함께 몸을 돌리던 아빌은 곧 저를 부르는 오른의 말에 멈춰 섰다.

“ 백작님, 영지일로 알려드릴 일이 있어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아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무실로 몸을 돌렸다.
리자가 목욕물의 입욕제는 민트로 해도 되겠냐고 묻자 아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른을 따라갔다.

“ 최근 엘먼의 숲 마물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체수가 많을 뿐 그 힘이 강하지는 않다고 합니다만.. 이미 겨울 토벌을 한 차례 했음에도 되레 그 양이 늘어났습니다. ”

“ .. 엘먼의 숲 토벌은 이미 한 달 전에 했는데.. 그 한 달 사이에 늘어났다는 말인가? ”

“ 예, 그 뿐이 아니라 어째선지 타부들의 양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타부는 티어들이 마물화한 형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건.. 어떤 단체의 의한 일이 아니라면.. ”

오른이 최근 계속 들어왔던 영지민들의 말을 적어놓은 종이를 아빌에게 넘겨주었다.
오른이 건네준 종이에는 대부분 마물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일에 관한 것이었고 한 번 더 토벌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종이의 내용을 읽던 아빌이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 단체라 함은? ”

“ 단체의 의한 타부, 마물 발생사건은 전례에도 꽤 있습니다. ”

오른이 무어라 더 말하려다 갑자기 아빌의 눈치를 보았다.
아빌이 의문을 가지며 더 말해보라 재촉하자 오른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 ‘신’을 믿는 단체 중 어떠한 단체는 그들이 신이 되고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완전히 새로운 신을 믿는 거죠. 그런 그들은 결국 범하는 겁니다... 결코 범해서는 안 될 ‘금기’를 ”

“ ... ”

“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금기’를 범한 자는 결코 살아남지 못하고 결국 티어는 타부로 누마는 마물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한 명이라도 문제인데 단체로 번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원이 50명이라면 50이 100명이라면 100 전부가 타부와 마물이 되는 겁니다. ”

“ ..타의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건가? ”

“ 예, 본인이 원치 않아도 타의적으로 금기를 범하는 일도 있죠. 그러나 그러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야지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그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허나 그것이 비인간적인 일임은 확실하지요. ”

오른의 말을 듣던 아빌은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며 문득 아빌의 일기 마지막장이 떠올랐다.

「페르체력 976년 10월 28일
드디어 나도 ‘신’이 될 수 있다. 그 망할 알리카보다 강인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나를 우러러 볼 터다. 나는 신이 될 수 있는 ‘그릇’이다.
우선 신이 되면 그 알리카를 죽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게 하겠다. 그리고 또 그리고 나를 무시했던 아시페로를 내 발 밑에 깔고 벌을 주겠다. 나를 속으로 비웃던 칼리도는 .... 이게 전부 ‘그들’ 덕분이다. 내가 신이 된다면 그들은 기꺼이 거둘 것이다.
그들은 신을 받드는 이고 나는 신이 될 이니까. 나는 ....」

‘ 신.. ’

아빌은 미간을 찌푸리며 당장 가서 일기장을 다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뒤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 오른, 일단 토벌대를 다시 꾸려라. 그 토벌에는 나도 참여를.. ”

“ 꺄아아악!!!! ”

“ !!! ”

아빌과 오른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카롭게 내지르는 비명에 아빌과 오른은 급하게 나갔다.
시녀와 집사들이 다들 사색이 되어 있고 어떤 이는 토를 하고 있었다.

“ 무슨 일이냐! ”

오른이 다급히 묻자 시녀 한 명이 눈물을 잔뜩 흘리며 당장이라도 실신할 듯 떨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저 앞을 가리켰다.
아빌과 오른이 그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손가락이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넷.. 보이는 것만으로 4개 정도 되는 얇은 손가락이 줄을 맞추듯 떨어져 있었다.
오른도 사색이 되어 당황해 했고 아빌은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점점 들어올렸다.
2층, 손가락은 2층으로 가고 있었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가르고 아빌은 빠르게 손가락을 쫓아갔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손가락을 하나하나 쫓아가다 열 번째.
열 번째의 손가락이 아빌의 방문 앞에서 끊어졌다.
아빌은 순간 피가 싸하게 식어 들어갔다.

마치 길 안내라도 되는 듯 잘린 손가락들이 가리킨 제 방, 딱 10개의 손가락, 그리고 제 방에 반드시 있을 한 사람.
아빌은 터질 듯 빠르게 뛰는 심장에 급히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비릿한 혈 향과 향긋한 민트향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다.

“ 끄윽..끕...읍..아..... ”

괴롭다는 듯 희미하게 들리는 신음소리가 욕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빌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떨리는 손으로 욕실 문고리를 잡았다.

‘ 제발...제발제발제발..! ’

달칵.

욕실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는..

“ 어머, 우리 겁쟁이 왔구나? 다행히 왕겁쟁이는 아니었나봐? ”

“ 아-아아...아으.. ”

제게 눈웃음을 짓는 아름다운 여자와 그 아름다운 여자의 뿌리 같은 몸에 묶여 공중에 괴로움을 내뱉고 있는 리자가 보였다.

7
이번 화 신고 2020-04-08 19:32 | 조회 : 956 목록
작가의 말

이 정도면 제가 그냥 아빌 행복한 꼴을 못 보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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