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작은 변화(變化)는 커다란 파도(波濤)

「보다 순조로운 이해를 위하여 세계관 설정을 참고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읽으시면서 이해가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것은 세계관 설정을 참고하셔서 봐주세요.」

“ 너, 너 뭐야? 너 이렇게 강했어? 어? 어? 야! ”

아빌은 제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로코의 말은 무시하며 앞으로만 걸었다.
로코는 그런 아빌에 답답해하면서도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빌이 후작가에 들어오자 시녀와 집사들은 아빌의 꼴을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경악했다. 마물의 피를 잔뜩 묻히고 있어 고약한 냄새가 남에도 로코는 딱 붙어서 계속 조잘거렸다.

‘ ... 시끄러워. ’

아빌이 미간을 좁히며 바로 로코에게서 벗어나려는데 시녀의 짧은 탄성에 시선을 돌렸다.
시녀는 눈이 마주지차 기겁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지만 아빌은 그 시녀가 제 발 밑을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 ... ”

아빌이 발밑을 내려 보자 제 몸에 묻어있던 마물의 피가 아빌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빌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서자 로코는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 ..? 왜 그래? ”

“ ... ”

아빌이 갑자기 멈춰 서자 시녀와 집사들도 의문을 표하며 당황스런 눈빛으로 아빌을 바라보았다.
그런 아빌의 의도를 아는 듯 알리카가 입을 열었다.

“ 그냥 들어와도 됩니다. ”

“ ... ”

알리카의 말에 아빌은 시녀를 흘깃 보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빌이 서서히 다가오자 알리카는 아빌의 옆에 있는 로코의 표정을 보고 픽 웃었다.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다음에는 마물의 피를 덜 묻혀와 보십시오. ”

알리카의 말에 아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고갯짓에 주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아 멍해졌다. 그 아빌이 알리카의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다니 그들은 그 모습은 평생, 아니 죽어서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모습이었다.
알리카의 옆에 있던 칼리도는 로코의 표정을 보며 알리카의 말이 맞았음을 인정했다.

‘ ..로코가 저럴 정도로.. ’

칼리도가 고개를 들어 마물의 피가 잔뜩 묻은 아빌을 바라보았다.
칼리도는 제 정보를 가장 믿는 이다.
그랬기 때문에 제 정보 속에 있는 아빌은 결코 틀릴 일이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정보 속의 아빌이 가진 긴 머리카락도 무식함도 나약함도 저 아빌과는 단 하나 일치하지 않았다. 굳이 일치점을 찾는다면 기껏해야 눈 색과 머리색 정도일까.

‘ 내가 너무 자만했어.. ’

칼리도는 제 정보를 너무 믿어 알리카를 믿지 못 한 것에 씁쓸한 입을 다셨다.
또한 부족했던 제 정보수집에 반성하며 다시 그에 대해 자세히 정보를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 일단 씻으셔야겠군요. 준비 된 방으로 내어드릴 테니 올라가서 씻으십시오. 시녀는.. ”

시녀라는 소리에 따라왔던 리자가 쪼르르 달려와 아빌의 옆에 섰다.
알리카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집사를 붙여 아빌을 방으로 올려 보냈다.
아까 아빌의 발 밑을 보던 시녀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아빌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벌렸다.

‘ 설마.. 치우기 힘들어 할까봐 멈춘 건가..? ’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던 시녀는 곧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 에이..설마.. ’

***

몸을 씻고 리자의 도움을 받아 아빌은 편하게 방에서 쉴 수 있었다.
리자가 저녁식사의 여부를 물어 아빌은 고개를 저었으나 알리카는 밥은 먹어야 한다며 방으로 식사를 보내왔다.
어느 정도 배를 채워 식사를 마치자 해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슬어슬해지는 하늘을 보며 아빌은 창가에 앉아 바람을 쐬었다.
시리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빌의 볼을 스쳐 발갛게 물들였다.

“ ...음? ”

아빌이 바람을 쐬다 아래쪽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아빌이 지그시 보자 아래쪽 사람도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들어 아빌을 바라보았다.
제 옆에서 조잘거리던 로코와 똑 닮은 외형에 검은색 머리카락과 붉은색 눈동자가 칠해진 사람이 아빌의 눈에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선을 주고받았을까 아래쪽 사람이 먼저 몸을 돌려 정원 쪽으로 향했다.

‘ 쌍둥이..? ’

아빌이 그 남자가 사라진 정원 쪽을 계속 바라보다 리자의 손이 제 앞으로 내밀어진 것을 확인했다. 리자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이 아닌 시가였다.
그러고 보니 아빌의 일기장에 ‘알리카를 만나고 온 날이면 꼭 시가를 피워야 기분이 나아졌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리자는 지금껏 제게 시가를 준 적이 없었음에도 이번에는 주는 것이 아빌의 눈치를 살피다 겨우 내어준 듯싶었다.

“ ... ”

아빌은 리자의 손에 있는 시가를 들어 제 입에 가져갔다.
연이라는 것이 남아있을 적, 그 연을 잃었을 때 아빌도 담배라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기댈 사람이 없으니 기댈 것은 그에게 물건뿐이었다.
아빌이 시가를 물자 리자가 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
시가가 타들어가고 아빌은 담배일 적의 버릇 때문에 실수로 시가의 연기를 크게 삼키자 독한 연기가 목구멍을 강하게 강타했다.

“ 큽..! ”

숨이 막히다 못 해 따가운 독한 연기에 아빌은 연신 잔기침을 하며 입에서 시가를 떼었다.
그 순간 아빌의 목이 뜨겁게 불타는 것이 느껴졌다.

“ 커억!!.. 켁.. 콜록 ”

아니나 다를까 목구멍을 타고 피가 올라와 바닥에 쏟아졌다.

“ 꺄악!!! 백작님!!!”

리자가 피를 토하는 아빌을 보며 당장 쓰러질 듯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아빌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계속 기침을 해댔고 리자는 안절부절하며 아빌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 리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집사장이 급히 들어왔고 아빌의 모습을 보자 사색이 되어 의사를 부르겠다며 난리를 피웠다.
아빌이 소란스럽게 구는 집사장을 저지하려 제 입에 묻은 피를 주섬주섬 닦아냈다.
기침이 잦아들어 입에서 손을 떼자 손 위에 처음 각혈을 했을 때와 같은 검은색의 끈적한 덩어리가 눌어붙어 있었다.

‘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데.. ’

아빌이 제 손에 눌어붙은 끈적한 검은색 덩어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한 촉감이 손에 닿자 아빌은 이 액체를 빨리 없애려 일어섰다.
그러나 그것은 순식간에 타인에 의해 저지당했다.

“ ...백작, 시가를 피우셨습니까? ”

알리카가 아빌의 손에 들린 시가를 낚아채며 아직 덜 꺼진 시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알리카는 아빌이 아무 말 하지 않자 시가의 불을 손가락으로 눌러 꺼버렸다.
아빌이 멍하니 올려다보자 그의 눈이 퍽 싸늘하게 굳어 아빌의 몸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 ..피웠습니까. ”

“ ..예 ”

아빌이 알리카의 날선 질문에 긍정을 표하며 일어서다 멈춘 어정쩡한 자세를 풀며 상채를 일으켰다.

“ 하버트. ”

“ 예, 후작님. ”

알리카의 말에 집사장이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다가왔다.
알리카는 집사장에게 꺼진 시가를 건네며 낮게 읊조렸다.

“ 조사해와. ”

“ 예,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

하버트가 시가를 받아들고 빠르게 방을 나섰다.
리자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아빌과 알리카를 번갈아 보다 알리카의 지시로 의사를 부르러 그녀마저도 방을 나섰다.

“ ... ”

아빌이 여전히 다소 멍한 눈으로 알리카를 바라보자 알리카는 그런 눈을 무시하고 아빌의 손목을 잡아 돌렸다.

“ 이건 뭡니까. ”

알리카가 묻는 것은 아빌의 손바닥에 지독하게도 눌어붙은 검은색 덩어리였다.
안다면 대답을 해주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빌은 이것의 정체를 알지 못 했다.

“ ... ”

“ ...하 ”

아빌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알리카는 헛웃음을 지으며 아빌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빌을 보는 그의 눈은 다소 화가 담겨있는 듯 보였다.
알리카는 미련하게 제 병을 알리지 않으려는 아빌이 참으로 우습도록 짜증이 일었다.

“ 저도 모.. ”

아빌이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열자 문이 급히 열리며 의사가 들어왔다.
알리카는 아빌을 지그시 쳐다보다 손을 놓아주며 의사를 계속 붙여주겠노라고 말한 뒤 방을 나가려다 리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 적어도 후작가에 계시는 동안 백작에게 약은 물론 시가와 술 일체 주지 말아라. 네 눈으로 직접 봤으니 이를 거역하지는 않겠지. 그럼에도 행하겠다 백작이 말하면..”

알리카가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려 아빌을 바라보았다.

“ 내게 직접 와라. ”

“ 예,..예. ”

알리카는 말을 마치고서 방을 나갔고 방에는 상황 파악 중인 의사와 긴장한 리자, 멍한 아빌 뿐이었다. 아빌은 적지만 마력이 묻은 제 손목을 내려다보며 묘한 의문을 가졌다.

***

알리카는 아빌의 방을 나와 바로 제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들어온 알리카는 의자에 앉고 칼리도를 불렀다.
칼리도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알리카의 표정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 무슨 일 있었습니까? ”

“ ... 없었다. ”

“ 근데 왜.. ”

그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라고 물으려던 칼리도는 왠지 그 말을 꺼내면 안 된다는 위화감에 뒷말을 삼켰다.
알리카는 평소보다도 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아빌의 정보를 보고하라 일렀다.

“ .. 오늘 아빌 보스켓 백작을 보니 더 깊게 조사해 이것만이 사실인지 확인할 여부가 있어 보입니다만 일단 조사한 부분까지는 여기 있습니다. ”

칼리도가 다소 두터운 종이뭉치를 알리카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 종이뭉치에는 아빌 보스켓의 유아기 때 정보는 물론이고 가문의 대한 정보도 전부 있었다.
알리카는 한 장 한 장 빠르게 읽으며 종이를 넘겼다.
전부 다 읽은 알리카는 곧 별로 좋은 표정을 짓지 못 했다.

“ ...제법 다 아는 내용이군. ”

“ 맞습니다. 말 그대로 너무 솔직한 사람이었으니까요. ”

종이에는 아빌 보스켓의 문란함과 폭력성, 잔인함, 나약함의 대한 이야기만 가득히 적혀있었다. 알리카가 원하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비정상적인 싸움 실력은 뭐며 그가 어째서 저렇게 다른 사람처럼 구는지 하물며 그의 병이 무엇인지 조차 조사 된 것이 없었다.

“ 아, 그리고 백작이 변화를 보인 것은 한 달도 채 안 되었고, 변화를 보인 바로 전 날 아무도 방에 들이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

“ 아무도? ”

“ 예.. 창문도 모두 닫아 안쪽을 볼 수 없게 만들고 그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고... ”

“ ...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며 하루 내리를 방 안에서만 있었다라..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행했다는 건데... ”

알리카가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때 알리카의 눈에 종이뭉치 속 한 이름이 눈에 밟혔다.

“ 랭게스타..”

“ 네, 아빌이 유독 좀 몸을 오래 담군 클럽입니다.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해서 매일같이 마부를 이끌고 갔다고 합니다. 한 번 가면 저택에 있는 시간이 더 짧을 만큼이나 오래 머물러서 몇 번이고 거기서 자기도 했다는 군요. ”

“ ...분명 유명하고 고급스러운 클럽에만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랭게스타라는 클럽은 들어 본 적이 없군... ”

“ 랭게스타 클럽에서 주로 약을 많이 구매했다고 합니다. ”

“ ...뭔가 걸리는 군 랭게스타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해라. 그리고.. ”

알리카가 종이뭉치를 내려놓으며 칼리도를 바라보았다.
칼리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흑 사자에 대한 것 말입니까. ”

“ ... ”

알리카가 무언의 긍정을 하자 칼리도는 다소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 정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수가 너무 적고 이상합니다. ”

“ 이상해? ”

수가 적을 것은 예상했다.
기껏해야 숲에서 한 번 본 흑 사자 티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 것이고 당연히 정보가 부족하여 아무리 칼리도여도 조사하는데 발이 붙잡힐 것은 당연했다.
헌데 그의 입에서 ‘이상하다’라는 말이 추가되자 알리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 티어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이상합니다.. 동물들에게 정보를 모아보니 흑 사자를 본 동물들은 꽤 있었습니다. 다만.. ”

칼리도가 작은 수첩을 알리카에게 건네주자 알리카는 수첩을 펴 내용을 살폈다.

「*엘먼 숲 북쪽 바위에서 낮쯤 발견.
*엘먼 숲 강가에서 쉬고 있는 흑 사자를 대략 3시경에 발견.
*엘먼 숲 거목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흑 사자를 대략 7시경에 발견.
*엘먼 숲에서 흑 사자가 마물을 죽이는 모습을 대략 8시경에 발견.
*...
*...」

수첩 안에는 흑 사자의 목격 장소 및 시간이 적혀 있었다.
알리카도 수첩 내용을 보다가 기이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티어라면 불가능할 설령 가능할지라도 몸에 무리가 갈 티어의 완전체 지속시간이었다.

“ 물론 처음부터 쭉 본 것은 아니었지만 숲에서 둥지를 튼 참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적어도 그 흑 사자를 4시간 동안은 쫓아다닌 적이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티어가 완전체를 푸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답니다. ”

수첩을 확인하니 하루만 이런 것도 아니라 매일 이렇게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백작저로 향한 날 습격 받았던 때에도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그 흑 사자는 5시간 전부터 완전체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밤 동안 제 곁에 머물렀던 그 시간을 포함하면..
알리카는 이 미스테리 소설같은 내용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 이게.. 아무리 신수라도 가능한 일인가.. ”

“ 현재까지 최고 수준을 기록한 뱀, 라그리마는 당시 94%였습니다. 그 자가 완전체를 지속한 시간은 최대 7시간 .. 어쩌면 그 흑 사자는 생각보다 더 위험한 티어일 수도 있습니다. ”

“ ... 일단, 계속 정보를 모아라. ”

“ ...알겠습니다. ”

칼리도는 고개를 숙여 집무실을 나갔고 곧 집사장, 하버트가 노크를 한 뒤 허락이 떨어지자 부드러이 들어왔다.

“ 알아냈나. ”

“ 예, 알아냈습니다만.. ”

하버트가 주름진 미간을 더 찌푸리며 말을 꺼렸다.
알리카가 어서 말해보라고 재촉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 성분들은 그냥 판매되고 있는 시가와 비슷합니다. 헌데.. ”

오늘따라 왜 이렇게 헌데와 다만.. 근데 가 왜 이리 많이 들리는지 알리카는 한숨을 내쉬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주성분으로 상당한 양의 마뱃잎이 검출 됐습니다. ”

“ ..잠깐.. 마뱃잎이라고? ”

“ 예. ”

마뱃잎은 마물들의 뼈와 살점을 양분으로 크는 식물로 인간이 먹기에는 심한 부작용을 넘어 죽음에 이르게까지 할 수도 있는 식물이었다.
마뱃잎의 향만 맡아도 구토와 어지러움을 일으킬 수 있는데 그것을 아빌이 계속 들이마시는 시가에서 검출 됐다는 말에 알리카는 제 귀를 의심했다.

“ 마뱃잎은 함부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텐데? ”

“ ..그것이 저도 의문입니다. 시가에 들어간 마뱃잎의 양이 상당합니다. 조금만 더 마뱃잎이 들어가 있었다면 치사율을 쉽게 넘어 바로 죽으셨을 겁니다. ”

“ ..허 ”

알리카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황당함을 표했다.
어쩌면 저 몸에 있는 병이 마뱃잎으로부터 파생된 병일지도 모른다고 알리카는 생각했다.

‘ 불법적인 식물로 시가를 피우고 병에 걸렸으니.. 알릴 수도 없는 것이겠지. ’

어째서 제 질문에 답을 못 하고 의사에게 거짓말을 시키며, 제 병을 가리려 했는지 알리카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 수고했다.. 들어가라. ”

“ 예, 필요하시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

하버트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자 알리카는 집무실에 혼자 남았다.

“ ...후우 ”

알리카는 비명 소리에 찾아간 방에서 피토를 하던 아빌을 본 순간 순간적으로 괜히 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고 제가 그리 마력을 흘릴 정도로 화를 낼 이유도 없었다.
종이뭉치를 보면서 병의 대해 신경을 기울일 필요도 없었고 그저 그가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아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알리카는 멀쩡하게 뛰고 있는 심장부근을 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 ... ”


어쩌면 미련하게 제 아픔을 숨기는 모습이 제 심장에 새겨진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말을 한다면 도와주었을 터임에도 숨긴 ‘그 사람’의 미련함과 아빌의 미련함이 겹쳐보였다.

알리카의 심장을 무겁게 한 ‘그 사람’의 죽음을, ‘그 사람’의 숨김을 알아차리지 못 하고 결국 죽은 뒤에서야 안 제게 쥐어진 무게의 의미를 아리게 파내는 아빌이 감은 눈에서도 보이는 듯 했다. 알리카는 아빌의 모습을 빠르게 지워내고 속으로 계속해서 곱씹었다.

잊고 싶으나 잊어서는 안 되는 자신의 무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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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3-18 17:30 | 조회 : 1,586 목록
작가의 말

생각보다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너무 기뻐요!! ㅜ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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