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금기(禁忌)

「보다 순조로운 이해를 위하여 세계관 설정을 참고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읽으시면서 이해가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것은 세계관 설정을 참고하셔서 봐주세요.」

자욱한 흙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마물과 마인들의 시체만큼 사람의 시체가 너부러져 고약한 악취가 맴돌았다. 수 년 동안 이어져 온 전쟁에 황패해진 땅들과 하늘이 그들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을 버렸는지 보여주었다.
기괴하게 벌어진 공기 중의 틈이 괴이한 연기를 뿜어내며 휘몰아쳤다.
지금까지 저 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많은 배신과 공포, 절망만이 세상을 지배했다.

모두가 저 틈을 막기 위해서 싸웠고 많은 전쟁을 치르고서야 드디어 저 틈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한탄스럽게도 저 틈을 막기 위해서는 가까이 가야만 했고, 저 틈에 가까이 가면 틈에 휩쓸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즉,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만 했다.

삼천만으로 시작한 대군은 고작 300명 좀 안 되게 살아남았다.
이만큼 희생했음에도 한 번 더 희생을 해야 했다.
살았다고 희망을 느낀 사람들은 동시에 절망했고, 300명 모두가 아무 말 없이 그저 저 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온 몸에 피 철갑을 하고 한 손에 날카로운 검을 든 남자가 발을 떼었다.
남자가 틈을 향하여 발을 떼자 곧 그를 부르는 매서운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 이하율!!! ”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중년의 남자가 이하율이라는 남자를 불렀다.
걸을 수만 있다면 당장 뜯어말릴 만큼 간절한 목소리였다.

“ 이하율!! 돌아와!! ..”

그의 간절한 목소리에도 이하율은 멈추지 않고 틈을 향했다.
틈으로부터 나오는 괴이한 공기가 피부를 날카롭게 옥죄었다.
그러나 그는 숨을 조아오는 무겁고도 절망스러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하율,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마물에게서 잃고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 또한 빼앗긴 사람이었다. 신체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났고 마인들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가 나아갈 때면 그의 밑에는 늘 마물과 마인들이 너부러졌다.
이 마지막 전쟁에서 300명이라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휘와 검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하율아!!! 제발 돌아와!! 이 이상 희생하지 마!!! ”
중년의 남성이 기어코 창을 이용해 억지로 걸어오며 이하율을 저지했다.

“ ..승철씨. 승철씨는 돌아갈 곳이 있잖습니까. ”

이하율이 중년의 남성을 보며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중년의 남성이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며 다급히 말했다.

“ 너도, 너도 돌아가야지. ”

“ 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

“ 네가..! 네가 왜 없어..! 너도 있어!! ”

“ ...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친구들 하나 지켜주지 못 했습니다., 제 전우들도 수없이 잃었어요.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돌아가기엔.. ”

이하율이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300명의 사람들을 보며 희미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 저들 모두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은 전우들마저 잃을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

“ 안 돼!! 안 돼!! 하율아!!! ”

중년 남자가 급하게 뒤쫓았지만 하율은 미련 없이 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지탱하던 창을 놓쳐 넘어지고 악착같이 기어가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이하율이 틈에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왔고 그 틈을 향해 검을 쑤셔 넣었다.
기이한 파열음을 내면서 강한 빛이 일더니 그 빛이 이하율을 집어 삼켰다.

“ -하율아!!! ”

***

하율이 눈을 뜨자 자신은 온통 새까만 공간에 누워있었다.
틈이 자신을 집어 삼킨 뒤로 의식을 잃은 하율은 이곳이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땅을 짚고 상채를 일으키자 온 몸을 아프게 했던 공기는 물론이고 자신의 몸도 멀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율이 멍하니 밤 같은 어두운 공간을 둘러보자 일순간 밤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두 개의 금빛 눈이 떠올랐다.
새까만 밤사이로 달처럼 떠오른 큰 두 눈이 하율을 직시했다.

- 틈을 통해 들어온 자 -

“ ... 누구입니까. ”

- 나는 네가 될 미래의 너다. -

금안이 하율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 너는 곧 타인의 몸에서 눈을 뜨게 될 거다. 금기를 범한 누마의 몸에 말이다. -

“ ...금기를 범한 누마..? ”

- 호우트도 티어도 아닌 매우 나약한 존재. 누마. 그 누마가 금기를 범해 혼만이 소멸해버렸지. -

“ ... ”

- 색에 빠져 나오지도 못 하고, 횡포를 부리며, 어리석어 결국에는 금기를 범한 누마. 대영주, 아빌 보스켓. 그는 과분한 욕심을 냈고 신이 정한 결정을 뒤바꾸려 했다. 누마이면서 호우트가 되기를 바랐고, 그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된 금기였다. 금기를 행한 죄로 죽음의 안식도 없이 소멸했다. -

“ ...그 자는..당신입니까? ”

- 아니. 나는 그가 아니다. 다만 곧 그리 될 터이지. -

수수께끼와도 같은 말에 하율은 미간을 좁히며 금안을 바라보았다.

- 네 혼은 결코 그 세계에서 죽을 수 없다. ‘그’ 세계가 받기에 너무나 무거운 혼이지. 그래서 ‘이’ 세계로 온 것이지만 네 혼이 지금 안식에 들어가기엔 너무 무겁다. 그러니 몸만 남은 아빌 보스켓의 몸에 네 혼을 넣게 되었다. -

“ ... ‘이’ 세계는 뭡니까. 호우트나 티어는 뭐고..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

- 너를 여기까지 밀어 넣은 모든 것들을 네가 직접 겪었는데.. 못 믿을 건 뭔가. -

“ ... ”

- 호우트는 마력을 내포한 인간. 주인을 일컫고.. 티어는 두 존재를 가진 인간. 두 경계를 넘나드는 것. 동물을 일컫지. -

“ 그렇다면.. 저는 티어가 되는 겁니까. ”

하율의 말에 금색의 안광이 반짝이며 이채를 띄웠다.
금안이 무언의 질문을 날리자 하율은 손가락으로 금안을 가리키며 묵묵히 말했다.

“ ‘내가 될 미래의 나.’... ”

하율이 좁혔던 미간을 풀며 손가락을 내리곤 금안과 눈을 맞춘 뒤, 마저 말을 이었다.

“ 필시..당신도 아빌 보스켓에 들어가는 것일 텐데.. 누가 그 모습이 인간이라 하겠습니까.. ”

하율의 말이 멈추자 고요한 정적이 흐르더니 곧 온통 까맣던 검은색이 한 곳으로 일체 모였다. 하율의 앞에 나타난 것은 남자 성인 세 명 정도의 큰 흑 사자였다.
밤처럼 까만색의 털과 날카로우면서도 위압감이 있는 금빛의 안광이 분명 자신과 대화를 나눈 그 존재였다.

- 금기를 범한 누마는 나를 불러왔으나 티어의 몸으로 발을 내딛기도 전에 소멸했지. 너는 금기를 범한 ‘티어’가 될 것이다. 금기를 어긴 티어는 타부라 부르지만.. 넌 타부라 부르기에는 혼이 담겨 있다. 최초의 살아있는 타부네. -

“ ... 제가 그 몸으로 무언가 해야 하는 겁니까. ”

- 그것은 아니다. 네놈은 아빌 보스켓의 몸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냥 그가 되는 것이다. 정..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네 새로운 돌아갈 곳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

돌아갈 곳.
이하율에게서는 사라진 것이자 무서워서 만들 수 없었던 것.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며 그리웠던 것.

- 금기를 범한 죄로 아빌 보스켓의 몸은 뒤틀림이 생겼다. 이 때문에 몸은 거부반응 일으키고 리스크가 생길 터이다. 다만, 금기를 범했음에도 산 강대한 존재이기에 그 뒤틀림을 이겨내고 그 리스크는 오히려 너를 이롭게 만들 것이다. -

흑 사자가 점점 다가오며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하율과 얼굴을 마주했다.

-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이례적인 일이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동화하는 것은 처음인 일이니. -

흑 사자가 점점 모래처럼 흩어지더니 하율의 몸속으로 서서히 흡수되듯 들어왔다.
몸 안으로 들어오는 강대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에 하율은 거부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흑 사자와 하율이 동화되어 완전히 합쳐질 때쯤 흑 사자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 금기를 어긴 자는 그 자체만으로 리스크다. 네놈에게 ‘완전체’ 리스크는 결코 없을 터이지만 기억하라. 금기를 어긴 자의 삶이 그것 자체로 리스크임을.. -

***

그렇게 하율은 아빌, 아빌 보스켓으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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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3-14 01:48 | 조회 : 1,970 목록
작가의 말

1화는 사실 .. 제게 너무 어려운..네..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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