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위기의 순간에 사람은 늘 혼자다

"일단 나가 아버님을 설득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키네시스의 물음에 다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본인이 싫다고 하면 소용없어. 특기는 개인의 기분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니까 억지로 시켜봤자 도움도 없을 거야. 하기 싫은 일 강제로 하는데 기분이 좋을리가 없지."

"흠...
그래도 다행인 게 몇 개 있긴 있네요."

키네시스의 말에 모두가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손을 하나씩 꼽아 말했다.

"일단 미운털 박힌 사람이 듄 선배 뿐이란 거, 그리고 계약서는 아직 서장님한테 있단 거."

그때 사인이랑 지장 찍었죠? 키네시스는 햇살을 보석처럼 빚어낸 듯 밝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바다의 머릿속으로 새카만 글자들과 색바랜 종이가 떠올랐다.

'하긴 계약서가 있으면 꼼짝 못하긴 하겠구나.'

그럼 남은 건 하나 뿐이었다. 바다는 풀이 죽은 듄을 힐끗 바라보았다.

"듄 선생님. 선생님이 나가를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바다의 충고에, 듄은 잠시 자신이 나가만 실험했단 착각을 느꼈다. 민감한 듄조차도 그 상황에선 이상함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만큼이나 바다는 자연스럽게 상황을 정리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나는 한걸음 떨어져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동시에, 귀능이 소곤히 전하는 말을 들었다.

"그럼 이 일 전달할까요?"

다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해야하나, 하는 작은 중얼거림과는 달리 단호히 대답했다.

"당연하지. 당장 영정님께 연락넣어."


-


쿵. 쿵. 쿵.
박자라도 잰 듯 정확한 간격으로 문이 두들겨졌다. 모친에게 맞는 부친 모습이 보기 힘들었는지, 나가는 자기가 보겠다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하지만 인터폰에 떠오른 모습이 사뭇 무서운 모습이었다. 각도기로 잰 듯 직각으로 날 선 어깨와, 단정하게 다림질한 검은 양복. 검은 색 선글라스까지 껴 눈동자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무언가 번뜩이는 것이 느껴졌다. 맹수같이 사나운 눈빛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문 앞의 두 사람은 자기들끼리 무어라 쑥덕거렸다. 그 모습마저도 깡패같단 생각에 오싹함이 올라오기 직전, 그 중 하나가 인터폰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부에서 왔습니다. 특기자와 관련해 전할 말이 있으니, 문 좀 열어주십시오."

나가는 도와달란 듯 고개를 돌렸다. 굵다못해 땅을 파고 들어갈 낮은 저음에, 나가의 두 부모님은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초능력이니 뭐니, 나가의 모친은 처음에는 미친소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진지한 얼굴로 그리 대답하니 긴가민가했고, 스푼에서 억지로 끌고 와 부루퉁한 표정에도 군말없이 특기를 사용해 증언해주는 나가의 모습에 확신했다. 당황한 그녀의 얼굴 옆으로는 부친이 아끼던 식물이 두둥실 떠다녔다.

'그 상황이 몇 분 지났다고.'

나가의 모친은 팔짱을 낀 채 눈동자를 굴렸다. 불안한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저희가 전하고 싶은 정보는 간단합니다."

길게 말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듯 둘은 거실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친은 나가를 가로막고 서서 그들을 마주보았다. 그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는 손가락을 차례대로 펼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첫번째, 특기자에 대한 내용에 누설은 없을 것. 두 번째, 스푼에서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 종사할 것."

손가락 마디마디에 칼로 긁힌 듯 굵은 상처가 나 있었다. 위협감을 위해 그들을 보낸 것이라면, 분명 성공했다.

"거부한다면, 오늘 있었던 폭발의 수리비용을 전액 부담하셔야 합니다."

기계적으로 말을 마친 그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집의 내부를 대충 한 번 훑은 후, 아무렇지 않은 태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리 부유한 집안은 아닌 것 같으니, 후자를 선택하시는 것은 좋지 않을 겁니다. 금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리고....
신체적으로든 말입니다."

"하!"

곧바로 바람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입꼬리가 올라가 웃고 있다 생각할 수 있었으나, 눈썹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요새 정부는 깡패도 고용하나보군. 거절하면 때려서라도 입을 막겠단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걸 보니.
나가!"

부친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잔뜩 긴장하던 나가의 모친이 되려 몸을 움찔거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차올라, 가라앉은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특긴지 나발인지에 대한 걸 얘기할 생각은 없다만, 스푼에서 계속 일할건지는 네 의견이다. 네가 하기 싫으면 돈은 어떻게든 구할테니까 걱정말고. 너 하고 싶은대로 해."

입 안의 살을 짓씹이며, 세상에서 가장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런 잠재적 범죄자 놈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



듄에게도 고민은 많았다.

예상치못한 주아의 죽음에, 모두가 짐승의 피 서린 송곳니처럼 날이 선 상태였다. 험악한 분위기였다.
당사자인 바다는 꾸역꾸역 울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백모래와의 만남에, 듄은 본의 아니게 바다에게 신세를 진 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훈련을 강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그는 잠이 오지 않는 새벽. 한참을 생각했다.


계획은 자세하게 세워두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 날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당일이 되었을 때까지도, 듄은 끊임없이 고민했다. 과연 오늘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 것인가. 둘 다 힘들텐데 괜찮을까. 기분 나빠할텐데.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이 훈련은, 이 실험은, 이 날 밖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훈련은 빠를 수록 좋은 것 아닌가.

더 이상의 인력낭비는 금물이었다.


"그 날 이후로 둘 다 일주일정도 쉬라고 했다. 정신적으로 힘들 땐 쉬게 하는 게 최고지."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로....."

"오늘? 쉬라고 해뒀더니 또 굴릴셈이냐?"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얼른 하고 끝내는 게 낫지 않습니까."

듄은 애꿎은 주머니 속 담배만 매만졌다. 건조한 종이가 버석이며 손에 닿았다. 다나는 '그건 너한테나 해당되겠지,' 라며 중얼거렸다.
듄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창 밖의 먹구름을 살폈다. 버드나무처럼 늘어진 머리카락이 눈을 아슬하게 가렸다.

'그래. 인력부족인데, 가릴 게 있겠냐. 더 이상 죽 쒀서 개 주면 안되기도 하고.'

누구처럼.
다나는 마지막 말을 씹어삼켰다. 끝까지 듣지는 못했으나, 듄은 이해했다. 기껏 제 구실 하게 키워놨더니 적군으로 홀라당 붙어버린 놈 하나. 그 꼴 나면 안되는 거다. 다나는 한 번 더 그리 강조했다.


"음...."

'이게 괜찮으려나. 아직 학생이니까 케이크도 괜찮겠다.'

다나와의 대화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묻혀버린 지 오래였다. 형형색색의 무지개빛 케잌이 눈앞을 물들였다.

'그러고보니 바다 양한테도 제대로 사과를 못 했지.'

너무도 자연스럽게 상황을 정리하던 모습이, 마치 아무 관련없는 제 3자의 모습과 같았다. 그랬기에 듄은 바다도 화가 났단 사실을 잠시 잊을 뻔 했다. 지금은 정황이 없어서 서두른다고 정식으로 사과하지 못했지만, 내일 아침에 꼭 얘기해야겠어. 그리 다짐한 그는 마침내 선물을 하나 집어들었다. 싱그러운 과일이 데구륵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가의 집으로 가는 길.
듄은 그를 스쳐지나가는 두 남자를 발견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양복을 입은 것이, 그가 장례식에서 보았던 상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은근하지만 분명히 더 강압적이고 매서운 분위기가 흘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생각이 화살처럼 머리를 관통했다.

'.......설마!'

듄은 아슬하게 부여잡은 케잌상자를 바로 쥐어매고 도로를 달렸다. 밤공기는 후덥지근했지만 마음이 서늘해져왔다.


"나가 씨, 나가 씨! 저 듄입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정신없이 문을 두들길 때마다 철문이 달그락거리는 소릴 냈다. 시퍼런 초승달 아래에 기다란 그림자가 휘청였다. 바람에 꺾여버린 꽃잎처럼 흔들리던 모습은, 나가의 망울진 눈동자와 함께 멈추었다.

"....듄 쌤?"


듄이 거칠게 호흡을 내뱉었다. 불안하게 흔들린 동공이 빠르게 그 안을 훑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 나가, 씨. 혹시 검은 양복 입은 사람 둘이, 오지 않았습니까?"

"어....맞, 는데.."

순간, 나가의 회색빛 눈동자에서 눈물이 말끔하게 떨어져내렸다. 바닥을 적신 한 방울의 이슬은 너무도 깔끔히 떨어져, 듄은 잠시 비가 내리려는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떨결에 하늘까지 올려다보았건만,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이어도 비가 올 기미는 전혀 없었다.

"나가, 또 누구냐?"

듄이 고개를 들어올려, 사나운 눈매의 남자를 보았다. 회사에서 본 익숙한 얼굴. 나가의 부친이었다. 그 또한 듄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부친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듄을 아는 체 했다.

"할 말 있으면 들어와서 해라."



-



"........"

듄이 어정쩡한 손으로 케잌상자를 매만졌다. 얼떨결에 나가의 모친에게 전달하고 나선, 더 어색해져버린 두 손은 깍지를 끼기로 했다.

'이럴 줄 알았어....'

귀능과 다나의 은밀한 귓속말이 떠올랐다. 뭘 그리 속닥거리나 했더니, 영정 님에게 부탁하려고 한 모양이었구만. 성질이 뻗친 듄은 스푼에 돌아가면 반드시 얘기하겠노라 다짐했다. 떽떽이라 듣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소리를 질러야지.

"무슨 일이냐?"

부친이 고개숙인 듄을 바라보았다. 시선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게다가 그걸 숨기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부친은 바로 옆에 소파가 있었음에도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듄은 그 시선에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바늘에 수 백번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쉬이 떨어지지 않던 입술이 바로 열렸다.

"죄송합니다. 아까 전 왔다 간 사람들은 저희 초능력자 집단인 스푼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정부소속인입니다. 특기자에 관한 말들이 사회에 발설될 것을 염려해 찾아온 것 같습니다만, 필시 좋은 어투와 행동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토해내듯 뱉어낸 말이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이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나가 씨. 다시 한 번 사과하겠습니다. 제가 너무 경솔하게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만 생각해 나가 씨와 바다 씨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화가 풀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든 듄의 눈매는 붉게 물들어있었다. 하루동안 운 적이 없었음에도, 충혈된 눈가가 홀로 남겨진 꽃 한 송이 같았다.

"......후."

부친의 한숨소리가 적막을 더 키웠다. 듄은 등 뒤로 깍지를 낀 채 비스듬히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움직이는 기척도 없이 숨소리만 이어졌다. 대답도 없는데 이만 가라는 의미인가, 나가야 하나, 하던 찰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가.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부친의 물음이었다.


-



시원한 바람소리에 머리를 넘겼다. 날카롭게 손 사이를 스쳐지나간 머리칼은 차갑게 등 뒤를 매만졌다. 새벽공기가 찬 것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가로등 불빛의 노란 색감이 도시를 물들이는 장면이 두 눈을 가득 메웠다.

'개나리꽃 같아.'

바다는 펄럭이는 옷자락을 마음껏 펼치며 다리를 끌어안았다.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저녁공기는 더웠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다르네. 희미하나 분명한 미소가 얼굴 중앙에 자리잡았다.


'그러고보니 키네시스에게 특기가 사용되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듄 선생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점처럼 작아진 건물들을 보며, 바다는 문득 키네시스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리 좋지는 않았다. 담배 냄새나던 골목길에, 여우같이 간사한 미소까지. 그때의 그 담배도 듄의 것이었을지 몰랐다. 그 골목도 스푼과 가까운 거리였으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 갑자기 특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내일 아침 스푼으로 가면 듄은 정식으로 한 번 더 사과하겠지. 오늘은 급하게 나가집에 간다고, 나한텐 미안하다고도 말 못했으니까. 하지만 스푼으로 출근을 해야하나? 서장님이 쉬라고 했는데 그냥 출근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게 나왔다. 집에만 있어서 뭐 하겠나. 좀 움직여야지.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것도 이젠 지겹고.

".........."

학교 옥상에서 가만히 도시를 내려다보니 별별 생각이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첫만남에서의 키네시스의 웃음이었다. 그 표정에 관해선 지금은 그러려니 하지만 그땐 정말 이상하게 생각했다. 뭐가 그리 재밌어서 자꾸 웃나.

'그러고보니 백모래도 그렇게 실실 웃었지.'

하지만 백모래의 미소는 키네시스와 달리 섬뜩함이 서려 있었다. 한이라고 치부하기엔 피가 묻어 있었고, 증오라고 하기엔 순진했다. 키네시스같이 여유로움이 묻어난 미소는, 백모래보다야 주아가 더 닮아있었다.

'아. 또 생각났다.'

때마침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 생각을 휘집어놓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때의 장면이 유리파편처럼 바다를 찔렀을지도 몰랐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느껴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비 아저씨의 무거운 구둣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창문 바깥으로 그 손전등의 빛이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바다는 왈츠라도 듣는 것 마냥 고개를 까닥이며 소리를 들었다. 순간 어떤 장면이 스쳐지나간 것 같았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오래되어 낡은 문이 덜컥였다. 이어 수많은 열쇠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문고리가 들썩이더니 발걸음은 다시 옅어졌다. 잔뜩 긴장해있던 몸이 한 결 풀어졌다. 경비아저씨에게 들키면 어쩌나 싶었다. 특기를 가지고 있으니 이제 괜찮지만, 한 번 들여놓은 습관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 법이니까.

'무슨 생각 중이었지?
아. 그래, 주아 선배.'

바다는 기억을 훌쩍 뛰어넘겼다. 시멘트 바닥의 피웅덩이가 아닌, 처음 주아를 만나던 순간을 떠올리기로 했다. 그 어린아이같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정말 이상하게도,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주아와 친해진 기분이었다. 속앓이를 하던 고민들까지 전부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키네시스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이 있었다. 그의 웃음에선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주아에게만 느껴지는 기분이 있었다.

".....아."

바다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눈앞이 핑그르 돌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바탕 춤을 추고 땀에 절어 쓰러진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 좋은 느낌 말고도, 항상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기도 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외침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도 했다.

'고개 들어, 어깨도 펴고.
네가 죄인도 아니잖아. 당당히 살아야지!'

바다는 미간을 좁혔다. 있는대로 관자놀이를 눌렀음에도 앓는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아픈 것 하나는 잘 참을 수 있었는데, 유난히 두통에는 약했다. 그 외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려 할 때면 더욱 심해졌다. 붉은 머리카락, 살짝 탄 듯한 피부. 그 두 가지만 떠올라도 미치기 직전이었다.

'빨간색감 머리칼이면 내가 아는 사람중엔 주아 선배밖에 없는데. 피부색도 닮았고. 하지만,'

주아 선배가 언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던가?


"안되겠다....."

바다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었다. 방학이라 아무도 없는 학교에, 하나 뿐인 손전등의 여린 빛도 사라져있었다.

바다는 비틀거리며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이보다 더 생각했다간 머리가 두 조각 나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두통의 이유를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아팠다.

'일단 집에 가자. 나머진 내일 생각할래.'

텔레포트를 쓰려 눈을 옅게 감았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다시 눈을 뜨면 발이 딛은 곳은 집 안일 것이었다. 몇 번이고 했으니 주소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몇 초가 지나 눈을 떠야할지도 감으로 알 정도였다.


쐐액, 거리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던 건, 그때였다.

2
이번 화 신고 2020-04-20 00:20 | 조회 : 1,107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모배 좋아하는 사람 계시나요? 전 엄청 좋아해요. 왜 물어보냐고요? 오늘 모배하느라 늦었거든요.......그래도 치킨 한마리 잡쉈으니까....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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