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해 못했구나?

"아, 더워."

"에어컨을 튼 거야 만 거야."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강당은 여름날 온기를 높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찡그린 표정으로 저마다 잡담을 해댔다. 손바닥을 펴 부채질을 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장난기 많은 학생은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의 내용으로, 본 학생은 한 학기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강당의 맨 앞, 무대 위.
그곳에선 교장과 바다가 나란히 서 있었다.

바다는 상장을 받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뒤 얼굴을 들었을 땐 전교생의 시선이 쏠린 상태였다.


바다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약간 구겼다다. 순식간에 표정을 고쳐잡은 그녀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망쳤는데 학년 대표라니.'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한참동안 고민해봤지만 답이 절대 나오지 않던 논제였다. 바다는 한때 이 생각을 수도없이 해보았다.


바다의 눈엔 예전의 성적표가 아른거렸다. 정확히는 성적표를 보던 그때가 떠올랐다. 봄날의 하얀 종이는 투명한 눈물에 가려져있었다. 텅 빈 교실 안에서 하염없이 울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바다는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왠만하면 참으려 했지만 안되겠는지, 그녀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바다는 여전히 그 논제의 답을 몰랐고, 그 느낌은 언제나 개같았다.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바다는 그녀를 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어떤지 잘 몰랐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속으로 상상만 했다. 절대 부럽거나 축하한다는 시선은 없을 것이라며.

그 순간 그녀의 뇌리를 스치는 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깨 펴고, 당당히!'


"......"

바다는 반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가던 길목에서 멈춰섰다. 동그랗게 뜬 커다란 눈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한 것 같진 않았다. 했다고 해도 자신에게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그건 들었다기보단 떠오른 것에 가까운 듯 했다. 바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잠을 잘 못자서 그런가..'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에 바다는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 학년 대표가 바다 선배구나.'

그 사이 나가는 인파에 가려진 바다를 찾으려 애썼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보았지만 바다의 얼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관심도 없었을 학년대표였다. 하지만 그 사람이 회사 선배라는 걸 알고 나니 더 특별해보였다.

그래서 나가는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이건 딱히 바다 선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며 그는 되내었다. 그래, 얼굴 몇 번 본 선배가 어떻게 좋겠는가.

"바다 선배."

그저 존경심일 뿐이다.

"스푼 가는 길이라면 같이 갈래요?"


'쟤가 저렇게 적극적이다니!'

'근데 쟤 좋아하는 거 아니라 그러지 않았냐?'

'그러게.'

복도 뒷편에선 오터와 사하라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수군거렸다. 나가가 뭐라 말하는진 멀어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배시시 웃고 있는 나가의 웃음을 보며 오터와 사하라는 인상을 팍 구겼다.
이유는 '재수없어서' 라고 한다.


'..야.'

'왜?'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하라는 눈에 불을 켰다. 오터는 그런 그의 어깨를 톡 치며 말했다.

'바다 선배 듣던 소문이랑은 다르지 않아? 엄청 친절해보이는데.'

사하라는 바다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은 역시 믿을 게 안 되네.' 라며 중얼거린 것을 오터는 들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바다는 미친사람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신경 쓰이네..'

바다는 안경을 들어올렸다. 그 사이의 작은 틈으로 오터와 사하라가 눈에 들어왔다. 숨는다고 숨은 것이었지만 뻔히 드러나있었다.

바다는 못 본 척 눈을 돌렸다. 그러곤 나가에게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스푼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이거 어쩌죠."

"아."

나가는 얼굴이 빨개진 걸 느꼈는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떡해. 쪽팔려.'

얼굴이 뜨거웠다. 나가는 당장이라도 부채질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창피하다는 게 들통날까봐 하지 못했다.


바다는 그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척 해주었다. 그녀는 창 밖을 바라보며 바람을 맞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제이의 아지트에 가려고 했어요. 나가는 제이를 직접 본 적이 없죠? 항상 전화기나 무전기 너머로 목소리만 들었을 거잖아요."

바다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나가도 같이 갈래요?"



-



"어서 와 바다. 나가도 데려왔다며?"

"안녕하세요..."

나가는 고개를 숙이며 제이에게 인사했다. 제이는 음료수를 마시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왜 눈을 감고 다닌담.' 하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제이는 궁금한 걸 바로바로 해결해야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어떻게, 뭐 진전은 있어요?"

"평소랑 똑같지 뭐. 아무 흔적도 없어.
cctv를 확인하고 있긴 한데 한두개여야지."

제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바다는 제이 앞의 모니터로 다가갔다. 빼곡하게 적힌 암호들과 서울시의 지도가 띄워져있었다. 바다는 제이와 함께 암호에 대해 얘기하는 듯 했다. 둘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보였다.


나가는 그 사이에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와. 경치가 한눈에 다 보이네.'

커다란 창문이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띄었다. 한쪽 벽을 전부 차지하고 있어서 창문이라기보단 거대한 문 같아 보였다.

바로 앞에는 교차로가, 그리고 좀 더 깊숙한 곳 스푼의 건물 꼭대기가 살짝 보였다. 나가는 서울고등학교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방향이 달랐는지 보이지 않았다.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이 드러났다.


"미안해요 나가. 데려와서 제이랑만 너무 얘기를 했네요."

"아뇨. 괜찮아요.
근데 무슨 얘기 중이었어요?"

나가는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몇 발자국 다가갔다.

"하얀 마법사에 대해서요. 나가는 그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 없죠?"

나가는 곰곰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느순간 뭔가 떠올랐는지 그는 '아.'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키네시스 선배가 몇 번 말하는 걸 들었어요. 하얀머리 자식이라면서 얘기했던 것 같은데."


'하얀머리 자식.'

바다는 작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키네시스다운 별명 붙이기라 생각했다.
실제로 바다가 하얀 마법사를 본 적은 없으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얬다고 하니 딱 맞는 별명이라 느꼈다.

바다는 작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어쨌든 난 그 하얀마법사를 찾는 데에 협조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끔 그가 암호같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는데, 그 암호를 푸는 역할이 제이에요. 나도 드물게 암호해독을 돕거든요."

"예전엔 유나가 잡혀있는 장소를 암호로 발견한 적이 있었어. 키네시스가 하얀마법사를 잡으려 애를 쓰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야. 유나가 위험해서."

그렇게 말하며 제이는 화면에 암호 하나를 띄워보냈다. 그때 풀었던 암호였다.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었어. 한국 지상파 TV의 신호와 혼합해서 답을 내는 구조였거든. 문자도 모스부호의 변종이었고."

"아...그렇군요..."

'뭔지 이해못했다.'

'이해 못했네.'

나가의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은 제이였다.


"그보다 제이.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참. 내가 불러놓고 까먹고 있었네."

제이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번에 마약밀매범들 잡으러 갔을때,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잖아? 근데 내가 할 일이 있어서 서울경찰서에 물어봤는데 그런 신고 없었다고 하더라고. 혹시나 해서 서장님 통해서 알아봐달라고도 했는데 답은 똑같았어."

바다는 두 손을 꼭 모았다.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그녀 스스로도 느껴졌다. 바다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그녀는 입을 열었다.

"...어, 음..
이상하네요. 난 분명 신고했는데.."

제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널 탓하는 게 아니야. 신고를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하지만.."

바다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푹 떨구곤 바닥을 바라보았다. 결벽증 있는 제이가 얼마나 열심히 닦았는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반짝한 대리석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중간에 착오가 있던 것 같아. 누가 해킹을 해서 정보를 빼돌렸던가, 아니면 우리처럼 특기를 가진 사람이 수작을 부렸던가.
어쨌든 이거 알려주려고 했던 거야. 별 거 없어."

바다는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키네시스랑 유나도 이 소식 알아요?"

왜 이렇게 늦는거지, 라며 중얼거리는 바다는 제이에게 물었다.

"아니. 나중에 알려주려고.
그리고 걔네 방학식은 내일이야. 오늘은 정상수업 한다더라."



"아."

나가는 갑자기 울리는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진동음이 방 안에 울렸다. 촌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기본 통화음이었다. 분명 혜나가 옆에 있었다면 '이 아저씨스러운 기본통화음! 누가봐도 나가오빠 폰이야!' 라고 했을 것이다.


동시에 밖에선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많이 나는데. 대형화재라도 났나.'

바다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를 밝히는 햇빛이 따가울 정도로 밝았다. 누가 한여름 아니랄까봐 후덥지근한 날씨는 덤이었다. 소방차는 이미 지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가는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여보세요~."

"어디야? 옆에 바다 있어?"

"제이 선배네 아지트요. 바다 선배랑 지금 같이 있어요."

"그럼 좌표 찍어준데로 가서 화재진압이나 하고 와. 기억 지우는 거 까먹지 말라고 하고."


"예? 어?"

나가는 끊겨버린 전화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곤 옆에 서 있는 바다를 힐끗 바라보았다.

바다도 다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머리카락을 묶으며 나가에게 물었다.

"위치 어딘지 얘기해줄래요?"

바다의 단정한 포니테일이 살짝씩 흔들렸다.


"일 하러 가는거야? 그럼 가방 여기 놔두고 가."

제이의 말에 바다와 나가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끝내고 가지러 올게요."


쾅.

문이 닫히고 난 뒤 제이는 가방을 힐끗 바라보았다. 어질러진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소파 위에 얹어두기 위해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때 팔락이는 뭔가가 가방에서 떨어져내렸다. 입구가 열려있던 것이었다.

흰색 가방.
바다의 가방이었다.


제이는 당황하며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제서야 그는 손에 쥔 것이 사진임을 알았다.

제이는 적잖이 당황했다.

'오해라도 하면 어쩌지...'

일부러 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사진을 가방으로 넣었다. 그러던 도중 사진에 찍힌 세 사람을 정확하게 보게 되었다.

이것도 고의는 아니었다.

영물로 보이는 한 남자와 인간 여자, 그리고 환하게 웃는 어린 바다를 본 건
우연이었다.



-


"헉!"

'생각보다 불길이 세다..'

나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게 타오르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어린이집. 소방관들의 대화를 엿들어보아, 낮잠시간에 화재가 발생한 탓에 아이들은 대피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가가 발을 동동 굴렸다.

"바다 선배, 어떡하죠?"

"잠깐 기다려요."

바다는 불길을 담담히 살펴보았다. 그리곤 두 손을 꼭 맞잡으며 눈을 감았다.


'뭐하는거지?'

나가가 신기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선 화재현장에서 바다가 기도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바다가 다시 눈을 뜨자 작은 반짝임이 눈동자에서 한번 일렁였다. 그땐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멈춰있는 상태였다.

"시간을 멈췄어요. 어서 들어가요."

"......"

나가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황급히 움직이던 소방관들은 얼음이 된 것 마냥 제자리에 굳어있었다. 그는 진귀한 풍경을 본 듯 시선을 떼지 못하다 이내 바다를 뒤따라 들어갔다.


'역시 특기자한테는 안 통하는구나.'

바다는 예전 오르카와 싸우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시간을 멈춰봤지만 오르카에게는 먹히지 않았었다. 그녀는 이제서야 그 사실을, 나가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근데 바다 선배, 불길은 안 멈추는데요?!"

나가가 앞으로 달겨드는 불길을 염력으로 막았다. 바다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생물한테는 안 통해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거라서.."

그녀는 안경을 고쳐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시라도 서두르지 않으면 아이들이 다칠 것이었다.


"나가. 나뉘어서 찾아요.
나가는 비행 가능하죠? 2층이랑 옥상 쪽에서 확인해줘요. 내가 1층을 볼게요."

"알았어요."

나가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뛰어갔다. 바다는 그의 뒷모습을 볼 겨를도 없이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숨 막혀..'

바다는 옷소매로 입을 가렸다. 하복이라 짧은 소매는 얼굴에 닿지도 않았다. 그녀는 결국 한 손으로 코와 입을 싸맬 수 밖에 없었다. 쾌쾌한 냄새는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바다는 살짝 열려진 방문으로 꼬마 아이들을 발견했다. 겁에 질린 얼굴로 도망가려던 모습은 돌처럼 굳어있었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한 남자는 몇몇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손수건이 부족해서 입을 가려주려던 것이었다.

바다는 최대한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데려가려 했다. 한 손에 두 명씩 손을 붙잡은 바다는 그들을 밖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그녀가 꼬마들을 대피시키는 것보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빨랐다.
훨씬 빨랐다.

"아야!"

그때 등뒤에서 치솟는 불길에 바다는 팔을 데이고 말았다. 그녀의 팔이 금세 발갛게 달아올랐다. 바다는 약간 눈물이 고인 눈동자로 상처와 불길을 번갈아보았다. 서두르지 않으면 아이들은 타 죽을 것이었다.


바다는 스스로에게, 자신은 절대 도덕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불량한 시민들을 나서서 저지하지 않는다. 스푼의 일도 월급이 나오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절대 스스로의 특기를 선한 일에 사용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서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둘 정도로,
그 정도로 악한 인물도 아니었다.


-


바다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두어번 쓸어넘겼다.

"바다 선배!"

나가는 건물벽에 기댄 바다를 발견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바다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풀어헤진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두 사람 다 불길 속으로 뛰어든 사람치곤 양호한 편이었지만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나가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다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엉망일까봐 순간 창피함이 앞선 것이었다.


나가는 무심코 바다의 팔을 보게 되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어쩔줄 몰라했다.

"헉! 선배 다쳤어요?"

'화상이면 뭘 해야하지? 밴드? 후*딘? 마데*솔?
어떡하지?!'


"별 거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요."

바다는 멋쩍게 웃었다. 꽤나 큰 상처였지만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라며 덧붙였다.

나가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진정하는 듯 했다. 그래도 신경쓰이긴 마찬가지였다. 아픈 걸 잘 참는다던 바다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 구한 거겠죠?"

"제가 어린이집 주변으로 빙 둘러보면서 확인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그럼 됐네요."

바다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그러자 막혀있던 물줄기가 쏟아지듯, 소리가 터져나왔다.

나가는 귀를 파고드는 수많은 소음에 깜짝 놀랐다. 무심코 두 귀를 막은 그는 날카로운 비명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나섰다. 바로 옆에서 수많은 꼬마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있을 땐 기억이 안 지워져서.."

바다는 변명처럼 서둘러 말하며 아이들에게로 달려갔다.

유치원선생님으로 보이는 몇몇 어른들은 당황과 의아함이 섞인 표정을 내보였다. 아이들도 다른 건 없었다. 한순간에 불길의 뜨거움과 숨막힘이 사라진 채 파란 하늘 아래에 서 있게 되었으니.

당연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눈 한번 깜짝하니 장소가 바뀌어있는 꼴이었다. 혼란스러울 것이 뻔했다.


바다는 나가에게 주변 경계를 부탁했다. 혹여나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한다면 골치아파 질 테니까.


"아까 전 있었던 일은 없던 일이에요. 여러분은 소방관 분들이 구해주신 겁니다."

바다의 중얼거림과 함께 20명 정도 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전부 잠에 들 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바다와 나가는 그들을 전부 소방차와 구급차 옆에 데려다 놓고, 소방관 분들까지 전부 기억을 지우고 나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는 말 한마디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제이의 아지트에 있는 가방을 짊어지고, 오랜만에 대낮에 집을 가는 길이었다. 신났어야만 하는 시간대였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무겁다 못해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어린 꼬마아이가 자신을 보자마자 했던 말이었다. 나가가 망을 보던 사이 한 것이었다. 겁에 잔뜩 질린 채, 한 걸음씩 다가오는 바다를 눈물진 얼굴로 바라보며.

"괴물!"


"......."

바다는 상처가 더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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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2-24 15:31 | 조회 : 834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어제 폭스툰이 안 들어와져서 이 시간에 올립니다. 폭스툰 대체 왜 그러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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