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너야말로!

"음......"

팔짱을 낀 나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두 눈은 꼭 감은 채였다.
그는 이따금씩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기도 했다.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물어봤나?'

나가는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됐을 질문을 한 게 아닌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대답이 아주 찝찝했으니까.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 같았다.

나가는 미간을 살짝 구부렸다.

어제 저녁에 일어난 일이 떠올랐다.


"있잖아, 너희 바다라는 선배 알아?"

이상하게도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바다 때문에, 나가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몰랐다.

"푸하하!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전화기 너머에선 장난기 많은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다른 친구도 그 상황이 우스웠는지 킥킥거리며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아, 근데 바다 선배면 그 선배 아니냐? 전국 1등인가 하는 선배."

"그게 정말이야?!"

나가는 떨어뜨릴 뻔한 전화기를 염력으로 잡아챘다. 혹여나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그는 아예 염력으로 붙들었다.

'전국 1등이라니, 전교 1등, 아니, 학반 1등도 힘든데..'

나가는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자신의 성적표가 떠올랐다.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성적표는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나가는 다시 귀 가까이에 휴대전화를 가져다댔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멀리서도 조금씩 들리는 걸 보아하니, 얼마나 흥분해서 얘기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다시 얘기해봐. 나 못 들었어."


"아니 그러니까, 아.
근데 이거 마음대로 얘기해도 되는건가?"

"몰라. 근데 이것도 들리는 소문이라 정확하지도 않아."

"무슨 소문이길래 그러는데?"

나가만큼은 아니지만 그 둘도 소문에 꽤 무디었다. 그런 두 사람도 알고 있는 거라면 꽤 유명하다는 소리였다.

사실은 두 사람이 그 소문을 접했을때, 곧바로 나가의 귀에도 소문은 들어왔었다. 하지만 나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궁금해 죽겠네!'

자신이 예전에 들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른 채, 나가의 인내심이 바닥을 칠 때쯤이었다. 그제서야 두 사람은 서로의 웅성거림을 멈추었다.


"올해 초에, 아마 중간고사 끝나고 나서였나?
바다 선배가 다른 2학년을 옥상에서 밀어서 넘어뜨렸대."


"......."

나가가 눈을 살며시 떴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정적을 더 키우는 것만 같았다. 세 사람의 통화 속에서도 한동안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딱히 아무 증거도 안 나왔다더라. 그래도 같이 있었던 사람이 그 선배밖에 없어서 그런 소문이 도는 걸 수도 있어."

상황을 쓸어담기라도 하듯 한 친구가 말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던 공간은 다시 목소리로 채워졌다.

"그래. 그리고 소문일 뿐이잖아. 너무 신경쓰지 마."


".....그렇겠지."

나가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우스워보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나가는 마음이 심란했다.



"안녕하세요. 나가.
일찍 왔네요?"

나가는 자신을 부르는 가느다란 미성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여느 때처럼 웃음을 짓는 바다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자, 창문 뒤의 햇살이 바다에게로 향했다. 어제와는 달리 반짝이는 오전의 햇빛이었다.

바다는 눈이 부셨는지 손가락으로 살며시 가렸다. 오렌지빛 조명이 바다의 흰 옷에 일렁였다.


나가는 바다를 힐끗 바라보았다.

'역시 소문이겠지.'

그런 소문을 들은 게 찝찝하긴 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바다가 그럴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에게 친절한 웃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옥상에서 밀어버린다니.

'어제 처음 만났긴 하지만..'


"나가는 참 친절하네요."

"네?"

깜짝 놀란 나가는 바다를 바로 보았다. 익숙하던 교복이 아닌 나풀거리는 옷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여전히 미소를 걸친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입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궁금한 걸 직접 물어보지 않으니까요."


"......."

나가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바다는 다시 활짝 웃었다. 나가는 아픈 웃음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것일까 싶었다.


"소문은 너무 빨리 퍼져서 힘드네요."

바다는 멍하니 서 있는 나가를 뒤로 한 채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가는 그런 바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몰랐어....'

나가는 누가 자신의 뒤통수를 때려줬으면 싶었다.
너무 어리석었다.


나가의 친구들은 종종 그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넌 배우는 못하겠다.
생각이 다 표정에 드러나잖아.'

이제서야 그 말이 떠올랐다. 바다가 그런 씁쓸한 미소를 지은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눈치빠른 바다의 눈에는 나가의 생각이 뻔히 보였다. '벌써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어제 마주친 나가와는 달리, 오늘 그는 바다를 보자마자 동공이 흔들렸으니까.

바다는 그 미세한 차이점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신경쓰지 말기는 개뿔이!'

나가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제 3자도 아닌 제 100자 정도 되는 자신이 신경을 안 쓰면 뭐하는가. 당사자에겐 저렇게나 힘든 일인데!

나가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욕을 몇 번 했다.


나가의 생각은 정확했다.
바다에겐 소문 '따위' 라고 불릴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찮게 보여질 것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문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많았다. 그래서 바다는 나가가 그리 못된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적어도 나한테 먼저 얘기를 꺼내진 않으니까.'

바다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이래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쓸데없는 소문은 학교생활을 어지간히도 힘들게 만들었다.


"...언니. 바다 언니!"

"아."

바다는 옷소매를 꼭 붙잡는 작은 손에 정신을 차렸다. 혜나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한눈팔고 있어, 어서 일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야지."


'맞다..'

"응. 고마워 혜나야."

바다는 혜나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혜나는 뭐가 고맙다는 건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바다가 웃어주니 따라 웃었다. 바다는 혜나의 반응이 꽤 귀엽다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컨테이너 박스들이 바다의 눈을 빼곡히 채웠다.



스푼은 기본적으로 팀으로 운영되는 체제였다. 최소 두 명에서 최대 6명까지 함께 움직이는데, 이번에 신입이 왕창 들어오는 바람에 한 팀이 최대인원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참고로 팀을 나누는 기준은 특기. 그리고 바다가 속한 팀은 비행조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맡게 된 임무가 바로 '마약밀매범' 잡기.
이 일을 위해 비행조 6명이 다 같이 투입되었다.

그 이유는,

"히어로는 쪽수로 밀어붙인다."

이런 다나스러운, 서장님스러운 생각에서였다. 실전이 제일 좋은 연습이라며 귀능이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6명이서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건 아무래도 복잡하다며 귀능은 두 명씩 짝지어 다니는 걸 추천했다.
그렇게 나뉘어진 결과가 사사와 나가, 혜나와 바다 그리고 키네시스와 유나.


"마약거래 현장을 목격한 것 같으니 해결해달라고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왔다."

서장님의 말에 의하면, 그 신고를 받은 경찰이 스푼에 처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바다는 잠시 생각을 곰곰히 해보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혜나의 작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혜나야. 그럼 신고를 받은 경찰도 스푼의 존재를 알고 있는거야?"

"응. 근데 그냥 일반인은 아니고, 스푼 소속 직원이야."

"아, 그런 거였구나."

바다는 다른 한 손으로 입을 살짝 가렸다. 놀라서 벌어진 작은 입이 가느다란 손에 막혔다.


"앗. 전화온다."

혜나가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나가 오빠' 라고 적힌 전화는 웅웅거리며 울려댔다.

"응 오빠. 왜?
뭐? 사사오빠가?!"

바다는 갑다기 소리를 지르는 혜나의 모습에 놀란 듯 했다.

"왜 그래 혜나야.
선배한테 무슨 일 있어?"

혜나는 말 없이 바다에게 전화기를 건냈다. 혜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그러지?'

"여보세요? 나가?"

바다는 나가의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선 다급한 나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다 선배, 그게...
잠깐 주변 구경 좀 한다고 떨어졌는데 선배가 없어졌어요.."


"안 봐도 비디오다.
분명 안절부절 못하고 있겠지."

"혜나야.."

바다는 아이답지 않은 말투의 혜나에게 실없는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나가는 작게 들리는 혜나의 말을 듣고 뜨끔했다. 실제로 나가는 사라진 사사 선배를 찾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음...
나가. 우선은 혜나와 함께 사사 선배를 찾아요.
난 키네시스와 유나에게 소식을 전하고 뒤따라갈게요."

"네...."

나가는 거의 울다시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난 가볼게 바다 언니!"

혜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았다. 마약을 찾던 중 컨테이너 안에서 발견한 빗자루였다.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빗자루 따윌 꽁꽁 모셔둔 건 지는 몰라도, 자물쇠를 이중 삼중으로 막아놓았었다.


'그나저나 마녀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네.'

바다는 반짝이는 햇살에 눈이 부시면서도 공중에 떠 있는 혜나를 바라보았다. 약간의 신기한 듯한 눈빛은 곧 평소의 담담함으로 돌아왔다.


바다는 키네시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걸고, 몇몇 컨테이너에서 찾아낸 마약들을 옷 속에 숨겨두었다. 떨어지지 않게 꼭 넣고 그녀는 손목을 두어번 돌렸다.

바다는 기다란 머리카락들을 단정히 한 묶음으로 묶었다. 파란 하늘같은 색감이 찰랑거렸다.

그녀가 나가와 혜나가 있는 곳이 어디 쯤일지 찾던 그 때, 어디선가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으.."

바다는 깜짝 놀랐는지 눈을 확 찌푸렸다. 굉음에 귓구멍을 모두 막기까지 했다.

저쪽인가보다, 하는 생각으로 바다는 소리가 난 곳을 향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바다를 제외한 모두가 있었다.

"바다 선배, 피해요!"

모두가 마약밀매범에게 쫓기는 채였지만.


그녀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좌우로 흩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뛰어가던 걸음을 멈춘 것 때문이었다.

"무슨...!
특기를 쓰면 되잖아요!"

바다는 당황스러움에 소리쳤다.


"그치만 총이 있을까봐..."

"키네시스! 키네시스라도 어떻게 좀 해봐요!"

바다는 우물쭈물 거리는 나가에게서 키네시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키네시스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왜? 지금도 재미있는데?"


"나 참, 진짜."

바다는 눈을 살며시 감으며 작게 혀를 찼다.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도망쳐 달려오는 아이들을 향해 그녀는 나지막히 말했다. 한 손으론 아이들을 뒤쫓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고개 숙여요."


"그게 무슨...!"

유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키네시스가 유나의 머리를 손으로 꾹 눌렀다. 유나는 작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꼭 감았다. 뒤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그들의 등 뒤를 미는 느낌이 들었다.

유나는 폭발이 멈추고 난 후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에게 달겨들던 사람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네 사람은 그제서야 바삐 움직이던 걸음을 멈췄다.


바다는 머리를 살짝 매만지며 말했다.

"아직은 범위조절이 힘들어서..
앞으로 더 연습해올게요."

그녀는 멋쩍은 듯한 웃음을 내보였다. 처참한 뒷풍경과는 과하게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나가는 약간의 오싹함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머리부터 날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어라?
근데 왜 총이 아무데도 없지?"

어느 새 혜나는 밀매범들의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한참을 뒤적거려도 원하던 물건이 나오지 않자 그녀는 투덜거렸다.


"웬 총?"

키네시스가 한 발짝 다가오며 물었다.

"아. 사사 오빠는 저격수거든. 항상 총을 들고 다니는데, 이 놈들이 사사 오빠를 잡았으면 총을 가져갔을 거 아냐."

"그러네."

사사의 행방이 묘연해지려던 찰나, 널브러져있던 한 남자가 눈을 번쩍 떴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지만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으로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떳떳한 말투와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연하지, 이 머저리들!
우린 보통 악당이 아냐. 그런 야만적인 무기는 안 쓴단 말이야!"


"........"

"하하. 재미있는 소릴 하네."

유나는 한심하단 듯이 얼굴을 구기며 내려다보았고, 키네시스는 그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너야말로 머저리다, 이놈아."

다른 한 남자가 머저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는 그제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아차렸다. 뒤늦게 입을 막아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다.

바다는 '싸우지들 마세요.' 라며 두 사람을 염력으로 말렸다. 그녀는 고개를 살며시 돌려 말했다.


"다들 사사 선배를 찾고 와요.
난 경찰에 먼저 신고할게요."

바다는 휴대전화를 꺼내들며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경찰에 전화를 걸기 직전, 그녀는 다리를 오므려 앉았다. 밀매범들과 최대한 눈높이를 맞춘 바다는 그들에게 물었다.

"마약을 판매하면 감옥에 가나요, 벌금을 내나요?"


"둘 중 하나 아냐?"

"둘 다일 수도 있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투던 두 사람은 서로 수군거렸다. 어느 쪽이 맞는지 아무도 모르던 때 바다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혹시 감옥가고 싶으신 분?"


"있겠냐!"

"없어!"


"그런가.."

바다는 때마침 전화를 받은 경찰에게 마약밀매범들을 신고했다.

'어차피 신고할 거면서...'

둘 중 하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고도 했으니, 남은 건 하나밖에 없네요."

두 남자의 표정이 물음표로 가득 차는 듯 했다. 바다는 그 모습을 알아차렸지만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이제부턴 설명해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바다는 두 사람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잊어요."

바다의 하늘색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시계의 초침처럼 번뜩인 빛은 그녀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두 남자의 눈꺼풀은 스르르 내려앉았다.

바다는 품 속에 숨겨둔 마약을 그들 앞에 내려두었다. 이 자들이 마약밀매범이라는 증거였다.


'대충 기절시켰으니까..
경찰이 올 때까지는 도망 못 치겠지.'

바다는 주위를 몇 번 두리번거리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우와. 특기 엄청 많네.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정도 아니에요?"

점점 멀어지는 바다의 뒷모습을 보며, 한 컨테이너 안에서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새빨간 머리카락이 손바닥을 쓸어내릴 정도로 긴 여자였다.


"보스. 시키는 대로 하긴 했는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는 거에요? 가만히 내버려둬도 레드럼은 스푼에게 잡힐 텐데.."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럼..연구소의 '그것' 을 못 죽이잖아..스푼에게 넘어가면 죽이기 힘들어지니까...."


언제부터 와있었는지 모를 다른 여자가 다가왔다. 전화를 받던 여자와는 대조적으로 푸른 머리카락이었다.

바다처럼 청량하고 맑은 색이 아닌, 어딘가 모르게 탁한 색감이었다. 바다가 가을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라면 그녀는 비가 온 후 빠르게 내려가는 강물이었다.

"맞죠, 보스...?"


"그래. 맞아.
어쨌든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귀농해있다가 갑자기 연락한 거라 힘들었을텐데."

"아뇨, 뭐. 보스 부탁인데 들어줘야죠.
아 참."

그녀의 새빨간 립스틱은 어두운 곳에서도 눈에 띄었다. 그녀는 찢어질 정도로 환히 웃었다.

"저희가 보내준 사과는 잘 드시고 계시죠?
백모래 님."

백모래는 들으란 듯이 사과를 한 입 베어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청실, 홍실."

2
이번 화 신고 2020-02-10 00:03 | 조회 : 807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청실홍실 둑흔둑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