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이거 완전 개판이구만?

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흔들거리는 그의 갈색 머리카락에선 옅은 담배향기가 났다.

"다 모인 것 같으니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주아는 오른팔을 괴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호박색 눈동자가 바다의 얼굴 곳곳을 훑어보았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는 주아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눈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머. 얘야, 너 예쁘구나. 이름이 뭐니?"

"하하..."

바다는 약간의 미소를 띄우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주아를 살짝 보곤 다시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듄이 주아를 노려보고 있었기에, 대화를 이어나가면 혼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살며시 짐작해보건대, 이 사람은 상대방의 대답의 유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혼자 떠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끔 있지 않은가. 분명 그런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질문이 씹혔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도 뻔하다..'

옆에 앉은 유나의 눈에 앞일이 훤히 그려졌다.

유나는 싱글벙글한 주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주아가 그리 나쁜 사람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입만 어떻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키네시스로 시끄러운 것에 내성이 생기기는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키네시스 한정이었다. 그리고 주아의 경우는 시끄러운 게 아니라 나불거리는 수준이었다.


"이번 회의 주제는,"

듄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안경을 한 번 들어올린 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주아는 여전히 입을 다물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날씨는 사람 하나 죽이기 딱 좋다느니, 밤에도 너무 덥다느니,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계속 해댔다.


그녀를 몇 번 곁눈질 한 듄은 곧 있으면 조용해지겠거니, 하고 회의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주아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패턴은 항상 그대로였다. 회의를 할때마다 달라지는 것 하나 없었다.


"너도 신입이니? 못 본 얼굴인데. 내가 여기서 여간 오래 지낸 게 아니..."

"...주아 씨!!"

듄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방 안에는 큰 소리가 울렸다.
주아는 놀랐는지 '엄마야!'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그녀의 어깨가 한 번 크게 들썩였다.


'그럼 그렇지.'

바다는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듄이 화를 참고 있단 건 표정에서부터 뻔히 드러나있었다. 문제는 언제까지 참을 것인가였지, 이 정도면 오래 버텼다고 생각했다.


바다의 학교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입을 여는 친구.
바다는 그런 친구를 꽤 좋아하지 않았다.


바다는 스푼에 괜히 왔다 싶었다. 차라리 이대로 전부 기억을 지우고 원래 생활로 돌아갈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매일 같은 일상보단 색다른 것도 나을 테니까.'

바다는 조금은 더 있어보기로 했다. 첫인상 한번에 모든 걸 때려치우기엔 세상은 변수가 너무 많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

키네시스는 조용히 듄과 주아가 투닥대는 소리를 들었다. 듄에게 혼나는 와중에도 주아는 대답 한 번을 진지하게 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이 재미있는 듯 함박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저 넉살스러운 성격이 존경스러울 정도라고 생각했다. 물론 자기도 어느정도 능글맞은 성격이지만,

'저 정도는 아니지.'



"조용히 좀 해라."

두 사람의 말싸움 아닌 말싸움은 다나가 개입해서야 사그라들었다.
다나는 문을 열고 오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넌 어쩜 매번 그러냐. 듄 싫어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다나~"

주아는 두 팔을 벌려 다나에게 달려갔다. 주아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바다는 그게 일부러 낸 떨림이란 걸 알았다. 보통보다 좀 더 과장해낸 표현. 쉽게 말해 장난이었다.


다나는 주아의 이마를 한손으로 짚으며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지만, 그래도 주아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듄을 흘겨보며 팔짱을 끼웠다.

"그치만 듄은 담배냄새나서 싫단 말이야.
담배 좀 그만 피워, 너 그러다가 수명 닳는다?"


'아.'

바다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보니 아까 전부터 은은하게 방안을 가득 채우던 향기가 있었는데.

'담배향이었구나.'

바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얼굴을 살며시 가렸다.
담배향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제일 싫어하는 향기였다.

처음 키네시스를 봤을 때도 그랬다.
그 골목에서는 금방이라도 옆에서 피우는 것처럼 텁텁한 담배냄새가 났다. 그래서 바다는 미간을 확 찌푸렸었다.


"다들 여기 봐라. 회의 시작할거니까."

다나가 파일을 집어들곤 화이트보드를 두 번 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다나에게로 꽂혔다.


"처음 들어올 때 나눠줬던 종이 기억나지? 스푼에 대해서 적어놓은 거 말이야."

다나가 종이 한 장을 팔랑거렸다. 그녀가 말하는 '종이' 의 같은 내용이 적힌 것이었다.

형광색이 중간중간 색칠된 글자를 내려다보았다.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내용만 표시해둔 것이었다. 물론 듄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 내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주아 너. 너는 입 열지 마라."

다나가 새빨간 눈동자를 번뜩이며 주아를 바라보았다. 검지손가락으로 콕 집기까지 했다.


'와. 여전히 살벌하네.'

키네시스는 몇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다나의 포스에 감탄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바로 기가 죽었을 것이었다. 뱀같이 날카로운 눈매는 지나가던 강아지가 봐도 피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무서워!'

나가가 대표적인 예시였다. 그는 온 몸을 한 번 떨었다. 그리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사사 선배는 적응이 되서라고 쳐도, 처음 들어온 다른 사람들 중 누구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유나와 혜나는 자매고, 키네시스는 어릴 때 봤으며, 바다는 감정이 표정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단 건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때 나가는 '내가 너무 겁쟁이인가' 하는 생각만 했다.


"너무해~ 그럼 나는 듣기만 하라는거야? 대체 회의에 왜 초대한 거람!"

주아가 책상을 가볍게 내려쳤다. 딱 봐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다나는 '입 열지 말랬지!' 란 한 마디로 주아를 눌러놓곤 본격적으로 회의준비를 하는 듯 했다. 듄은 그제서야 한시름 놓은 듯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일단 기본부터 말하자면...
너희가 지금 속한 이 「스푼」은 흔히들 말하는 초능력자들을 모아둔 곳이다. 그리고 그런 초능력자들을 우린 전문적으로 특기자라고 말하고 있고."

듄이 다나의 말을 이어갔다.

"스푼은 겉보기엔 「포크」라는 연예인기획사의 한 건물입니다. 별관같은 느낌으로 지어져있지만 실제로 본사는 옆 동네에 있고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댈 때는 연습생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음....."

'속아....줄까?!'

나가는 진지하게 고민을 한 번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물론 바다 선배나 키네시스 선배, 유나 선배라면 다들 이해할 것 같지만, 나는 안 할 것 같은데..'


다나가 나가의 표정을 바로 알아채곤 말했다.

"참고로 가수 말고 배우라고 뻥 쳐도 아무 상관 없다."


'아하!'

나가는 다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배우라면 가능성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쨋든, 이런 특기자들의 집단을 만들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나이프」라는 집단을 잡기 위해서다."


"나이프..."

바다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한 번 불러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째 이름이 다들 식탁에서 떠나질 않니.'

다들 짜고 친건가 싶을 정도로 개성 가득한 이름들.
바다는 세 집단의 이름은 평생 못 까먹지 않을까 싶었다.



"나이프를 전멸시키는 것이 주 임무이긴 하나, 그 이외의 다른 사건들도 맡아서 하는 편입니다. 일반경찰이 하기에 힘든 작업들이 배정되는 편이죠. 하는 일은 경찰과 비슷하지만 우린 특기를 쓴다는 것밖엔 차이점이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사복경찰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귀능이 앞에서 사람들을 향해 입을 뻐끔거렸다. 곧이어 다나에게 들켜서 몇 대 맞기는 했으나 다들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귀능은 어디서 꺼내왔는지 계란으로 눈주위를 문질렀다. 몇 번 겪은 일인 듯 자연스러웠다.


"현자 나이프의 보스는 '백모래' 라는 남자로 추정되고 있다. 그 놈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눈에 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그 과정에서 온갖 중범죄를 저지르고 있지."


바다는 말 없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이유가 너무 가볍지 않나?'

세상에 아무리 미친놈이 많다곤 해도 그런 이유로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니. 바다의 사상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참고로 특기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우리와 협력관계에 있는 포크, 적대적 위치의 나이프 그리고 정부의 고위관료층 정도가 다입니다."


"........"

바다는 입을 약간 벌렸다. 다물어지지 않았다. 크게 내색하진 않았으나 분명 바다같은 눈동자도 커졌음에 분명했다.

그녀에게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배신감도, 슬픔도, 분노도 아닌 무언가였지만 잘 모르겠다.


옆에선 누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다는 지나갈 소음이라 생각해 신경쓰지 않았다. 그보다 마음이 더 심란했다.

바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특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다들 알고 있었으면서 숨긴 거라니.

'왜 숨기는 거지?'


"얘!"

"....아."

주아가 바다의 왼쪽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제서야 바다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있단 걸 깨달았다. 그녀는 눈을 두어번 깜빡인 후에야 자세를 고쳐앉았다.

"죄송해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해서...
뭐라고 말했나요?"

바다의 단정한 앞머리가 휘청거렸다. 바다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어쩐지 목소리가 살짝 작아진 것 같았다. 가슴은 조금 빠르게 뛰었다.


"특기를 가진 지 얼마나 됐는지 물었어."

주아가 손바닥을 몇 번 휘저으며 괜찮단 듯이 말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굳이 덧붙일 필요없는 말들도 했다. '나도 회의에 집중하지 않은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뭐.' 같은 말 따위였다.


바다는 눈동자를 한 번 굴리곤 대답했다.

"저는...7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12월에 처음 나타났으니까요."


"너희는?"

다나가 키네시스와 유나에게 물었다. 키네시스는 '얼마더라.' 하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유나는 그에 대답하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키네시스는 반 년. 내가 5개월 정도 됐으니까."

"5개월이나 됐다고?"

"아."

유나가 고개를 번쩍 들어올려 다나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나의 표정에 짜증이 섞여있었다. 이번에는 유나도 표정을 바로 구겼다.


"그렇게 오래 됐으면서 말을 안했단거야?!"

"왜 또 얘기가 그렇게 되는건데!"

"아, 언니들 그만 좀 싸워! 자꾸 그러면 엄마한테 이른다!"


성깔 있는 세 사람이 한꺼번에 입을 열면 이렇게 되는구나. 바다는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주아가 입을 열었을 땐 시끄럽긴 했어도 혼자여서인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거기다가 말린다고 다른 사람들도..'

바다는 주위를 힐끗 쳐다보았다. 별명대로 듄은 다나를 말리면서 떽떽 거리고, 주아는 이때를 틈타 나가한테 말을 걸고 있고.

'사사 선배였나, 저 선배는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얼핏 들으면 외계어를 하는 것 같은 사사 선배의 말은 바다가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였지만 사사는 그때 '그만해 얘들아.' 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바다가 들은 말은 '그마내 얘드다' 일 뿐이었지만.



"......"


바다는 결국 한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가, 싶었다.


책상을 크게 한 번 내리쳤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다들 행동을 멈추곤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바다의 천천히 열리는 입으로 향했다.

"저기,"

바다는 평소같이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조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진지하게 회의를 하려고 모인 것이지, 이런 말싸움을 하러 모인 게 아니잖아요."

바다의 눈동자가 다나와 유나에게로 향했다. 박 터지게 싸우고 있던 두 사람은 눈치가 보였는지 슬그머니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혜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당장이라도 전화기를 꺼낼 것만 같던 두 손을 가지런히 책상 위로 올려두었다.


"그, 나가 씨는 특기자가 된 지 얼마나 되었나요?"

듄은 이 상황을 모면하려 말을 돌렸다. 잠깐이나마 안심했던 그의 얼굴은 유난히 지쳐보였다.

"저요?"

나가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한 번 물어보았다. 그는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2개월 된 것 같은데.."


"역시."

"......"

나가의 대답을 듣자마자 듄과 다나가 눈빛을 교환했다. 다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몇 번 작게 끄덕였다.


"특기자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전부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1년이 넘은 특기자는 본 적이 없군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이번에도 없네."


"그럼 제일 오래 된 사람은 누구인가요?"

키네시스가 한 손으로 받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손에 걸린 여러 개의 팔찌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구슬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아무래도 영정 님이시겠죠."

"영정 님?"

"특기자들을 모아서 스푼을 만든 분이십니다."


'이상한데.'

바다는 듄의 대답을 들으며 생각했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바다는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넘겼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바다는 습관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

투명할 만큼 새파란 머리칼이 제자리를 찾을 때 쯤 다나가 입을 열었다.


"키네시스. 네가 쫓고 있는 사람 이름이 뭐라 했지?"

"하얀 마법사. 이름은 몰라요."


다나는 주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들어본 적 있어?"


"...글쎄."

주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발이 넓어도 그렇지. 별명만 들어도 바로바로 아는 게 아니야. 그래도 뭐, 외관 정도 알아오면 힘은 써볼게."

다나는 다시 키네시스를 바라보았다. 빨리 대답하라는 의미였다.


"외관이래봤자 하얀 머리 정도밖에 없는데."

"그게 다야? 더 자세하게 설명 좀 해봐!"

"만날때마다 우리 중 한 사람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기억나는 거라곤 눈색이 파란 색인 것 밖엔."

키네시스는 바로 이빨을 드러낸 다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음,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비단이?"

"넌 그걸 또 대답하고 앉았냐! 그리고 누가봐도 아니잖아, 하얀 마법사는 남자야!"

다나는 주아의 머리에 꿀밤을 한 번 때렸다. 그럼에도 주아는 재미있다며 웃었다. 아팠는지 머리를 계속 쓰다듬긴 했다.


-
-
-




'끝났다...'

바다는 창틀에 팔을 기대었다.

드디어 험난했던 회의가 드디어 끝났다. 바다는 마음을 평화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회의를 한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주아를 소개하려던 것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끝까지 생각 못 했지.'

그녀는 결국 찝찝한 게 뭔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바다는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일이야 앞으로 하면서 배울 테고, 궁금한 건 아까 선배들에게 물으면 될테니. 언젠가는 생각이 나겠거니 했다.


'그나저나 사사 선배가 혀가 그렇게 짧을 줄은 몰랐네.'

바다는 처음에 정말 외국인인 줄 알았다. 회의가 끝났을 때 '수고해떠' 라 말하는 걸 듣고 나서야 혀가 짧은 줄 알았지.

그녀는 그제서야 과묵함을 지키던 이유를 알았다.
왠지 실없는 작은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았다.


"......."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직은 날이 밝은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에 바다는 고개를 돌렸다.

"...아. 나가?"

나가가 쭈뼛거리며 바다 앞에 서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나가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불그스름했다.

바다는 나가가 더위를 먹었다 생각해 창가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바람이라도 쐐라는 의미에서였다.

"무슨 일이에요?"

때마침 불어온 뜨거운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쓸어지나갔다. 바다는 얼굴을 가리려는 머리칼을 손으로 살짝 붙잡았다.


"...혹시 서울 고등학교 다니세요?"

"맞아요. 이제 2학년이죠.
나가도 같은 학교죠? 교복이 같더라고요."

바다의 선한 눈매가 나가의 눈에 들어왔다.

나가는 볼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바람이라곤 뜨거운 것 밖에 없으니 볼이 식지도 않았다.


"저는 이제 입학한 신입생이에요. 같은 학교 학생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엄청 놀랐어요."


바다는 작은 웃음소리를 내며 나가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햇빛을 등진 바다의 눈동자는 검은 색이었다. 눈밭처럼 새하얗던 피부는 유리처럼 빛났다.


"편하게 불러요, 나가. 앞으로 잘 지내봐요."

바다는 얕게 고개를 숙였다.

나가는 볼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벗어난 바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으으...
대체 왜!"

나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바다는 항상 생각해오던 이상형과는 정반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르겠어..'

나가는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휘저었다.



'이상하네..'

같은 시간에 바다도 고개를 몇 번 갸우뚱하긴 했다.

'왜 눈을 감고 다니지?'

물론 같은 이유는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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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2-03 12:23 | 조회 : 809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나가야 너도 잘생겼어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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