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다행이야

"바다!"

키네시스가 바다를 찾으러 갈 때였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시간이 멈춘 거리를 헤매던 그는 서 너명 정도가 모여있는 한 골목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옳은 선택이었다.

그 골목은 바다가 있는 곳이었고,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은 다나와 귀능, 그리고 방금 막 도망친 오르카가 있던 곳이었다.


"저게..!"

다나는 도망쳐버린 오르카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그를 뒤쫓아가려 했지만 바다가 다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관두는 듯 했다.

다나는 바다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오르카가 사라진 방향으로 눈을 한 번 돌렸다. 당연하겠지만 오르카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저 애. 뭔지 잘 모르니까 회사에 데려다 놔라."

다나는 옆에 널브러진 귀능을 발로 한 번 차며 말했다.

귀능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귀능이 주섬주섬 바다를 챙길 때가 되어서야 다나는 고개를 돌렸다.

"넌 또 뭐야?"

다나의 날카로운 두 눈이 더 가늘어졌다.

어쩌면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 핑크빛 눈동자는 기분 탓인지 키네시스의 눈에 오히려 붉어보였다. 나중에서야 그는 '뱀 눈' 이랑 엄청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쨌든간에, 키네시스도 다나의 날카로움에 물러서지 않았다. 바다 근처에 서 있는 귀능에게 염동력을 사용하며 나름대로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날.."

귀능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반항하는 듯 하더니 모든 걸 내려오는 것 마냥 온 몸에 힘을 뺐다.


"......."

키네시스는 뒤에서 바둥거리던 귀능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다나에게 물었다. 바다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셈이냐고, 그러는 그쪽은 누구길래 여기 있냐고. 물으려고 입까지 열었던 상태였다.


"다나 언니?"

목까지 차올라 벅찬 듯한 숨소리가 유나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힘들어선지 벽을 잡은 손이 자꾸 미끄러져, 유나는 거의 머리를 벽에 박고서 기대있었다.

항상 단정히 땋아있던 보라색 머리카락이 엉망이었고, 꿀처럼 노란 끈은 거의 다 풀려있었다.

쉴 틈 없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기에 그럴 만도 했다.



"유나?"

유나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키네시스의 회색빛 눈동자에 담겼다.

시간이 멈추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공기였지만, 갑자기 고개를 돌린 키네시스의 머리는 바람에 날린 듯 움직였다.


어안이 벙벙해있는 키네시스와 다나, 귀능 그리고 이미 정신을 못 차리는 바다까지. 그 사람들이 상황파악을 하려 할 때 쯤에 유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니가 왜 여기 있어?!"

유나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다나를 가리켰다. 손가락이 약간 부들거렸다.
그 모습을 본 다나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지는 듯 했다.


키네시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는 그저 '다나 언니' 라는 말을 계속해서 되새겼다.
다나 언니, 다나, 다나...

"...아."

'생각났다.'

그의 험악했던 얼굴이 서서히 펴지는 듯 했다. 키네시스는 그제서야 귀능을 짓누르고 있던 염동력을 없앴다.
귀능은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것만 같던 기분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한결 가벼운 마음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한 번 폈다. 그리곤 유나와 다나 사이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는 듯 했다. 물론 옆의 바다를 부축해들고서 말이다.


다나의 커다랗게 커졌던 눈동자는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커다란 손을 유나의 등으로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

"언니한테 '니' 는 무슨, 언니라 부르라고 내가 말했지!"

순식간에 다가간 다나의 모습에 유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 유나의 눈앞이 핑 도는 듯 하더니 눈물이 잠시 앞을 가렸다.

사실 더 크게 지를 만도 했지만, 너무 아프면 소리도 안 나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유나는 그런 상황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었다.


"진심으로 때렸어!"

유나는 쓰라린 등을 매만지며 다나를 흘겨보았다.

"그럼 장난으로 때리겠냐!"

다나는 유나의 짜증에 지지 않고 맞붙었다.

두 자매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둘 모두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혜나와는 잘 다투지 않았지만, 왜인지 서로와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싸웠다.


'저번에 키네시스랑 놀러갈 때도 놀리더니..'

유나는 투덜거리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항상 그럴 때마다 중재는 혜나가, 아니, 혜나가 부른 엄마가 해주었다. 공평하게 둘 다 등짝을 한 대씩 맞고 나면 어느 정도 수그러들긴 하더라. 혜나는 가끔 모든 걸 포기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얘는 누구야. 아는 애냐?"

다나는 경계심이 누그러졌는지 키네시스에게 한 발짜국 다가갔다. 한 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걸어오는 그녀였지만 키네시스도 다나를 딱히 경계하진 않았다.

오히려 사람좋은 미소를 활짝 지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저 유나 소꿉친구 키네시스인데요."

"....앙?"

저렇게 잘생긴 얼굴이라면 내가 잊을리가 없을 텐데. 물론 오수만큼 잘생긴 건 아니지만.
다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려보았다.물론 그 생각에는 주관적 견해가 아주 많이 섞여있었다.

어쨌거나 키네시스의 얼굴을 잠시 빤히 쳐다보던 그녀의 뇌리에, 어릴 적 순둥하게 생긴 그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다나는 눈을 두 어번 깜빡이다가 말했다.

"혹시 그 유나랑 10년 넘게친구라는?"


"맞아, 옛날에 집에 와서 같이 놀기도 했잖아!"

유나는 '설마 까먹은 건 아니지?' 라며 다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다나는 '조용해라.' 라 말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 때, 대로변을 향해 내리쬐는 햇빛이 구름에 살짝씩 가려지는 게 보였다.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키네시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게 말했다. 다나와 유나도 그 말을 듣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따금씩 바람도 불어 머리카락이 날리는 게 느껴졌다.
북적북적한 사람들의 소리와 발걸음, 전광판의 앵커의 뉴스 그리고 차 소리까지 들렸다.
저녁 무렵의 활기가 정상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거 니 특기냐?"

다나가 진귀한 광경을 봤다는 듯이 주위를 계속해서 둘러보았다. 그 질문은 키네시스에게 물어본 것이지지만 유나가 대신 대답했다.

"아니. 이건 바다의 특기야. 바다가 예전에 얘기해줬거든, 시간을 멈추는 특기가 있다고."

"그래?"

다나가 고개를 돌려 바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귀능이 '아야야야...'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면서도 바다를 등에 업고 있었다. 다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귀능에게 "먼저 가 있어." 라 말했다.
귀능은 "옙." 하고 짧은 소리를 하고는 담벼락을 넘으려는 듯 자세를 취했다.

"잠깐, 바다를 어디로 데려가려는거야?"

유나가 당황하며 다나에게 황급히 물었다. 묻기보단 질책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가서 치료라도 해줘야지. 따로 볼 일도 있고."

"절대 안 돼, 치료라면 우리가 해 줘도 돼!"

유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잠시 구름이 태양빛을 가렸기에, 그녀의 표정은 그림자에 비쳐 더욱 암울해보였다.

키네시스는 유나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다나를 막는지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 싶었다.


"데려가려고 하는 거잖아. 절대 안 돼!"

"하..."

다나는 유나를 옆눈으로 흘깃 보았다. 유나의 찌푸린 얼굴을 정확히 본 그녀는 잠시 고개를 돌려 작은 한숨을 쉬었다.


'일 났다...'

귀능이 있던 자리는 고개를 돌리던 다나의 표정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살벌한 그녀의 표정을 정통으로 본 귀능은 주변의 눈치를 슬슬 보았다.

잘못 하면 여기 벽 다 깨지는 거 아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부디..차라리 아까처럼 시간이 멈추게 해주세요..'

하며 말도 안되는 소원을 빌었다.


"말이 되는 소릴 해, 유나. 너 뼈 부러진 거 고칠 수 있어? 아니면 응급실라도 데려가려고?"

"......"

유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말도 안되는 건 알지만, 그래도..'

키네시스에게만큼은...

유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이대로라면 '그 회사', 그러니까, 일명 '스푼' 에 대해서 키네시스가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막고 싶지만 막을 수가 없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됐어. 데려가 그냥."

귀능은 바다를 번쩍 업어들고 담을 넘었다. 바로 옆 건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선 귀능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걸어가는 발걸음을 모두 듣고 있음에도 유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명확한 이유도 없이 안된다며 물고 늘어지는 건 초등학생인 혜나도 안 하는 짓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유나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란 것을 깨달았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스푼에 대해 키네시스가 모르게 될 거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나는 억울한 듯 표정을 곱게 펴지 못하는 유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또 화를 내려던 그녀는, 아까 전까지 하던 대화와는 연관성이 거의 없어보이는 질문을 갑자기 내뱉었다.

"근데 우리는 왜 전부 포함이 안 되는데?"

"...뭐가?"

유나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키네시스를 뒤로 물리고는 한 걸음 더 앞으로 간 유나는 다나와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마냥, 좀 더 날카로운 눈빛을 내보였다.


다나는 미간을 약간 구겼다.

"시간을 멈추는 특기인데 왜 우리는 안 멈춘건지 아냐고 물었다. 빨랑 대답해라."

유나는 잔뜩 하고 있던 긴장이 실없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유나는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몰라, 특기자만 제외되는 걸 수도 있고. 우린 전부 특기자니까. 그거에 대해선 바다한테 들은 내용 없어."

"특기자만 제외된다고?"


"아."

유나의 날카로운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노란 눈동자가 살 길을 찾아헤매는 것 같았다.

일 냈다.
그 순간 유나의 머릿속에 뜬 말은 그 뿐이었다.

'우린 전부 특기자니까.' 어쩌자고 그딴 말을 내뱉은 건지.


"야, 너 언제부터 특기 얻었어. 빨리 대답안 해?"

"아, 이거 놔! 아파! 놔야 대답을 하지!"

유나는 자기 머리카락을 꽉 쥔 다나의 오른손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 순간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듯 했다.


"거기 너, 키네시스 맞지? 얘 특기 뭔지 빨리 말해!"

다나가 또다시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키네시스는 유나를 흘깃 바라보며 눈치를 보는 듯 했지만 다나가 재촉하는 바람에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바람 특기에요. 하얀 마법사라는 놈이 어떻게 했는지 갑자기 특기가 생겨났더라고요."


"뭐? 바람 특기? 어쩐지 집에 가만히 있어도 통풍이 잘 되더라!"

"나도 아직 제어가 잘 안된단 말이야!"

유나는 겨우 정리해 둔 머리카락이 다시 엉망이 된 것을 보고 미간을 확 찌푸렸다. 머리 한 쪽을 다시 땋으며 노란 끈으로 묶던 유나는 노선을 변경하기로 생각했다.

'이대로면 언니는 우리 둘 다 스푼으로 데려가려하겠지.'


"하얀 마법사란 놈은 또 누구야? 아니, 하......"

다나는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머리가 복잡했는지, 들으란 듯이 한숨을 푹 쉰 그녀는 유나에게 말했다.

"야. 너 니 친구 데리고 그냥 스푼으로 와라. 물어볼 게 한 두가지도 아니고. 니 친구도 특기자인 것 같으니까."

'역시나.'

유나는 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부서진 골목 한 모퉁이의 벽을 바라보고, 바로 옆의 커다란 대형건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대로변을 보았다.

유나는 어떻게해서든 키네시스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저 그 대로변을 걷고 있는 시민 1로 지내기를 바랐다.

하얀 마법사에 대해 설명을 들은 다나라면 분명, 그를 더 빨리 잡기 위해 자신들과 동맹 아닌 동맹을 맺자고 할 것이었다. 유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키네시스는 그 말을 듣는다면,

'하얀마법사를 더 빨리 잡기 위해 스푼에 들어갈거야.'


유나는 다나가 스카우트를 하는 광경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안경 쓴 고등학생 한 명을 스푼으로 데려갔다.

이번에는 그녀가 자신들을 스푼에 데려가려는 목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유나는, 키네시스가 그 제의를 거절하도록 만들기로 했다.
어떻게든 스푼의 위험성을 알려서 못 들어가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얀 마법사를 빨리 잡을 수 있는 거면 그렇게 할게요."

"키네시스!"

유나의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네시스는 스푼에 들어가겠다고 대답했다. 유나는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키네시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유나는 분명히 말했다.
스푼은 위험하다고, 바다가 다친 것을 보지 않았냐고, 그렇게 다칠 수 있다고.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유나는 다나가 종종 새카만 정장을 입고 늦은 밤 집에 들어오던 모습을 기억했다. 그녀의 몸에서는 향 냄새가 났다.

유나는 다나가 항상 꽃무늬 셔츠를 입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다나가 왜 검은 옷을 입고, 힘이 빠진 표정으로, 쾌쾌한 향 냄새를 풍기는지 알았다. 알고 싶지 않아도 그랬다.

그때부터 유나는 특기를 사용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

어느 새 밤이 되어버린 새카만 하늘은 더 암울한 분위기를 내주었다.

바다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는 은비단이 앉아 그녀를 치료해주고 있었다. 달빛처럼 은은한 색의 빛이 은비단의 손에서 바다의 상처로 향하고 있었다. 상처들은 모두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엄청 다쳤네. 열심히도 싸웠나봐?"

은비단은 모든 치료가 끝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다나를 찾았다. 바다는 지친 것 뿐이니, 조금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것이라 얘기했다. 피로가 많이 쌓여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나는 간호인으로 마침 지나가던 듄을 붙여주었다.

유나는 스푼의 복도를 빠져나와 난간으로 향했다. 달은 뒤의 건물들에 가려져있었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는지 유나는 계속 그곳에 서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어.
유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키네시스와 자신이, 그리고 제이가, 위험하지 않게 비교적 안전하게 지내기를 바란 것 뿐이었다. 하얀 마법사와의 소동 이후 자신이 바람 특기를 지니게 된 그 순간부터 그게 쉽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스푼에 입사하는 건 아니었다. 스푼에 들어오는 것은 본격적으로 특기를 이용하겠다는 의미라는 걸, 스푼 서장의 동생이 모를 리가 없었다.


키네시스는 복도를 천천히 거닐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당황한 목소리의 제이였다. 키네시스는 제이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고, 다나는 친구들의 의견까지 전부 고려해주겠다고 얘기했다.

유나는 당연히 반대했지만 제이와 키네시스는 찬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사람이 잠들어있던 바다였다.




"....그렇게 된 거야."

유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자신이 잘못했단 건 알고 있었다. 바다에게 '너 때문이다' 따위의 말을 해선 안되는 거였다.

유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뒷일은 어찌됐던간에,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것이다.


"미안해. 그땐 내가 너무 예민했나봐."

"......."

"친구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게 무서웠어. 그래도 바다 너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건데.."

"괜찮아요."

바다가 멋쩍은 웃음을 내보이며 나지막히 말했다.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미소는 유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듯 했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니까요. 그러니까 눈물 그쳐요. 유나."

바다가 유나의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살짝 훔쳤다. 유나는 창피함에 얼굴을 들지 못했으나, 바다가 이만 아지트로 들어가자며 손목을 잡았기에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유나는 안도의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가 화를 내면 어쩌나 했지만 이렇게 잘 화해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유나는 바다가 착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처음 봤을 때의 그 미소를 떠올리며.


'사과 하면 끝인가.'

그 속에는 뭐가 들어있을지 아무것도 모르며.

'씨발.'

바다는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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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1-13 12:22 | 조회 : 1,032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키네는 곧 죽어도 반말할 거 같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유교국가 한국의 사람이다 이 생각만 하면 하긴 그렇지...하고 납득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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