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밤바다보다 빛나는




'폭신하다..'

바다는 어릴 적,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솜사탕에 눕히는 듯한 기분을 떠올렸다. 폭신폭신하면서도 따스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침대 아니면 소파가 아닐까, 하고 짐작했지만 눈을 뜨고 확인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뭐하러 그래. 그냥 감고 있으면 되지.'

안 그래도 온 몸이 쑤신데 말이야.
바다는 창문 틈으로 쏟아지듯 내려오는 햇살에 얼굴을 맞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바다는 '참는 것' 하나에는 어떻게든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아프고 쓰라려도 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을 자신 있었다. 실제로도 오르카와 싸울 때 작은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가 간과했던 것은,

그녀는 이만큼이나 크게 아파본 적은 없었단 것이었다.


평범하게 자라온 고등학생이 아파봤자 뭐 얼마나 아팠겠는가.

기껏 해봐야 운동하다 다리가 접질리거나, 눈 오던 날 미끄러지는 정도였을 것이다.
조금 더 심하다면 조심성 없이 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 이상이면 이미 평범이 아닌 게 분명하니까.


온 몸이 짓눌려서 입에서 피가 나고
딱딱한 벽에 부딪혀 뼈에 금이 가며
압력을 견디지 못해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바다는 이런 무시무시한 싸움에 휘말려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아주아주, 정말로, 당장이라도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만큼 아프다고 생각했다.

과장을 약간 섞기는 했으나 반절은 사실이었다.
푹신푹신한 그 뭔가에 내려지면서도 온 몸이 들쑤셨기 때문이었다.

'...죽겠네 진짜.'

바다는 미간을 아주 살짝 움찔거렸다.



"누구에요?"

가느다란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렸다.

보이지는 않으나 피부로 느껴지는 햇살과,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은 누군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조화로웠다.

아무 감정도 실려있지 않은 그 사람의 목소리였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저녁 노을이 따스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바다는 나중에 일어나게 된다면 꼭 이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그 이후로도 다른 이와 계속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하지만 바다의 귀에서는 뭔가 웅얼거리는 이명으로밖에 남지 않았다.

피곤함과 지침 그리고 상처 때문에 잠들기와 깨기를 반복하는 바다에게는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갑작스럽게도, 그녀의 몸이 서서히 가뿐해지는 느낌만은 들 수 있었다.

'숨 쉬는 게 덜 힘들어. 입 안에서 계속 남던 피 맛도 사라진 걸 봐선 피가 멎은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어.
일단 지금은 자고 싶어.

바다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기절하듯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
-
-



"........."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시원한 바람소리처럼 들렸다. 어쩌면 파도치는 바닷가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앞머리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바다는 아무렴 상관 없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창밖에 보이는 하늘이 마치 보석이 박힌 듯한 검은 색이라는 것이었다.

'벌써 밤이야..'


"아. 서장님. 일어났습니다."

피로가 약간 가신 것을 느끼며 바다는 눈을 비볐다. 그 모습을 발견한 듄은 읽던 책을 옆의 작은 책상에 올려두며 서장을 불렀다.

바다는 희미하게 떠도는 담배냄새에 눈을 찡그리면서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소리를 못 들은거라 생각했는지 문을 열고 걸어나가는 듄과, 작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물병 속 꽃 한 송이. 아무것도 없어서 삭막하다 느껴질 정도의 병실 같은 방과 그 안으로 조명처럼 내려오는 달빛.

바다는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려 침대를 한 손으로 짚었다.

'아. 이 침대구나.'

바다는 자신이 놓여지던 솜사탕 같은 느낌을 알아차렸다.
폭신폭신한 게 계속 누워있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자세를 고쳐잡아야겠다고 그녀는 느꼈다.


바다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경적 소리가 바다의 귀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들렸다. 꽤 높은 하늘에 걸린 달이 투명한 바다의 머리카락을 더 반짝이게 만들었다.

'밤바다에 들어갈 때보다 더 반짝일지도 모르겠어.'

참 재미없는 농담인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바다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다는 방문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난 괜찮아요. 키네시스."

키네시스였다. 나름대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키네시스였다.
그 옆에는 울었는지 눈가가 빨개진 유나도 있었고, 바다를 구해줬던 검은 머리의 멋진 여자도 있었다. 그 사람의 다른 특징이 어쨌던간에 바다는 다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일어났으니 이제 말을 해볼 수 있겠네."

다나는 듄이 그동안 앉아있던 의자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사뭇 진지한 표정에 바다는 덩달아 긴장되었다. 바다는 자신을 덮고 있던 새하얀 이불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일단 나는 「스푼」이라는 회사의 서장인 '다나' 다. 네가 낮동안 피 터지게 싸우던 그 놈은 우리와 적대관계인「나이프」라는 조직의 일원이고."

".....그 사람 이름이 뭔가요?"

"오르카."

옆에서 같이 듣고있던 귀능이 말했다.

귀능은 등장과 동시에 오르카에게 얼굴이 갈렸으므로 바다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판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있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오르카. 오르카. 오르카..'

바다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오르카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름을 반복했다. 다음 번에 또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이름을 꼭 불러주며 시원하게 욕을 퍼붓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물론 속으로.'


"어쨌든. 우린 나이프의 보스인 백모래와 그 잔당들을 잡는 것이 목표고, 너를 포함한 네 친구들의 목표는 '하얀 마법사' 라는 놈을 잡는 게 목표라 들었다. 그리고 너희는 모두 특기자고. 그러니 너희에게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다나가 옆에 서 있던 귀능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귀능은 옷 속에 품고 있던 종이 몇 장과 펜을 꺼내 바다에게 건내주었다.

'뭐야 이건.'

바다는 습관적으로 빼곡히 쓰인 글자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제일 위에 큰 글씨로 쓰인 제목에 계약서라고 적힌 걸 보아선, 아마 그들의 제안조건을 상세히 적은 내용 같았다.

바다가 열심히 눈알을 굴리고 있을 때 다나가 말했다.

"핵심내용은 간단하다. 너희가 나이프 처단을 도와주면 우린 하얀 마법사 처단을 돕는다. 서로서로 돕고 살자는 뜻이지. 요새 세상이 워낙 각박하니까 말이야."

"........"

바다는 종이를 다 읽었는지 다나에게 두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 그리고 그때 바다의 눈동자는 검은 색이었다.
뒤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등진 바다의 눈동자에는 별빛같은 반짝임이 가려져있었다.


"우선 특기자가 뭔지부터 설명해주세요."

"너희가 흔히 말하는 초능력자."

"제가 초능력자인 건 어떻게 알았나요?"

"네 친구들이 말해줬다. 정황상 시간을 멈춘 것도 네 특기인 것 같았고."

".....맞아요.
시간정지는 제 초능력 맞아요."

바다는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그리고 다쳐서 아팠던 부분들을 하나씩 몰래 움직여보았다.

부서진 것처럼 아프던 등을 살짝 펴보자 평소같은 가벼움이 느껴졌다. 왼쪽 눈동자를 굴릴때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바닥에 쓸릴 때 생긴 손바닥의 찰과상도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다치기 이전보다 온 몸이 가뿐했다.

'이것도 그 초능력이란 건가.'


"그래서 어떻게 할 건지 말해라. 참고로 스푼에 들어오면 학교 째는 거 조퇴하는 거 다 가능하다."


'아.'

바다는 다나의 그 말을 듣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날 끌어들이는 편이 저쪽에서는 생각보다 큰 이득인가보구나.'

그들에게 있어서 바다는 꽤 중요한 자원이자 병력이 될 수 있고, 자신의 유무가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다나가 그녀를 원하고 있다는 것.

그건 다나가 하는 말에서 충분히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길리가 없지 않은가.


"........"

바다는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눈동자를 이따금씩 좌우로 굴리며 고민하는 듯 했다.


창문 밖에서는 높은 건물들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잠들기 전의 고요함이 느껴지는 잠깐의 시간이었다.


"..우선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상황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에요."

바다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대충 반으로 접었다.

"전 다나...씨 말대로 부상을 당했는데 이제 막 치료가 되어서 일어났어요."

바다는 다나의 칭호를 뭐라 불러야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씨' 를 붙이기로 했다. 정황상 듄이 찾으러 간 서장님이 이 사람인 것 같았지만, 아닐수도 있으니 무난한 칭호로 결정한 것이었다.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바다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니 지금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대답은 내일로 미룰게요. 이곳의 정확한 주소를 말해주시면 제가 찾아올게요."

"........"

다나는 당당한 표정의 바다를 똑같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흐릿한 얼굴이 비교적 또렷이 보였다. 바다는 그제야 자신이 안경을 벗어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

다나는 또다시 귀능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귀능은 '뀨뀨뀨' 거리는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종이에 뭔가를 끄적였다.


바다는 귀능에게서 종이를 넘겨 받으며 교복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텅텅 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찾지 못하던 때, 바다는 오르카와 싸우다 바닥으로 떨어지던 것이 생각났다.

바다는 '혹시 깨진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귀능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몇 시인지 알 수 있을까요?"

"10시 40분이네여."

귀능은 손목에 걸려있던 시계를 힐끔 보고는 대답해주었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은 너무 늦은 밤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겐 그런 시간이었다.

바다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은 적은 없었다. 독서실이나 학원에 갔다가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온 적은 많았지만.

어차피 늦게 집에 가도, 걱정하는 사람도 없기는 하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간을 알고 나니 마음이 붕 뜨기 시작했다.
바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내일 방과후에 여기 다시 오고요."

스푼에 들어오고서 처음 내보이는 친절한 태도였다.



-
-
-



"아. 여보세요. 키네시스, 바다는 어떻게 됐어?"

"방금 일어났어. 이제 아지트로 가려는 참이야."

키네시스는 제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바다를 힐끔 쳐다보았다.

바다는 손에 든 종잇조각을 주머니에 구겨 넣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키네시스가 한 말을 들었는지 바다는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집에 먼저 가볼게요. 아직 몸이 다 안 나은 것 같아서요."

"아. 그래..."

키네시스는 뒤를 돌아 걸어가는 바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옆에 서 있던 유나는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입을 굳게 닫는 듯 했다.
유나의 표정은 한결같이 좋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키네시스는 알 것도 같았지만, 아지트에 들어가서 물어보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아 참, 그러고보니.."

바다는 깜빡한 게 있다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돌린 몸에 그녀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가로등 아래에서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에도 새하얗다 못해 투명하다고 느낄 정도로 하얀 바다의 피부가 검은 밤 속에서 유난히 더 밝아보였다.


"아까 전 다나 씨가 말했던 제안을 둘도 받았죠?"



"어? 응.
....아."

키네시스는 귀에 대고 있던 휴대전화를 멀리 떼어놓았다. 그 안에서 왱알거리는 소리가 바다에게도 들렸다. 바다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살짝 고개를 기웃거렸다.

키네시스는 '시끄러워서 안되겠네' 라는 혼잣말을 하며 전화기를 스피커 모드로 바꾸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전화를 내밀자 제이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왜 둘이야, 나도 받았어!"

바다가 하는 말은 어떻게 들었는지 제이가 소리치고 있던 것이었다. 키네시스는 알았으니까 진정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바다는 뭐가 재미있는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였다. 처음 키네시스를 만났을 때, 다나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와 같이 상냥한 미소였다.


"우리는 전부 수락하긴 했어. 유나가 초반에 반대하기는 했지만, 다나 서장님이 알고보니 유나의 언니여서 별 소용은 없더라."

".....그게 정말이에요?"

바다는 손으로 입을 살짝 가렸다. 그녀의 눈은 동그랗게 커지고 입은 살짝 벌어졌다. 한 박자 늦은 타이밍이었지만 그건 너무 놀라서 그런 것일 뿐이다.

사실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건 나쁜 습관이라고 바다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두 사람이 접점이 있을 거라곤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낯도 많이 가리고, 꽤 조용하고, 착실한 유나와 꽤 터프하고, 털털하고, 화끈한 성격인 듯한 다나라니. 바다는 아직 다나의 성격을 잘 파악하진 못했으나 그런 성격일거라 예상 중이었다.

어쨌거나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머리색이 닮은 것 같기도.'

바다는 다나의 검은 머리 사이로 살짝 드러난 핑크색을 떠올려보았다. 부분부분 그런 발랄한 색이 있는 걸로 봐선 염색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님 말고.'


"난 유나와 어릴 때부터 친했으니까. 한동안 못 봤어도 이름을 들으니 기억이 나더라."

바다는 그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어릴 적의 유나와 키네시스, 제이를 떠올려보았다. 아장아장거리며 걸어다닐 걸 생각하니 귀엽다는 생각도 드는 듯 했다.


"어쨌든, 반대했던 유나 의견은 거의 묵살이었어. 그래서 우리 전부 다 수락한 걸로 결정하려 했는데 그때 바다 네가 깨어있질 않으니까, 네가 일어난 후에 네 의견까지 듣고 결정하기로 된 거야."

"음..."

"어떡할거야?"

바다는 키네시스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큰 도로라 그런지 차들이 많았다. 키네시스와 처음 만날 때 본 전광판에서도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끄러운 잡음들 속에서 바다는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나도 수락하고 싶긴 해요. 집에 가서 더 생각해봐야 알겠지만. 우선 지금은 반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아요."

바다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며시 넘겼다. 갑자기 어디서 바람이 날아오는 건지, 생각보다 바람이 세길래 바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그리고 내일 스푼에 가기 전에 아지트에 먼저 들러. 어제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건 우리가 설명해 줄테니까. 유나, 우리도 이만 가자."

"그럼 나도 진짜로 가볼게요."

키네시스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유나의 손목을 잡았다. 바다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유나는 아무 말 없이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바다는 혹시 유나가 어디 아픈 걸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스푼에서 봤을 때 눈가가 붉은 것 같았는데.'

울었나?

이런저런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기도 하고.
저절로 하품이 나오던 바다는 이런저런 이유에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유나와 키네시스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잠깐만, 키네시스."

하지만 유나는 자꾸만 달싹이던 입술을 꼭 깨물고 키네시스에게 말했다. 그의 손목을 뿌리치고 바다에게 달려간 그녀는 바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렇게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유나?"

당연히 바다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미 거리가 멀어질 대로 멀어져있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었기에 뛰어온 걸까. 궁금해하던 바다에게 유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우리가 스푼에 가게 되는 거야."

"...네?"

바다가 잘못 들은 건가, 하는 생각으로 유나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제대로 바라보았다.

바다는 오르카와 싸울 때 안경이 부서져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한 가지는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만 없었으면..."


유나의 노란 눈동자에서 소나기가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


바다는 그렇게 무거운 한마디를 내뱉은 채 다시 뛰어가는 유나의 뒷모습을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동그랗게 조명빛으로 비추어지는 바닥을 향해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물을 떠올리며, 그렇게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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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1-07 15:10 | 조회 : 935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세상에 여러분 오늘이 화요일이라면서요 방학이라 요일감강 없는 것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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