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당연히 충분하지!

한 남학생의 손에 들린 큐브가 제멋대로 돌아갔다.

아무도 돌리지 않은 큐브.
그저 손에 쥐어져있는 것 뿐인 큐브였다.


거리의 전광판에는 '정말로 초능력자가 있는 것일까?' 라고 적힌 커다란 제목이 써져있었다. 진지한 표정의 앵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초능력을 본 사람들의 증언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와중에, 초능력자에 대한 궁금증은 커지는 추세입니다.
정말로

초능력자는 존재하는 걸까요?"


그 모습을 보는 남학생의 이름표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키네시스' 라고 적힌 이름표였다.

순간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어느 곳에서 멈추었다.



"아!"

엄마와 함께 걸어가던 한 아이가 작은 소리를 입 밖으로 흘려냈다.

아이가 들고있던 작은 풍선은 바람에 흩날려 도로로 날아가버렸다.
꼬마는 낙엽처럼 떨어지듯 도로에 떨어진 풍선을 잡으려 뛰어들었고, 아이의 엄마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느라 그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는 짧은 두 다리로 풍선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그 순간, 꼬마의 눈앞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빠아아아앙-!!!!!

아이가 풍선을 집은 순간 트럭이 꼬마에게로 돌진했다.

그 때 브레이크를 잡아도 이미 거리는 너무 가까워져있었다.


"꺄아아악!"


아이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지만, 어떠한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꼭 감고있던 두 눈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느끼자 꼬마는 그제서야 눈을 서서히 떴다. 여전히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터질듯이 울렸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그보다 호기심이 더 먼저였다.

살며시 한쪽, 차례로 다른 한쪽을 뜨고 꼬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쉿."

검지를 입에 댄 채 작은 소리를 내는 키네시스.


그는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에게 달려오던 트럭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닿지도 않는 트럭은 공중에 떠올랐다.

바람에 잠시 흩날리는 낙엽같은 것이 아닌 아예 비눗방울처럼 떠있는 모습이었다.


키네시스가 구해준 아이의 눈동자가 맑게 비쳐보였다.

아이의 눈에서 보여졌을 때는 그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랬기에 그 아이는 키네시스를 따라 자신도 검지를 입에 갖다대며 '쉿'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그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초능력은 없는 것이었다.
있어도 없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들의 사이에서는 초능력자가 존재했지만 일반인은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뉴스의 앵커도 그 사실을 말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초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키네시스와 같이 대로변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랬다.

그렇다고 키네시스가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타인에게 자랑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어려운 사람들을 구해주고, 혹여나 얼굴을 본 사람이 있다면 아까와 같이 '비밀로 해달라' 는 표시를 드러낸다.

'서울시, 재난을 구해 준 의문의 남성은 누구인가?' , '차를 들어올리는 그는 과연 초능력자인가?' 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는 것을 봐선 그게 그렇게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꼬마아이의 손에 풍선을 쥐어주고, 염력으로 들어올리고 있던 트럭을 내려놓은 후 키네시스는 도로를 벗어났다.

하지만 이번은 그 전과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내가 염력을 쓰기 전에 누군가 먼저 초능력을 썼어.'


키네시스는 주위를 황급히 둘러보았다.

탁 트인 도로에는 곳곳에 작은 골목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숨기에 충분한 공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충분히 몸을 숨길만한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양쪽으로 커다란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한 골목.


그곳으로 걸어간 키네시스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었다.

"네가 염력을 썼지?"




오전과 오후의 경계에 서 있던 그 시간에는 바람조차도 조용했다.


키네시스가 그 조용한 바람을 맞으며 골목 안을 보았을 때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 어울리는 눈 색.'

키네시스는 고개를 돌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생각했다.


태양빛에 비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투명한 하늘빛 머리카락과, 바다보다 청량한 색감의 진푸른 파란색 눈동자, 왼쪽 볼 중간에 있는 작은 점 하나.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고래 같은 색감이었다.

그 어느 것도 새파란 바다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어보였다.


"염력이요?"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선 돌아보았다.

살짝 웃음진 눈매는 초승달처럼 휘어있었다.
딱 누가보아도 사람좋은 웃음이라 생각될 만큼이었다.
딱 그만큼이 다인 웃음이었다.


"그래."


그녀는 키네시스의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에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던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젖히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초능력자라고 확신하고 온 모양이네요. 염력을 사용한다는 건 그 뜻 아닌가요?"


"이쪽에서 초능력자 특유의 기운이 느껴졌거든. 가끔은 직감이 더 낫다는 말 알잖아?"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


그녀는 키네시스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말했다.
발뺌하지도 않았고, 아닌 척 연기하지도 않았으며,
더 이상 친절한 미소도 짓지 않았다.


키네시스는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고민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래야하지?"

그에게는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처럼 얌전히 입을 다물어줄 이유가.

오히려 그 반대로 행할 이유는 있었다.
그 이유가 이제 막 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말을 들어주려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거절한 걸로 알겠어요."

순간 키네시스는
담담하게 대답한 그녀의 눈동자에서 바다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

키네시스를 향해 그녀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바람보다도 더 시원한 바람 불었다고, 바람조차도 맑았다고.

키네시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잠시 주춤했다.

'안 나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염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염력은 나오지 않았다.

'초능력을 사용 못하는 여기에서 계속 있는 건 위험해.'

키네시스는 점점 다가오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기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이미 거리는 너무 좁혀져 있었다.
도망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마침내 그 여자는 키네시스의 팔을 덥썩 붙잡았다.

역으로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기다란 하늘색 머리칼을 한 번 쓸고 갔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아주 작게 말했다.

"잊어요."

라고.



"무슨-!"

털썩-.

그녀는 뭐라 소리치려는 키네시스의 두 눈을 손으로 재빨리 가렸다. 그리고 마법처럼, 어쩌면 마법일지도 모르지만, 키네시스는 힘없는 인형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5분쯤 후에는 일어나겠지.'

그녀는 쓰러진 키네시스를 대충 벽에 끌고 가 눕혀놓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깨어날 테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고나서 아주 잠깐 숨을 돌리는 그녀의 눈 앞으로, 뿌연 담배연기가 한 번 지나갔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눈을 찌푸리며 골목을 나서려 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던 때였다.


"으윽....."

".......!"

그녀는 잠시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쓰러져있던 키네시스가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려했다. 아픈 머리를 싸매면서 자리에서 서서히 눈을 뜨는 키네시스를 본 그녀는 황급히 몸을 벽 뒤로 숨겼다.

그리고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내 초능력이 먹히지 않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한 번 더 사용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커. 오히려 내가 발목을 잡힐 수도 있는...'


"........."


타다닥-!

여자는 한참을 고민하고는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리고는 그 골목을 달아나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소리지?"

아직도 아픈 머리에 관자놀이를 짚던 키네시스는 소리가 나던 곳으로 걸어가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키네시스가 서 있는 곳은 담배향만 짙게 남아있었다.




-
-
-



"그래서. 늦은 이유가 뭐라고?"

"아, 미안 유나. 중간에 위험에 처한 꼬마가 있길래 도와주고 왔지."

"뭐?! 밖에서 마음대로 초능력 쓰지 말랬잖아!"

유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키네시스는 잠깐 움츠러들었지만, 자신의 소리에 자기가 놀란 유나의 표정을 보고는 다시 돌아오는 듯 했다.



그 날은 간만에 둘이서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었다.


'야. 어딜 가길래 그렇게 꾸미냐?'

'알 거 없어 너는.'

'이게 꼬박꼬박 언니라고 안 부를래?'

'머리 잡아당기지 마. 정리해놨는데 그러면 어떡해!'

'아 엄마 언니들 또 싸워!'


유나는 겉으로는 아닌 척, 언니라는 사람이 괴롭힐 때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실제로는 아주 들떠있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말그대로 꽃단장을 하고 나왔다.

그런데 하필 그런 엄청난 날에.
그런 날에 키네시스가 위험한 아이를 구해주느라 늦었고, 심지어 그 장소도 한숨이 나올 것만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까, 사거리에서 대놓고 차를 들어올렸다고?"

"쉿. 네 목소리가 더 커 유나. 다른 사람들이 네 말을 듣고 내가 초능력자인 걸 알겠는데."

평소처럼 희미한 눈웃음을 지은 키네시스는 검지를 유나의 입에 살며시 가져다대며 말했다. 그제서야 유나는 주변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 속닥거리듯 말했다.


"아무리 급했어도 그렇지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초능력을 사용하면 어떡해!"

"괜찮아. 내가 뭐 그런 거 신경쓰는 사람은 아니잖아."


"내가 안 괜찮아!"

유나가 키네시스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두 눈이 한 번 크게 깜빡였다.


유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넌 우리 학교의 전교회장이야. 그런 네가 초능력자인게 들통난다면 너부터 시작해서 네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 학교에 대한 것도 전부 드러나게 될 거야.
아니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네 몸도 좀 챙기라고 키네시스!"

유나는 고개를 휙 들어올려 키네시스의 이마에 난 상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골목길의 여자 때문에 생긴 작은 상처에서는 피가 약간 맺혀있었다.


키네시스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아 이 정도는.' 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유나의 손을 내리며 그 상처를 가렸지만 유나는 눈물이 약간 차오른 듯한 눈동자로 키네시스를 마주보았다.


"....멍청이. 너 아직 학생이야. 고등학생.
아직 네가 제일 중요할 때라고. 다른 사람 말고 너부터 챙기란 말을 왜 이렇게 안 들어?"

"유나...
이렇게 작은 상처인데 뭐."

"말이 안 통해 정말!"

유나는 보라색의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말 한 마디에 키네시스가 말을 들을 거였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게 키네시스 다운 답변이었다.
유나는 그 생각을 하며 눈물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키네시스는 유나의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알아. 이해했어."

"......!"

유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고개를 푹 숙였다.
당장이라도 홍당무보다 더 붉어진 얼굴을 들킬 것만 같아 무서움에, 그리고 설렘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좀 더 조심하라는 말이지? 알았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나가 그렇게 말하는데 들어야지."

"마, 말은 잘해."

유나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약간 더듬었다. 아직까지도 들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이미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키네시스는 유나의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는 말했다.

"됐으니까 어서 영화나 보러가자. 시간 다 됐겠어!"

키네시스는 고개를 살짝 돌려 싱긋 웃어보였다.

유나는 키네시스의 두 팔에서 벗어나며 앞으로 걸어갔다.
창피함과 설렘이 한 군데 뒤섞인 유나의 발걸음은 로봇처럼 삐걱대고 있었다.


유나는 뜨거운 볼을 식히기 위해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나쁘지 않았어..'


언니가 헝클어뜨리던 머리카락은 짜증났는데
아까는 나쁘지 않았어.


'오히려...'

유나는 자신의 귀까지 빨개진 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잘 가 유나."

"응. 너도."

유나는 키네시스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보였다.

영화를 보고 하루종일 함께 논 후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키네시스는 유나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나서야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갔다.

유나와 자신 그리고 '제이' 라는 사람이 다 함께 모이는 그들만의 아지트. 그곳을 향하는 것이었다.

그곳에 있는 제이는 '천재 해커' 란 이름에 걸맞게 항상 컴퓨터를 다루고 있었다. 분명 그에게 물어보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낮에 본 그 사람에 대해서 말이지.'



"제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키네시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제이가 단 음식을 먹으며 키네시스를 맞이했다.
키네시스는 간단히 '속 달겠다. 그만 좀 먹어.' 라고 말했고, 제이는 '관 둬. 맛있는데 뭐.' 라고 받아쳤다.

여기까지는 항상 있는 일이었다.


"사람 찾는 걸 부탁하고 싶어서."

"어떻게 생겼는데?"

제이는 손에 들고있던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며 물었다.


키네시스는 잠시 골목에서 만났던 여자의 외관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은 또렷이 떠올랐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독특한 모습, 아니 독특하기 보단 정말,

'..예쁜.'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니까.


"투명한 하늘색 머리. 그거보단 짙은 파란색 눈동자였고 왼쪽 볼 중간에는 점 하나가 있었어. 나이는 내 나이쯤인 것 같았는데."

"그게 다야?"

"혹시 못 찾겠어?"


키네시스의 질문을 듣고 제이는 여유롭게 마지막 한 입을 베어물었다.
그리고는 의자를 대형컴퓨터 쪽으로 돌리며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충분하고도 남지!"

3
이번 화 신고 2019-12-15 00:12 | 조회 : 1,714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여러분 키네유나 떡상했담서요 저 그 소식 듣고 가슴이 자진모리 장단으로 쿵닥대더라고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