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스토커

* * *

연기가 달그락거리는 소음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다 금방 답답함을 느껴 꾸물꾸물 기어나왔다. 지원에게 꽤 오래 안겨있던 터라 열이 오른 연기의 몸은 김이 날 정도였다.

“으응, 시끄러….”

푹신한 침대 위를 굴러다니던 연기가 베개에 얼굴을 처박았다. 시끄러워, 답답해. 배고파. 안아줘. 연기는 눈을 뜨기 무섭게 투정을 부렸다.

“아빠, 나 배고파….”

잠이 덜 깬 연기가 아빠를 찾으며 굶주린 배를 감싸 안았다. 저 멀리에서 저녁 식사를 만들고 있는 지원에게는 들리지 않을 투정이었다. 계속해서 아빠를 부르던 연기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

나는 아빠 없는데……. 제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알지 못하는 아빠를 찾고 투정을 부리다니. 뒤늦게 제 처지를 깨달은 연기가 침대에 걸터앉아 눈물을 훔쳐냈다.

“아!”

연기가 더 서러워지려고 하는 순간 뒤통수에서 따가운 고통이 퍼졌다. 연기가 짧게 비명을 지르고 뒤를 돌아본 곳에는 지원이 서 있었다.

“어…왜 때려?”

지원이 무섭기는 했지만,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연기가 항의했다. 지원은 그러거나 말거나 연기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목이 죄이는 느낌에 신음 조차하지 못한 연기가 질질 끌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연기가 일어나려고 하자 지원이 어깨를 짓누르며 무릎을 꿇렸다. 연기가 뾰료퉁 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앉아 지원을 올려다보았다.

“기다려.”

삐치기는 삐쳤지만, 지원의 명령에는 한없이 순종적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연기가 바깥으로 나가버린 지원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

한 시간쯤 지났을까 무릎을 꿇은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연기가 감각이 없는 발을 매만지며 끙끙 앓았다. 그냥 잠시 편하게 앉아있다가 지원이 오는 소리가 들릴 때 고쳐 앉으면 될 것을 연기는 미련하게 지원의 명령을 지키고 있었다.

“흐으….”

참다참다 지친 연기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서럽게 울었다. 금방 오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힘든 자세로 혼자 있는 것은 너무 서럽고 슬펐다. 연기가 방바닥에 얼굴을 문지르며 한참을 울고 있을 때 지원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

황급히 상체를 세워 다시 무릎을 꿇은 연기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빛내며 지원을 바라보았다. 지원의 손에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잡다한 물건들이 들려있었다.

“울었어?”

다정한 목소리에 연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있어서 무서웠다며 칭얼댔다. 연기는 당연히 저를 걱정하고 달래주는 것으로 생각해 엉겨 붙었지만, 이어진 지원의 말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새를 못 참고 질질 짜?”
“….”

주인님 진짜 너무하다고 항의하려던 연기의 이마에 밥그릇이 떨어졌다. 콩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이마를 짚었다.

“왜 던….”
“입 다물어.”

왜 던지느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문 연기가 제 앞에 떨어진 밥그릇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게 뭐냐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밥그릇에 흰밥에 섞인 반찬들이 채워졌다.

“먹어.”
“뭐?”

지원이 선심 쓰는 것처럼 웃었다. 연기는 개 밥그릇에 담긴 음식물을 보고 헛구역질을 했다. 배가 고프기는 했지만, 이런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연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싫다고 말하자 지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너 때문에 나가서 사온 건데. 안 먹는다고?"
"그렇지만, 난 원래 이런 거 안 먹는데….“

연기는 본래 사람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연기와 사람의 기를 마시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일 정도는 아주 가끔 먹었지만,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보고만 있어도 힘든 것을 먹으라니. 연기가 눈물을 글썽였다.

“근데.”
“응?”
“원래 안 먹는데 어쩌라고? 나도 원래 동물 같은 거 안 키워.”
"나는 동물이 아니라 흡연귀라니까. 왜 자꾸 나를 강아지 취급하는 거야? 난 이런 거 안 먹어!“

온갖 음식이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연기가 벌떡 일어나 침대로 향하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던 탓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잡아줘! 잡아줘!”

붙잡을 것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주저앉기에는 중심을 잃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원은 연기의 사정을 눈치챘으면서도 팔을 휘적거리며 흔들리는 연기를 잡아주지 않았다. 연기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나자빠졌다. 굉장히 아플 거라고 생각한 연기는 바닥에 비해서는 말랑하지만 단단하고 따뜻한 무언가에 턱을 얹었다.

“음….”

부드러운 것에 입을 오물대던 연기가 점점 더 단단해져 제 얼굴을 밀어내는 무언가에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
“하….”

지원의 신음과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넋 놓고 바라보던 연기가 얼굴을 붉혔다. 연기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옷 소매로 턱을 문질러 닦았다. 그럼 내가 주인님 생식기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던 거야?

“저기…. 미안해.”

창피해 죽을 것만 같았다. 연기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고개를 푹 숙였다. 지원은 전신을 새빨갛게 물들인 연기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바지 위로 성기를 문질렀다.

“야.”
“으,응….”
“밥 먹기 싫다 그랬지?”
“응….”

연기는 지원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불안했다. 하지만 밥은 정말 먹기 싫었기에 적극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울먹였다.

“그래.”

지원이 나른한 숨을 내뱉으며 연기의 턱을 움켜쥐어 이쪽저쪽 살펴보았다. 연기는 지원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힘없이 따라 움직였다. 지원의 한 손은 여전히 성기를 문지르고 있었다. 지원의 바지 앞이 젖어 짙어진 것을 발견한 연기가 지원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왜.”
“창피해…. 그게 좀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몰라. 주인님 싫어.”

연기는 제 턱을 놓아주지 않는 지원을 흘겨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지원은 이게 그리 서러울 일인가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턱을 움켜쥔 손의 힘은 여전했다.

“밥 먹기 싫으면 이거 빨아봐.”

지원이 뻔뻔한 얼굴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제 성기를 툭툭 가리켰다. 뭘 빨라고? 연기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지원의 눈과 성기를 번갈아 보며 울먹였다.

“싫어.”
“왜.”

왜냐니? 연기가 창피함도 모르고 제 성기를 꺼내 보이며 빨라고 명령하는 지원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기는 지원이 턱을 놓아주자마자 엉금엉금 기어 소파 밑에 숨어들었다.

“…밥도 먹기 싫다. 좆도 빨기 싫다. 말도 안 들으면서 내가 무슨 주인님이야?”

진이 하는 장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연기가 몸을 덜덜 떨었다. 지원은 소파 밑에 얼굴을 처박고 엉덩이를 내놓은 연기를 보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이쪽도 괜찮지.”

성기를 문지르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원이 연기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진짜 싫어, 싫어 무서워. 지원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연기가 징징대며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네 몸은 그렇게 작지 않아.”

더는 소파 밑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달은 연기가 발을 동동 굴렀다. 주인님이랑은 그런 짓을 해선 안 되는 건데. 연기가 우는 소리를 내며 소파 기둥을 붙잡았다.

“악!”

지원은 연기를 잡아당겨 끌어내는 일을 선택하지 않고 대신 손바닥으로 연기의 엉덩이를 내리친 뒤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렸다. 피부가 하얗기 때문인지 연기의 엉덩이는 금방 붉게 물들었다.

"빠는 것보다 이게 좋아?"

지원은 진심으로 연기와 관계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괘씸하게도 밥을 먹으라는 명령을 듣지 않아 부리는 심술이었다. 그러나 제 성기에 입술을 오물대던 모습과 금방 붉어진 엉덩이에 자극을 받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다.

"싫어, 싫어."

싫다며 마구 반항하던 연기가 결국 소파 밑에서 기어나와 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난 연기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싫어….“

비장한 표정으로 한다는 말이 '주인님 싫어.' 따위였다. 지원이 코웃음을 치며 연기의 성기를 발로 문질렀다.

"너 지금 아래 안 입고 있는데."

연기는 제가 성기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윗옷을 끌어내려 가리기 바빴다. 그런다고 가려져? 지원이 짓궂게 굴자 성기를 가리려던 연기가 털썩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우는지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인상을 찌푸리고 신음하던 지원이 울음을 멈추지 않는 연기의 뺨을 수차례 후려치고 숨을 몰아쉬었다.

"씨발, 너 도대체 그게 뭐야?"
"흐으, 흐으….“
"너한텐 무슨 장난도 못 치지."

지원이 연기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바지가 벗겨진 채로 홀로 남겨진 연기는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서러웠다.

"씨발….“

방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드러누운 지원이 제 머리를 쥐 뜯으며 스트레스를 부렸다. 이런일을 한두 번 겪는 게 아니었다. 연기가 울 때마다 지원의 머리가 쿵쿵 울리고 귀가 뜯겨 나갈 정도로 욱신댔다. 그냥 평범하게 우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들리는 걸까. 지금은 가까이 있어서 그렇다고 해도 이전의 것들은 조금 달랐다. 집에서 10분이나 떨어진 곳에서 우는 것이 어찌 귀에 들린단 말인가. 지원이 한숨을 쉬며 문을 걸어 잠갔다.

"어디 한번 밤새 아빠나 찾아봐라."

스물 일곱 먹은 심술쟁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지원이었다. 한 시간가량 무릎을 꿇려 놓은 것도 지원의 잘못이었고 개 밥그릇에 음식물을 섞어준 것도 지원의 잘못이었고 성기를 빨아보라고 강요하고 엉덩이를 때리며 성추행을 한 것도 모두 지원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지원은 눈곱만큼도 반성할 생각이 없었다.

"…….“

연기는 어느새 바지를 올리고 차가운 거실바닥에 웅크려 앉아 숨죽여 울었다. 주인님이랑은 언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엉덩이를 때리고 생식기를 빨아보라고 하는 것이 주인님의 장난인가?

"흑….“

서러움에 빠져있던 연기가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자마자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얼른 정식으로 계약하면 좋을 텐데, 그럼 며칠간은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텐데. 연기는 무슨 행동만 했다 하면 화를 내고 뺨을 때리는 지원이 무서워 계약조건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진이 보고 싶은 하루였다.

"어떻게 날 찾지도 않을 수가 있어."

알고보면 난 주인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귀찮은 존재가 아닐까? 연기가 코를 들이마시며 훌쩍댔다. 이럴 땐 집으로 가서 기력을 좀 충전하면 좋을 텐데, 갈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모든 게 전부 원망스러웠다. 지원이 떠나버리자 금방 주변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주인님….“

연기가 조용히 걸어 지원의 방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굳게 잠긴 방문이 열리는 기적은 없었다. 연기가 결국 방 옆에 주저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그날 연기는 지원이 입에 성기를 쑤셔 넣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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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08 12:27 | 조회 : 959 목록
작가의 말
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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