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스토커

“….”


지원은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 6시에 눈을 떠 9시에 보육원으로 향했다. 오늘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지원을 괴롭혔다. 귀찮기는 했지만, 어차피 집에 있어봐야 할 일이 없었기에 한편으로는 괜찮은 것도 같았다.

"안녕하세요."

지원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육원 교사들을 마주했다. 그냥 무시하려고 했던 지원이 끊어지지 않는 시선에 먼저 눈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원을 보고도 못 본척하며 저들끼리 수군대기 바빴다. 유치한 행동에 지원이 인상을 쓰고 먼저 들어가 아이들을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어, 응."

지원이 매우 어색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며 소파에 앉았다. 지원이 코트를 벗자 아이들이 코트를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비볐다. 식사도 아주 질 낮은 것들로 구성되어있던데. 애들을 제대로 씻기기는 하는 거야?

"책 읽어주세요!"

아이들이 책을 잔뜩 가지고 와 지원의 앞에 내밀었다. 지원의 코트는 아이들의 발에 밟혀 이리저리 짓눌려 있었다. 더러워진 코트를 털어 옷걸이에 걸어둔 지원이 책을 펼쳐 자리에 앉았다.

"걘 어딨어?"
"누구요?"
"그 좀 새카만 애."

아무리 지원이라도 생각이 있기에 차마 꼬질꼬질한 애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몇 번을 되물어도 아이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지원이 한숨을 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모두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때쯤 지원이 찾던 아이가 다가와 손목을 붙잡았다. 아이는 오늘도 바나나를 내밀었다. 도대체 이 바나나는 어디에서 가져오는 걸까. 지원이 바나나를 받아들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 먹으라고?"

지원이 귀찮다는 얼굴로 묻자 아이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지원이 먹기 싫다는 티를 내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시선에 못 이긴 지원이 결국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저렇게 간절하게 쳐다보는데 어떻게 대답을 안 해? 지원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바나나를 조금씩 잘라 먹었다. 지원이 한참 먹어도 줄지 않자 바나나를 모두에게 나눠주려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울먹였다.

"같이 먹으면 좋잖아."

아이가 울면 당황하며 달래줄 법도 한데, 지원은 내가 먹기 싫어서 나눠주는 건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라는 생각으로 한숨을 쉬었다. 야단법석을 피우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지원이 입에 바나나를 욱여넣고 꾸역꾸역 씹어 넘겼다. 그제야 아이가 방방 뛰며 지원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나 책 읽어줘야 해. 너도 여기 앉아서 들어."

지원이 싫다며 떼쓰는 아이를 억지로 앉혔지만 아이는 쉽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얼른 책을 읽어달라고 졸랐고 바나나를 준 아이는 지원을 끌고 나가려 했다.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두통이 찾아왔다.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결국 아이의 고집에 패배한 지원이 벌떡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아이들도 떼를 쓰기야 썼지만, 바닥에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든가 물건을 집어 던진다든가 폭력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기에 비교적 쉽게 달랠 수 있었다.

"나랑 뭘 하고 싶은데?"

지원의 질문에도 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혹시 말을 못 하는 아이인가? 지원이 어깨너머로 배운 수화를 하며 아이와 눈을 마주했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보육원 뒤뜰로 끌려나온 지원이 아이의 손을 놓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어린애들이 소유욕이 심한가? 지원이 시선을 거두자 아이가 금방 울먹이며 흐느꼈다.

"알았어. 너만 놀아줄 테니까 울지 마. 근데 그전에 좀 씻자."

아이를 잡은 손이 재를 만진 것처럼 새카맣게 변하자 지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대체 얼마나 내버려둔 거야? 지원이 짜증으로 가득 찬 얼굴을 지우지 않고 보육원 안으로 들어와 욕실의 위치를 물었다.

"욕실은 왜요?"
"얘 좀 씻기려고요. 돈 받아먹으면서 일은 제대로 안 하시나 보네요."
"네?"
"애가 이 지경이 되도록 씻겨주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지원이 교사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마구 신경질을 내며 욕실로 향했다.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몸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너 씻을 거야. 단추 풀고 있어."

지원이 더운물을 받으며 옷 단추를 가리켰다. 그러자 아이가 제 옷을 만지작거리며 곤란한 얼굴로 울먹였다. 설마 옷 벗는 방법도 모르는 건가?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이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이 그럼 됐다며 아이의 옷을 벗겨 욕조 안에 앉혀두고 천천히 물을 끼얹었다. 누군가를 씻겨보는 것은 처음이라 서툰 몸짓이었지만, 아이는 잔뜩 신이나 있었다.

"뜨거워?"

꽤 다정한 질문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지원이 샴푸를 짠 뒤 아이의 머리에 묻히며 둥글게 마사지를 시작했다. 역시 서툴었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을 보자 지원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 사람들이 너 안 씻겨줘?"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원은 제멋대로 아이의 표정을 살피고 역시나 학대당하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지원이 주먹을 꽉 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도대체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죄 없는 애를 학대해?

"걱정하지 마. 내가 좋은 곳으로 가게 해줄게."

지원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이라면 귀신도 저를 용서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지원은 보육원에서 아이를 학대하고 있다는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가진 게 있는 지원은 증거 따위가 없이도 쉽게 문을 닫게 할 수 있었지만,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뭐 하시는 거예요?"

지원은 매일매일 보육원의 일과를 촬영했다. 교사들이 아이를 학대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아이가 기본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기록할 수 있었다. 지원은 아이를 학대하는 교사들의 말을 깡그리 무시했다.

"이봐요 안 들리세요? 왜 촬영을 하고 계시냐고요?"

그 태도에 교사들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지원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그러자 지원이 집에 가니까 애들이 보고 싶어서요. 하며 비아냥거렸다.

"아이들 보고 싶은 건 알겠는데요. 그 행동만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뭐 켕기는 거라도 있으신가 보네요."
"하! 나 참 진짜."

교사가 큰 소리를 내자 지원이 아이를 껴안았다. 품 안의 아이는 지원의 가슴팍에 뺨을 비비고 저보다 몇 배는 더 큰 손을 잘근잘근 깨물며 애교를 피웠다. 지원은 무심하고 못돼먹은 모습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아이에게 다정했다. 교사들을 뒤로한 지원이 공부방으로 향해 아이에게 글씨를 가르쳐주었다.

“내 이름 쓸 수 있겠어?”

지원이 자세를 낮춰 아이에게 펜을 쥐여주고 제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는 배움이 늦어 제대로 된 글씨를 쓰진 못했지만, 지원은 내색하지 않았다.

“좀 더 하면 쓸 수 있을 거야,”

아이가 사탕이라는 단어를 더듬거리기 시작할 때쯤 교사들이 지원에게 다가왔다. 지원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 천천히 일어나 삐딱한 자세로 교사들을 흘겨보았다.

“내일부터 원에 나오지 않으셔도 돼요.”

교사의 말에 지원이 헛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보호했다. 나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다들 못 나올 텐데. 지원이 마음대로 하라는 투로 말하자 교사들이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태지원 씨.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어차피 당신들도 내일부턴 못 나올 거라고. 애들 이렇게 학대해놓고 나만 나가라?”
“그러니까 무슨 아이를 말하는 건데요? 뒤에 숨긴 건 뭐예요?”

한 교사가 다가와 지원의 어깨를 누르고 아이를 붙잡으려 했다. 그에 지원이 재빠르게 아이를 품속에 가두고 교사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손 올리는 거 보니까 평소에 어떻게 대했는지 보이네. 죄 없는 애를 학대하는 이유가 뭐야?”
“이 사람 미친 거 아니야?!”

지원이 교사를 짓누르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이쪽저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원이 아이의 앞머리를 쓸어넘겨 주며 땀을 닦아주자 비명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애가 뭔 죄를 지었다고 진짜.”

애 좀 만지는 게 저렇게 경악할 일이야? 지원이 핑 도는 눈물을 참아내고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점점 더 경악으로 물들어가는 교사들의 표정에 지원도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지금 도대체 누구한테 말하는 거예요?”
“누구냐니 당연히….”

지원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교사들에게 품 안의 아이를 내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무게감이 있던 팔은 어느새 허전했다. 황급히 시선을 내린 지원이 제 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허."
"당신 뭐 하는 사람이에요? 당장 나가요!"

지원이 고개를 번쩍 들자 교사들과 아이들이 모두 겁에 질려 물러나 있었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목욕도 시켜주고 말도 가르쳐줬다고. 매일매일 바나나도 가져다줬잖아? 도대체 뭐야?

"너희도 다 봤잖아. 걔가 나한테 바나나 가져다주는 거 다 봤잖아!"

지원이 한 아이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며 대답을 재촉했다. 폭력적인 행동에 교사들이 지원을 끌어내고 문을 단단히 잠가버렸다. 뒤이어 지원의 코트와 휴대폰을 든 아이가 나와 눈물을 글썽였다.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지원이 제 코트를 든 아이를 발견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잖아. 이제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야? 지원이 분노를 짓누르며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안아줄게. 이리와.”

깨끗해진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지원에게 다가왔다. 여기에 있잖아. 얘가 어떻게 나만 보이는 거라고 할 수가 있어? 지원이 안타까운 얼굴로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지원의 큰 손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원이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몇 번을 확인해도 아이는 존재했다. 그러나 만질 수 없었다. 지원이 손을 뻗으면 아이는 마치 연기처럼 흐물흐물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껴안으려 몸에 손을 뻗었을 때 손은 아이의 몸을 뚫고 관통되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얘가 귀신이라고? 도대체 왜? 이게 어떻게 귀신이야? 왜 귀신인데? 지원이 믿을 수 없다며 어떻게든 아이를 껴안으려 했다. 하지만 아이는 지원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처럼 점점 흐릿해졌다.

"왜. 도대체 왜…….“

가지 마. 이러지 마. 아니라고 말해. 지원이 소리치며 머리를 처박았다. 손톱을 세워 바닥을 벅벅 긁고 울부짖으며 온몸을 벌벌 떨어봐도 아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원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은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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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03 18:28 | 조회 : 1,12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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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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