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스토커

“하아….”

오랜 시간 누워 있어도 두통이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귀신의 유무를 떠나서 이러다가는 머리가 깨져 죽을지도 몰랐다. 지원은 결국 조심스레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어디에서 귀신이 들어오지 않을까 잔뜩 겁먹은 얼굴이었다. 지원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금과 고춧가루가 담긴 통을 안고 벌벌 떨었다. 귀신이 소금과 고춧가루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은 지원이 조사해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너무 고전적인 방법이라 다른 사람이 보았으면 비웃음을 살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원은 꽤 진지한 얼굴이었다.

“하….”

지원의 계획은 이러했다. 스토커 귀신이 집으로 쳐들어오거나 자신에게 위협을 가했을 시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리고 마구 쥐어박을 생각이었다. 지원이 귀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밀어낼 수도 만질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라면 위협을 가하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지만, 귀신은 제압은 무슨 방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원은 귀신을 무서워했다. 그리고 매일 이상한 것을 마주하기에 귀신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원은 후드를 뒤집어쓴 상태로 스토커 귀신을 기다렸지만, 스토커 귀신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후….”

그제야 한시름 놓은 지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귀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금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피우는 지원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정량을 지켜 복용해야 하는 약을 마음대로 먹어 버렸기도 했고 귀신에 시달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집은 안전하리라 믿었던 지원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지금 당장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안 나간 의미가 없어지네."

지원은 화가 났다. 넓고 깨끗한 집이 담배 연기로 자욱해졌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 요소였다. 어차피 스토커는 귀신이라 집에 있든 밖에 있든 똑같다는 결론이 나왔으니 며칠 간 집에 처박혀있던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한동안 우울함과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지원이 고개를 젓고 일어나 외출 채비를 했다.

* * *

추운 겨울 날씨. 코트를 입고 나온 지원이 향한 곳은 골목길이었다. 집이 답답해 외출했지만, 지원은 혼자였다. 폭력적이고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탓에 지원의 곁에 남은 사람은 없었다. 지원도 제가 사람을 사귀기에 적합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지원의 일상은 이랬다. 온종일 집 안에서 뒹굴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오고 가끔 배가 고플 때 토스트를 먹고 자는 것밖에 없었다. 아주 가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땐 깊은 지하실로 향한다. 그곳에는 자신을 괴롭혀 주길 바라는 사람이 한가득 있는데, 지원이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제격이었다. 그 지하에 있는 사람들은 맞으면서 흥분하는 성향이었지만, 지원은 때리면서 흥분하는 성향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원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그 지하실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곳 사람 중에 지원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지원을 무서워하고 혐오했다. 법적 싸움으로 가게 된 적도 있었는데, 물론 지원의 승리였다. 지원이 이토록 막 나가는 건 가진 게 많기 때문이라고 봐도 문제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담배 한 갑을 다 피워버린 지원은 고작 한 시간 반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 쉬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건 아무렇지 않았지만,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음을 느낄 때만큼은 지원도 서글퍼지곤 했다. 그러나 그 서글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원은 이것도 저것도 다 저의 업보라고 생각했다. 또, 원래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자신은 전혀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

한참이나 잡생각에 잠겨있던 지원이 목덜미부터 오싹해지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지 추워서 그렇다고 하기엔 지원의 자세가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껴안은 것처럼 등을 굽히고 아랫배에 손을 얹은 채 잔뜩 겁먹은 얼굴로 헐떡이고 있었다. 지원이 손톱을 세워 벽을 벅벅 긁으며 어떻게든 골목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했다.

"헉, 허윽….”

벽을 긁어대는 지원의 손톱 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고 얼굴엔 피가 몰려 금방이라도 터질 듯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목을 붙잡고 신음하던 지원이 무릎을 꿇고 끅끅댔다. 지원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라도 할 듯 미친 듯이 뛰고 머리가 쾅쾅 울렸다. 너무 외진 길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뿐더러 혼자서 벽을 붙잡고 미친 짓을 하는 사람에게 쉽게 다가올 사람은 없었다. 지원의 눈앞이 흐려졌다. 지원이 생리적인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곧 죽는구나 생각할 때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지원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지원은 그 손길마저도 큰 고통으로 인식했다. 살갗이 찢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 거칠게 뿌리쳤다. 그러자 동물이 낑낑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뭐야."

깜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든 지원이 상대를 확인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을 겪는 걸까. 시비 거는 사람을 폭행한 거? 직설적으로 말하며 살아온 거?

"저기…."
"하아, 하…."

지원은 당장에라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고통스러워서 울먹인 주제에 또 나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물 소리를 내며 끙끙 앓는 상대는 엮이기 싫어 그토록 피해 다니던 스토커이자 집에 쳐들어오기 직전이었던 귀신이었다. 지원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있는데, 스토커는 자신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지원에 잔뜩 겁을 먹어 다시 낑낑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원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뒷걸음질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괜찮아?"
“….”
"요?"

스토커는 제 반말 때문에 지원의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해 말을 높이며 울상을 지었다. 지원은 기막히고 뭐고 할 것 없이 두려움에 가득 차 몸을 떨었다. 지원이 혼자서 중얼거리자 스토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원을 껴안았다.

"괜찮아. 이제 아무도 안 괴롭힐 거야."

말이 좋아 껴안은 거지 사실상 지원의 품에 안긴 꼴이었다. 헐떡헐떡 숨을 쉬던 지원은 스토커가 자신을 껴안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지원이 골목바닥에 기절한 직후 스토커는 어찌할 줄 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거리며
한참을 울었다. 스토커는 바닥에 널브러진 지원의 옆구리를 발로 툭툭 치며 지원을 깨우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지원은 며칠 간 시달린데다가 약까지 먹어 쉽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원을 질질 끌고 가던 스토커가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죽으면 안 된단 말이야아….”

스토커는 지원이 죽으면 큰일 난다며 손을 덜덜 떨었다. 말라 부러질 것 같은 손으로 지원의 옆구리를 흔들었지만, 지원은 미동도 않았다. 결국, 한 시간가량을 엉엉 울기만 하던 스토커가 벌떡 일어나 지원을 껴안았다.

"왜 이렇게 무겁지?"

최대한 안전하게 데려가 주려고 했던 스토커는 상상 이상으로 무거운 지원을 다시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흑….”

그러더니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울어봐야 해결될 일이 아닌데도 스토커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 뒤 다시 일어나 지원의 손목을 부여잡고 질질 끌어당겨 어디론가 향했다.

* * *

스토커는 사람이 살지 않는 컴컴한 곳에 도착해 지원을 간호했다. 지원의 몸은 연기로 만들어진 침대에 뉘어졌다. 그 후 스토커는 연기로 된 물수건을 가져와 지원의 이마에 올리고 흡족하게 웃었다. 스토커는 인형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이 난 얼굴이었다.

"절대 죽으면 안 돼."

스토커가 지원의 손가락을 쥐고 흔들며 기분 좋게 웃었다. 또, 지원이 잠이라도 설칠까 걱정되어 담배 향기가 나는 향초를 피워두기도 했다.

"그걸 피워서 되겠어?"
"아, 깜짝이야!"

지원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스토커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화들짝 놀란 스토커가 혀를 깨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해! 놀랐잖아!"
"화난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진, 지금 나랑 장난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낸 스토커가 온갖 신경질을 다 부리며 테이블을 쾅쾅 내리쳤다. 스토커가 폭력성까지 비치며 진심으로 화를 내도 진이라는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스토커의 뺨을 쓰다듬었다.

"네가 화내봐야 하나도 안 무섭다니까 그러네."
"진짜 짜증 나."

짜증내는 스토커를 바라보던 진의 시선이 지원으로 향했다. 진은 힘없이 널브러져 있는 지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냥한 거야?"
"아니야!"
"사냥이 뭐가 어때서? 너 그렇게 안 먹다가는 죽는다?"
"난 너같이 못되지 않아서 죄 없는 사람 안 괴롭히거든? 다 너 같은 줄 알아?"
"뭐라고?"

스토커가 계속해서 화를 내며 진을 나무랐다. 방긋방긋 웃으며 듣고만 있던 진이 다 너 같은 줄 아느냐는 말에 표정을 굳히고 되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사냥하기 싫은데 자꾸 강요하듯이 이야기하니까…."
"장난이야. 금방 이러는 것 봐. 내가 이래서 널 안 내보내려고 하는 거야."

진의 짓궂은 장난 덕에 스토커가 울먹였다. 스토커는 진이 화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만 좀 울어. 네가 즙 짜내는 기계야?"
"그게 뭔데?”
"인간들이 쓰는 거."
"별걸 다 쓰네…."

인간들은 뭘 그렇게 만드는 걸 좋아해. 스토커가 괜히 투덜대며 진의 가슴팍에 뺨을 비볐다. 아기 같은 행동에 진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저건 뭔데."
"으응, 드디어 찾았어."
"뭘?"
"내 전용 기!"

전용 '기'를 찾았다고 말하는 스토커의 얼굴은 매우 해맑았다. 사실상 스토커가 평생을 찾아다녔던 사람이 지원이었다. 스토커는 해맑았고 진은 침울했다.

"드디어 찾았다면서 저렇게 둬도 돼?"
"뭐가? 간호도 해주고 향초도 피워줬는걸?"

나 잘했지? 나 잘했지? 하는 얼굴로 칭찬을 바라는 스토커를 한심하게 내려다본 진이 입을 열었다.

"인간은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된다는 거 몰라? 흡연 향초도 인간한테는 독이라고. 알아?"
"왜?"
"인간은 몸이 약해. 조금만 아파도 죽을 수 있어. 담배 때문에 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진의 말에 잿빛이 된 스토커가 황급히 일어나 향초를 치우고 지원의 이마에 얹어진 수건을 치웠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오래 있으면 안 돼. 얼른 돌려보내."

지원이 죽으면 손해인 쪽은 어디까지나 스토커였다. 드디어 찾았는데, 이대로 돌려보내라고? 스토커가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며 고집을 피웠지만, 진은 그런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았다.

"얼른."
"싫은데….”
"죽이고 싶은 거야? 그리고 꼴은 왜 또 저 모양이야? 등은 다 찢어지고 상처도 가득하고."
"잔소리하지 마! 보내면 되잖아. 보내면!"

스토커가 입을 삐쭉 내밀어도 진은 도와주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골목길로 돌아온 스토커가 땀을 뻘뻘 흘렸다. 사람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 스토커가 지원을 내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미안해. 다음에는 좀 더 안전하게 데려다 줄게."

스토커가 미안한 마음을 잔뜩 담아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스토커는 인간이 추위에도 목숨을 잃을 만큼 약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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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02 11:08 | 조회 : 1,526 목록
작가의 말
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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