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토커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짓밟고 있는 남자의 이름의 태지원이었다. 지원은 제 발치에 늘어져 헐떡이는 사람을 바로 걷어차 버리고 담배를 물었다. 지원의 인생은 지루했다. 매일 반복 되는 아침이 지원에게는 끔찍한 악몽과 같았다. 지원의 이 권태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확실한 기억이 없어서 그렇지 태어난 직후부터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11살의 지원은 우유 대신 술을 마셨고, 모래성 쌓기를 대신 니코틴을 쌓았다. 한마디로 지원은 문제 있는 아이였다. 물론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부모님의 학대도 아니었고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모양이냐?

"……."

그 이유는 지원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았다. 쉽게 말하자면 지원이 매사에 부정적이고 인생을 지루하게 살며 폭력적인 것은 날 때부터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어떠한 이유를 가져다 붙여야 할 필요는 없었다. 지원에게 있어선 성악설을 주장한 이가 승리자였다. 지원은 하루빨리 제가 죽기를 바랐다. 11살 때부터 피워왔던 담배는 더는 끊을 수 없는 동반자가 되었고, 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악연이 되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음주와 흡연을 일삼아 왔음에도 지원은 건강한 편이었다. 차라리 병에 걸려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원이 매일 달고 사는 말이었다. 그래도 최근 달라진 점이 있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가끔 심한 어깨 통증이 찾아왔다.

"후….“

지원이 숨을 내뱉자 옅은 연기가 춤을 췄다. 지원은 담배 연기를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평범한 담배 연기가 정말로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정말로 미쳐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귀신을 보아 정신과 약을 먹기도 했다. 빨리 죽고 싶은 것과 정신적으로 고문을 당하는 것은 별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을 먹는다고 해서 귀신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도 초등학교 때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흡연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지원이 서투르게 담배를 피웠던 어린 시절 담배를 한 번 빨아들였을 때 연기와 함께 무언가 몸으로 들어오는 듯한 이상야릇한 감각을 느꼈었다. 장기를 더듬는 듯한 불쾌감에 지원이 벽을 잡고 앉아 구역질했었다. 어지러운 것은 오랜만에 피우거나 처음 피우는 사람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증상이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몸에 무언가가 들어 온 듯한 이물감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 어린 나이에 객기를 부린다고 했던가. 자존심이 상한 지원은 잠들기 전까지 줄담배를 피워왔다. 하지만 그래도 몸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듯한 기이한 감각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익숙해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그때 시작한 흡연은 어린 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지금은 중독되어있었다. 담배 때문에 어깨가 망가지기도 하나? 홀로 중얼거리던 지원이 담배를 비벼 끄고 골목을 벗어났다.

* * *

다음날이 밝아도 지원은 예민했다. 얼굴이 뜯겨나갈 정도로 거칠게 세수하던 지원이 볼품없이 까진 손등을 내려다보고 한숨 쉬었다. 학창시절에는 자주 싸움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죄 없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어제는 조금 달랐다. 평소보다 더 기분이 나빠 홀로 술을 마시러 나간 지원에게 한 주정뱅이가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지원에게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디서 담배를 피워 대느냐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은 이러는 거 아시느냐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또래면 몰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손을 올리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고 꾹꾹 참았건만 술에 취한 이는 지원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미처 읽어내지 못했다. 지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자 기세등등해진 이가 지원의 어깨를 툭툭 밀치며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결국, 한계를 맞이한 지원이 그를 내동댕이치고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지원 성격에 이렇게까지 참은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참고 또 참은 것이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로 봐서는 경찰에 신고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피딱지가 굳어 있는 손을 벅벅 닦아낸 지원이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었다. 평소였다면 집 안에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밖에 나가서 피웠을 텐데, 오늘은 침대에 누워서 피웠다. 담뱃재가 얼굴에 떨어져도 지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가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원에게 스토커가 붙었기 때문이다. 딱히 두려워서 숨은 건 아니었지만, 가까이해봐야 득이 될 것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스토커는 이 근방에서 꽤 유명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만을 따라다닌다는 이상한 특징도 있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행인이 그에게 담배를 주었는데, 그가 돌연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보이느냐는 헛소리를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를 본 사람이 무속인이라는 이야기도 함께였다. 그런 미친놈이 제게 붙었다는데 이리저리 싸돌아다닐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게 뭔 지랄이야."

지원이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왜 흡연자를 중심으로 달라붙는 거지?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라고 생각해서 뜯어내려는 건가? 만 원도 안 되는걸? 아니면 담배 피우는 사람이 취향인 건가? 패티시? 뭐가 되든 더럽기 마련이었다. 가난한 건 죄가 아니지만, 남을 스토킹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건 죄였다. 탈취제를 쏟아붓듯 오만 곳에 뿌린 지원이 인상을 썼다. 지원은 며칠간 피해 다녀도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든 손을 쓸 생각이었다. 만약 그 스토커가 말로 해서 알아듣지 못하면 주정뱅이를 미친 듯이 두들겨 팼던 것처럼 스토커도 두들겨 팰 생각으로 이를 갈았다.

”…저게 뭐야.“

누군가 저를 지켜보는 듯한 알 수 없는 시선에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내린 지원이 죄 없는 눈두덩을 벅벅 비볐다. 다시 내려다봐도 여전했다. 곧 죽을 것처럼 창백한 피부와 줄넘기를 해도 될듯한 눈그늘에 금방이라도 울 듯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 그 스토커였다.

"너 거기 가만히 있어. 도망가면 죽여버릴 줄 알아."

며칠 간은 밖에 나가지 말자고 마음먹었던 지원의 다짐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 제게 붙은 스토커를 잡은 것치고는 침착한 목소리였다. 지원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스토커에게도 닿았다. 스토커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지원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몸을 벌벌 떨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두려워하는 주제에 도망은 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미친 듯이 뛰어 도망가면 지원을 따돌릴 수 있을 텐데도 스토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친 새끼가. 도대체 왜 따라붙는 거야.“

여기 살 정도면 어느 정도 형편도 좋으면서 도대체 왜 사람을 스토킹하는 건데? 화가 난 지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얼마 안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스토커가 있던 층으로 도착한 지원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

온몸에 소름이 끼친 지원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곧바로 등을 돌려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블라인드마저 내려버린 지원이 쿠션을 껴안고 벌벌 떨었다. 지원의 집은 꼭대기 층이었다. 그 아래층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었다. 거기까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토커가 서 있던 자리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뭐야, 씨발. 도대체.“

그러니까 쉽게 설명해 사람이 서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허공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토커가 둥둥 떠 창문에 머리통만 내밀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던 지원이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흰 약통에 담긴 약을 입에 모조리 털어 넣고 아작아작 씹어 넘겼다. 안정제. 안정제가 없이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 죽을지도 몰랐다.

”헉, 허….“

지원이 제 가슴께를 움켜쥐고 숨을 헐떡헐떡 쉬었다. 살인도 죽음도 암흑도 무서워하지 않는 지원이 이겨낼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지원은 귀신을 매우 두려워했다. 귀신의 ‘귀’ 자만 봐도 부르르 떨었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씹어 넘긴 지원을 얼른 약 기운이 돌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스토커의 창백한 얼굴이 둥둥 떠다닐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지원이 다시 눈을 뜬 시간은 다음날 새벽 5시였다. 지원은 여전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당장에라도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억지로 억누르는 지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원은 살기 위해 담배를 물었다.

”하….“

창문을 열려던 지원이 고개를 세차게 젓고 구석에 몸을 밀어 넣었다. 지원은 마음 같아서는 옷장에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었지만.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 간신히 참아냈다. 나이 스물일곱 처먹고 귀신이 무섭다니. 지원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디 가서 말 못할 두려움이었다.

"윽."

신경성인지 뭔지 담배를 피울 때마다 어깨가 끊겨 나갈 정도로 아팠다. 무언가 위에서 짓누르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스토커 귀신을 봐서 그런지 괜히 모든 게 두려워진 지원이 황급히 담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는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스토커가 제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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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02 00:21 | 조회 : 1,918 목록
작가의 말
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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