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마마, 안드실거에요? 좋아하시던 거였는데..."


"어어...그냥. 먹고싶지 않아서."



먹고싶지 않다니. 아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직 막 지어서 찐득해보이는 떡을 쳐다보았다.

맛있어보이기는 하다. 그런데... 지금 몹시 배고팠지만 요즘은 음식이 이상하게 먹고싶지 않았다.
...그냥 입맛이 없는 것뿐일테다. 별거 아닐거야.





-


"짹짹."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무 위를 날았다. 업무를 보는 사이에 비가 그쳤나보다. 앙상한 나무에는 청명한 바람기가 숨어있었다.


...일년초?



아니, 누가 이런걸. 고개를 돌려보았다. 일년초가 심어진 풀들 주위는 각종 꽃들으로 붉었다.
물이 괸 웅덩이에 엷게 햇빛이 떠 있고 새는 자리를 잡고 웅덩이 주위 풀들을 콕콕 찧었다.


"아리가 심었나 보네..."


아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맘때쯤이면 어딘가에서 나타나던 현도 기척이 없었다.
난 빗물이 질척하게 괸 비단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기서도 나의 모습이 훤히 비춰졌다.
문득 화려하게 꾸민 내 모습에서 이질감이 느껴져 어색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였다.



"아악!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마님..."


"그러게 내가 소문이 안 새어나게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


7황비였다.

황제의 거처와 가까운 궁이다 보니 7황비의 거처와도 가까울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소리가 다 들리게 되었다.

한 남자아이가 흐느끼는 소리와 7황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섞여 뭐라고 하는지 잘 들을수 없었다.

나는 답답한 나머지 마당을 빠져나와 나무 사이로 숨어서 옆 궁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보아하니 7황비의 남첩인것 같았다.
한 열두세살쯤 되어보이는 수려한 얼굴을 가진 미소년이었다.



"이제 난 어떡하란 말이냐!"

목소리가 쨍쨍 울렸다.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질 정도로 큰데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리가 없다. 그냥 내가 납첩을 혼내는 중이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보니까 맞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굵은 채찍으로. 아. 도와주어야 할까?

등에 철썩 맞는 소리가 들리고 흐득흐득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괴로워 보였다. 매질을 당하는게 나의 어린시절과 몹시 흡사했다. 나도 저렇게...저렇게...아프다면...나중에...




"멈추십시오!"



나는 급하게 뛰쳐나와 7황비를 막았다.


7황비는 매질을 멈추고 얼굴만 스윽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분에 차있는 표정. 금방이라도 화를 내서 다 깽판을 쳐놓을것 같았다.

아이는 부르르 떨면서 나를 힐끔 봤다. 눈물에 범벅 된 얼굴이 안쓰럽게 고개를 떨궜다.
나는 다시 시선을 7황비에게로 맞췄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거리시지요??"

나는 7황비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7황비도 나를 쳐다보며 큰 소리로 소리지르듯이 말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저의 노예를 교육하고 있는 중이니 신경 끄시지요."


끄응, 노예였나. 노예라면 맘대로 사고팔아도 되고 죽여도 되니 내가 뭐라고 하지 못한다.
7황비는 피도 눈물도 없나. 아무리 법률상 죽일수는 있다고 적혀있어도 최소한 분풀이 인형같은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데...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나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 ...그렇다면 이 아이를 제가 사들여도 되겠습니까?"



7황비가 놀란 표정으로 날 보았다. 정말 갑자기 말했으니 당황하는게 당연하다.

나는 아이의 손을 끌어당겨서 아이를 내쪽으로 오게했다. 작고 앙상한 몸이었다. 나는 일단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벗겨서 뭐든 좀 걸쳐줬다. 7황비의 눈이 분노에서 당황을 거쳐 냉정으로 돌아왔다.


"맘대로 하시지요. 어차피 사창가에 팔려던 아이였습니다.
.... 그 대신, 오늘 일은 비밀로 하셔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7황비는 터벅터벅 돌아갔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서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냥 서있기가 뻘쭘한지 팔에 있는 붕대를 풀어 다시 칭칭 감았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걸음을 옮겼다.

"따라와."


아이는 군말없이 졸졸 따라왔다. 그 얘는 오면서도 계속 눈치를 보며 믿을수 없다는듯이 가끔씩 후들후들 다리를 떨며 걸었다.


완전 어릴적 내 모습이구나.


입안에 조금 씁쓸한 맛이 맴돌았다. 잊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점점 기억하려 드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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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27 23:11 | 조회 : 2,289 목록
작가의 말
다화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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