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시오 시점)

"마마, 이 여우털 어떠세요? 부들부들 부드럽지요?"

아리가 두툼한 여우털을 가져왔다. 만져보았더니 부드럽고 약간 까슬한게 딱 아리 취향이었다. ...여우...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누군가를 머릿속에서 서둘러 지우고 여우털을 깔아누웠다.


"따뜻하겠네. 이불로 쓰면 좋겠다."


"이불이 아니라 등불놀이 할때 추울수도 있으니까 덮으시라고 황제폐하께서 주신거에요."



황제가? 정말? 나는 아리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리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맑은 눈이었다. 농담이 아니다. 황제가 나에게?...여우털을 다시 만져보았다. 부드러운것은 변함이 없었다. 털들이 뭉개지고 손자국이 남았다.
그래, 그냥 준거면 준거지. 뭐 의미부여하고 그래봤자야.



"도대체 무슨 일이래요?"


"뭐가?"


"어제까지만 해도 평생의 원수 같으시더니만...."


음. 평생의 원수는 맞다. 부모님을 죽였으니까. 그래도 뭔가 의아했다. 나는 털을 집어 안을 뒤적뒤적 쑤시고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같이 동봉된 편지나 쪽찌나...종이쪼가리 하나 없다.


"이런거 주면 쪽지라도 보내는게 풍습인데. 아참! 마마,현 장군님께서는 휴가를 얻으셔서 고향으로 내려가신데요."

"고향?...갑자기...?"


조금 서운했다. 어제 가는걸 봤는데. 나한테 말도 안하고 가다니. 어제 황제하고 일이 있어서 그런가. 이렇게 갑자기 가는걸 보면. 어쨌든 든든하던 사람이 가서 마당이 작고 볼품없는 마당이 더 초라해 보였다. 매화나무라도 기를걸. 아리가 씨를 주긴 했는데.

나는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다시 자리에 눕고 눈을 감았다.












-등불놀이 날



입김이 나오도록 추운 날씨였다. 이렇게나 갑자기 추워지다니. 전에는 비가 왔었는데 말이야.

난 달랑 시녀 한명을 데리고 나왔다. 흙을 모래를 툭툭 치면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눈이 내리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한명있다. 울고있었다.

나는 갑자기 알수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신발을 신은 발로 슥슥 지웠다. 갑자기 울컥했다. 갑자기 이딴 그림은 왜 그려서. 내 마음속은 오래전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아주 추웠다. 적어도 내 기억속에선 그랬다.


황제가 다가왔다. 그의 곁에는 10명쯤 되보이는 신하들이 곁에 달라붙어 화로와 뜨끈뜨끈한 것들을 가까이 대고 있었다. 유난이군. 내가 알기론 황제는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사람인데 말이야.


"내가 준것을 두르고 왔구나."


"네, 아주 따뜻하고 좋습니다."


나는 은은하게 입가에 감도는 미소를 지었다. 황제는 만족스러운듯이 웃었다. 화로가 가까이 다가와서 따뜻했다. 지금 황제가 가까이 다가와서 좋은점은 그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거의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인것 같았다. 우글우글 모여 그림과 무늬가 그려진 다양한 등불들을 받아들고 소원을 적고 있었다. 간절히 바라는것.




신하는 등불을 들고 와 나에게는 별무늬가 그려진 등불을, 황제에겐 용무늬가 그려진 등불을 주었다.
별무늬가 맘에 안들었지만 기쁜척 꺄르르 웃으며 등불을 받아들고 쪽지를 적었다.

쪽지를 접고 묶었다. 환하게 빛나는 가벼운 등불을 밤하늘에 날려보내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등불들을 날려보냈다. 아름다웠다. 정말 아리 말대로 아름다웠다.

나는 내 소원이....이루어지길 간절히 빌었다.
이루어지길. 행복해지길.


"뭐라고 적었나?"

황제가 물었다. 어지간히도 궁금한가보다. 그럼 황제는 대체 무엇을 적었을까. 나도 많이 궁금했다. 저 사람, 이 사람, 그 사람의 것도 궁금해서 모든 사람의 것을 까보고 싶었다.


"저는...저는 제가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동화속 주인공처럼요."

...

그렇게 사는것이 나에게 일어날수 있을까. 내가 말하고 내가 적기는 했지만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헛된 꿈이다. 꼬인 내 인생은 내가 풀을수는 있겠지만 내가 사랑했던 부모님은 죽었고 내 나라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목숨이 중요치 않은 노예로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는...사람을 찾을수 없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냉궁에서 나가게 해주지."


"예?"


"황후궁 옆에 있는 궁을 사용하도록 해라. 좀 넓긴 하지만 관리해줄 시녀들을 붙여줄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가,감사합니다..."



당황해서 말이 헛나왔다. 황제는 그말을 끝으로 황궁 쪽으로 돌아갔다. 뭐지? 이것도 진짠가? 두근거리면서 눈을 비볐다. 진짜다. 지금껏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리도 놀란 채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황제가 넓은 궁도 부족해서 시녀까지 붙여주다니....

나는 아리에게 빨리 돌아가서 짐을 싸자고 재촉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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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20 08:25 | 조회 : 2,23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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