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눈을 비몽사몽하게 뜨니 아침이었다.
어젯밤에 꾼 꿈이 심상치않아서 굉장히 나른한 아침이었다.

"학교가야하는데..."

눈을 부비작 거리며 어젯밤 꿈을 생각해본다.

'서리야..?'

서리네 집, 서리의 침대에서 울면서 내게 달려든 서리가 내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한 나는 서리를 꼭 끌어안아주며 이유를 물었다.

'여자도 싫지만 남자도 안돼.'

'그게 무슨 소리야?'

'넌... 나만 생각하면 되잖아.'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싶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서리의 턱을 들어올려 한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고 키스를 했다.

'울지마. 괜찮아.'

눈에, 입에 입맞추고 괜찮다며 얘기해도 서리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키스 더해줘.'

조르는 얼굴이 너무 사랑스럽고 안쓰러워 다시 혀를 밀어넣었다.

최대한 부드럽게 천천히 혀를 움직이며 서리의 혀를 잡고 얽기도 하고 쓸어내리기도 하며 키스한다.

'흐읏...'

달콤한 목소리에 취해서 한 손으로 허리를 쓰다듬어내려갔다.
그러다 서리가 나를 밀어내고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리더니 말한다.

'사랑해.'

그 표정이 미친듯이 기억에 남는다.
유혹하듯이 색기 넘치던 그 표정이...

"미쳤구나 진짜..."

조만간 일칠까봐 무서웠다.

"너 학교 안가냐?"

"가요..."

방 문을 열고 들어와 가만히 앉아서 아까의 일을 생각하던 내게 엄마가 학교 안가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방 문을 닫고 엄마가 나가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갔다.

"오늘 얼굴 어떻게 보냐.."

학교에 도착하니 소란스러웠다.
무슨일인가해서 보니 체육대회 출전표를 짜고 있었다.

"무슨 일이래 저게."

"쌤 늦는다고 정하고 있으라고 했데."

유한이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너는 거의 모든 종목에 다 출전하던데?"

"뭐!?"

유한이의 말에 급하게 아이들을 제치고 앞으로 가서 확인해봤다.

"이건 너무 하잖아!"

내 외침에 반장이 내 등을 토닥이며 말한다.

"힘내."

"야!"

"그치만 너도 알잖아! 상금이 어마어마한거!"

"안해."

"반을 위해서!"

"시끄러. 안해."

"아 야!"

그대로 내 이름을 직직 그어버렸다.
우리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상금이 엄청 많다.
예선전만 이기고 올라와도 돈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승한 종목이 많으면 많을 수록 돈이 어마어마했다.
전 종목 우승하면 피자, 치킨 파티를 4번정도 할 수 있을 정도랄까...

"그러지말고 잘 생각해봐 어? 지분떼줄까?"

"그런짓까지 해야하냐고.."

반장은 내 자리까지 쫓아와 애원하기 시작했다.

"너 완전 전설이잖아! 1,2학년때 다 쓸어버린!"

"나 아니야."

"너 아니면 누군데."

"우리반애들이겠지."

"거짓말하지마~ 다 알고 다 봤는데!"

정말 안되겠냐는 듯이 애원하는 반장의 눈이 부담스러워질때 서리가 인사한다.

"안녕."

그 시선을 휙 피해 안녕이라고 작게 말했다.
아직도 꿈에 서리가 너무 생생하다..

"무슨일있어?"

분명 내 모습에 무슨일 있냐고 물어본것이겠지만..

"서리야~ 들어봐봐. 얘가 재능을 썩히겠다잖아!"

"재능?"

"그래! 운동회 말이야!"

"아..."

대충 이해된다는 듯이 서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싫다는데 강요하면 안되지."

서리의 말에 반장은 이번엔 서리를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너가 잘 좀 말해줘봐~ 응? 우리 이번에 우승하면 진짜 크게 파티할거란 말이야~"

"다같이 즐기는 체육제니까 너도 참가하는건 어때?"

"그..그건..난 잘 못하니까.."

"잘 못해도 다같이 즐기는데 의의가 있는거잖아? 그렇지?"

"응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쟤도 응원 잘해."

"서리 너까지.."

"싫다는데 억지로 밀어붙이면 체육제의 의의에서 벗어나잖아. 반장이 그런짓은 안하겠지?"

"......"

결국 반장은 울상을 지으며 돌아갔다.

"안녕."

반장이 돌아가고 서리는 자리에 앉으며 다시한번 인사했다.
나는 쳐다도 보지 않고 다시 인사했다.
그게 마음에 안들었는지 서리는 서서 내 얼굴을 두손으로 잡더니 다시 인사한다.

"안녕?"

"으..응..안녕.."

여전히 눈을 안마주치자 서리는 화가 났는지 그대로 아무말도 안하고 자리에 앉았다.
1교시, 2교시, 3교시. 흘러 흘러 점심시간에도 서리는 한마디도 안하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사이좋은 너네가 웬일이야?"

유한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자 나는 한숨만 내쉬었다.
유한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점심 먹으러가자고 했고 유한이랑 소란이랑 같이 점심을 먹었다.

"....후우..."

점심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점심 먹는 내내 유한이는 들떠있었고 소란이는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다.
남은 시간도 여전히 서리랑은 말한마디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교시엔 담임쌤 시간이 되었다.

"운동회 얘기가 많아서 그런데 제비로 뽑자. 중복 걸려도 팔자려니 하고 바꿔줄 사람 없으면 그냥 무조건 나가는걸로 정한다. 그럼 단체전인 피구 빼고 축구부터 제비 돌린다~"

그렇게 제비뽑기가 시작되고...

"어째서!?"

"하하하하!! 너 되게 운없다."

"쌤! 이게 웃을일이예요!?"

''''''''내 일 아니데 뭐."

난 운도 지지리도 없게 4종목 모두 걸렸다.

"누구 바꿔줄 사람..."

당연하게도 없었다.
반장이 눈에 불을 키고 째려본것도 있었지만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머금고 신세한탄을 할때 서리가 손을 든다.

"달리기는 제가 대신할게요."

나의 구세주 서리가 달리기 종목을 가져가줬다.

"서..서리야."

너무 감격 스러워서 서리를 부르자 서리는 눈한번 마주치더니 웃어주며 말한다.

"말걸지마."

역시 아직 화가난듯 했다.
체육대회 출전표가 짜지고 종례도 빠르게 끝나 예정보다 학교가 빨리 끝났다.

"오늘 놀러가자~"

유한이가 내 앞자리에 앉으며 말한다.

"소란이랑 다같이?"

"아니~? 너랑 나랑 둘이서."

"둘이서?"

"응!"

유한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왠지 뭔가 이상해서 다같이 놀러가자고 할때 서리가 다가온다.

"나 오늘 한가해. 같이가자."

싱긋 웃으며 유한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싫은데?"

유한이 또한 웃으며 서리한테 말한다.

"한유한. 내가 같이 가면 안될 이유라도 있어?"

서리의 질문에 유한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한다.

"없어. 그렇지만 난 오늘 둘이서 놀러가고 싶은걸?"

서리의 표정이 싸하게 변한다.
이 상황을 말려야겠다 싶어 내가 말했다.

"그..오늘은 둘이서 놀다올게..! 너도 피곤하다며!"

서리한테 웃으며 말하자 서리가 움찔 하며 날 본다.

"그래. 그럼."

서리는 굳은 표정으로 그대로 반을 나갔다.

"그럼 가자!"

유한이는 신나서 날 끌고 나갔고 나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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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16 23:14 | 조회 : 1,050 목록
작가의 말
약쟁이

잘부탁드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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