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그날의 아이들은 미숙했다(2)

하루의 시작은 일출이 아닌 핸드폰에서 울리는 알람으로부터 시작된다.


“ 학교... 가기 싫다. ”


알람을 끄며 중얼거린 세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 동안 누워있었다. 차라리 늦게 학교를 갈까, 지각만 안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세진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뭉그적 거리며 방 밖으로 나오자 주방에서는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왔고 식탁에는 아버지가 앉아계셨다.


“ 아.. 아빠 일어나셨어요? ”
“ 세진아. 잘 잤니?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났네. ”
“ 네. 형은요? ”
“ 아침 새벽부터 나는 왜 찾냐. ”


세진의 형인 최세준이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세준은 평소에 운동을 즐겨 했기에 힘도 좋았는데 하필 며칠 전에 맞아 멍이 빠지지도 않은 곳을 치자 세진의 얼굴이 살짝 찡그러졌다. 세진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나왔다.


“ 윽.. ”
“ 어휴 비실이. ”
“ 형이 근육 돼지인 거야. ”


집은 평화로웠다. 밖과는 달리 그의 가정은 너무나도 화목했다.


“ 형. 오늘 늦어? ”
“ 음.. 오늘은 저녁 먹고 들어올 것 같은데. 왜? ”
“ 아니.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좀 사다 달라고. ”


세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치를 한 번 살펴본 후 실실 웃었다. 모든 것을 털어놓기에는 이 행복마저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밖의 공기는 맑았지만 동시에 탁했다. 하늘은 맑고 해가 쨍쨍했지만 동시에 어둡고 우중충했다,

모든 것이 그의 안에서 계속 충돌했다.


“ .... 학교.. 가기 싫어. ”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등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학교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 나이스 샷. ”


바로 어제 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실수라며 음료를 던졌던 것이 생각났던 그는 앞문을 통해 교실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분필 지우개가 그의 얼굴을 향해 날라왔다. 하얀 가루가 날리기 시작했다. 반에 있던 친구들의 시선이 세진을 향해 몰렸다.


“ 콜록. ”


세진은 주위의 시선 탓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앞에 떨어진 지우개를 들어 칠판에 올려둔 후 얼굴을 대충 닦으며 자신의 자리로 이동할 뿐이었다. 더럽게 물든 책상이 이제 적응된 것인지 자연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쓰레기를 들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더러워진 의자를 닦았다. 차분히 대처하는 세진을 흔드는 것은 김민재였다.


“ 세진아. 아니지. ”



김민재. 그는 최세진과 박성훈의 친구였다. 매우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름 친한 사이였다. 사건의 발달은 간단했다. 박성훈과 이세윤의 연애. 그녀는 최세진을 싫어했다. 박성훈은 신경 쓰지 말라며 소꿉장난에 엮는 것은 자신으로 충분히지 않냐 했지만 세윤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 그 애. 최세진..이라고 했나? ”
“ 왜요 누나? ”
“ 아니.. 성훈이를 그렇게 보고 있다니 기분이 나빠서.. 아, 민재야. ”
“ 네? ”
“ 성훈이랑 엮이지 않게 해줄래? 그러니까.. 약간의.. 따돌림 정도? ”


이세윤을 좋아하고 있던 민재로써는 그녀의 말이 당황스러웠다. 그 말은 천사 같은가면 속에 숨겨져있던 그녀의 진정한 속내였다.


“ 누나.. 그래도 최세진 그렇게 나쁜 애 아니에요. ”
“ 아는데.. 걱정돼서 그렇지. 내가 다 책임질게. 성훈이랑 더 이상 안 엮이게 해줘. ”


처음에는 거절하던 민재도 세윤이 자신을 찾아와 계속 부탁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수락했다. 처음에는 약했던 수위였지만 그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
“ ... ”


민재가 쓰레기통을 들어 세진에 책상에 부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세진은 장난치듯 웃는 민재를 조용히 내려봤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들이 같은 반 친구들의 책상 아래까지 굴러갔다. 세진은 자신이 화풀이 대상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흥분하지도 대응하지도 않으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는 맨손으로 주워 정리할 뿐이었다.

세진의 모습을 지켜보던 민재는 계속 진동이 울리는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가 들어가 있는 단톡방에는 수백 개의 대화 내용이 쌓여있었다.


“ 하. 세진이가 아픈가 보네. ”
“ 무슨.. 소리야. ”
“ 아픈 세진이 양호실에 데려다주고 올 테니까 선생님한테 잘 말해놔. ”


세진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민재가 그를 억지로 끌고 나갔다. 양호실에 데려간다는 것은 당연히 거짓이었다. 후문 앞으로 끌려간 세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한 학년 위의 선배들이었다.


“ 너구나. 세윤이 괴롭히는 새끼가. ”
“ 네? ”


세진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들을 하나씩 읊기 시작했다.


“ 멀쩡하게 생겨서 스토커 짓이나 하고 있고. ”
“ 전 그런 적 없어요. ”


세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그들은 단순히 세진이 발뺌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은 단순한 폭력이었다. 그들은 얼굴을 때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만 때릴 뿐이었다.


“ 앞으로 조심해라. ”


한참의 시간이 흘러 예비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그들은 바닥에 엎드려 기침을 하고 있는 세진에게 침을 뱉으며 자리를 옮겼다. 세진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로 바닥을 지탱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었다.

학교에는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어떠한 소문이 퍼졌다.

‘최세진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랑 사귀는 여자를 스토커짓 했데.’


허구가 섞인 소문은 한창때의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였다. 세진의 몸에는 점점 상처가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를 불쌍하게 여기던 사람들도 점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진에게는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소문이 학교 전체에 퍼지자 성훈은 조용히 민재를 불렀다.


“ 적당히 해. 최세진이 그럴 애 아닌 거 너도 잘 알잖아. ”
“ 목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너야말로 왜 그러냐. 네 여자친구는 선배 아니야? ”
“ ... ”
“ 아니면 너 걔 좋아하냐? 왜 계속 감싸는 건데. ”


민재의 말에 성훈은 멈칫했다. 민재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고백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당황스럽고 불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제일 재미있었고 더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성훈은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더 나서면 세진이 더 괴로워질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성훈이 아무런 말도 없자 민재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은 성훈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 너무 심하니까 그러지. 보기 안 좋아. ”
“ 심하긴 뭐가. 걔가 한 짓을 생각하면 소름 끼치는데. ”
“ 그... 아니다. ”


성훈은 무력한 자신을 탓하며 조용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 세진은 더러워진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피곤하기보다는 몸이 아파서 일어날 수 없었다. 가만히 누워있을 때쯤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괜찮아? ”


꽤 훈훈한 외모의 남자는 하선우였다. 후문 근처에 있는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던 선우는 세진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다. 선우는 세진이 뒤에서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 것이었다.


“ ... 괜찮아요. ”


세진은 선우가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인가 싶었다.

작정하고 소문을 냈기에 전 학년에 퍼져있는 내용을 모를 리가 없지.

괜히 자신과 엮여서 좋은 일이 없을 테니 세진은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래? 쟤들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선생님께 말씀드려. 이건 학교폭력이야. ”
“ 말해봤자.. 소용없어요. ”


선생님들에게 말했었지만 알겠다는 말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않았다. 오히려 소문을 듣고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도는데 사실이냐며 그를 추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부정했다. 선생님은 그래.라고 짧게 말을 했지만 세진의 말을 믿지 않았다.


“ 네가 그 소문도는 애 맞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죄도 아니고. 그런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되는 거야. 그리고 너에 대한 소문이 전부 사실은 맞니? 아니잖아. ”


선우는 착했다. 오지랖도 넓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왔다는 것이 바로 보일 정도였다. 그렇기에 그의 그런 말들은 세진을 구원해주었다.


“ .. 제가 알아서 할게요. ”


걱정하는 선우를 뒤로하고 세진은 자리를 떠났다.


“ 나만 참으면 돼. ”


나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 부모님도 아무 걱정 없고 형도 아무것도 모른다. 내 유일한 휴식처인 가족의 평화마저 망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세진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안됐고 속에서 썩히고 있으면 안됐었다.



“ 아, 미안하다. 여기가 음식물 버리는 곳인 줄 알았다. 미안 미안. ”


식판에 담겨있는 음식물을 세진에게 쏟으며 말했다. 세진의 머리카락을 타고 붉은 국이 뚝뚝 떨어졌다. 주위는 시끄러웠다. 주위 사람들은 세진에게 관심이 없었다.


“ 야 대답 안 해? ”
“ 뭘.. ”
“ 여기로 느끼냐고. ”


그는 엉덩이를 슬금슬금 더듬으며 물었다. 뱀이 몸을 훑는 듯한 기분에 세진은 그의 손을 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만해. ”


식탁을 치자 울리는 쾅- 소리는 꽤 컸기에 시끌벅적했던 급식실의 이목을 한곳으로 모을 정도였다. 그들의 시선은 냉혹하고 날카로웠다.


“ 뭐야. 밥 먹는데 시끄럽게. ”
“ 아, 쟤가 걔야? 그 게이. ”
“ 그 남자 좋아한다는 애? ”
“ 아니 그 스토커 ”


세진은 울렁거림에 고개를 숙였다.

싫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저 나는 한 사람을 좋아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 것인가.


“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만 좀 해. ”


세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 이거 골 때리는 새끼네. 박성훈이 그렇게 좋았어? 죄 없는 세윤 누나 스토킹할 만큼? ”
“ 나 아니야. ”
“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상한 선물까지 보내놓고. ”


민재의 말은 소문을 더 퍼트리기 짝 좋은 말이었다. 세진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세진은 애써 의연한 척하며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급식실은 그를 제외한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최세진. ”
“ 선배? ”


선우가 머리부터 옷까지 젖은 세진을 끌고 교직원 화장실로 향했다. 학생들은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기에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멍하게 있는 세진을 뒤로하고 선우는 급히 자신의 체육복을 챙겨와 그에게 넘겼다.


“ 세진아. 이건 아니야. ”
“ ... 선배.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전 고백만 했어요. 그냥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한 게 전부에요. 제가 남자를 좋아하는 게 잘못일까요? 아니면 세윤 선배가 좋아하는 남자애와 친했던 게 잘못일까요? ”


세진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당황한 선우가 그를 달래봤지만 세진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 피해자는 전데 왜 제가 가해자가 돼있을까요.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
“ 넌 잘못 없어. 그 애들이 잘못한 거지. 다들 알고 있을 거야. 그저 나서지 못할 뿐이야. 세진아 내가 도와줄게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응? ”


선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세진에게 큰 위로였다. 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세진을 꽉 안아주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불행은 연이어 다가왔다.


수업이 끝나자 세진은 급히 짐을 챙겼다. 빨리 귀가하려는 세진을 잡은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 최세진. ”
“ 박성훈. ”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세진은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그에게서 시선을 떼며 가방을 멨다. 성훈은 반 밖으로 나가려는 세진을 붙잡는 성훈의 눈가는 꽤 붉어져있었다. 성훈은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아무도 없을 때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너 나 아직도 좋아하냐? ”


세진은 성훈을 바라봤다. 세진의 표정은 성훈이 알고 있던 언제나 웃고 있는 표정이 아닌 싸늘한 눈빛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줄 아니.


“ 내가 너를 왜 좋아해. ”
“ 마지막이다. 나 좋아해? ”
“ ... 그래. 좋아한다. 시발 좋아한다고. 그래서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데. 나도 이제 마음 접을 테니까 이제 그만 좀 하자. ”
“ 어머. 아직도 좋아하는 거야? ”


둘의 대화에 끼어든 방청객은 세윤이었다. 세윤의 표정은 장난기 가득한 소녀의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 세진아. 나 좋아하면 내 말 들어줄래? ”
“ 이제 안 좋아한다고. ”
“ 애들이 너랑 하고 싶데. 한 번 해줄 거지? ”


그렇게 말하는 성훈의 목소리는 유난히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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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13 23:25 | 조회 : 4,017 목록
작가의 말
최윤형

댓글로 남겨주신 다공일수는 스토리가 떠오르면 꼭 가져오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쪽은 아니라서 스토리 구상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아요. +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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