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그날의 아이들은 미숙했다(1)

공 : 박성훈
서브공 : 하선우
수 : 최세진

학교물
방관공x왕따수

*자극적인 소재가 들어있습니다.





평범한 사람.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공부와 운동을 아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다. 대인관계는 완만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 적당하다. ”


최세진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적당히 살다가 죽는 미래를 그렸었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너무 많다. 나이, 외모, 재력, 키, 성격, 학벌 그리고 성별.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방해가 된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 장애물이 너무나도 많다.


“ 난 그 사람이 너무 좋아. ”


주위의 시선. 그것은 너무나도 크고 힘든 장애물이다. 너무 크고 어려워서 넘을 수가 없는 그런 것이다.


“ 성훈아. ”
“ 왜. ”
“ 나 점심시간 되기 전에 깨워 줘. ”


책상에 엎드려서 올려다보는 박성훈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멋있어 보였다. 드디어 미친 거야.라고 생각할 때쯤 그는 자신이 박성훈을 좋아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 그래. 많이 피곤해? ”
“ 으응.. 조금. ”


세진의 머리를 쓰다듬는 성훈의 행동이 그날따라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사랑은 심장을 아프게 했다.

둘이 언제부터 친구였는가를 되짚어보기 위해서는 십 년 치의 시곗바늘을 뒤로 놀려야 했다. 유치원에서 처음 만났던 박성훈을 보고 나이가 많을 것이라 생각해 형이라 부르며 쫓아다니던 세진이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러부터 몇 달 후의 이야기다.




“ 좋아해. ”


그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 그래그래. ”


자신이 내뱉은 말에 아차 싶었지만 평소와 다를 리 없는 대답에 가슴이 저릿함이 느껴졌다. 실망하기도 상처받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이어온 짝사랑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다른 날이었다. 한 학년 위의 선배와 박성훈과 사귄다는 말을 들은 날이었다.


“ .... 장난 아니야. 진짜로 너 좋아해. ”


붉어진 세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성훈의 얼굴이 찌푸려지자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이었나 싶기도 했다. 성훈의 얼굴에는 배신감과 당황스러움,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 장난치지 마. ”
“ 장난.. 아니야. ”
“ 하.. 그래서 어쩌자고. 사귀자고? 난 너를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
“ 성훈아.. 그게 아니고. ”
“ 꺼져. ”


성훈은 뒤돌아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자리를 급히 빠져나가는 성훈의 귀는 꽤 붉어져있었다. 17살. 햇살이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때는 여름방학이었기에 세진은 한참을 집에서 울며 지냈다. 그렇게 그의 첫사랑은 그에게 아픔만을 남겨둔 채 떠나갔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고백이 아니었다. 그 장면을 같은 반 학생들, 그것도 성훈의 친구들이 지켜보고 녹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세진은 개학이 하루 전으로 돌아오자 밤새 성훈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인사를 하면 받아줄까 하는 등의 고민을 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세진의 그런 고민은 그저 사치였다.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더 이상 세진과 성훈은 같이 서 있을 수 없게 되었다.


“ 자퇴 안 했네. ”
“ 뭐야. 왜 쳐다봐. ”


수군거리는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세진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날카로웠다. 그는 아직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황스러움에 문 앞에 서 있자 민재가 그에게 다가갔다.


“ 최세진. 너 박성훈한테 고백했다며. 너 게이였냐? ”


민재의 말 한마디에 수군거리던 교실에 정적에 휩싸였다. 세진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 아니야. 무슨 소리야. ”


세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다. 손이 덜덜 떨려오는 것을 가방끈을 꽉 잡으며 참았다. 성훈은 세진과 민재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야. 너 이미 게이라고 소문 다 났어. ”
“ 아니, 아니야. 왜 그래. 누가 그러는데. ”
“ 박성훈. ”


세진은 그 말에 성훈을 바라보았다. 성훈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시선을 피한 것은 세진이었다. 세진은 그 자리를 벗어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도망가면 어떤 소문이 들릴지, 어떠한 말이 나올지 알면서도 도저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 쟤 뭐냐. ”
“ 놔둬. ”
“ 세윤 누나 화난 거 알지? ”
“ 알고 있어. ”


박성훈과 사귀고 있는 여자는 그보다 한 살 많은 18세의 부유한 집안의 선배였다. 이쁜 얼굴에 성격이 좋다고 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사랑받는 막내딸로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부탁을 대부분 들어주었다. 너무나도 큰 사랑을 받고자란 그녀는 이기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손에 넣어야 했다. 그것은 어느 날 자신의 눈에 들어온 성훈도 마찬가지였다. 운명의 장난이라도 되는 듯싶었다. 그녀의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성훈의 아버지를 들먹이며 협박을 했다. 그곳은 잘못 소문이 나면 입사하기 어려운 좁은 업계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자를 수는 없었지만 아직 학생이었던 그는 그것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단순히 어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성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며 그녀를 따랐다.



“ 어쩌지. 어쩌지. ”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 세진은 한참을 고민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고 불안감은 점점 쌓여만 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무작정 자퇴를 하는 것까지 생각했지만 그것은 쉽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늦은 저녁에 돌아온 부모님이 그에게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를 물어봤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 우리 아들. 오늘 학교 안 갔다며. ”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 친구한테 고백을 했다는데 차였어. 그리고 내가 게이라는 소문이 학교에 다 퍼져서 그저 도망쳤어. 내가 어찌하면 좋을까요.’

세진은 그렇게 자신의 고민을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커밍아웃을 한 뒤에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이 두려웠고 기대하는 것이 실망으로 바뀌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에 세진은 무작정 도피를 선택했다.


“ 몸이 너무 안 좋아서. ”
“ 많이 안 좋아? 병원 갈까? 지금은 괜찮아? ”
“ 응.. 나 피곤해서 조금 쉴게. ”
“ 그래. 쉬렴 ”


세진은 도망치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그는 가장 가깝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되어줄 사람조차 믿지 못했다. 그건 그의 가장 큰 실수였고 후회하는 것이기도 했다.


세진이 도망친 것을 후회하는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는 꽤 빨리 학교에 갔다. 걱정과 후회로 뒤섞였지만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숨만 쉬며 들어간 반은 그가 들어가자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수군거리는 소리만 남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감싸 안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 세진이 왔네. 어제는 왜 그냥 갔어. ”
“ 김민재.. ”
“ 애들이 너랑 앉기 싫다 해서 자리 좀 옮겼어. ”


그건 어린아이들의 짓궂음이었다. 교실 가장 뒤쪽에 홀로 위치한 책상은 학급 친구들이 장난을 쳐둔 탓에 얼룩덜룩 해져있었다. 책상에 적힌 낙서는 저급했다.

게이, 더러운 놈, 쓰레기 등.

책상의 낙서는 지워지는 것이지만 세진에게 찍힌 상처는 낙인처럼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리고 미숙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시작된 괴롭힘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이 됐다.


“ 세진아. 섹스는 해봤어? 남자랑 하면 어때? ”
“ ... ”


그것은 그들에게 유치한 장난이었다. 체육시간과 점심시간에 시간을 때우기 위한 유흥거리였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합리화를 했다.

‘선배가 시킨 거야.’
‘이런 짓을 당할 행동을 한 최세진 탓이야.’


세진은 그들의 괴롭힘에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변명을 하면 할수록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느낌이었다. 또한 자신이 아무리 변명을 하고 말을 해봐야 바뀌는 것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 세진아 대답 안 해? ”


체육관에서 뺨을 치는 소리가 울렸지만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소리의 폭력의 소리는 사라졌다. 세진은 침묵했다. 저급한 성희롱도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반론도 하지 않고 가만히 맞고 듣기만 할 뿐이다. 세진은 성훈을 원망하지 않았다. 성훈이 그들의 행동을 방관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세진의 귀를 강타하는 소음은 집에 와서야 조용해졌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지는 시간이다.


“ 다녀왔습니다. ”


집은 조용했다. 그의 부모님은 아직 퇴근하지 않으셨고 그의 형은 대학교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집은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소리가 유일하게 그의 옆을 지켜주고 있다.


“ ... ”


세진은 조용한 것을 싫어했다. 듣기 싫은 말들이 떠오르게 피부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들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조용할수록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것이 그의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졌다.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


“ 난 정신까지 미쳤나 보다. ”


세진이 바닥에 앉은 상태로 작게 중얼거렸다. 시끄러운 말소리. 온통 어두운 회색에서 그 혼자 남아있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벽은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소리는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 벽을 깬 것은 어머니의 단 한 마디었다.


“ 아들. 엄마 왔어. ”


창백한 세진의 모습에 어머니가 놀라서 그에게 달려왔다.


“ 아들 무슨 일 있어? ”
“ 아니.. 일은 무슨.. 배고파서 그래. ”


그의 세상이 다양한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미소가 너무 따뜻해 그의 외로운 세상에 빛이 되었다.


“ 엄마. ”
“ 왜? ”
“ 오늘 왜 이렇게 빨리 왔어? ”
“ 일이 빨리 끝났네. 우리 아들들 보고 싶어서 빨리 퇴근한 것도 있지. ”
“ 좋네.. ”
“ 그래? 앞으로도 칼퇴 해야겠네. ”


이 짧은 행복은 보금자리를 벗어나면 끝날 행복이지만 이것마저 없었으면 그는 미쳐버렸을 것이다.

사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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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10 01:00 | 조회 : 5,699 목록
작가의 말
최윤형

사실 조금 급하게 준비해왔는데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서 안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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