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올가미(2)

백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류현은 알비노였다. 새하얀 사제의 옷을 입은 그는 신전의 천사님이라 불려왔다. 그의 심성이 착한 점도 있었지만 그의 모습이 마치 천사같이 새하얗기 때문이었다.


“ 으윽.. 흡.. ”


연우는 자신을 위협하는 암살자나 독극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칼을 들고 달려드는 암살자의 칼을 피하지도 않았고 독이 든 차를 마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배후를 알아내는 등의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연우의 그러한 행동들은 전부 류현을 부르기 위함이었다.


“ 폐, 폐하... 제발.. ”


연우는 류현이 자신을 치료해줄 때마다 그와 관계를 가졌다. 연우의 잠자리는 과격했다. 관계를 가질 때마다 류현은 대부분 피를 봤다. 류현은 매번 고통에 허우적거렸다.

류현은 점점 지쳐갔다. 연우의 투정을 받아주는 것도 그의 애정을 받아주는 것도 말이다. 관계가 끝나자 류현은 뒤처리도 하지 않은 채 급히 방을 나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물에 몸을 담갔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그의 울음소리가 작은 욕실에 울려펴졌다.


“ 담아.. ”


류현의 가족은 그의 여동생인 류담뿐이었다. 어릴 적 마차 사고를 당해 그의 부모님은 즉사했으며 그의 어린 여동생은 다리를 다쳐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의 삶은 끔찍했다. 류현이 신전에 들어가게 된 이후로 그들의 삶은 조금 나아졌지만 그전까지는 제대로 된 보호 없이 길거리를 나돌아다녔었다.

류현이 신전에 들어가게 되고 류담은 신전의 소속인 고아원에 들어가게 됐다.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가 걷지도 못하는 상태로 혼자 남겨졌을 때의 두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는 점점 우울증에 시달렸다. 신성력은 사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지만 정신적인 상처까지는 치료할 수가 없었다.


몸을 정돈한 류현은 자신의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황성에서 머물고 있는 그녀를 위해 기도실에 준비되어있는 붉은 꽃 한 송이가 그의 한 손에 들여있었다.


“ 담아. ”
“ 오라버니. ”
“ 잘 지냈니? ”
“ 네. 오라버니는요? ”


류현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피로가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는 힘겹게 웃었다. 둘의 대화가 이어지자 류담의 옆에 있던 기사가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기사는 황제가 그녀를 위해 붙여준 자신의 직속 기사단의 기사였다. 류담은 자신만 바라봐 주며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기사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류현의 목을 얽매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 기사는 그녀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 담아.. 다음에 또 올게. ”
“ 오라버니.. 저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
“ .. 그래. ”


류현은 자리를 급히 벗어났다.


류현이 연우에게 호출이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며칠 뒤였다. 자신의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류현은 마치 큰 다짐을 한 표정으로 기도실을 나섰다. 연우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장소는 자신의 집무실이었다.


“ 폐하. 류현입니다. ”
“ 들어오거라. ”


류현이 집무실로 들어가자 연우는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물렸다. 문이 닫히고 둘 사이에는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 폐하. 저를... 놓아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폐하를 보필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


류현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류현의 말에 연우는 조용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연우는 약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황제로써 필요한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그는 웬만한 기사만큼 칼을 다룰 수 있었고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하지만 류현은 타인을 치료할 수 있는 신성력을 제외하고는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체력을 놓고 비교를 한다면 그는 일반인에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밤마다 이루어지는 정사는 그가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고 몸을 혹시 당한 탓에 낮에 기도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연우는 골똘히 생각이라도 하는 듯한 손가락으로 책상을 천천히 두드렸다. 류현을 바라보는 연우의 시선은 마치 그의 몸 깊은 곳까지 훑어보는 듯했다. 자신의 치부까지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류현은 고개를 숙였다. 류현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 류현. ”
“ 네. ”
“ 다른 건 다 들어줘도 그건 안되겠구나. ”
“ 어, 어째서입니까. ”
“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현. ”


연우의 말에 류현의 몸이 움찔했다.


“ ... 더 이상 폐하를 치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며 황성에서 지낼 수는 없습니다.. ”


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강경한 태도에 연우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 그럼 치료하지 말거라. ”
“ ... ”


연우의 태도에 류현은 당황스러워했다. 황제를 치료하지 않으면 그가 황성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폐하. ”
“ 그래. ”
“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
“ 몇 번을 부탁해도 변함은 없을 것이다. ”


연우는 단호했다. 단호한 연우의 태도에 류현은 더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사제복을 꽉 움켜쥐었다.


“ 편한 데로 하거라. 단, 황성을 떠나는 것만은 안된다. ”


연우는 한쪽 턱을 괸 상태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 넌 내게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 벌은 받겠습니다. 그러니- ”
“ 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연우의 말에 류현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류현은 연우가 자신에게는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맞닿자 연우는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단, 네가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넌 내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 알겠습니다... 주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


집무실을 벗어난 류현은 자신의 기도실로 급히 뛰어갔다. 그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기도실은 류현만 사용하는 공간이었기에 사람의 인기척 없이 매우 조용했다. 류현은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 주신님. ”


류현은 눈을 감았다.


“ 제가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


그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연우와 류현의 사이가 멀어지자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연우 주위의 사람들이었다. 류현의 앞에서 싱긋싱긋 웃던 연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암살자의 침입 또한 한순간에 멈추었다. 그가 암살자를 고문해 배후를 찾아내 잔인하게 처벌했기 때문이었다. 그 본보기는 너무나도 잔인했다. 황성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 나의 신하들은 머리를 장식으로 들고 다니는듯싶군. ”
“ 폐, 폐하. ”
“ 이따위 보고서를 언제까지 받아주어야 할까.. ”


연우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나긋한 목소리였다. 그런 모습에 신하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웃는 얼굴로 죄인을 처분하며 칼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의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에서 연우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다. 숨 막히는 공간이었지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없었다.

연우는 그들을 한 번 바라본 후에 찻잔에 손을 댔다. 하얀색의 찻잔에는 라벤더 차가 담겨있었다. 연우가 찻잔을 들자 잔 안에 담겨있던 차가 살짝 흔들렸다. 연우는 그대로 잔에 담겨있던 차를 전부 마셨다.


쨍그랑-


차를 다 마신 연우는 손을 덜덜 떨더니 찻잔을 떨어트렸다. 평소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에 놀라 그들은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을 했다. 손을 살짝 치우자 그의 손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 모습에 앉아있던 신하 몇 명이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 폐하! ”


회의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연우가 독을 섭취해 입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이었다. 웬만한 독에 면역이 있던 연우였기에 그 또한 당황했다.


“ 콜록콜록. ”


연우가 기침을 할 때마다 피가 꿀렁꿀렁 넘어왔다.


“ 모두 구금해라. ”
“ 어서 류현님을 불러. ”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기에 방 안에 있던 모든 귀족들은 황성에 구금되었다. 황성이 떠들썩했지만 류현은 알지 못했다. 평소와 같이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그는 허락도 없이 안으로 급히 들어온 기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 류현님 큰일입니다. ”
“ 무슨 일이십니까. ”
“ 폐하께서, 황제 폐하께서 독을 섭취하시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습니다. ”


기사의 말에 류현은 놀라며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 류현님 바로 와주세요. ”
“ 그.. ”


류현은 머뭇거렸다. 연우의 마지막 말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기분에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류현이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않자 기사는 그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 류현님..? ”


류현은 눈을 꽉 감으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숨을 깊게 마신 후 내뱉은 후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 안내.. 하십시오. 폐하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




연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황성에 있는 다른 사제들을 급히 불렀지만 그들은 오늘 신성력을 많이 사용했기에 연우의 악화만 막을 뿐이었다. 연우의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


연우는 옅은 숨만 내뱉고 있었다. 류현은 놀란 표정으로 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오랫동안 지켜본 황제였지만 오늘 같이 약한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류현은 손을 천천히 올렸다. 그의 손이 연우의 몸에 닿자 하얀 빛이 쏟아져 나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연우의 표정은 한층 편안해졌다. 류현은 지쳤는지 살짝 휘청거렸다.


“ 괜찮으십니까? ”
“ 네. 폐하께서도 곧 깨어나실 것입니다. ”
“ 감사합니다. 류현님. ”
“ 힘을 많이 써서 좀 쉬고 있겠습니다. 폐하께서 깨어나시면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


류현은 연우의 방을 나섰다. 연우의 방을 나선 류현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에서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눈을 뜬 연우는 자신이 마신 독이 중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치료는 되었지만 매우 독한 독이었기 때문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힘들었다. 연우는 물 한 잔을 받아마셨다.


“ 배후는 잡아 지하 감옥에 가두거라. ”
“ 알겠습니다. ”
“ 현이는 어디 있느냐. ”
“ 류현님은 지금 기도실에 계십니다. ”


그 말을 들은 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어지러움에 살짝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 시녀가 놀라서 그를 급히 부축했다.


“ 폐하 휴식을 더 취하셔야 합니다. ”
“ 됐다. ”


시녀의 부축을 밀어낸 연우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도착한 곳은 류현이 있는 기도실 앞이었다. 연우는 기도실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방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단도를 쥐고 류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도실의 문이 닫히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연우였다.


“ 현. ”


연우가 류현에게로 한 발짝씩 다가가자 그는 덜덜 떨며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자신에 목에 가져다 댔다.


“ 다, 다가오지... 다가오지 마십시오. ”
“ 치료도 하지 못하는데 위험하구나. ”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사제는 스스로를 치료할 수 없었다.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사제들은 서로를 치료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연우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류현은 떨리는 손으로 칼을 잡았지만 자신의 몸에 작은 상처조차 낼 수 없었다. 주신의 뜻에 따라 사제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힘을 가졌음에도 그들 스스로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 이건 위험하니 버리거라. ”


연우는 그가 들고 있는 칼을 잡아 바닥으로 던졌다.


“ 너는 어릴 적부터 눈물이 참 많구나. ”


류현은 아무런 행위도 취하지 않은 채 눈물을 주르륵 흘릴 뿐이었다. 황제의 피를 받은 자들은 신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신을 받드는 사제들은 황실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류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 놓아주려 했건만 네가 도망가지 못한 것이다. ”


연우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류현의 턱을 살짝 잡아댕겨 입을 맞추었다. 연우는 그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받혀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다.


“ 그러니 이제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


류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닥을 바라볼 뿐이었다. 연우는 눈물을 흘리는 류현의 볼을 쓰다듬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바람에 흩날렸다. 꽃내음이 가득한 곳에서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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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05 01:06 | 조회 : 5,391 목록
작가의 말
최윤형

이렇게 첫 번째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조금 촘촘하게 쓰고 싶었는데 단편으로는 무리가 있는 듯하네요. 욕심을 너무 부린 듯싶습니다 .. + 내용에 더 어울리는 제목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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