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챗바퀴는 달리는 것만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하늘을 얼마나 그렇게 날았을까 쨍쨍하던 해가 어느새 땅으로 끌어 내려져 오고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날았음에도 마물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리유비아가 마물 위에서 내려와 꼬리뼈부터 올라오는 통증에 이리저리 몸을 돌렸다.

“ 많이 뻐근하죠? ”

“ 아..조금요. 이안은 괜찮아요? ”

“ 괜찮아요. ”

이안은 살풋 미소를 지으며 리유비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약하게 당겨지는 감각이 그가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으며 쓰다듬고 있는 것 같았다.
날아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다소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순식간에 안심이 되었다.
역시나 그는 그냥 제가 아는 이안일 뿐이었다.

“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급해서 무작정 오기는 했는데.. 당장 지낼 곳이.. ”

“ 여관에 머물도록 하죠. 시간이 늦어서.. 방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

리유비아가 이안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당장 보이는 여관에 들어갔다.
그러나 운도 없게 하필 바스타는 조금 있을 축제로 관광객들이 한창 모여든 시기였다.
당연히 방이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여관을 찾고 다시 나오고 또 찾기를 반복하며 이제는 정말 마지막인 여관에 들어갔다.

“ ..저, 혹시 남는 방이 있을까요? ”

“ 어머! 세상에 손님들 아주 운 좋네. 운 좋아. 마침 방이 남아있어요! ”

“ 남아있다고요?! ”

“ 그럼요. 딱 한 방 남았네요. ”

“ ...한 방이요? ”

리유비아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런 축제기간에 방이 남아있다는 것은 정말 천운이었지만 한 방... 하나...
자신과 이안까지 사람은 둘... 그 말은 한 방에 두 명이 같이 자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같이 살았지만 같은 방에서 지내진 않았기에 다소 당혹스럽고 어딘가 심장 부근이 잘게 떨려오는 것 같았다.

“ 그럼 일단 5일 정도 묵을게요. 후에 혹시라도 더 늘려도 되죠? ”

“ 물론이죠. 식사비는 따로 내셔야 하고 방은 207호로 들어가세요. ”

저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이안이 여주인이 건넨 열쇠를 집어 들었다.
돈을 지불하더니 이안은 리유비아의 손을 끌고 방으로 올라갔다.
207호는 방 중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었는데 이안의 걸음에 맞춰 걸으니 순식간에 도착했다.

“ 방이 남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

“ 아...네. ”

자신과 같은 방에서 지낸다는 것에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이안은 평소처럼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자신만 괜히 오버한 것 같아 퍽 얄미워 보였다.
저도 모르게 뾰루퉁한 얼굴로 방을 둘러보는데 천천히 훑던 시선은 어느 한 곳에 멈추더니 순식간에 굳어졌다.

“ ...리비? 왜 그래요? ”

“ ...어.. 이안, 일단 이불..아니 건초 더미라도 사와야 할 것 같아요. ”

“ ? ”

리유비아의 눈이 닿은 곳은 침대였다.
당연히 1인실이니 침대도 1인이 쓸 크기였다.
그 말은 성인 남자 두 명을 욱여넣기에는 몹시, 매우, 굉장히 좁다는 말이었다.
기럭지도 긴 이안과 함께 잔다면 다음날 온몸이 욱신거리는 좋지 못한 밤이 될 것이다.
애초에 자신은 이안과 붙어 편안히 눈을 감을 수조차 없을 테니 차라리 자신은 바닥에서 자는 게 나았다.

“ 침대가 좁으니 한 명은 바닥에서.. ”

“ 왜요? ”

이안이 리유비아를 스쳐 침대 위에 걸터앉자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침대가 흔들렸다.
이안은 평범한 갈색 눈동자로 차마 평범하지 못한 눈웃음을 지으며 제게 손을 내밀었다.

“ 꼭 붙어서 자면 그리 좁은 크기도 아닐 것 같은데.. ”

“ ...그게 문제가.. ”

“ 떨어질까봐 걱정이면 내가 안 놔줄 테니까 걱정 마요.”

“ ..아니.. 불편할 텐.. ”

“ 리비는 내가 불편해요?.. ”

“ ... ”

그렇게 말하면 그 누가 “네 불편해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리유비아는 차마 당신이랑 자면 왠지 자꾸 심장이 간질거려서 잘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불편해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왜 심장이 간질거리는지도 알지 못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뭐 했고 그냥 따로 자면 될 일인데 이안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리유비아가 머뭇거리니 이안이 다시 한번 손을 내밀며 웃었다.
결국 리유비아가 이안을 향해 한 발 내딛자 순식간에 이안이 리유비아의 손을 잡아 자신의 무릎 위에 리유비아를 올렸다.

“ !..이안!? ”

“ 응? 왜요? ”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 탓에 이안의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그가 워낙 키가 큰 탓에 그를 내려다보는 일은 잘 없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그를 내려다보니 리유비아는 생경한 기분이었다.

“ 가, 갑자기 당기면 위험하잖아요.”

“ 놀랐어요? 미안해요. ”

이안의 손이 리유비아의 볼을 다정하게 쓸었다.
거친 손이었지만 다정한 손길이 묻어나왔다.
리유비아가 눈을 크게 뜨며 이안과 눈을 맞추자 이안이 얼굴을 더 가까이하며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한 숨이 리유비아의 목을 간질였다.

“ 리비는 좋은 향이 나요. ”

“ ..거짓말은.. 씻지도 않았는데 ”

“ 진짜로요.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단 향도 나고 ”

웅얼거리는 움직임이 목덜미에서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 느낌이 묘하게 부끄러우면서도 두근거렸다.
그 순간 목덜미에 닿아오는 축축한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 물러났지만 허리를 휘어잡은 이안에 벗어날 수 없었다.

“ 잠..! ”

쪽, 하는 소리가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귓바퀴를 타고 들어왔다.
천천히 맛보듯 움직이는 혀가 불쾌하지 않아 리유비아의 귀를 붉게 물들였다.
제 몸을 훑던 혀는 많았지만 불쾌하지 않은 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혀는 무슨, 제 몸을 기어오르는 손들은 하나같이 꺾어버리고 싶었다.
닿아오는 손을 보며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이 뽑아내고 잘라내고를 반복했던가.
그의 손은 무엇이 그리 다르다고 이렇게 기분 좋은 떨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 읏.. ”

혀가 훑고 지나간 자리가 욱신거려왔다.
단단한 이빨이 살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아 몸이 바르릇 떨렸다.

“ 하아.. ”

이안의 짙은 한숨이 들려오자 리유비아는 흘깃 그를 보았다.
그의 머리통만 보이니 어떤 얼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안의 턱을 잡아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저를 꽉 끌어안은 그를 애써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 ...네요. ”

“ ..뭐라고요? ”

목덜미에 묻어진 입술에서 나온 말이 잘 들리지 않아 리유비아는 재차 물어왔다.
그러자 이안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어째서인지 갈색의 그 눈동자에 녹색의 빛이 일렁이는 느낌이었다.
그는 분명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갈색의 눈동자일 텐데.

“ 이 작은 머리도, 얇디얇은 손가락도 고운 발까지 전부. 삼켜버리고 싶어요. ”

“ ... ”

“ 아, 아니면.. ”

이안의 손가락이 리유비아의 복부를 천천히 쓸어내리다 픽 웃음을 흘렸다.
낮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려왔다.

“ 리비가 날 삼켜줄래요? 조금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

“ ..무슨! ”

리유비아가 다급히 이안의 손을 밀어내며 무릎에서 벗어났다.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 해 끓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리유비아의 걸음은 얼마 물러나지도 못하고 다시 이안에게 끌려왔다.
손목을 옥좨는 강한 힘이 리유비아의 손목에 붉은 선을 만들었다.

“ 싫어? ”

“ ..잠시만 이안! 내 말을.. ”

“ 리비는 결코 나 말고는 받아들이면 안 돼요. 나 말고 리비를 내주는 것도 안 돼. ”

리유비아는 강한 힘에 몸이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다소 단단한 침대에 몸을 부딪치고 시야가 흔들리며 어지러워졌다.
흔들리던 초점이 서서히 돌아오자 이안의 갈색 눈동자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리유비아의 몸 위로 올라탄 이안은 입꼬리를 매끄럽게 쳐 올렸다.
그 웃음은 언제나 봤던 예쁜 웃음이었지만 처음 보는 위화감이 들었다.

“ 밀어내지 마. 도망가지도 말고. 기다려줄 수는 있지만 놔줄 생각은 없으니까. ”

“ ... ”

이안의 입술이 리유비아의 입술과 짧고 깊게 붙었다 떨어졌다.
리유비아의 멍한 얼굴을 보며 이안이 웃음을 흘렸다.
그의 손끝이 리유비아의 입술을 집요하게 문질렀다.
집요하게 입술을 문지르던 손끝이 서서히 내려오며 리유비아의 목덜미에서 멈추어 섰다.
선홍색으로 찍힌 잇자국과 붉은 반점들이 얼룩덜룩하게 목 위를 덮은 것이 그가 제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안의 눈동자가 미끄러지듯 굴러 자신이 그러쥔 손목에 닿았다.
손을 살짝 들어내자 제 손자국이 그대로 그 여린 손목에 찍혀 있었다.
그것들을 보며 이안의 눈동자가 만족스럽게 휘어졌다.

“ 예뻐. 리비. ”

“ ..이안? ”

“ 아주 예뻐. 나의 리비. ”

눈가에 살포시 입을 맞추자 그에 맞춰 살짝 눈을 찡그리는 리유비아는 참 사랑스러웠다.
놀라기는 할지언정 저를 밀어내지 않으니 어쩜 이리 기특할까.
몸에 남겨지는 제 흔적도 전부 예뻤다.
아, 정말.

“ ...참기 힘들어. ”

다시 맞춘 입술에서 아주 달콤한 단 향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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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6-08 20:21 | 조회 : 1,43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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