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챗바퀴는 달리는 것만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어쩌면 이대로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했던 과거의 자신의 멱살을 잡아주고 싶었다.
못 본 사이에 그래도 좀 정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었던 아리아는 여전히 제 껌딱지인 마냥 굴었다. 이대로 지내는 건 미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리유비아는 당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정리할 만한 물건을 가방에 욱여넣었다.
당장 떠날 수는 없을지언정 앞으로 며칠만 있으면 항구에 배가 뜰 테니 짐을 챙기는 게 이로웠다.

“ 리비? ”

“ 이안, 이렇게 신세만 지고 진짜 진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한데 저 지금 진짜 급해요. 제가 나중에라도 갚을 테니까 이번만 봐주세요. ”

“ 리비 ”

“ 혹시나 아리아가 이곳에 찾아오거나 막 저 어디있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해주세요.
아, 그래도 이안한테는 알려줄게요. 저는 그러니까 ”

“ 리비. 진정해요. ”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던 리유비아의 어깨를 이안이 조심히 잡아 돌려 세웠다.
이안의 얼굴을 보고서야 자신이 거친 숨을 내뱉을 만큼 좋지 못한 상태임을 깨달았다.
충격과 긴장으로 인해 생긴 땀이 손바닥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 천천히 숨 쉬세요. 그래요. 그렇게요. ”

“ .... ”

“ 리비, 리비가 그렇게 빨리 떠나야만 한다면 내가 당장이라도 여길 떠날 수 있게 해줄게요. ”

“ ...뭐?! ”

리유비아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다.
별로 상관없는지 이안은 놀란 리유비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혼란스러운 리유비아와는 다르게 이안은 평온한 어조로 재차 말했다.

“ 배가 아닌 마물을 통해 간다면 충분히 떠날 수 있죠. ”

“ ..그건 아무나 못 이용한다고.. ”

“ 황실에서 열심히 일한 덕에 이런 것쯤은 문제가 없죠. ”
이안의 말에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하고 싶었지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난감했다.
차마 제발 그래달라고 부탁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있자 이안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 그냥 해준다고는 안 했어요. ”

“ 아..네. 그럼.. ”

“ 나랑 가요. ”

“ ? ”

“ 내 눈앞에 있고, 내가 닿는 곳에 있어요. ”

제 손가락 사이로 얽혀드는 이안의 손가락이 단단하게 묶여왔다.
다정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들어오는가 하면 이안의 갈색 눈동자가 저를 정확하게 담아내며 휘었다.

“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같이 가자는 거에요. 같이. ”

“ ...같이? 하지만 이안은 황실에서 일하잖아요. 저랑 같이 갈 수가.. ”

말을 다 끝 맺히기도 전에 이안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훅 들어왔다.
이안의 입술이 제 귀에 닿을 듯 가까워지자 리유비아는 멀어지려 다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이안의 팔이 그것을 제재했다.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귀 옆에는 들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컸다.

“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그냥 나만 보고 내 손길만 익숙해지면 돼요. 그럼 원하는 건 모두 이루어줄 테니까. ”

“ ...이안? ”

“ ..다시는 이 손목을 나 말고 내어주지 마요. ”

어느새 잡힌 손목을 이안이 단단히 그러쥐었다.
다소 강하게 잡아 오는 손힘에 필시 붉은 손자국이 남을 터였다.
이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평소처럼 미소를 얼굴에 걸치지 않았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 ...알, 았어요. ”

반강제적으로 대답하자 이안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떨어졌다.
저와 이안의 공간을 메우던 온기가 공기 중으로 사라지자 다소 아쉬운 느낌이 들어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 그럼 짐 준비하고 있어요. 내일이라면 바로 출발할 수 있을 테니까. ”
이안이 눈웃음을 지으며 방에서 나가자 리유비아는 멍하니 방문을 바라보았다.

“ 아.. ”

욱신거리는 느낌에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아니나 다를까 붉은 손자국이 제 손목을 둥글게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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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5-12 19:39 | 조회 : 1,339 목록
작가의 말

분량이 오늘은 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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