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챗바퀴는 달리는 것만으로 벗어나지 못 한다.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말임이 틀림없다.
차마 돌아가지 않는 목을 아리아가 억지로 돌려세우자 결국 그녀의 눈과 제 눈이 부딪쳤다.

“ ..리유비아.. 리유비아.”

“ ... ”

얼굴을 확인한 아리아가 울먹거리며 눈을 반짝이자 리유비아의 혀는 제 몸을 더 깊숙이 숨겼다. 저번 축제에서 보았던 그 서늘한 모습은 어디 가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소녀 그대로였다. 마치 이제야 제 주인이 돌아온 것에 기뻐하는 강아지 같은 모습에 죄책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예쁜 큰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지자 리유비아는 놀라 저절로 입을 열었다.

“ 아, 아리아.. ”

리유비아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아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리유비아의 품에 파고들었다. 짧게 자른 단발이 리유비아의 얼굴을 간질였다.

“ 리유비아..정말..정말 너 맞지.. ”

“ ... ”

“ 보고 싶었어.. 하루도 널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어. ”

갑작스럽게 안겨 오는 아리아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기사가 괜히 된 것이 아닌지 안아오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놀라 숨을 삼키고 굳은 리유비아의 목덜미에 아리아가 코를 박으며 킁킁 거렸다. 따뜻한 숨이 목덜미를 간질이자 리유비아는 파드득 놀라 그녀를 다급히 불렀다.

“ 아리아! ”

“ 응? 왜? ”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녀의 어여쁜 홍색의 눈동자가 저를 담아왔다.
기쁜 듯 볼을 발그레 물들인 아리아가 눈웃음을 짓자 리유비아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강하게 저은 리유비아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제 손등을 꼬집었다.
아려오는 손등 덕분에 겨우 평정심을 되찾은 리유비아가 아리아를 살며시 밀자 그녀는 놀란 얼굴을 할 뿐 밀려나지 않았다.

“ ..왜? ”

“ ..응? ”

“ 왜 밀어?.. 왜? 왜 미는 거야? ”

순식간에 얼굴이 굳은 아리아의 목소리가 참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오싹한 기분이 든 리유비아는 빠르게 밀어내던 손을 물렀다.
이 이상으로 그녀를 밀어낸다면 오히려 그녀가 더없이 제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제 인생을 어그러뜨릴 만큼.
손을 물리자마자 사르르 웃는 그녀가 참 야속했다.

“ 리유비아, 나 이제 강해. ”

“ 어.. 그래..? ”

“ 응, 나 이제 리유비아는 지켜줄 수 있어. 돈도 있어. 집도 있고, 나 뭐든 잘해. ”

“ 와...대단하네.. ”

“ 응, 그러니까 이제 그만 돌아와. ”

“ 뭐? ”
강하게 조여오는 힘에 리유비아가 균형을 잃고 몸을 기울이자 어쩐지 아리아의 품에 안긴 모양새가 되었다.
당황스러움에 눈을 연신 깜빡인 리유비아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리아가 사랑스럽게 미소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 내가 잘해줄게. ”

‘ ..뭘? ’

“ 장 보는 것도, 밥도, 청소도, 돈 벌어오는 것 전부 내가 다 해줄게. 네가 움직일 필요가 없게. ”

‘ ... ’

“ 네 다리가 필요 없을 만큼 .. ”

‘ ..으응? ’

리유비아는 아리아의 말을 따라가지 못해 속으로만 대답하고 차마 실제로 내뱉지는 못했다.
아리아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그늘 없는 밝은 미소로 알 수 없는 말만 조잘거렸다.
하나에 대해 물으려고 하면 셋을 이야기하니 도저히 입을 뗄 수 없었다.

“ 이제 가자. ”

“ 잠깐!.. 잠깐만 ”

어느새 저 혼자서만 말을 마친 아리아가 리유비아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리유비아가 다급히 그녀를 멈춰 세우자 아리아는 또 그 말은 잘 알아듣고 멈춰 섰다.

“ 왜? ”

“ ..아니, 하.. 아리아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

“ 말 그대로야. 이제 난 널 지킬 수 있어. 네가 더 이상 무서워할 일 없어. 내가 지켜줄 거니까. 그러니 너도 내게서 떨어지지 마. ”

그 말을 마치고 다시 잡아끄는 아리아에 리유비아는 힘을 줘 땅에 제 발을 단단히 붙였다.
멍하니 저를 보는 아리아의 눈동자에 리유비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쯤 남주랑 놀고 자빠지고 있어야 할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조금도 알고 싶지 않으니 그냥 그대로 황궁으로 가기를 바란 리유비아는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 난 안 가 아리아. ”

“ ...응? ”

“ 너나 나나 자립했고.. 나는..음.. 솔직히 고아원과 연을 이을 생각이 없어. ”

“ 아, 그래? 그래 그럼. 나는 그래도 상관없어 ”

의외로 흔쾌하게 인정하는 아리아에 리유비아가 의문을 표하자 곧 아리아가 말을 덧붙였다.

“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 롤라나 메이, 빈센트, 차이먼.. 그 밖에도 전부 널 좋아했으니까. 솔직히 어릴 때 친구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난감했었는데.. 오히려 네가 그래준다면 안심이야. ”

“ 뭐..?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통틀어서..! 그러니까 아리아 너도.. ”

“ 설마 또 가려는 건 아니지? 응? 날 놓고 가는 거 아니지? 리유비아. ”

리유비아의 말을 빠르게 자른 아리아가 얼굴을 불쑥 내밀며 낮게 중얼거렸다.
매섭게 굳은 아리아의 표정에 리유비아는 뒷걸음질은커녕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굳어버렸다.

“ ..널 기다리기만 몇 년이야. 이제 더는 놓칠 생각도, 놔줄 생각도 없어. 리유비아. ”

“ ..아리아? ”

“ ...그래 그렇게 내 옆에서 날 불러줘. 난 네가 내 이름을 불러 줄 때가 좋아. 살아 있음을 느껴. ”

아리아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리유비아의 볼을 감쌌다.
부드러이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리유비아를 휘감는 듯했다.

“ 그러니.. 날 죽이지 마. ”

“ !! ”

리유비아는 갑작스럽게 저를 끌어당기는 강한 힘에 놀라기도 잠시 제 볼에 닿아오는 보드라운 살결을 느꼈다.
그리고 곧 익숙하면서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퍼졌다.

“ 리비, 뭐 해요? ”

언제 온 것인지, 어떻게 여길 온 것인지 모르지만 살며시 미소 짓는 이안에 리유비아는 놀랐던 심장이 진정 되는 것 같았다.
리유비아를 뒤에서 끌어안은 이안이 아리아가 매만졌던 그의 볼에 제 볼을 맞대 살며시 비볐다.
아리아의 눈이 흉흉하게 일그러졌지만 리유비아는 갑작스러운 이안의 스킨십에 놀라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이안?! ”

“ 찾았잖아요.. 집에 돌아왔더니 없어서 걱정했어요. ”

이안의 다정한 손길이 머리를 스치자 리유비아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리아의 섬뜩한 목소리가 그런 그의 떨림을 멈춰 세웠다.

“ ..리비? ”

“ 응?.. 저 사람은.. 친구인가요? ”

어느새 제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잡은 아리아가 살기를 띄우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리아의 그 행동에 불안함을 느낀 리유비아가 침을 삼키며 어정쩡하게 소개했다.

“ 아, 아리아.. 이 분은 이안.. 이안, 저 애는 아리아. 같은 고아원에 있었어요. ”

“ 아, 그렇군요. 반가워요. 저는 이안입니다. 황궁에서 일하고 있어요. ”

이안의 소개에 무엇이 또 그리 불만인지 더 살인적으로 변한 아리아가 고운 입술을 떼었다.

“ ..그러시군요. 나름 자주 뵀었는데.. 기억을 못 하시나 봅니다. ”

“ 제가 워낙 바쁜지라.. 정신이 없거든요.”

“ ..어련하시겠습니까. ”

어딘가 이상한 대화에 리유비아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안이 리유비아의 몸을 돌려 마주 보았다. 뒤쪽에서 철이 부딪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리유비아는 굳이 돌아가지 않는 목을 돌려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 저분이랑 더 할 말이 있어요? ”

“ 예?...어.. 아뇨. ”

“ 그럼 이만 가요. 리비. ”

아리아가 기다리라며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안이 웃으며 저지하자 그녀는 곧 이를 악 물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리유비아가 뒤를 연신 힐끔거리며 아리아를 보는 것마저 이안이 막으며 정신없는 사이 순식간에 집에 도착했다.
리유비아는 이제는 익숙한 현관에 발을 들이자 긴장이 풀린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리비, 근데 아까 들어보니.. 본명이 리유비아..인가봐요? ”

“ 아.. ”

겉옷을 벗는 이안의 뒷모습을 보던 리유비아가 곧 입을 다물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굴러가는 소리라도 들은 듯 이안의 작은 웃음 소리가 들렸다.

“ 설마하니 애칭을 알려준 것일지 몰랐네요. ”

“ 예? ”

“ 리비가 절 그렇게 깊은 존재로 인정해준 것이 기뻐요. ”

조금도 리유비아가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괜한 불화를 일으키는 것보다야 훨 나으니 그것에 긍정하며 어색하게 이안을 따라 웃음을 흘렸다.

***

이안과 리유비아가 사라지고 혼자 남은 아리아가 어느새 저도 모르게 빼 들었던 검을 검집에 넣으며 혀를 찼다.
오랜만에 만난 리유비아는 어렸을 때 그대로 자란 듯싶었다.
저가 사랑해 마다하지 않는 리유비아를 만났을 때에는 믿지도 않는 운명을 믿었고 그가 불러주는 제 이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불청객만 아니었더라면 이번에야말로 리유비아를 하루 종일 안고 있을 수 있을 터였다.

“ 이안.. ”

몸을 돌려 제 집으로 발을 내딛은 아리아는 고운 얼굴을 와락 구겼다.

“ 개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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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5-04 22:02 | 조회 : 1,348 목록
작가의 말

요새 자꾸 로그인이 잘 안 되서 늦게 오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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