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가 정혜수고 리유비아 맞는데..시발 이게 뭔데.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 ..썅 ”

고요한 밤.
아름다운 별들이 검은색 하늘을 어여쁘게 수놓은 눈부신 밤.
상스러운 언어가 공기를 가르고 짧게 울렸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고 하니 언어 선택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린 남자아이였다.

어린 남자아이는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천장을 보더니
작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

***

3일 전, 정혜수가 지금에 이르기 시작한 발단의 시간이다.
혜수 본인이 처음 눈을 떴을 때 자신이 꿈을 꾸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웬 모르는 곳에서 일어났으니 그것이 꿈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자각몽일 뿐 꿈은 꿈이라 생각해 그는 어린아인 자신을 보며 이렇게 된 거 조금 둘러보기로 했었다.

다만 꿈인데도 굉장히 디테일해서 신기하고 의아했다.
자신이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는 것부터 모두에게 이름이 있는 것, 환경, 사람들의 입을 넘고 넘는 이야기들, 심지어 아픔까지도 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세세했다.
그것과 동시에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감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다만 꿈은 꿈.
일어나고 나면 모두 별 거 아닌 일이기에 혜수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밤이 찾아오고, 꿈에서도 자나 싶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린 혜수는 그대로 자고 나면
꿈에서 깨어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확신이 깨진 것은 바로 다음날
그가 잠든 그 장소에서 일어난 순간 부터였다.
그때부터 혜수는 무언가가 이상함을 느끼고 초조해져갔다.
꿈치고는 너무 길었던 것이다.

설령 체감시간일지언정 꿈속에서 꿈을 꾼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적어도 그는 그 나이에 맞게 사탕을 가득 먹는 꿈을 꾸었으니까

그렇게 하루를 더 멍하니 살던 중
다시 한 번 잠에 빠지고 새벽에 일어난 현재.
자기 스스로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만 욕 짓거리가 나왔다.
작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혜수는 조용히 말을 뱉었다.

“ .... 이거.. 연중된 ‘그’ 소설 설정이랑 똑같잖아. ”

과거에 읽었던 「너는 나의 단비★」 라는 소설은 독자들에게 굉장한 사랑을 받으며
흥했던 책이다.
고아원에서 자란 여주는 너무나 예뻤던 나머지 선생님들 몰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만큼 괴롭게 어린 시절을 보내 죽은 아이처럼 살아갔다.

16살 성년이 된 나이임에도 여전히 비어 버린 사람처럼 살아가던 때
남주, 시크랄이 그녀의 곡선길이 되어준다.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곡식을 풍성하게 하는, 단비같은 존재가 되어준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자신의 과거처럼 고통을 받는 여주가 가여워 도움을 주려던 시크랄은 어느새 여주에게 사랑이 빠지고, 달달하게 연애를 이어가던 중 당연하게도 방해꾼이 등장하게 된다.

여주를 너무나 좋아해서 질투해 나중에는 집착증을 보이는 고아원 동창.
리유비아, 즉 혜수 본인이었다.

리유비아가 여주에게 끝없는 병적인 집착을 보이며 후에는 어떤 사악한 일을 꾸미는 것 같았는데, 작가님의 갑작스런 연중으로 그 뒤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혜수도 그때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 아쉬움이 이렇게 커질지는 몰랐다.
의도하지 않게 리유비아가 되어 자신의 뒷이야기를 모르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이거 정말 꿈이 아닌가? ”

혜수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참았다.
자기가 여기 오기 전에 늘 그랬듯이 아침밥을 먹고 출근해서 야근을 하고 기 빠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자는 것을 반복했을 뿐인데 어쩌다 이리 된 것인지 원망스러워졌다.

사실은 이 순간도 꿈이 아닐까 희망을 걸어보려는 마음이 한 구석에서 꿈틀됐다.
자신의 두 뺨을 찰싹하고 때린 혜수, 리유비아는 한숨을 내쉬고 생각했다.

‘ 일단 여주는 고아원에 없었어. 그렇다는 건 여주가 오기 전 상황이라는 거고.. ’

생각을 하던 리유비아는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헝클였다.
소설에서만 보던 상황이 본인한테 실제로 일어났으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왜 그렇게 악역에 빙의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둥거렸는지 알 것 같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외롭고 무서웠다.
심지어는 자신도 어찌 보면 악역인데 뒷이야기도 생략되어버렸으니
쥐도 새도 모르게 개판 속으로 빠질 수 있었다.

‘ 일단... 여주..여주랑은 절대 가까이 안 지낸다. 여주랑 붙으면 300% 싫든 좋든 주인공들 이야기 속에 포함될 거야.. 아이씨 안 괴롭히면 안 괴롭힌 대로 여주가 기억할 것 같고, 괴롭히면 뒷감당을 할 엄두가 안 나고, 감싸면.... 그건 아웃이다. 아니지 잠깐..’

이리저리 생각하던 리유비아는 과거 자신이 읽었던 ‘악역 속 빙의 ’ 소설 유형들은 전부 떠올렸다. 각각 조금씩은 달랐지만 공통된 것은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꼬인다는 것.

‘ 그러니 여기서 괜히 머리 굴리면 희한하게 될 수도 있어.. 예를 들어 여주가 나한테 사랑이 빠진다던가.. 갑자기 보살펴준다던가...그러니까 난 리유비아처럼 행동해서 어느 정도 내 나이를 먹고 나면 빠르게 자립하는 거야. ’

그 전에 돌아가지 못 한다는 전제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읽어본 경험상.. 이렇게 작전이라도 세워둬야 덜 힘들 것이라 생각되었다.

‘ 여주는 남주를 만나고서 딱히 고아원에 어떤 미련도 가지지 않았으니까
남주도 처음엔 되갚아주려 괴롭힌 사람을 찾지만... 제일 심하게 괴롭혔던 롤라만 찾아 보복했다고 적혀 있었어..리유비아가 사악한 꾀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다 그간 안전했기 때문이니까 리유비아 처럼만 행동하고 자립해서 둘 사이에 접촉도 안 하면 일단 온전히 돌아갈 방법에 집중할 수 있어.. ’

리유비아가 그렇게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해 나가던 때
깊은 밤에 커다란 전등이 아지랑이 피듯 떠올랐다.

“ 벌써 아침이냐.. ”

***

식기를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밝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식사시간을 가득 채웠다.
리유비아도 묽은 스프를 입 안에 밀어 넣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주목시켰다.

“ 얘들아! 모두 주목. 새 식구가 왔어요. ”

“ 푸웁 ”

깨작깨작 식사를 하던 리유비아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 서..설마 ’

“ 자,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오렴, ”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뒤에서 숨어있던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눈과 짙은 남색의 눈을 가진 인형같은 여자아이는 수줍은 듯 볼에 홍조를 띄우며 주춤주춤 걸어 나왔다.

‘ 오....미친 ’

“ 안녕하세요.... 아리아라고 불러주세요. ”

여주, 아리아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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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29 16:26 | 조회 : 3,558 목록
작가의 말

헉..BL은 처음이라 긴장되네요...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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