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최악의 만남(6)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알파의 페로몬이 다른 알파의 페로몬을 밀어내며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은성이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페로몬의 노출되어 있는 지한을 생각하니 손목에서 핏줄이 올라오고 이루말할 수 없는 불쾌하고 더러운 감각에 그럴 정신이 없었다.

자신의 페로몬을 어느정도 개방한 것을 버틴적은 있었으나 이정도의 페로몬의 지한이 받아 본적은 없었다. 베타는 페로몬의 공격에 취약하다. 그 사실에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페로몬의 중심지에 다다르자 보이는 것은 그 사람과 후드도 벗겨진채 좋지 않은 안색으로 페로몬을 그대로 맞고 서있는 지한이었다.

“이게 무슨 짓 입니까.”

은성이 서둘러 페로몬으로 그 사람의 페로몬을 방어하며 지한의 앞을 막아 섰고 은하는 그런 은성의 뒤에 서 지한을 지키려는 듯이 양 팔을 벌리었다.

어떨결에 남매의 보호를 받게된 지한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에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알파가 베타에게 이렇게 페로몬을 함부로 뿌리다니. 제정신입니까?”

“네가 베타의 편을 들다니 이상한 일이구나.”

마치 서로가 아는 사람인것 마냥 대하는 둘의 반응에 지한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베타가 감히 나에게 기어오르길래 밟아 준 것 뿐이다. 감히 내 앞에서 네가 베타를 싸고 돌다니 난 널 그렇게 교육한적이 없는데 말이야.”

페로몬까지 사용해가면서 자신에게 반항하는 은성의 태도에 미중년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는 짓이 천박한 것이 네 어머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구나. 버리지같은 것들.”

모욕적인 말들을 아무렇게나 뱉어내며 욕을 하는 데도 서은성은 가만히 욕을 듣고 있기만 했다. 저렇게 고분고분한 인간이 아닌데.

지한은 의아해 하면서도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끼어들기에는 은하도 은하도 모두 표정이 좋지 못하였다.

“아빠, 이 사람들 누구에요?”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묻는 아이를 올려 안아들면서 미중년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네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다. 넌 저런 실패작들이 아닌 내 정식 후계가 될터이니.”

실패작.

그 말에 붉은 빛이 도는 지한의 눈동자가 선명한 루비색을 띄며 영롱한 빛을 내었다. 꽉쥔 마른 주먹에서 핏줄이 튀어나왔다.

방금 대화로 보자면 저 미중년은 아마 아니, 확실하게 서은하와 서은성의 부모이다. 이렇게보니 은근히 은성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다르다. 은성은 저런썩은 늪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든것을 집어삼키는 청량한 바다와 같은 페로몬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방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지만 때로는 사람을 매료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저 남자의 페로몬은 자신도 주위도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독과같았다. 지금까지 봐 왔던 페로몬 중에 이렇게 까지 심각하게 변질되어 있는 페로몬은 본적이없었다.

사실 조금더 있었더라면, 은성이 페로몬을 방출해서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자식에게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남자.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페로몬을 가지고 있는 그 남자가 계속 지한의 심기를 건들이고 있었다.

“…그 입 닥쳐.”

깜짝 놀란 은하가 뒤를 돌아보자 선명하게 빛을 내는 영롱한 루비색의 눈동자가보였다. 그 싸늘한 눈동자를 보자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색이 사라지고 마치 저 선명한 루비색의 눈동자만이 있는 것 같았다.

멍하게 서있는 은하의 팔을 내리고 은성을 지나쳐 남자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라고?”

“그 더러운 입 놀리지 말고 닥치라고.”

놀란 은성이 서둘러 지한의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 당기려고 하였지만 손목만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지만 끌어당길 수는 없었다.

‘이게 뭐지?’

알파의 본능이 경고를 외치고 페로몬이 흥분하며 날뛴다. 기쁨에 몸을 맞춰 움직이는 페로몬이 마치 오랜 시간을 찾아온 이를 찾은 것 마냥 제어가 되지 않는다.

“당신이 뭔데 실패작이다 아니다 야. 니 새끼는 신 새끼라도 되는 모양이지? 아니면 본인 능력이 떨어지니까 잘 안되서 하는 화풀이?”

욕이 난발하자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아주 겁을 상실했구나. 감히 베타가 알파, 그것도 극 우성 알파인 나에게 대들다니.”

“겁을 상실하긴 했지. 근데 이걸 어쩌나? 난 초 극우성 알파에게도 대드는데 고작 극 우성 알파따위에게 기죽을 것같아?”

빛을 받아서 인지 적갈색의 눈동자가 더 선명해진 루비색이 되어 보였다.

그 영롱한 눈동자에 아이는 홀린듯이 눈을 떼지 못하였고 미중년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치부를 건들면서 대드는 베타가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페로몬을 사용해서 굴복시키려고 하였지만 계속해서 은성의 페로몬이 막아내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도 간단하게.

“…괴물 새끼.”

남자는 남매와 지한을 노려보고서는 발길을 돌리었
다. 그 순간에도 아이는 얼굴을 붉힌채로 지한을 향
해 있었다.

그런 시선을 막아채듯이 은성이 등이 지한을 가렸다.

은성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지한의 턱을 잡고 올렸다. 그림자가 져서 그런가 평소의 붉은 빛이 감도는 적갈색 눈동자였다.

“뭐야, 이거 안놔?”

방금 루비처럼 영롱하던 붉은 눈동자는 온데 간데 없었다.

“…너.”

방금 까지만 해도 미친듯이 날뛰던 페로몬도 거칠게 뛰던 심장도 모두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있었다.

계속해서 생기는 원인특정 불과의 이상한 일들이 지한하고 있을 때만 계속 생기고 있었다.

“너 뭐? 할 말 없으면 그만 가자. 쇼핑할 맘 사라졌
어”

은성의 손을 잡아 내리며 지한이 멍하니 서있는 은하에게 다가갔다.

그런 지한의 뒷모습을 보다 은성은 지한이 잡아 내렸던 손가락을 내려다 보았다. 잡았던 손은 차가웠는데 이상하게 자신의 손을 뜨거워져있었다.




※※※




돌아가는 길. 차에서 은하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댄채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은하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주었다.

“…지한이 오빠는 눈치챘지?”

무엇을 눈치챘냐고 묻는 것인지 자한은 알고 있었기에 굳이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말이 필요없을 때도 있었다.

“그 사람 그러니까, 아버지는 생물학적으로 우리들의 아버지야.”

조용히 은하의 이야기를 지한은 덤덤히 들었다.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은성은 개인적인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운전만 하였다. 그것은 무언의 허락이라는 것을 은하는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서로이외의 사람에게 남매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허용.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극 우성 오메가와 알파셨는데 두분은 사랑이아닌 필요의 목적으로 서로를 이용하기 위해서 우리를 만들어서 낳았어.”

지한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피가 나올정도로.

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은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회사 일루스터의 지원금을 얻기위해서 아버지인 그 남자는 극 우성 오메가 중에서도 뛰어났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얻어 자신의 후계를 만들기 위해서.”

목적만을 가진 사랑이 없는 관계에 이 남매는 고통받고 자랐을 것이다. 그 사실이 마음이 아프다. 눈시울이 뜨겁다.

“그런데 처음에 태어난 오빠가 아버지를 뛰어넘을 정도로 우수했어. 남자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손에 넣고 움직일 꼭두각시였지 자신의 손을 벗어난 오빠가 아니었어.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배에서 태어난 형제들의 괴롭힘 속에서 살아왔어. 서로가 의지할수 있는 대상은 서로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계약에 의해 낳은 우리들을 신경을 써주었지만 그것 뿐이었어. 우리들을 괴롭힘속에서 지켜줄 힘도 우리를 위해 대신 화내줄 명분도 없었지.”

천천히 은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길이 굳기 시작했다.

“초 극우성 알파와 오메가. 또는 알파 킹과 오메가 퀸 남매. 우리들의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짜’들이야.”

친구들은 모두 누군가의 감사의 시선이었고 주위 인간들은 모두 초 극우성 남매를 두려워한 누군가의 심복이었다.

이 환경속에서 서은하는 순진한척 사교성 좋은척 주위의 사람들을 속이며 생존하였고 서은성은 믿는척 사이좋은 척 연기하며 사실 그 누구도 믿지 않았고 의심하며 살아남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며 남매는 어른의 보호의 받지 못하였으므로 살아남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는 오메가였기 때문에 그나마 나았지만. 오빠는 계속해서 목숨을 위협받는 나날들의 연속이었어. 그러다 어릴적에는 납치를 당한채로 몇달동안 실험을 당한적도 있었어. 결국 아직은 오빠가 필요했던 아버지라는 작자가 빼돌렸지만 납치의 주범도 그 남자였어.”

납치. 그리고 몇달간의 실험.

혹시라는 가정이 내 머리속을 강타하였다. 아주 작은 실마리였고 불확실했지만 심장이 크게 뛰었다.

혹시 그때 살아남은 아이들중 한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의 빛이 내 모든 것을 지배했다.

“그러다 나는 혹시 베타라면, 알파나 오메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베타라면 혹시 우리의 마음을 나눈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였구나.”

그곳에 있었던 이유가.

“응, 오빠와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쳤거든. 그러다 정말 운명처럼 지한이 오빠를 만났어. 방금처럼 우리를 위해서 화를 내주는 사람. 우리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들어주는 사람.”

어제 성인이 되어가고 있는 나이였지만 은하는 아직 어른의 보호와 돌봄이 필요하고 간절한 때였다.

그런데 그 자리를 겨우 두번만난 나에게 줄 정도로, 마음을 그렇게 보여줄 정도로 은하는 매달릴 곳이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지한이었기에 은하는 마음을 열고 있던 것이 었지만 그 사실을 지한이 알리가 없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살고 싶어.”

은하는 얇은 허벅지가 구원이라도 되는 것 마냥 이마를 부비었다. 바지에 촉촉한 눈물 자국이 남았지만 지한은 그저 은하를 쓰다듬으며 자신에게 길들려진 페로몬을 잠을 유도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착하지.”

곤히 잠든 은하의 눈물에 젖은 색이 옅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지한은 은하를 다독였다. 잠든 은하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두방울씩 떨어지다 이내 멈추고 은하가 편안하게 잠들었다.

언제 도착했는지 운전석에서 내린 서은성이 내 허벅지에서 잠든 은하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품에 안아들었다. 이렇게 두사람은 정말 상당히 닮아있었다. 분위기도 성격도 다르지만 두사람은 정말 닮아있다고 지한은 생각했다.

은하를 방에 눕히러 간 사이 나는 까만 하늘에 떠있는 둥근 달을 쳐다보다 이내 테라스에 나가서 차가운 테라스의 끝의 펜스에 아슬아슬하게 걸터 앉았다.

생각할것이 많았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형….’

그 끔찍하고 잔혹했던 곳에서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의형제.

그 사람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어릴적의 충격 때문인지 기억의 대부분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른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이 할 것이다.

“위험하게 뭐하는 짓이야.”

테라스 위에 걸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오며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밤하늘 보다 짙은 푸른 빛을 머금은 눈동자가 사파이어처럼 영롱했다.

“높은 곳에 경치가 좋아서. 공기도 좋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소년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적갈색의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났다.

“그 남자 아마 지금쯤 고생하고 있을거야.”

소악마처럼 사악하면서도 상큼하게 키득거리며 웃는 모습에 은성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소리지?”

“말그대로의 소리지. 알파로서 가장 좋은 쾌감을 내가 가져가 버렸거든.”

영문을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자한에게 다가가
두팔로 테라스의 안전펜스를 짚고 그 가운데 앉아
있는 지한을 올려다 보았다.

“나에게 묻고 싶은게 있지?”

지한은 은성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은하의 목에 각인.”

“맞아, 내가 없앴어.”

“어떻게 알파도 못하는 것을 베타인 네가 할 수 있지?”

과거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누구에게 말해서는 이해받을 수 없다. 그것은 알고 겪은 사람만이 지한의 깊은 외로움과 고통을 알아줄 수 있었다.

“궁금하고 알고싶지? 그럼 내가 대학에 다닐 4년동안 열심히 알아봐. 대신 나도 당신을 관찰하고 지켜볼게.”

내가 찾는 그때의 형이 맞는지. 아니면 또 다른 생존자인지.

그의 향이 머리에서 부터 발끝까지 나의 전부를 감싸며 그 끔찍한 남자의 페로몬이 남김없이 씻겨져 나갔다.

“좋아. 나는 네가 무척이나 궁금해. 그러니까 내가 주는 것은 모두 받아. 너가 싫어하는 것은 버리고 좋아하는 것은 받아. 그리고 여기서 살아. 은하는 너가 있어야 불안해하지 않으니까. 은하를 돌봐주는 것을 조건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해. 수당은 적지 않게 줄테니까.”

그러니까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

은성의 열기를 머금은 눈동자가 지한의 모든 것을 담았다. 달빛을 받고 은색으로 빛나며 밤바람에 흔들리는 백발과 곱게 희어진 눈. 그리고 드러난 하얀 피부의 쇄골까지.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눈에 새기며 담았다.

“미친 개한테 잘못 물린 기분인데.”

말과는 다르게 지한은 기분 좋은듯이 웃고 있었다. 지한의 손이 코앞에 있는 은성의 어깨에 닿았다. 큰 덩치의 몸이 조금 굳는 것이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런 은성의 반응을 즐기며 지한은 허리를 숙였다. 더욱 가까워진 거리에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뒷조사든 뭐든 나를 이끌어내서 내 모든것을 알아봐. 그리고 당신이 결정내려. 내가 무엇인지. 괴물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

“그러지.”

“그리고 그 말투 싫어 고쳐.”

“그래.”

“그것도 마음에 안드네. 왜일까?”

“그럼 존댓말로 해드릴까요? 후배님.”

은성의 존댓말에 소름돋는 다는 듯이 은성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들어갔다.

“…더 끔찍하네.”

“그럼 이렇게 할게요.”

“으.”

진심으로 싫다는 얼굴로 미간을 좁히는 모습에 은성은 묘한 희열과 만족감을 느끼며 씩 웃었다.

“널 먼저 알아보라고 말한건 너였으니까 나에게 도망치지 말아주길 바랄게요.”

“존대를 하는 건지 하대를 하는 건지. 상대방을 빡치게 하기는 좋겠네.”

대답하는 대신 달빛 아래에서 지한의 환하게 웃었고 어어없는데도 이 상황이 싫지 않았던 은성도 웃고 말았다.

16
이번 화 신고 2019-07-18 15:52 | 조회 : 2,285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소설의 묘사를 못따라가는 작가의 손.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