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서로의 거리(1)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고 손님방에서 잠들었던 나는 입고갈 옷이 없자는 자각했다. 세수를 하고 준비된 고급진 칫솔로 이를 닦고 바로 서은성의 방으로 찾아갔다.

똑-똑-!

그러자 문이 바로 열렸다.

“좋은 아침.”

언제 일어났는지 서은성은 벌써 대학갈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한쪽손에 폰을 들고 통화하면서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었다.

조용하라는 신호였다.

그리고는 내 손목을 붙잡고 방안으로 이끌어서 침대에 나를 앉혔다.

“그렇습니까? 아버지께서 어제 저녁부터 이상하다는 말이겠군요.”

대화내용에 절로 귀가 쫑긋섰다.

“닥치는 대로 성별관련없이 침실로 들이시다니 노망이라도 나신건 아닌지 걱정이되네요. 몰래 병원에가서 검사까지 받을 정도면 심각한거 아니겠습니까.”

대화하면서도 검푸른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청량한 바다의 향기가 나를 둘러싸며 춤이라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표정이 풀려버릴것 같은 포근함이 기분좋았다. 주인과는 다르게 서인성의 페로몬은 퍽이나 나에게 상냥했다.

그 더럽고 기분나쁜 썩은 늪같은 페로몬으로부터 계속해서 나를 지켜주기도 했었고.

물론 주인인 서은성의 의사가 어느정도는 방영되지만 그래도 필요 이상으로 서은성의 바다같은 페로몬은 그 썩은 늪같은 페로몬을 공격하면서 까지 나를 지켜주었다.

처음보자 마자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페로몬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나에게 관여하는 페로몬은 처음이었다.

이런 경우는 내가 알기로는 두가지였다. 페로몬의 주인 서은성의 각인된 짝이거나 혹은 서은성이 좋아하는 상대일 경우는 적기는 해도 페로몬이 스스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었다.

일단 난 베타이니 첫번째는 완전무시고 두번째도 말도 안되는 경우였다.

서은성이 나를 보는 눈빛에는 그런 감정이 보이지 앟았고 그저 경계나 호기심뿐이었다. 또 서은성이 나를 좋아한다면 페로몬을 느껴서 바로 알 수 있었기에 아니었다.

페로몬에서는 그런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않았다.

그럼 뭘까? 얘는 왜이렇게 나를 좋아하지?

지금도 떨어질 생각이 없어보이는 바다 같은 서은성의 페로몬이 주인인 서은성보다 나에게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제부터 더 심해진거 같은데. 왜 그러지?

“참 재밌는 일이 생겼더군요.”

“으, 능글거려. 바로 반말을 하지 않으면 튈거야.”

“알았어.”

손등까지 돋은 소름을 보여주자 서은성이 낮게 웃었다.

“그래서 무슨 재밌는 일이 생겼다고?”

“그 남자, 생물학적 내 아버지가 발기는 되는데 사정은 안되는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어제부터 몇명이랑 붙어먹은건지.”

곱게 훤 눈이 지금 얼마나 유쾌해하고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었다.

“네가 한거지?”

“글쎄.”

어깨를 으쓱이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쇠를 시전하였지만 서은성은 이미 내가 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이지한.”

낮게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조각같은 얼굴이 보였다.

우와, 진짜 더럽게 잘생겼다. 신이 밤낮을 새면서 눈물 콧물을 다빼면서 만들어진 외모였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모델 뺨치는 얼굴이었다.

“왜.”

얼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슬쩍 고개를 옆으로 꺽어서 시선을 다른 쪽으로 두었다.

“너 진짜 재밌다.”

“응, 칭찬 고마워.”

대충 넘기며 대답하는 데도 저 놈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고있다.

“그것보다 옷좀 빌려줘.”

“내 옷은 너에게 클걸.”

순간 눈썹이 확 찌푸려졌다. 그래, 난 남자치고는 좀 가녀린 체구다. 뼈도 얇고 살도 없어서 그런지 여자옷을 입어도 위하감이 거이없다.

그래도 어제는 은하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 그렇지 여자옷 입을 생각은 없다.

“내놔. 흘러내려도 입을거야.”

“안돼.”

“우씨.”

틱틱거리며 눈을 피하는 모습에 성은 피식웃으며 큰 옷장으로 걸어가더니 옷걸이에 걸린 피치퍼프라고 들었던 색상의 옷을 가지고 왔다.

“입어.”

이 옷은 어제 입어봤던 옷중 하나였는데 언제 사온거지?

“이건 언제 산거래.”

“글쎄?”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어제 입은 옷이 전부 저 침대보다 큰 옷장안에 다있는 건 아니겠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웃긴 생각이었다. 재랑 나랑 무슨 관계라고 옷을 사 놓는 다고.

“고마워. 세탁해서 돌려줄게.”

“아니, 그거 네거야.”

“뭐?”

“내가 말했잖아. 내가 주는 것 모두 받으라고.”

그게 진짜였냐. 미친놈.

“싫어하는 것은 버리고 좋아하는 것은 받아. 내가 너를 파악할 수 있게.”

“제 정체와 취향은 무슨 상관인데요.”

어이없어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냥 알고싶어서?”

“개도 아니시면서 왜이렇게 개소리를 하실까.”

“멍.”

저 미친놈. 상대하지를 말아야지 괜히 나만 더 피곤해진다.

내 앞을 가로막는 큰 덩치를 밀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미친 서은성 놈을 비켜지나가면서 문앞까지 선 다음에 살짝 뒤돌아보니 서은성이 나를 보고 있었다.

“뭘봐.”

“예뻐서.”

“미친놈.”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닫히는 문 사이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배까지 잡고 웃음을 참는 모습이 보였다.

옷을 갈아입고 고급진 장에 부담이 안갈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여전히 음식은 환상의 맛이었다.

“지한이 오빠는 이제 대학교가지?”

시무룩한 얼굴로 연신 포크로 접시를 쿡쿡 찌르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아파왔다. 안타가웠다.

“마치고 바로 은하한테 갈게.”

“정말?”

“그럼 그럼.”

은하의 부드러운 갈색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은하의 표정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저 닭거슴 샐러드를 입에 넣고 먹었다.

“아유, 잘먹네.”

“지한이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내앞에 비어있는 5그릇의 샐러드 접시를 보면서 은하는 좀더 잘먹어야 겠다면서 의지를 불태워서 남기는 음식없이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가지.”

이미 깔끔하게 다먹고 은하가 다먹기를 기다리던 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에게 눈짓했다.

“어차피 같은 대학이니 태워다줄게.”

“지한이 오빠, 은성이 오빠랑 같은 대학이었어?”

연신 놀라워하는 은하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은하가 눈을 빛낸다. 마치 자기옷을 나에게 주었을 때와 같은 눈빛으로.

“…나도 공부 열심히 해야지.”

기본적으로 알파와 오메가는 일반인 보다 머리가 좋다. 더 강한 우성일수록 지능과 육체적 능력이 뛰어났다. 초 극우성 오메가인 은하또한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텐데 굳이 저렇게 눈에 불을 키며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

현관에 서서 은하의 머리카락을 한번더 쓰다듬어준 뒤에서 어이없다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은성을 한번 따라 현관 밖으로 나갔다.

“밥은 챙겨먹어라.”

은성이 닫히는 문 사이로 은하에게 말했다.

“지한이 오빠나 챙겨.”

되돌아온 답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은하의 모습이었다.

은성의 시선이 슬쩍 모자에 후드까지 쓰고 있는 지한에게 향했다.

“뭘 봐.”

“좋아서?”

바로 질색하는 얼굴이 되는 지한을 보며 은성은 묘한 충족감을 느끼며 씩 웃었다.

번쩍이는 재규어의 뒷자석에 타고 차문에 팔꿈치를 대고 창문을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자 술렁이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전화번호 알려줘.”

가라앉기는 개뿔. 저 서은성 놈의 말에 뾰루퉁하게 대답했다.

“왜?”

“내가 뒷조사를 할까. 아니면 그냥 알려줄래?”

무서운 놈. 권위적인 모습이 잘 어울리는 것이 재수가없었다.

“폰 줘봐.”

운전을 하면서도 여유롭게 폰을 건내는 것이 참 물이 흐르는 듯이 자연스러우면서 우아하다.

아니야. 정신 차려. 이지한 넌 지금 페로몬에게 홀려있는 상태라고.

폰을 건내받으며 닿은 손가락이 뜨겁고 욱신거리게 느껴진다. 이건 모두 바다와 같은 거대한 페로몬을 가진 서은성 때문이다.

최신 폰이네.

번쩍이는 검은 폰을 켜자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

“비밀번호.”

“31415926535.”

미친놈. 어떻게 원주율을 비밀번호로 할 참신한 생각을 하는 거지.

“원주율을 휴대폰 비번으로 하는 미친놈은 네가 유일할거야.”

“그걸 아는 것도 신기하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고 이름란을 잠시보며 고민했다. 뭐라고 저장해 놓지?

서은성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아니지. 내가 왜 이딴걸 생각하고 있는거야. 내가 생각하는 걸 저장해 놓으면 되는 거지.

쓸데없는 생각을 했더니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진 느낌이다.

“자, 여기.”

폰을 내밀자 운전하면서 받아서 켜서 확인해 본다.

“애교부리는 건가?”

“무슨 미친소리야.”

“전화걸지마라 라고 저장해놓은게 꼭 걸어달라는 것 같잖아.”

“님이 이상한거겠죠.”

낮게 웃는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저음의 목
소리가 무척이나 매력…아니, 아니야.

이건 다 페로몬 때문이라니까.

차안에 있어서 그런가 서은성의 깊고 푸른 바다같은 페로몬이 더 진하고 깊게 나에게 달라붙어왔다. 그래서 지금 감정조절이 되지 않았다. 이게 내감정인지 페로몬이 알려주는 서은성의 감정인지 알방도가 없었다.

다만 어색하기는 했지만 싢지는 않았다.

이상하지. 처음봤을 때는 괴물을 넘어선 고결한 지
배자 같았는데 지금은…

“다왔어. 내리면서 시선에 주위하고.”

시선?

“꺄아아악!”

“서은성 선배다!”

오메가들의 흑심을 담은 페로몬이 보이지 않는데도 보이는 것 같았다.

“내리지.”

멍때리고 있었는데 어느순간 운전석에서 내려 내쪽의 차문을 열고 정중하게 손을 내미는 꼴이 퍽이나 친절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서은성의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시선들이 나는 뭐냐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고생길이 펼쳐질 것 같았다.

“안잡아?”

“됐습니다.”

보는 눈이 있으니 존댓말을 했다.

서은성의 손을 잡지않고 무시하며 차에서 내리자 마자 적의가 가득한 페로몬과 호기심이 가득한 페로몬의 반응에 속이 안좋았다.

아무리 나라도 이렇게 많은 페로몬속에 있으면 힘들다. 아니, 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메가보다 더 뛰어난 페로몬 감지능력과 그것을 넘어서서 감응능력과 길들이는 능력, 지배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너무 많은 페로몬의 정보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

막상 내렸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대한 감정의 폭포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휘몰아치며 찢어 발기는 것 같았다.

“너 안색이 안좋은데.”

당신 때문이잖아.

서은성이 가증스럽게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내 이마를 만졌다. 접촉을 하자 서은성의 페로몬이 나에게 달려왔다. 마치 거친 파도가 걸리적거리는 것을 치워버리는 거칠게 다른 페로몬을 밀어내고 나에게는 잔잔한 파도가 되어 나를 감싸준다.

“…으.”

어떤 여자가 사색이 되어 질린 얼굴로 털썩 바닥에 주저 앉았다. 나에게 무지 막지한 적의 보낸 여자였다.

“미안한데 지금 내 소중한 후배가 몸이 많이 안좋아서.”

부드러운 손길이 나를 감싸서 들어올렸다. 얼떨결에 그의 품에 안겨버렸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내려달라고 속삭였지만 서은성의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들고 옮길 뿐이었다.

도착한곳은 양호실이었다. 나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손길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 괜찮은데.”

“너 지금 안색이 엄청 안좋아.”

“원래 피부가 하얀편이야.”

“하얗다못해 종잇장처럼 아니, 종잇장보다 창백해.”

이불까지 덮어주는 모습이 우리 엄마같다. 그래서 실소했더니 서은성이 왜 그렇게 웃냐는 듯이 바라본다.

“왜 웃어.”

“우리 엄마같아서.”

내 말에 슬그머니 미간을 좁힌다.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다.

우리 어머니도 저러셨는데. 언제나 냉정해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시는 분.

“그나저나 나 첫 대학생활인데 첫날부터 아파서 양호실 신세졌다고 소문날 것 같은데.”

조용하고 안락하게 보낼려고 했던 내 대학 생활 라이프야 잘가렴. 너를 잊지 않을게.

“거기다 미친개와도 엮었으니 소문이 많이 나겠지.”

내 대학 생활 라이프를 떠나보내게한 장본인을 노려보자 장본인은 뭐가그리 만족스러운지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안색이 안좋아 지셨을까. 우리 지한이.”

미친. 욕이 저절로 나온다.

“베타라면서 마치 페로몬 감지능력이 뛰어난 오메가처럼.”

거참 예리하셔라. 아주 그냥 베이겠네.

“내가 시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거든.”

거짓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려줄 생각도 계획도 없다.

이게 나의 선이었고 벽이었다.

“그것뿐이야?”

“말했잖아. 궁금하며 스스로의 눈을 보고 조사하고 판단해보라고. 나도 4년동안 그렇게 할꺼니까.”

빛을 받아 더 선명하게 빚나는 붉은 끼가 도는 적갈색 눈동자가 곱게 희어졌다.

은성은 그 눈동자가 마치 설탕처럼 느껴졌다. 햝으면 사탕처럼 달콤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붉은 독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하였기에 은성은 충동을 참아내었다.

“…지금 무슨 생각했어?”

마치 은성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 것처럼 붉은적갈색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작은 흔들림이 서은성의 원초적인 무언가를 계속해서서 건드렸다.

본능이 말한다. 잡아먹으라고 저걸 먹고싶다고 아우성을 친다. 하지만 은성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억눌렀다.

“어떻게 너를 잡아먹을까 하는 생각.”

“미친놈아. 저리 가세요.”

슬쩍 거리를 두려고 침대 끝으로 붙는 모습이 귀여웠다. 마치 포식자를 두려워하면서 호기심때문에 그렇게 멀리는 떨어지지는 못하는 어리석으면서도 사랑스러운 피식자같았다.

“지한아.”

“어우, 소름돋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지.”

“귀엽게 구네.”

“아는 척도 하지말자.”

“지한아.”

“가까이 오지마!”

막으려고 했지만 은성이 더 빨랐다.

쪽.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은성이 포만감어린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고 상황이 이해가 덜된 지한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눈을 깜빡였다.

“조신하게 기다리고 있어.”

양호실의 문을 닫고 나가는 모습에 그제서야 정신차린 지한이 은성에게 뭐라고 소리칠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은성이 더 빠르게 문을 닫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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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24 21:05 | 조회 : 2,142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연재주기는 밥말아 먹고 올립니다.((언제 연재할지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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