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최악의 만남(3)

‘그 사건’이후 나를 괴롭히는 휴유증중 하나는 바로 끝나지 않는 악몽이었다. 편히 잠에 들수없는 것은 물론이고 깬 뒤에도 환청에 시달려야했다.

더 문제인것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 뭐라고 말하는지 전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무의만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나에게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왜 이런 상황인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넓은 침대에 나에게 깔린채 와이셔츠의 윗 단추가 전부 뜯껴있었고 내 손은 주름이 지도록 와이셔츠를 잡고 있었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과 장난기를 가득 담은채 도발하는 듯이 빛나는 푸른빛도는 눈동자가 엄청나게 색정적이었다.

“왜? 더 안해?”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뜨거운 손의 온도가 소름돋았다.

“흐음, 아직도 많이 차갑네.”

“저기, 이거 납치야?”

“무슨 소리를. 난 범죄자가 아니야. 쓰러진 당신을 고이 우리집에 모셔서 의사까지 붙여줬다고. 그리고 정성드려서 간호까지 했지. 보답으로 덮쳐졌지만.”

순식간에 얼굴이 뜨거웠졌다.

“미친. 너, 너 힘으로 막을수 있잖아!”

“딱히 막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이런 미친놈에다가 변태새끼.

“왜 욕이 들리는 것같지?”

…그리고 더럽게 예리한 놈.

“내 옷 어디있어?”

서둘러 서은성의 몸에서 내려와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세탁중.”

이제보니 모자도 없다. 내 흰머리를 딱히 들키면 안
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것은 싫었다.

“그런데 너 알비노야?”

침대에 업드려서 묻는 모습이 정말 노골적이었다. 애써 시선이 가는 쇄골을 무시한채로 방의 장신물들을 하나하나보며 가격을 생각해보았다.

“아니.”

저 술은 한 백만원.

“그럼 염색?”

저 자동차모형은 한 오십만원.

“아니.”

“왜 대답을 듣고 있는데 안듣고 있는것 같지.”

저놈은 왜이렇게 날카로운거야. 결국 가격을 매기는 것을 포기하였다. 피하는게 불가능했다. 저 푸른 눈동자로부터는.

“그냥 새치라고 생각해. 눈동자색은 원래 붉은 색이었어.”

앞머리를 대충 만지며 대답했다.

“피부는 원래 창백하고?”

“아니, 그건 내가-”

잠깐 내가 왜 순순히 대답해주고 있지? 서은성을 노려보자 얄미운 미소를 지은채 나를 보고 턱을 괴고있었다.

“잘 대답하네. 착하게도.”

“미친놈.”

내가 내볕고도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슬금 눈치를 보았다. 다행이도 서은성은 그렇게 화난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즐겁다는 얼굴이었다.

진짜 미친놈 아니, 변태인가?

“이런 욕을 대놓고 들으니 신선한걸.”

“욕좀 많이 듣고 살 것 같은데?”

내말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웃어댄다.

“다들 내 비위 맞추느라 눈치보거든. 내가 초 극우성 알파니까.”

“아, 맞다. 너 초 극우성 알파였지.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

“풋, 너 역시 재밌네.”

재미같은 소리하네. 미친놈 아니, 변태놈이.

“됐고 나 집에 갈거야. 바지 어디있어.”

지금 나는 엉덩이와 중요한 그곳을 덮을 정도로 큰 옷을 입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바지가 없다.

“바지는 내 옷이 너무커서 못입혔어. 다른건 세탁중이야. 어차피 나도 오늘 과모임 안가니까 그냥 여기있지. 내가 너에게 궁금한게 아주 많거든.”

미친. 여기 더 있다가는 내 비밀이 다 폭로될것 같았다.

“싫어. 집에 갈거야.”

“존댓말 할때는 귀여웠는데 안해도 귀엽네. 큰일이야.”

뭐래 미친놈이.

소름이 돋아서 양팔을 손으로 비비었다.

“다들 내가 이러면 얼굴 붉히고 페로몬 뿌리던데.”

“죄송해서 어쩌나. 난 베타인데.”

비록 페로몬을 지배하고 길들이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베타였다.

“…베타라고.”

거짓말을 가늠해보려는 갸름하게 뜬 눈으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않고 진짜 베타였다.

“음.”

서은성이 침대에서 일어나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래서 어떨결에 그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깊고 청량한 페로몬의 향기가 머리를 강타하면서 계속해서 내 곁에 도발하듯이 머물렀다.

“…좋은 냄새나는데, 베타라고?”

목덜미에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지금 자세도 그렇고 귀가를 울리는 저 낮은 미성도 그렇고 심장이 이상반응을 보이지 않은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러게 가슴의 술렁거림을 치부하며 서은성의 가슴을 밀며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무슨 짓이야.”

“확인.”

그는 양손을 들고 흑심은 없었다는 듯이 순진하게 웃으며 내숭을 떨었다.

하지만 지금 지금 그의 페로몬은 성적인 의미로 조금 흥분해있는 상태였다. 내가 오메가도 아닌데 혹시 러트 주기가 가까워졌나? 확인해 보기 위해 슬쩍 페로몬을 보자 페로몬이 내 시선을 느끼고는 더 보란듯이 활달하게 움직였다.

자기 주인을 닮아서는 능글거리는게 아주 반박이었다. 그런데 페로몬이 무엇가를 숨기고 싶어한다. 우물쭈물거리는게 파도의 썰물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너.”

“왜?”

속을 알수없는 아주 잘생긴 얼굴이 살짝 기울어진다. 그의 앞머리도 결에 맞춰져서는 흔들리는 모습이 몽환적이다.

…음. 잘생겼네.

정신차리자. 난 얼빠가 아니다.

“나한테 뭐 숨기는거 있지?”

“내가? 너한테?”

푸른빛이 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순진하는 척을 하는데 어찌나 잘 하는지. 페로몬을 보지 못했으면 속을 뻔 했다.

“가식 떨지 말고 다 아니까.”

“흐음, 어떻게 아는걸까?”

가식을 그만둔 서은성의 표정은 정말이지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우면서 그 속은 엄청난 폭풍과 같은 거대한 파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엄청난 페로몬에 흘려가 잘기잘기 찢어져 버릴 것같은 것을 간신히 버티며 두눈을 똑바로뜨며 서은성을 쳐다보았다.

“이게 훨씬 사람답네. 가식 떨던 넌 소름끼쳤든.”

푸른 눈동자가 흥미를 담으며 곱게 희어졌다.

“초 극우성 알파인 내 페로몬에 무릎꿇지 않는데 평검한 베타라고?”

“페로몬 뿌렸었니? 미안해. 워낙미미해서 몰랐어.”

내 말에 처음으로 여유롭고 권위적인 서은성의 표정에 금이 갔다. 그 모습에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절대적인 강자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알았을때의 희열? 아니면 절대적인 강자를 떨어뜨려 냈을때의 쾌감?

어쨋든 무척이나 좋은 기분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하, 이거 참 재미있네.”

“자존심 상한게 아니라?”

“도발하는 건가?”

“네가 도발에 걸린거겠지.”

내가 알파였다면 아마 지금쯤 페로몬이 서로를 공격하면서 스파크를 튀기며 싸웠을 거다.

“이런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네.”

“엄마 배에서 나왔지. 너는 아닌가봐?”

도발은 도발로서 돌려주기.

“점점 화가 날려고 그러네?”

“유일한 초 극우성 알파가 겨우 일개 베타한테 페로
몬을 사용해서 굴복 못시켰다고 화난거야?”

돌려서 까는게 아니라 직방으로 까기.

“와, 어떻게 한마디도 안질까.”

“네가 한마디도 못이기는 거겠지.”

비꼬면서 우월감을 드러내기.

나의 ‘상대방을 빡돌게 하는 3단계의 방번’을 당한서은성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이걸 당하고 화를 내지 않은 상대는 둘중 하나다. 하나는 그냥 바보인거고 하는 겉으로는 감쪽같이 숨기면서는 속으로는 열불나는 타입이다.

“아주 흥미롭네. 이름이 뭐야?”

그런데 이놈은 흥미롭다면서 더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진짜 진성 변태다. 얼굴은 잘생겼지만 변태였던 거였다.

“내 이름은 뭐하게.”

“기억해놓고 두고두고 가지고 놀게.”

“미안하지 난 비싼 장난감이라서 수준맞는 사람하고만 놀아.”

서은성의 한쪽 눈썹이 조금이지만 구겨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는 표정을 하며 속으로는 폭소했다.

“고작 베타가 왜이렇게 비싸게 굴까.”

“그러게 고작 베타에게 초 극우성 알파가 왜 이렇게 질척질척하게 들러붙을까?”

도발은 그대로 도발로 맞아친다. 험한 세상을 살아온 내가 살아온 법칙 중 하나였다.

“후우, 좋아. 말장난은 그만하고 본론을 말하지.”

“난 진심이었는데.”

매섭게 노려보는 눈을 맞받아치며 일부로 씩 웃었다. 승리했다는 충족감에 절로 입고리가 올라갔다.

“……”

“네 동생 때문이지?”

“……”

맞추었는지 서은성은 아무말도 없었다. 어딘가 고장난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멈춰있는 꼴이 버퍼링이라도 걸린것 같았다.

“야?”

코앞까지 다가가서 손을 흔들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서은성이 주춤거리면서 한걸음 물러갔다. 감자기 물러가자 나도 모르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

“……”

미묘한 침묵이 감돌고 왠지 모르게 이 분위가 가슴을 간질거렸다. 무슨 기분이지. 이게.

청량한 페로몬의 향기가 기분좋게 내몸을 훑으며 지나간다.

곰곰히 생각하던 그때 서은성이 나에게 천천히 손을 뻗어왔다. 피해서는 안될것 같아서 가만히 서있었다. 이윽고 손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꼬르륵-!

배가 울렸다.

“…배고파.”

그러고보니 아침도 안먹고 점심도 안먹었다. 창문을 보아하니 저녁인것 같았다. 배가 고파왔다.

피를 토하고 기절하듯이 잠들었으니 기력이 많이 소진되었을 터였다.

“나 일단 손님이지?”

어정쩡하게 공중에 떠있던 손이 어느순간 원래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왠지 그게 아쉽다고 느끼며 서은성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손으로 얼굴의 반을 덥고 있었다.

“야, 너 어디 아파?”

“…아니, 기다려. 저녁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할게.”

나를 휙지나 가는 서은성의 목이 붉게 보이는 것은데. 진짜 어디 아픈가?

의야해하며 다시 침대로 달려가 쓰러지듯이 누웠다. 이 침대의 폭심함은 마약이었다.

복도로 나와 방의 문을 닫고 서은성은 고개를 숙인채로 붉게 변한 자신의 뺨을 숨기었다. 아까부터 심장소리가 시끄러웠다. 손끝이 간지럽고 러트때 처럼 온몸이 뜨거웠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것 같았다.

‘저게 정말 베타라고?’

학국의 최고의 대학이라고 불리는 성은 대학교에 입학할 정도면 머리가 좋다는 것을 넘어서서 천재인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외모 또한 베타라기 보다는 오메가가에 가까운 미인이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피부와 작은체구. 그리고 한팔로 안으면 품에 다들오고도 남을 얇은 허리. 하얀 머리카락이 신비로웠고 붉은 눈동자는 보는 이는의 기분을 묘하게 그런 미인이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오메가같은 아니, 더 향기롭고무언가 가슴한켠을 간지럽히는 좋은 재취를 가지고 있었다. 성욕이아닌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자극하는 무엇가의 향기가 계속 서은성을 이지한에게 이끌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소유권을 벗어난 무언가가 심기를 건드렸다. 작은 거슬림이었지만 계속해서 처음 봤을때 부터 계속 조금씩 자극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그 어떤 우성 오메가를 만나도 이런 이끌림도 성욕보다 더한 이 원초적인 감각도 느껴본적이 없었다.

더 문제인 것은 이 감각을 기꺼워하며 좋아하는 자신의 페로몬이었다. 만났을때 부터 고삐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페로몬이 흥분하며 날뛰고 있었다.

그걸 간신히 잠재우며 서은성은 서둘러 주방으로 향하였다.




※※※




아직인 걸까? 배가 고프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결
국 이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넓은 방을 나섰다.

문으로 고개를 빼고 주위를 살펴보니 놀랍도록 아
무도 없었다.

넓은 복도가 이 건물이 상당히 큰 건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알려주고 있었다. 이 넓은 공간에 인기척이 없으니 조금 삭막했다.

이름모를 작가들이 그린 왠지모르게 비싸보이는 그림을 지나가면서 순간 느껴지는 오메가의 향기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건 분명 그때 그 소녀의 페로몬이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향기가 줄어들어 있었고 무엇보다 페로몬이 고통스럽고 울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듯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계속해서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렇게 페로몬이 간절해질 정도면 페로몬의 주인에게 무슨일이 있는게 확실했다.

서둘러 페로몬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텅빈 복도를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문의 앞. 그 앞에서 울고있는 페로몬이 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똑-똑-.

조심스럽게 문을 두번 두드렸다.

안에서 작은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문에 이마를 붙이고 조심스럽게 안정시킨 페로몬을 소녀에게 다시 돌려보내 주었다. 소녀의 페로몬은 내가 길들인 페로몬이었기 때문에 다른 페로몬보다 정밀하게 조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무서우면 거기서 있어도 돼.”

또 다시 작은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무섭고 두려워하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불안정한 페로몬이 그 감정 그대로 나에게 전해주었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알파가 아니야.”

알파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소녀의 페로몬. 아직은 앳되었던 소녀는 큰일을 당하였다. 그리고 그 일이 소녀의 정신을 서서히 망가트리고 있었다.

여기서 더 지체된다면 저 소녀는 분명 얼마 못간다.

“혹시 나 기억하면 이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

문에서 이마를 때고 한걸음 물러가서 천천히 소녀를 기다렸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소녀의 페로몬을 진정시키며.

그러자 문고리가 돌아가서니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문이 열였다.

드러난 소녀의 모습은 그때 보다 훨씬 말랐고 초췌했으며 음침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손목에 붕대가 마음이 아팟다.

“안녕. 나 기억해?”

조심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소녀가 고개를 연신 흔들면서 이슬비같은 눈물을 한방울 두방울 흘렸다.

“…흑, 흐흑.”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머리를 그때처럼 쓰다듬어주었다. 잘 버티고 있다고 잘 이겨내고 있었고 너는 아무것도 잘못한것이 없다고 차마 더 상처를 줄까 말을 삼키며 울음을 그칠때 까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은 그 어떤 말도 필요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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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16 09:58 | 조회 : 2,196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BL맞는데 거이 사건 위주로 갈것같아요..지루하지 않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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